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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2009년 방북 전 행동 지침…“사진 찍을 때 웃지말라”
입력 2014.06.10 (09:42) 수정 2014.06.10 (17:49) 연합뉴스
2009년 미국인 여기자 석방을 위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에 대해 백악관 일부 참모들이 반대했으나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해 성사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는 사안의 외교적 민감성을 감안해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김정일과 사진 찍을 때 웃거나 찡그리지 마라"는 요지의 행동지침을 사전 브리핑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클린턴 전 장관은 10일(현지시간) 출간되는 회고록 '힘든 선택들(Hard Choices)'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비화를 공개했다.

2009년 방북 당시에도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무표정한 태도를 보였다는 관측들이 대두됐으나 실제로 외교적 파장을 의식한 백악관이 주도한 '각본'이었음이 공식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 "고어·카터·올브라이트 한때 검토…김정일이 클린턴 '점지'"

클린턴 전 장관은 2009년 6∼7월께 미국의 고위급 특사단이 방북하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두 미국인 여기자를 풀어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회고했다.

처음에는 여기자들이 속한 커런트TV의 앨 고어 전 부통령, 전 세계적 인도주의적 활동으로 유명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 1990년대 북한과 외교를 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리스트에 올랐다는 게 클린턴 전 장관의 설명이다.

그는 그러나 "북한은 이미 특정한 방문객을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바로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었다"며 "이것은 놀라운 제안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김정일은 남편 빌이 1994년 김일성 사망 때 위로 편지를 보낸 이후부터 분명한 호감을 갖고 있었다"며 "물론 전직 미국 대통령의 구출 작전을 통해 국제적 관심을 끌고 싶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클린턴 전 장관은 "빌은 두 여기자 석방을 위해 방북하기를 희망했고 고어 전 부통령과 여기자 가족들도 이를 원했지만 백악관 일부 참모들이 반대했다"며 "일부는 2008년 대선후보 예비경선과 관련해 빌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대부분은 고위급 인사의 방북이 김정일의 잘못된 행동을 보상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고 동맹국들에 우려를 줄 수 있다고 여겼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러나 "나는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더이상 얻을 게 없는 북한으로서는 여기자들을 석방할 명분이 필요했고 우리로서도 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북한과 시도하는 모든 노력이 정지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이에 같은해 7월말 오바마 대통령과 점심을 함께하며 직접 이 아이디어를 제기했다고 털어놨다. 클린턴 전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은 이것이 우리가 가진 최고의 기회"라는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클린턴 전 장관은 "개인차원의 방북이었지만 빌과 그가 이끄는 방북팀은 평양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충분한 브리핑을 받았다"며 "우스우면서도 중요한 대목은 김정일과 불가피하게 공식 사진을 찍을 때 웃거나 찡그리지 말라고 지침을 내린 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방북후 공개한 사진을 보니 빌과 방북팀이 적절하게 행동했으며 아무도 웃지 않았다"며 "빌은 나중에 '제임스 본드 영화의 오디션을 하는 기분이었다'고 털어놨다"고 소개했다.

이어 "빌은 여기자 석방을 북한 정권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증거로 생각했지만 이듬해 3월 천안함 사건이라는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 "오바마 초기 대화제안은 '미끼'…北 거부할 줄 알았다"

2009년 2월 방한시 북한에 대화를 공식 제안한 것은 초반에 북한과의 기싸움에서 우세를 점하기 위한 일종의 '미끼' 전략이었다고 털어놨다.

클린턴 전 장관은 "당시 공개발언을 통해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게 핵프로그램을 중단할 경우 관계정상화는 물론이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에너지와 경제,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북한의 고립이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며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북한과의 게임에서 초반에 우세를 확보하기 위한 수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 제안의 성공을 희망하면서도 북한이 거부할 경우 다른 나라들과 함께 북한을 압박하는 게 더 쉬워질 것이라는 점을 알았다"며 "이는 북한의 오랜 후원자이자 평양 정권의 보호자인 중국을 국제적인 대북 연합전선에 동참시킨다는 측면에서 특히 중요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북한으로부터 답을 듣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며 "한달 뒤 북한은 북·중 국경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미국 커런트TV 여기자 두명을 체포해 억류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악수 청하자 北 주먹으로 응수…中동참시켜 강력제재"

그는 미국이 악수를 청한 데 대해 북한이 주먹으로 응수했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여기자 억류에 이어 같은해 5월 2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직접 강력한 대북제재를 주도했다고 회고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중국을 포함해 관련국 모두가 핵실험을 용납할 수 없다고 동의했지만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다른 문제였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양제츠 외교부장에게 "어려운 줄 알지만 우리가 함께 행동한다면 북한의 사고를 바꿀 수 있다"고 호소했고 이에 양 부장은 "역내 핵무기 경쟁 우려를 공유한다"며 "적절하고 절제된 대응이 필요하다"고 동의했다.

결국 같은 해 6월 중순 유엔 안보리의 모든 회원국이 참여한 가운데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가 나오게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를 동참시키기 위해 일정부분 '양보'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 "한국은 빛나는 발전의 사례…북한은 위협의 원천"

클린턴 전 장관은 2010년 7월 로버트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과 함께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한 일을 회고하며 남·북한 체제를 극명하게 대조시켰다.

그는 "불과 2.5 마일에 불과한 좁은 선(線)이 극적으로 다른 두개의 세계를 갈라놓고 있는데 대해 크게 놀랐다"며 "한국은 가난과 독재에서 벗어나 번영과 민주주의로 향하는 빛나는 발전의 사례가 되고 있는 반면 북한은 공포와 기근의 나라였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시아 중시전략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도 "아시아는 미래의 성장기반이지만 동시에 안보의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다. 가장 눈여겨볼 것은 바로 북한의 불가측한 독재정권"이라고 지목했다.

그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만찬 자리에서 "한국이 북한보다 더 가난했으나 미국과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며 어려운 유년기를 극복한 과정을 얘기했다고 회고했다.

◇ "오바마 '亞중시' 전략에 개인적 연계감…中은 모순덩어리"

클린턴 전 장관은 재임기간 주도한 '아시아 중심축 이동' 전략을 오바마 대통령이 개인적 관점에서 중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와이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에서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아시아에 개인적 연계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의 현실화를 위해 중국과의 불필요한 대립 없이 태평양 세력으로서의 패권을 유지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고 회고했다.

또 ▲주요동맹국인 한국, 일본을 방문하고 ▲아세안의 본산인 인도네시아에 손을 뻗치며 ▲중국과의 관여를 강화하는 것을 세가지 전략목표로 삼았다고 소개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모순 덩어리'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수천만명이 가난에서 탈출하며 갈수록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국가로 발전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심각한 문제를 미봉책을 가리려고 시도하는 독재정권을 가진데다 1억명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클린턴 전 장관은 2009년 2월 방한 당시 이화여대에서 강연할 때 젊은 여대생들로부터 '여성혐오적인 지도자들을 다루는 게 어렵지 않으냐'는 등 사적인 질문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다른 지도자들이 나를 대할 때 여자라는 사실을 무시한 채 대한다"고 답변했다고 소개하고 "아직도 공공생활에서 여성들이 부당한 이중잣대를 적용받는 것은 불행한 현실"이라며 "호주의 여성총리인 줄리아 길라드도 말도 안되는 성차별주의에 직면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 빌 클린턴 2009년 방북 전 행동 지침…“사진 찍을 때 웃지말라”
    • 입력 2014-06-10 09:42:13
    • 수정2014-06-10 17:49:19
    연합뉴스
2009년 미국인 여기자 석방을 위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에 대해 백악관 일부 참모들이 반대했으나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해 성사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는 사안의 외교적 민감성을 감안해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김정일과 사진 찍을 때 웃거나 찡그리지 마라"는 요지의 행동지침을 사전 브리핑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클린턴 전 장관은 10일(현지시간) 출간되는 회고록 '힘든 선택들(Hard Choices)'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비화를 공개했다.

2009년 방북 당시에도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무표정한 태도를 보였다는 관측들이 대두됐으나 실제로 외교적 파장을 의식한 백악관이 주도한 '각본'이었음이 공식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 "고어·카터·올브라이트 한때 검토…김정일이 클린턴 '점지'"

클린턴 전 장관은 2009년 6∼7월께 미국의 고위급 특사단이 방북하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두 미국인 여기자를 풀어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회고했다.

처음에는 여기자들이 속한 커런트TV의 앨 고어 전 부통령, 전 세계적 인도주의적 활동으로 유명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 1990년대 북한과 외교를 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리스트에 올랐다는 게 클린턴 전 장관의 설명이다.

그는 그러나 "북한은 이미 특정한 방문객을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바로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었다"며 "이것은 놀라운 제안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김정일은 남편 빌이 1994년 김일성 사망 때 위로 편지를 보낸 이후부터 분명한 호감을 갖고 있었다"며 "물론 전직 미국 대통령의 구출 작전을 통해 국제적 관심을 끌고 싶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클린턴 전 장관은 "빌은 두 여기자 석방을 위해 방북하기를 희망했고 고어 전 부통령과 여기자 가족들도 이를 원했지만 백악관 일부 참모들이 반대했다"며 "일부는 2008년 대선후보 예비경선과 관련해 빌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대부분은 고위급 인사의 방북이 김정일의 잘못된 행동을 보상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고 동맹국들에 우려를 줄 수 있다고 여겼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러나 "나는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더이상 얻을 게 없는 북한으로서는 여기자들을 석방할 명분이 필요했고 우리로서도 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북한과 시도하는 모든 노력이 정지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이에 같은해 7월말 오바마 대통령과 점심을 함께하며 직접 이 아이디어를 제기했다고 털어놨다. 클린턴 전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은 이것이 우리가 가진 최고의 기회"라는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클린턴 전 장관은 "개인차원의 방북이었지만 빌과 그가 이끄는 방북팀은 평양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충분한 브리핑을 받았다"며 "우스우면서도 중요한 대목은 김정일과 불가피하게 공식 사진을 찍을 때 웃거나 찡그리지 말라고 지침을 내린 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방북후 공개한 사진을 보니 빌과 방북팀이 적절하게 행동했으며 아무도 웃지 않았다"며 "빌은 나중에 '제임스 본드 영화의 오디션을 하는 기분이었다'고 털어놨다"고 소개했다.

이어 "빌은 여기자 석방을 북한 정권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증거로 생각했지만 이듬해 3월 천안함 사건이라는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 "오바마 초기 대화제안은 '미끼'…北 거부할 줄 알았다"

2009년 2월 방한시 북한에 대화를 공식 제안한 것은 초반에 북한과의 기싸움에서 우세를 점하기 위한 일종의 '미끼' 전략이었다고 털어놨다.

클린턴 전 장관은 "당시 공개발언을 통해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게 핵프로그램을 중단할 경우 관계정상화는 물론이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에너지와 경제,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북한의 고립이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며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북한과의 게임에서 초반에 우세를 확보하기 위한 수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 제안의 성공을 희망하면서도 북한이 거부할 경우 다른 나라들과 함께 북한을 압박하는 게 더 쉬워질 것이라는 점을 알았다"며 "이는 북한의 오랜 후원자이자 평양 정권의 보호자인 중국을 국제적인 대북 연합전선에 동참시킨다는 측면에서 특히 중요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북한으로부터 답을 듣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며 "한달 뒤 북한은 북·중 국경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미국 커런트TV 여기자 두명을 체포해 억류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악수 청하자 北 주먹으로 응수…中동참시켜 강력제재"

그는 미국이 악수를 청한 데 대해 북한이 주먹으로 응수했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여기자 억류에 이어 같은해 5월 2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직접 강력한 대북제재를 주도했다고 회고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중국을 포함해 관련국 모두가 핵실험을 용납할 수 없다고 동의했지만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다른 문제였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양제츠 외교부장에게 "어려운 줄 알지만 우리가 함께 행동한다면 북한의 사고를 바꿀 수 있다"고 호소했고 이에 양 부장은 "역내 핵무기 경쟁 우려를 공유한다"며 "적절하고 절제된 대응이 필요하다"고 동의했다.

결국 같은 해 6월 중순 유엔 안보리의 모든 회원국이 참여한 가운데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가 나오게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를 동참시키기 위해 일정부분 '양보'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 "한국은 빛나는 발전의 사례…북한은 위협의 원천"

클린턴 전 장관은 2010년 7월 로버트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과 함께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한 일을 회고하며 남·북한 체제를 극명하게 대조시켰다.

그는 "불과 2.5 마일에 불과한 좁은 선(線)이 극적으로 다른 두개의 세계를 갈라놓고 있는데 대해 크게 놀랐다"며 "한국은 가난과 독재에서 벗어나 번영과 민주주의로 향하는 빛나는 발전의 사례가 되고 있는 반면 북한은 공포와 기근의 나라였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시아 중시전략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도 "아시아는 미래의 성장기반이지만 동시에 안보의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다. 가장 눈여겨볼 것은 바로 북한의 불가측한 독재정권"이라고 지목했다.

그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만찬 자리에서 "한국이 북한보다 더 가난했으나 미국과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며 어려운 유년기를 극복한 과정을 얘기했다고 회고했다.

◇ "오바마 '亞중시' 전략에 개인적 연계감…中은 모순덩어리"

클린턴 전 장관은 재임기간 주도한 '아시아 중심축 이동' 전략을 오바마 대통령이 개인적 관점에서 중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와이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에서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아시아에 개인적 연계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의 현실화를 위해 중국과의 불필요한 대립 없이 태평양 세력으로서의 패권을 유지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고 회고했다.

또 ▲주요동맹국인 한국, 일본을 방문하고 ▲아세안의 본산인 인도네시아에 손을 뻗치며 ▲중국과의 관여를 강화하는 것을 세가지 전략목표로 삼았다고 소개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모순 덩어리'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수천만명이 가난에서 탈출하며 갈수록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국가로 발전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심각한 문제를 미봉책을 가리려고 시도하는 독재정권을 가진데다 1억명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클린턴 전 장관은 2009년 2월 방한 당시 이화여대에서 강연할 때 젊은 여대생들로부터 '여성혐오적인 지도자들을 다루는 게 어렵지 않으냐'는 등 사적인 질문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다른 지도자들이 나를 대할 때 여자라는 사실을 무시한 채 대한다"고 답변했다고 소개하고 "아직도 공공생활에서 여성들이 부당한 이중잣대를 적용받는 것은 불행한 현실"이라며 "호주의 여성총리인 줄리아 길라드도 말도 안되는 성차별주의에 직면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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