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제자들 구하려고…‘살신성인’ 교사
입력 2014.06.11 (08:41)
수정 2014.06.1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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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순간에도 자신을 희생해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오늘 소개해 드린 분은 단원고등학교의 선생님이었던 고(故) 유니나 선생님인데요.
학생들을 대피시키다가 숨진 유니나 선생님의 시신이 사고 발생 54일 만에 발견됐습니다. 이승훈 기자 나와 있습니다.
유 교사가 원래는 비교적 탈출이 쉬운 5층 객실에 있었다고요?
<기자 멘트>
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유 교사는 가 침몰하기 시작할 당시 층 객실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종 54일 만에 유 교사의 시신이 발견된 곳 3층 식당이었습니다.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 3층까지 내려간겁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 걱정뿐이었던 선생님, 그 흔적을 따라가 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9일, 안산 고대병원.
단원고 교사 고 유니나 씨의 빈소가 마련됐습니다.
항상 제자들에게 꽃같이 환하게 웃었다는 선생님.
학생들이 유 선생님에게 붙여준 별명은 ‘천사 선생님’이었습니다.
오매불망, 간절히 딸을 기다린 시간이 54일.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딸이 그나마 이렇게라도 돌아와 준 것에 위안을 합니다.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오빠 : "(부모님께서) 진도 떠나면서 ‘고맙다.’는 생각을 (저에게) 이야기하셨고요."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남자친구(음성변조) : "(실종) 54일, 시간으로 따지면 1,200여 시간이 지났어요. 매 순간이 기다림이었죠."
보름동안 주춤했던 실종자 구조작업,
지난 5일, 선실 내 장애물을 제거하면서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8일 오전.
3층 중앙에 있는 식당에서 실종자의 시신 한 구가 추가로 수습됩니다.
심하게 훼손된 시신은 지문 채취도 불가능했던 상황.
하지만, 가족들은 유 교사를 한 눈에 알아봤습니다.
손가락에 끼워진 커플반지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오빠(음성변조) : "커플 반지를 제가 알고 있었는데... 왜냐면 (동생의) 남자친구 분도 되게 오래 내려와 있었어요. 진도에...그 반지가 (동생 것과) 똑같잖아요."
사고 당일, 유 교사는 5층 객실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TV로 사고 소식을 접한 동료교사는 곧바로 유 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확인했다고 하는데요.
이때 유 교사는 생존한 상태로 5층에 있던, 제자들의 탈출을 돕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 동료 교사(음성변조) : "전화가 중간에 계속 거부되고 끊기고 ‘지금 되게 정신이 없으신가 보다.’ 이렇게만 생각했었는데...“
5층에서 제자들과 함께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상황.
하지만, 유 교사는 탈출 대신 다른 선택을 합니다.
학생들이 남아 있는 3층 식당으로 내려간 겁니다.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오빠(음성변조) : "통화 목록을 떼봤죠. 얘가 뭘 하고 있나 궁금하니까... 마지막에도 학생이랑 통화를 했더라고요. 그리고 누가 이야기를 한 것도 (들었고요.) 학생이랑 통화해서 3층에 갔다고..."
공포에 떨고 있을 제자들이 눈에 밟혀 급하게 물이 차오르는 아래층으로 내려간 유 교사.
결국 고인은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습니다.
발견 당시 유 교사는 학생들에게 양보를 한 탓인지,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인터뷰> 동료 교사(음성변조) : "니나라면 나올 아이는 아니에요. 아이들 위해서... 니나라면 나올 수 없었을 것 같아요."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에도 성실히 공부해 장학금으로 유학을 마치고, 4년 전 임용고시에 합격한 유 교사.
단원고에서 첫 교사생활을 시작했는데요.
지금 보시는 화면은 지난 2월 학년 수업을 마치는 종업식 때 헤어짐을 아쉬워 하는 학생들이 찍은 영상입니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 요. 우리 다시 만날 그 날을...
첫 부임지였기에 더 애틋했던 제자들...
학생들도 ‘천사선생님’ 유 씨를 누구보다 믿고 잘 따랐습니다.
<인터뷰> 동료 교사(음성변조) : "아이들이 정말 재미있게 지낼 수 있게 온갖 것들을 다 매번 찾아서 가는 것들. 그런데 애들도 그걸 다 알아요. 그 애들이 선생님이 자기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걸 모르는 애들이 한 명도 없거든요."
제자들을 구하느라사랑하는 가족에게도커플반지를 끼워준 남자친구에게도 짧은 메시지조차 남기지 못한 유 씨.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남자친구 (음성변조) : "니나가 정말 미친 듯이 자랑스럽거든요. 그런데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뷰> 동료 교사 (음성변조) : "늦었지만, 나와 줘서 너무 고맙고 영원히 안 잊을 거예요.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유 교사의 이런 헌신 덕인지, 유 교사가 담임을 맡았던2학년 1반은 전체 반 가운데서 가장 많은, 19명이 생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 교사 외에도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헌신한 선생님들의 희생 정신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습니다.
<녹취> “남윤철”
침몰 직전까지 학생들에게 일일이 구명조끼를 던져 입힌 뒤 하나씩 갑판으로 올린 남윤철 교사.
끝까지 배에 남아 제자들을 구조하다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녹취> “(담임 선생님이세요? 선생님이세요?) 선생님이세요. "
<녹취> “왜 이렇게 차가워야 하는데...”
지난 3월부터 단원고에서 첫 교사생활을 시작한 25살의 새내기 교사 최혜정 씨.
올해 첫 담임을 맡아 배에서 생일을 맞이했던 김초원 선생님.
아이들을 구해야 해 통화를 할 수 없다는 어머니와의 전화를 끝으로 연락이 두절된 전수영 선생님.
모두 자신의 구명조끼를 학생들에게 내어주고 끝까지 배를 지키다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인터뷰> 故 전수영 씨의 어머니 : "엄마 걱정 할까 봐 나 (구명조끼) 못 입었어. 이 말은 못하고 애들은 입었어 이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단원고 인솔교사 14명 가운데 숨진채 발견된 희생자가 10명.
두 명은 아직까지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오빠(음성변조) : "동생 외에 다른 선생님들도 다 똑같았겠지만 그런 것을 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를 본받게 해 준 것이 아닌가"
촌각을 다투는 생사의 갈림길.
그런 상황에서 끝까지 학생들의 손을 놓지 않았던 선생님들.
선생님의 마지막 가르침은 ‘사랑과 희생’이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순간에도 자신을 희생해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오늘 소개해 드린 분은 단원고등학교의 선생님이었던 고(故) 유니나 선생님인데요.
학생들을 대피시키다가 숨진 유니나 선생님의 시신이 사고 발생 54일 만에 발견됐습니다. 이승훈 기자 나와 있습니다.
유 교사가 원래는 비교적 탈출이 쉬운 5층 객실에 있었다고요?
<기자 멘트>
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유 교사는 가 침몰하기 시작할 당시 층 객실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종 54일 만에 유 교사의 시신이 발견된 곳 3층 식당이었습니다.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 3층까지 내려간겁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 걱정뿐이었던 선생님, 그 흔적을 따라가 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9일, 안산 고대병원.
단원고 교사 고 유니나 씨의 빈소가 마련됐습니다.
항상 제자들에게 꽃같이 환하게 웃었다는 선생님.
학생들이 유 선생님에게 붙여준 별명은 ‘천사 선생님’이었습니다.
오매불망, 간절히 딸을 기다린 시간이 54일.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딸이 그나마 이렇게라도 돌아와 준 것에 위안을 합니다.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오빠 : "(부모님께서) 진도 떠나면서 ‘고맙다.’는 생각을 (저에게) 이야기하셨고요."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남자친구(음성변조) : "(실종) 54일, 시간으로 따지면 1,200여 시간이 지났어요. 매 순간이 기다림이었죠."
보름동안 주춤했던 실종자 구조작업,
지난 5일, 선실 내 장애물을 제거하면서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8일 오전.
3층 중앙에 있는 식당에서 실종자의 시신 한 구가 추가로 수습됩니다.
심하게 훼손된 시신은 지문 채취도 불가능했던 상황.
하지만, 가족들은 유 교사를 한 눈에 알아봤습니다.
손가락에 끼워진 커플반지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오빠(음성변조) : "커플 반지를 제가 알고 있었는데... 왜냐면 (동생의) 남자친구 분도 되게 오래 내려와 있었어요. 진도에...그 반지가 (동생 것과) 똑같잖아요."
사고 당일, 유 교사는 5층 객실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TV로 사고 소식을 접한 동료교사는 곧바로 유 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확인했다고 하는데요.
이때 유 교사는 생존한 상태로 5층에 있던, 제자들의 탈출을 돕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 동료 교사(음성변조) : "전화가 중간에 계속 거부되고 끊기고 ‘지금 되게 정신이 없으신가 보다.’ 이렇게만 생각했었는데...“
5층에서 제자들과 함께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상황.
하지만, 유 교사는 탈출 대신 다른 선택을 합니다.
학생들이 남아 있는 3층 식당으로 내려간 겁니다.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오빠(음성변조) : "통화 목록을 떼봤죠. 얘가 뭘 하고 있나 궁금하니까... 마지막에도 학생이랑 통화를 했더라고요. 그리고 누가 이야기를 한 것도 (들었고요.) 학생이랑 통화해서 3층에 갔다고..."
공포에 떨고 있을 제자들이 눈에 밟혀 급하게 물이 차오르는 아래층으로 내려간 유 교사.
결국 고인은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습니다.
발견 당시 유 교사는 학생들에게 양보를 한 탓인지,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인터뷰> 동료 교사(음성변조) : "니나라면 나올 아이는 아니에요. 아이들 위해서... 니나라면 나올 수 없었을 것 같아요."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에도 성실히 공부해 장학금으로 유학을 마치고, 4년 전 임용고시에 합격한 유 교사.
단원고에서 첫 교사생활을 시작했는데요.
지금 보시는 화면은 지난 2월 학년 수업을 마치는 종업식 때 헤어짐을 아쉬워 하는 학생들이 찍은 영상입니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 요. 우리 다시 만날 그 날을...
첫 부임지였기에 더 애틋했던 제자들...
학생들도 ‘천사선생님’ 유 씨를 누구보다 믿고 잘 따랐습니다.
<인터뷰> 동료 교사(음성변조) : "아이들이 정말 재미있게 지낼 수 있게 온갖 것들을 다 매번 찾아서 가는 것들. 그런데 애들도 그걸 다 알아요. 그 애들이 선생님이 자기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걸 모르는 애들이 한 명도 없거든요."
제자들을 구하느라사랑하는 가족에게도커플반지를 끼워준 남자친구에게도 짧은 메시지조차 남기지 못한 유 씨.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남자친구 (음성변조) : "니나가 정말 미친 듯이 자랑스럽거든요. 그런데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뷰> 동료 교사 (음성변조) : "늦었지만, 나와 줘서 너무 고맙고 영원히 안 잊을 거예요.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유 교사의 이런 헌신 덕인지, 유 교사가 담임을 맡았던2학년 1반은 전체 반 가운데서 가장 많은, 19명이 생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 교사 외에도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헌신한 선생님들의 희생 정신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습니다.
<녹취> “남윤철”
침몰 직전까지 학생들에게 일일이 구명조끼를 던져 입힌 뒤 하나씩 갑판으로 올린 남윤철 교사.
끝까지 배에 남아 제자들을 구조하다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녹취> “(담임 선생님이세요? 선생님이세요?) 선생님이세요. "
<녹취> “왜 이렇게 차가워야 하는데...”
지난 3월부터 단원고에서 첫 교사생활을 시작한 25살의 새내기 교사 최혜정 씨.
올해 첫 담임을 맡아 배에서 생일을 맞이했던 김초원 선생님.
아이들을 구해야 해 통화를 할 수 없다는 어머니와의 전화를 끝으로 연락이 두절된 전수영 선생님.
모두 자신의 구명조끼를 학생들에게 내어주고 끝까지 배를 지키다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인터뷰> 故 전수영 씨의 어머니 : "엄마 걱정 할까 봐 나 (구명조끼) 못 입었어. 이 말은 못하고 애들은 입었어 이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단원고 인솔교사 14명 가운데 숨진채 발견된 희생자가 10명.
두 명은 아직까지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오빠(음성변조) : "동생 외에 다른 선생님들도 다 똑같았겠지만 그런 것을 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를 본받게 해 준 것이 아닌가"
촌각을 다투는 생사의 갈림길.
그런 상황에서 끝까지 학생들의 손을 놓지 않았던 선생님들.
선생님의 마지막 가르침은 ‘사랑과 희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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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순간에도 자신을 희생해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오늘 소개해 드린 분은 단원고등학교의 선생님이었던 고(故) 유니나 선생님인데요.
학생들을 대피시키다가 숨진 유니나 선생님의 시신이 사고 발생 54일 만에 발견됐습니다. 이승훈 기자 나와 있습니다.
유 교사가 원래는 비교적 탈출이 쉬운 5층 객실에 있었다고요?
<기자 멘트>
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유 교사는 가 침몰하기 시작할 당시 층 객실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종 54일 만에 유 교사의 시신이 발견된 곳 3층 식당이었습니다.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 3층까지 내려간겁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 걱정뿐이었던 선생님, 그 흔적을 따라가 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9일, 안산 고대병원.
단원고 교사 고 유니나 씨의 빈소가 마련됐습니다.
항상 제자들에게 꽃같이 환하게 웃었다는 선생님.
학생들이 유 선생님에게 붙여준 별명은 ‘천사 선생님’이었습니다.
오매불망, 간절히 딸을 기다린 시간이 54일.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딸이 그나마 이렇게라도 돌아와 준 것에 위안을 합니다.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오빠 : "(부모님께서) 진도 떠나면서 ‘고맙다.’는 생각을 (저에게) 이야기하셨고요."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남자친구(음성변조) : "(실종) 54일, 시간으로 따지면 1,200여 시간이 지났어요. 매 순간이 기다림이었죠."
보름동안 주춤했던 실종자 구조작업,
지난 5일, 선실 내 장애물을 제거하면서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8일 오전.
3층 중앙에 있는 식당에서 실종자의 시신 한 구가 추가로 수습됩니다.
심하게 훼손된 시신은 지문 채취도 불가능했던 상황.
하지만, 가족들은 유 교사를 한 눈에 알아봤습니다.
손가락에 끼워진 커플반지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오빠(음성변조) : "커플 반지를 제가 알고 있었는데... 왜냐면 (동생의) 남자친구 분도 되게 오래 내려와 있었어요. 진도에...그 반지가 (동생 것과) 똑같잖아요."
사고 당일, 유 교사는 5층 객실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TV로 사고 소식을 접한 동료교사는 곧바로 유 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확인했다고 하는데요.
이때 유 교사는 생존한 상태로 5층에 있던, 제자들의 탈출을 돕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 동료 교사(음성변조) : "전화가 중간에 계속 거부되고 끊기고 ‘지금 되게 정신이 없으신가 보다.’ 이렇게만 생각했었는데...“
5층에서 제자들과 함께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상황.
하지만, 유 교사는 탈출 대신 다른 선택을 합니다.
학생들이 남아 있는 3층 식당으로 내려간 겁니다.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오빠(음성변조) : "통화 목록을 떼봤죠. 얘가 뭘 하고 있나 궁금하니까... 마지막에도 학생이랑 통화를 했더라고요. 그리고 누가 이야기를 한 것도 (들었고요.) 학생이랑 통화해서 3층에 갔다고..."
공포에 떨고 있을 제자들이 눈에 밟혀 급하게 물이 차오르는 아래층으로 내려간 유 교사.
결국 고인은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습니다.
발견 당시 유 교사는 학생들에게 양보를 한 탓인지,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인터뷰> 동료 교사(음성변조) : "니나라면 나올 아이는 아니에요. 아이들 위해서... 니나라면 나올 수 없었을 것 같아요."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에도 성실히 공부해 장학금으로 유학을 마치고, 4년 전 임용고시에 합격한 유 교사.
단원고에서 첫 교사생활을 시작했는데요.
지금 보시는 화면은 지난 2월 학년 수업을 마치는 종업식 때 헤어짐을 아쉬워 하는 학생들이 찍은 영상입니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 요. 우리 다시 만날 그 날을...
첫 부임지였기에 더 애틋했던 제자들...
학생들도 ‘천사선생님’ 유 씨를 누구보다 믿고 잘 따랐습니다.
<인터뷰> 동료 교사(음성변조) : "아이들이 정말 재미있게 지낼 수 있게 온갖 것들을 다 매번 찾아서 가는 것들. 그런데 애들도 그걸 다 알아요. 그 애들이 선생님이 자기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걸 모르는 애들이 한 명도 없거든요."
제자들을 구하느라사랑하는 가족에게도커플반지를 끼워준 남자친구에게도 짧은 메시지조차 남기지 못한 유 씨.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남자친구 (음성변조) : "니나가 정말 미친 듯이 자랑스럽거든요. 그런데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뷰> 동료 교사 (음성변조) : "늦었지만, 나와 줘서 너무 고맙고 영원히 안 잊을 거예요.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유 교사의 이런 헌신 덕인지, 유 교사가 담임을 맡았던2학년 1반은 전체 반 가운데서 가장 많은, 19명이 생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 교사 외에도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헌신한 선생님들의 희생 정신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습니다.
<녹취> “남윤철”
침몰 직전까지 학생들에게 일일이 구명조끼를 던져 입힌 뒤 하나씩 갑판으로 올린 남윤철 교사.
끝까지 배에 남아 제자들을 구조하다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녹취> “(담임 선생님이세요? 선생님이세요?) 선생님이세요. "
<녹취> “왜 이렇게 차가워야 하는데...”
지난 3월부터 단원고에서 첫 교사생활을 시작한 25살의 새내기 교사 최혜정 씨.
올해 첫 담임을 맡아 배에서 생일을 맞이했던 김초원 선생님.
아이들을 구해야 해 통화를 할 수 없다는 어머니와의 전화를 끝으로 연락이 두절된 전수영 선생님.
모두 자신의 구명조끼를 학생들에게 내어주고 끝까지 배를 지키다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인터뷰> 故 전수영 씨의 어머니 : "엄마 걱정 할까 봐 나 (구명조끼) 못 입었어. 이 말은 못하고 애들은 입었어 이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단원고 인솔교사 14명 가운데 숨진채 발견된 희생자가 10명.
두 명은 아직까지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오빠(음성변조) : "동생 외에 다른 선생님들도 다 똑같았겠지만 그런 것을 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를 본받게 해 준 것이 아닌가"
촌각을 다투는 생사의 갈림길.
그런 상황에서 끝까지 학생들의 손을 놓지 않았던 선생님들.
선생님의 마지막 가르침은 ‘사랑과 희생’이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순간에도 자신을 희생해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오늘 소개해 드린 분은 단원고등학교의 선생님이었던 고(故) 유니나 선생님인데요.
학생들을 대피시키다가 숨진 유니나 선생님의 시신이 사고 발생 54일 만에 발견됐습니다. 이승훈 기자 나와 있습니다.
유 교사가 원래는 비교적 탈출이 쉬운 5층 객실에 있었다고요?
<기자 멘트>
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유 교사는 가 침몰하기 시작할 당시 층 객실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종 54일 만에 유 교사의 시신이 발견된 곳 3층 식당이었습니다.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 3층까지 내려간겁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 걱정뿐이었던 선생님, 그 흔적을 따라가 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9일, 안산 고대병원.
단원고 교사 고 유니나 씨의 빈소가 마련됐습니다.
항상 제자들에게 꽃같이 환하게 웃었다는 선생님.
학생들이 유 선생님에게 붙여준 별명은 ‘천사 선생님’이었습니다.
오매불망, 간절히 딸을 기다린 시간이 54일.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딸이 그나마 이렇게라도 돌아와 준 것에 위안을 합니다.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오빠 : "(부모님께서) 진도 떠나면서 ‘고맙다.’는 생각을 (저에게) 이야기하셨고요."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남자친구(음성변조) : "(실종) 54일, 시간으로 따지면 1,200여 시간이 지났어요. 매 순간이 기다림이었죠."
보름동안 주춤했던 실종자 구조작업,
지난 5일, 선실 내 장애물을 제거하면서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8일 오전.
3층 중앙에 있는 식당에서 실종자의 시신 한 구가 추가로 수습됩니다.
심하게 훼손된 시신은 지문 채취도 불가능했던 상황.
하지만, 가족들은 유 교사를 한 눈에 알아봤습니다.
손가락에 끼워진 커플반지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오빠(음성변조) : "커플 반지를 제가 알고 있었는데... 왜냐면 (동생의) 남자친구 분도 되게 오래 내려와 있었어요. 진도에...그 반지가 (동생 것과) 똑같잖아요."
사고 당일, 유 교사는 5층 객실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TV로 사고 소식을 접한 동료교사는 곧바로 유 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확인했다고 하는데요.
이때 유 교사는 생존한 상태로 5층에 있던, 제자들의 탈출을 돕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 동료 교사(음성변조) : "전화가 중간에 계속 거부되고 끊기고 ‘지금 되게 정신이 없으신가 보다.’ 이렇게만 생각했었는데...“
5층에서 제자들과 함께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상황.
하지만, 유 교사는 탈출 대신 다른 선택을 합니다.
학생들이 남아 있는 3층 식당으로 내려간 겁니다.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오빠(음성변조) : "통화 목록을 떼봤죠. 얘가 뭘 하고 있나 궁금하니까... 마지막에도 학생이랑 통화를 했더라고요. 그리고 누가 이야기를 한 것도 (들었고요.) 학생이랑 통화해서 3층에 갔다고..."
공포에 떨고 있을 제자들이 눈에 밟혀 급하게 물이 차오르는 아래층으로 내려간 유 교사.
결국 고인은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습니다.
발견 당시 유 교사는 학생들에게 양보를 한 탓인지,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인터뷰> 동료 교사(음성변조) : "니나라면 나올 아이는 아니에요. 아이들 위해서... 니나라면 나올 수 없었을 것 같아요."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에도 성실히 공부해 장학금으로 유학을 마치고, 4년 전 임용고시에 합격한 유 교사.
단원고에서 첫 교사생활을 시작했는데요.
지금 보시는 화면은 지난 2월 학년 수업을 마치는 종업식 때 헤어짐을 아쉬워 하는 학생들이 찍은 영상입니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 요. 우리 다시 만날 그 날을...
첫 부임지였기에 더 애틋했던 제자들...
학생들도 ‘천사선생님’ 유 씨를 누구보다 믿고 잘 따랐습니다.
<인터뷰> 동료 교사(음성변조) : "아이들이 정말 재미있게 지낼 수 있게 온갖 것들을 다 매번 찾아서 가는 것들. 그런데 애들도 그걸 다 알아요. 그 애들이 선생님이 자기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걸 모르는 애들이 한 명도 없거든요."
제자들을 구하느라사랑하는 가족에게도커플반지를 끼워준 남자친구에게도 짧은 메시지조차 남기지 못한 유 씨.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남자친구 (음성변조) : "니나가 정말 미친 듯이 자랑스럽거든요. 그런데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뷰> 동료 교사 (음성변조) : "늦었지만, 나와 줘서 너무 고맙고 영원히 안 잊을 거예요.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유 교사의 이런 헌신 덕인지, 유 교사가 담임을 맡았던2학년 1반은 전체 반 가운데서 가장 많은, 19명이 생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 교사 외에도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헌신한 선생님들의 희생 정신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습니다.
<녹취> “남윤철”
침몰 직전까지 학생들에게 일일이 구명조끼를 던져 입힌 뒤 하나씩 갑판으로 올린 남윤철 교사.
끝까지 배에 남아 제자들을 구조하다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녹취> “(담임 선생님이세요? 선생님이세요?) 선생님이세요. "
<녹취> “왜 이렇게 차가워야 하는데...”
지난 3월부터 단원고에서 첫 교사생활을 시작한 25살의 새내기 교사 최혜정 씨.
올해 첫 담임을 맡아 배에서 생일을 맞이했던 김초원 선생님.
아이들을 구해야 해 통화를 할 수 없다는 어머니와의 전화를 끝으로 연락이 두절된 전수영 선생님.
모두 자신의 구명조끼를 학생들에게 내어주고 끝까지 배를 지키다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인터뷰> 故 전수영 씨의 어머니 : "엄마 걱정 할까 봐 나 (구명조끼) 못 입었어. 이 말은 못하고 애들은 입었어 이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단원고 인솔교사 14명 가운데 숨진채 발견된 희생자가 10명.
두 명은 아직까지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故 유니나 씨의 오빠(음성변조) : "동생 외에 다른 선생님들도 다 똑같았겠지만 그런 것을 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를 본받게 해 준 것이 아닌가"
촌각을 다투는 생사의 갈림길.
그런 상황에서 끝까지 학생들의 손을 놓지 않았던 선생님들.
선생님의 마지막 가르침은 ‘사랑과 희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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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기자 hun2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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