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돈’ 국가보조금…곳곳에서 술술

입력 2014.07.0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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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돈은 눈먼 돈'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되는 국가보조금 편취 범죄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범죄가 관행화된 배경에는 허술한 감시 시스템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강력한 제재 방안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충북의 한 영농조합 조합원 A(67)씨는 2011년 3억4천만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농산물을 보관할 수 있는 저온저장고를 설치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가 경쟁력 지원책의 하나로 농가가 전체 공사비의 10∼40%를 자부담하면 나머지 공사비를 지원하고 있다.

A씨는 이점을 악용했다. 시공업자 B(63)씨와 짜고 공사비를 부풀려 신청하는 방법으로 단 한 푼도 안들이고 저온저장고를 설치했다.

결국, 검찰에 꼬리가 밟힌 A씨와 B씨는 지난 3일 구속됐다.

검찰은 또 A씨와 비슷한 수법으로 국가보조금을 챙긴 농민 12명을 사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앞서 지난달 23일에는 유류보조금을 편취한 화물차 운전자와 주유업자가 무더기로 기소됐다.

구속 기소된 청원군의 한 주유소 업주 C(48)씨는 관리직 직원 D(48)씨와 함께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화물차주들이 유류보조금을 부풀려 나랏돈을 챙길 수 있도록 도왔다.

자신의 주유소를 찾는 사업용 화물차 운전자들의 주유액을 부풀려 결제하는 수법으로 운전자가 유류보조금을 실제보다 더 챙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사실이 소문을 타면서 C씨의 주유소에는 보조금을 챙기려는 전국의 화물차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C씨의 주유소를 통해 유류보조금을 챙긴 화물차 운전자는 총 464명, 이들이 부당하게 챙긴 유류보조금은 3억2천만원에 달했다.

근무하지도 않은 보육교사들을 근무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국가보조금을 빼돌린 어린이집 원장들도 잇따라 덜미가 잡혔다.

청주 흥덕경찰서는 최근 청주의 모 어린이집 원장 E(43·여)씨와 F(53·여)씨 등 5명을 영유아보육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E씨와 F씨는 휴가 중인 보육교사를 재직 중인 것처럼 구청에 허위 신고해 1년여간 기본보육료 1천여만원씩을 타낸 것으로 드러났다.

대검찰청과 경찰청은 지난해 6월부터 3개월간 보건·복지, 고용, 농업, 연구·개발, 문화·체육·관광, 교통 등 전 분야에 걸쳐 국가보조금 지급 실태에 대한 수사를 벌여 부정 수급자 등 3천349명을 적발했다.

이 중 127명은 구속, 나머지 3천222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이 부당 수급하거나 횡령한 보조금은 1천700억원에 이른다.

수사기관의 대대적인 단속에도 이런 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은 허술한 보조금 신청 절차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보조금 신청 자격 기준에 미달해도 서류를 손쉽게 조작해 제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보조금 사업을 위임받아 시행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심사 절차가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것도 문제다.

청주지검의 한 관계자는 "국가보조금은 '임자 없는 돈'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만연하면서 편법의 일상화 내지는 관행화를 불렀다"며 "보조금 부정 수급자에 대한 행정 제재 강화와 불법 보조금 환수 법제화 등 강력한 제재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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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먼 돈’ 국가보조금…곳곳에서 술술
    • 입력 2014-07-06 08:59:48
    연합뉴스
'나랏돈은 눈먼 돈'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되는 국가보조금 편취 범죄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범죄가 관행화된 배경에는 허술한 감시 시스템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강력한 제재 방안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충북의 한 영농조합 조합원 A(67)씨는 2011년 3억4천만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농산물을 보관할 수 있는 저온저장고를 설치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가 경쟁력 지원책의 하나로 농가가 전체 공사비의 10∼40%를 자부담하면 나머지 공사비를 지원하고 있다. A씨는 이점을 악용했다. 시공업자 B(63)씨와 짜고 공사비를 부풀려 신청하는 방법으로 단 한 푼도 안들이고 저온저장고를 설치했다. 결국, 검찰에 꼬리가 밟힌 A씨와 B씨는 지난 3일 구속됐다. 검찰은 또 A씨와 비슷한 수법으로 국가보조금을 챙긴 농민 12명을 사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앞서 지난달 23일에는 유류보조금을 편취한 화물차 운전자와 주유업자가 무더기로 기소됐다. 구속 기소된 청원군의 한 주유소 업주 C(48)씨는 관리직 직원 D(48)씨와 함께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화물차주들이 유류보조금을 부풀려 나랏돈을 챙길 수 있도록 도왔다. 자신의 주유소를 찾는 사업용 화물차 운전자들의 주유액을 부풀려 결제하는 수법으로 운전자가 유류보조금을 실제보다 더 챙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사실이 소문을 타면서 C씨의 주유소에는 보조금을 챙기려는 전국의 화물차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C씨의 주유소를 통해 유류보조금을 챙긴 화물차 운전자는 총 464명, 이들이 부당하게 챙긴 유류보조금은 3억2천만원에 달했다. 근무하지도 않은 보육교사들을 근무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국가보조금을 빼돌린 어린이집 원장들도 잇따라 덜미가 잡혔다. 청주 흥덕경찰서는 최근 청주의 모 어린이집 원장 E(43·여)씨와 F(53·여)씨 등 5명을 영유아보육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E씨와 F씨는 휴가 중인 보육교사를 재직 중인 것처럼 구청에 허위 신고해 1년여간 기본보육료 1천여만원씩을 타낸 것으로 드러났다. 대검찰청과 경찰청은 지난해 6월부터 3개월간 보건·복지, 고용, 농업, 연구·개발, 문화·체육·관광, 교통 등 전 분야에 걸쳐 국가보조금 지급 실태에 대한 수사를 벌여 부정 수급자 등 3천349명을 적발했다. 이 중 127명은 구속, 나머지 3천222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이 부당 수급하거나 횡령한 보조금은 1천700억원에 이른다. 수사기관의 대대적인 단속에도 이런 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은 허술한 보조금 신청 절차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보조금 신청 자격 기준에 미달해도 서류를 손쉽게 조작해 제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보조금 사업을 위임받아 시행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심사 절차가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것도 문제다. 청주지검의 한 관계자는 "국가보조금은 '임자 없는 돈'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만연하면서 편법의 일상화 내지는 관행화를 불렀다"며 "보조금 부정 수급자에 대한 행정 제재 강화와 불법 보조금 환수 법제화 등 강력한 제재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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