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중앙일보 재직시절 쓴 ‘칼럼’ 화제

입력 2014.06.10 (18:43) 수정 2014.06.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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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새 총리 후보자에 문창극(66) 중앙일보 전 주필을 깜짝 지명한 뒤 인터넷 상에서는 문 후보자가 중앙일보 재직 시절 박근혜 대통령에 관해 쓴 칼럼 하나가 화제가 되고 있다.

해당 칼럼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던 2011년 4월 5일자 중앙일보에 쓴 ‘박근혜 현상’이라는 제목의 글로 박근혜 대표로의 지나친 권력 쏠림 현상을 비판하고 있다. 글에서 문 후보자는 “이 나라에서 요즘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뽑지도 않고, 권한을 위임하지도 않았지만 주요 이슈 마다 그녀 입만 쳐다보며 쫒아 다니는 ‘박근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그의 한마디는 금과옥조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하는 칼럼 전문이다.

[박근혜 현상]

이 나라에서는 요즘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뽑지도 않았고 권한을 위임하지도 않았는데 권력이 한쪽으로 몰려가고 있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지 않고 오히려 그런 현상을 부추기기까지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박근혜 현상이다.

주요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언론은 그녀의 입을 쳐다보며 쫓아다닌다. 그의 말수가 워낙 적기 때문에 그 한마디는 금과옥조가 되어 버렸다.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이라면 국민이 준 대표권, 즉 위임받은 정당한 몫을 스스로의 판단으로 지켜가야 한다. 그것은 최소한의 의무다.

그러나 대표권을 지키기보다 그녀가 어느 길을 택하는지에 관심이 더 크다. 그 길에 줄을 서려고 경쟁을 하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그녀의 말이 나온 뒤에야 기자회견을 할 정도다. 그녀도 국회의원이고 전직 당대표이니 당연히 그 맡겨진 분량만큼의 영향력 내지는 권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현재 야당은 물론 여당의 모든 국회의원의 무게보다 더 무거워 보인다.

한편 우리가 5년 동안 권력을 위탁한 대통령은 어떠한가? 그의 임기가 아직 2년이나 남았는데 벌써 레임덕에 들어갔느니 권력누수 현상이 생겼느니 말이 많다. 이 5년은 국민이 그에게 나라를 다스릴 권한을 위임한 불가침의 기간인데 왜 그에게 보장해준 기간도 채우지 않고 앞질러서 그의 권력을 훼손하려 드는가? 권력을 위임받지 않은 사람은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현직 대통령은 그 위임된 기간이 남았는데도 권한을 행사하지 못한다면 과연 그런 나라가 옳게 가고 있는 걸까?

박근혜 현상은 왜 나올까? 그녀의 판단력이 워낙 출중해 귀담아들어야 하기 때문일까? 또는 정치신의를 앞세우는 그가 신선해 보여서일까? 물론 정치는 신의를 지켜야 한다. 그러나 신의를 지키기 위해 잘못된 공약을 쫓아가기보다는 그것을 포기할 줄도 아는 것이 더 용기 있는 일이다. 그가 행정수도를 고수한 것이나, 영남 국제공항을 고집한 것은 나라 전체를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지역 이기주의를 고려한 것으로 보일 뿐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국회의원들은 왜 그의 입만 쳐다보고 있을까? 그 같은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이를 일종의 사회심리 현상으로 해석하고 싶다. 기대심리다. 그가 다음 권력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 때문에 관심을 끄는 것이다. 그 관심이 현실적으로 힘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어떤 인물이 아무런 힘이 없는데도 힘이 있다고 사람들이 믿기 시작하면 그에게 실제로 힘이 생긴다. 어려운 말로 ‘자기실현적 예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이 어느 정도 산업화가 끝나 경제적으로 자립한 시점부터 미국은 한국의 국내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학생들이나 야당 인사는 미국의 힘이 있다고 믿고 미 대사관 앞에 가서 데모를 했다. 그런 믿음이 미국으로 하여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녀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이기는 하지만 제도적으로는 아무런 권한도 없다. 그러나 언론이나 의원들이 그에게 힘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에게 힘이 생기는 것이다. 차기 권력자로 기대해 권력을 미리 실현시켜 주는 것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미리 당겨 쓴 가불 월급처럼 가불된 권력이라고나 할까. 현재의 일들은 현재의 권력에 맡기고 미래는 그때의 권력에 맡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물론 정치에는 파워게임적 요소가 있는 것이므로 무조건 비판할 수만은 없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앞으로 한국 정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가 걱정스러운 것이다. 그녀는 자기 주장을 논리적으로 자세히 설명하지도,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지도 않는다. 그저 몇 마디 하면 주변의 참모가 이를 해석하고, 언론은 그것을 대서특필한다.

휘장 안에 있는 그녀가 신비하기 때문일까? 자유인인 지금도 이럴진대 만약 실제 권력의 자리에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누가 감히 그 휘장을 벗기고 그녀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겠는가? 동화 ‘오즈의 마법사’처럼 휘장 안의 마법사를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민주주의는 투명해야 한다.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나야 국민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국민의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녀 스스로가 휘장 속에서 걸어 나와야 한다. 언론도 누가 되었든 휘장 안의 인물을 신비롭게 조명할 것이 아니라 휘장을 벗기고 국민이 실체를 볼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의원들은 국민이 위임한 각자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는 대표자가 돼야지 권력의 향방만 좇을 일이 아니다. 내실 있는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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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창극, 중앙일보 재직시절 쓴 ‘칼럼’ 화제
    • 입력 2014-06-10 18:43:36
    • 수정2014-06-10 21:00:41
    정치
박근혜 대통령이 새 총리 후보자에 문창극(66) 중앙일보 전 주필을 깜짝 지명한 뒤 인터넷 상에서는 문 후보자가 중앙일보 재직 시절 박근혜 대통령에 관해 쓴 칼럼 하나가 화제가 되고 있다.

해당 칼럼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던 2011년 4월 5일자 중앙일보에 쓴 ‘박근혜 현상’이라는 제목의 글로 박근혜 대표로의 지나친 권력 쏠림 현상을 비판하고 있다. 글에서 문 후보자는 “이 나라에서 요즘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뽑지도 않고, 권한을 위임하지도 않았지만 주요 이슈 마다 그녀 입만 쳐다보며 쫒아 다니는 ‘박근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그의 한마디는 금과옥조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하는 칼럼 전문이다.

[박근혜 현상]

이 나라에서는 요즘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뽑지도 않았고 권한을 위임하지도 않았는데 권력이 한쪽으로 몰려가고 있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지 않고 오히려 그런 현상을 부추기기까지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박근혜 현상이다.

주요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언론은 그녀의 입을 쳐다보며 쫓아다닌다. 그의 말수가 워낙 적기 때문에 그 한마디는 금과옥조가 되어 버렸다.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이라면 국민이 준 대표권, 즉 위임받은 정당한 몫을 스스로의 판단으로 지켜가야 한다. 그것은 최소한의 의무다.

그러나 대표권을 지키기보다 그녀가 어느 길을 택하는지에 관심이 더 크다. 그 길에 줄을 서려고 경쟁을 하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그녀의 말이 나온 뒤에야 기자회견을 할 정도다. 그녀도 국회의원이고 전직 당대표이니 당연히 그 맡겨진 분량만큼의 영향력 내지는 권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현재 야당은 물론 여당의 모든 국회의원의 무게보다 더 무거워 보인다.

한편 우리가 5년 동안 권력을 위탁한 대통령은 어떠한가? 그의 임기가 아직 2년이나 남았는데 벌써 레임덕에 들어갔느니 권력누수 현상이 생겼느니 말이 많다. 이 5년은 국민이 그에게 나라를 다스릴 권한을 위임한 불가침의 기간인데 왜 그에게 보장해준 기간도 채우지 않고 앞질러서 그의 권력을 훼손하려 드는가? 권력을 위임받지 않은 사람은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현직 대통령은 그 위임된 기간이 남았는데도 권한을 행사하지 못한다면 과연 그런 나라가 옳게 가고 있는 걸까?

박근혜 현상은 왜 나올까? 그녀의 판단력이 워낙 출중해 귀담아들어야 하기 때문일까? 또는 정치신의를 앞세우는 그가 신선해 보여서일까? 물론 정치는 신의를 지켜야 한다. 그러나 신의를 지키기 위해 잘못된 공약을 쫓아가기보다는 그것을 포기할 줄도 아는 것이 더 용기 있는 일이다. 그가 행정수도를 고수한 것이나, 영남 국제공항을 고집한 것은 나라 전체를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지역 이기주의를 고려한 것으로 보일 뿐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국회의원들은 왜 그의 입만 쳐다보고 있을까? 그 같은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이를 일종의 사회심리 현상으로 해석하고 싶다. 기대심리다. 그가 다음 권력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 때문에 관심을 끄는 것이다. 그 관심이 현실적으로 힘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어떤 인물이 아무런 힘이 없는데도 힘이 있다고 사람들이 믿기 시작하면 그에게 실제로 힘이 생긴다. 어려운 말로 ‘자기실현적 예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이 어느 정도 산업화가 끝나 경제적으로 자립한 시점부터 미국은 한국의 국내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학생들이나 야당 인사는 미국의 힘이 있다고 믿고 미 대사관 앞에 가서 데모를 했다. 그런 믿음이 미국으로 하여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녀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이기는 하지만 제도적으로는 아무런 권한도 없다. 그러나 언론이나 의원들이 그에게 힘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에게 힘이 생기는 것이다. 차기 권력자로 기대해 권력을 미리 실현시켜 주는 것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미리 당겨 쓴 가불 월급처럼 가불된 권력이라고나 할까. 현재의 일들은 현재의 권력에 맡기고 미래는 그때의 권력에 맡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물론 정치에는 파워게임적 요소가 있는 것이므로 무조건 비판할 수만은 없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앞으로 한국 정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가 걱정스러운 것이다. 그녀는 자기 주장을 논리적으로 자세히 설명하지도,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지도 않는다. 그저 몇 마디 하면 주변의 참모가 이를 해석하고, 언론은 그것을 대서특필한다.

휘장 안에 있는 그녀가 신비하기 때문일까? 자유인인 지금도 이럴진대 만약 실제 권력의 자리에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누가 감히 그 휘장을 벗기고 그녀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겠는가? 동화 ‘오즈의 마법사’처럼 휘장 안의 마법사를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민주주의는 투명해야 한다.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나야 국민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국민의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녀 스스로가 휘장 속에서 걸어 나와야 한다. 언론도 누가 되었든 휘장 안의 인물을 신비롭게 조명할 것이 아니라 휘장을 벗기고 국민이 실체를 볼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의원들은 국민이 위임한 각자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는 대표자가 돼야지 권력의 향방만 좇을 일이 아니다. 내실 있는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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