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압록강변 국경 마을 ‘3색 탐방기’

입력 2014.07.12 (08:06) 수정 2014.07.1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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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길이 800km 한반도에서 가장 긴 길이를 자랑하는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 압록강입니다.

한반도 끝인 압록강 변의 북한 국경 마을에도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평안북도 삭주군에 위치한 청수구입니다.

땡볕 아래 작업을 하던 군인들이 상의를 벗고 흰색 내의 차림으로 강가에 나와 발을 담그고 빨래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맨몸으로 강둑에 눕거나 차가운 강물로 온몸을 적시며 한 여름의 무더위를 날립니다.

압록강에 많은 붕어와 숭어, 미꾸라지, 뱀장어를 잡기 위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낚시에 열중합니다.

마을 곳곳의 텃밭과 마을 뒤편의 민둥산엔 옥수수를 심어놓았고 고구마와 고추, 마늘도 주요 작물입니다.

강 주변 넓고 평평한 곳은 국영 소유의 옥수수 밭입니다.

그러나 집 주변 개인 텃밭에서 자라는 옥수수가 더 크고 더 푸르러 보입니다.

<인터뷰> 김00(탈북자/2007년 탈북) : "개인들 건 크잖아요. 강냉이가, 옥수수가. 아까 국영 건 조금 자그마하고 시들시들하고, 좀 노랗고. 개인들은 정성들여서 자기 거니까 열심히 하고. 국영 거는 나라 거니까 제 것이 아니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거죠)."

시골 마을을 지나자, 폐허가 된 공장 건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앙상한 골격만 남아있는 건물이 이 곳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인터뷰> 김00(탈북자/2007년 탈북) : "90년대 고난의 행군 들어서면서부터 군수 공장, 그런 큰 공장들은 국가에서 투자가 되니까 어느 정도 유지가 됐는데, 지방 공장들은 싹 다 폐허가 되고, 문을 닫다시피 했었어요. 전기가 우선 들어오지 않으니까 싹 다 끊기니까. 그 다음에 공장이 다 폐허가 되고, 다 녹슬고 없다시피 했었어요."

툭 끊어진, 육중한 다리는 청수구 주민들의 침체된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 합니다.

압록강변 북한 주민들의 삶은 처참할 정도로 열악합니다.

중국과의 밀거래 덕분에 그나마 끼니는 거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국 주민들의 이야기입니다.

힘겹게 손수레를 끌고 가는 두 명의 중년 여성.

자세히 보면 수레 안엔 흙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인터뷰> 김00(탈북자/2007년 탈북) : "북한에서는 집집마다 시골에서 나무를 때거나 연 탄을 때면 이렇게 구들 골이 막혀요. 그러면 탄내가 나던가 불이 잘 안 들고 하면 이때 구들을 다 들고(들어내고). 그 안에 있는 재를 다 긁어내고, 다시 공사를 하는 거죠 압록강이 바로 옆이니까 여기 와서 이런 모래를 퍼갈 때는 필시 그걸 작업을 하려고 하는 거지."

강가에서 퍼온 모래에 시멘트를 섞어 겨우내 허술해진 집을 수리하는데 쓴다는 겁니다.

화창한 날씨에 장화를 신은 건 이 아이가 김매기에 동원됐다는 걸 말해줍니다.

노부부가 사이좋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그 뒤로 노모와 어린 아이를 태운 여성이 열심히 페달을 밟습니다.

뒤따라가는 사람의 자전거엔 짐 보따리가 한가득 실려 있습니다.

모두 같은 방향입니다.

<인터뷰> 김00(탈북자/2007년 탈북) : "장 보러 갈 적에 이렇게 입고 나가는 거예요. 그 리고 이 사람들이 갈 데라는 게 장 보러 갈 날 밖에는 갈 데가 없잖아요. 시내에 무슨 읍에, 영화관도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전기도 안 (들어)오니까. 그러니까 장 보러 가면서 이 사람들이 자전거 뒤에는 자기네 팔 거 (싣는 거죠)."

이 지역 주민들에겐 장에 나가는 날이 유일한 외출입니다.

깔끔한 외출복을 차려입고 신발도 나름 멋을 부린 운동화를 신었습니다.

압록강 너머 공장이 보이는 이곳은 자강도 만포시입니다.

‘만포’는 배들이 가득 몰리는 포구라는 뜻으로 예로부터 압록강 물류를 포함해 중국과의 교역 비중도 큰 곳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도시가 압록강을 따라 길게 늘어선 형태여서 건너편 중국에서도 만포 시내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세련된 옷차림의 주민들을 쉽게 흔히 찾아볼 수 있고, 자동차와 대형 트럭들도 지나다닙니다.

시 외곽에 위치한 만포 시멘트 공장은 쉴 새 없이 연기를 뿜어내 공장이 가동 중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국경마을에 비해 생활 형편이 양호함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인터뷰> 박건하(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 : "만포시 인구의 절반 인원 정도가 그런 군수공장 에 다 출근하거든요. 군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한테는 배급을 줬어요. 또 중국 하고 인접해 있다 보니까. 중국 사람들 왕래가 많았어요. 그 전 에도 장사하는 경우도 많고. 어쨌든 그만큼 왕래가 많았다는 건 뭐, 먹고 살만 했고..."

만포와 중국 집안시를 연결하는 만포 집안 철교입니다.

하루에 한번 열차가 지나지만 중국과의 교역이 이뤄지는 통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철교 주변에 차량이 오갈 수 있는 다리가 세워졌지만 중국 정부와 주민들간의 보상 문제가 불거지면서 개통일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다리 건설비용을 일부 부담할 정도로 교량 건설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해에 만포시를 경제 개발구 열 세 곳 중에 하나로 지정하고 해외 자본 유치에 나선 상태입니다.

다리 완공 이후 중국과의 경제 교류 효과를 기대하고 경제 개발구로 지정한 셈입니다.

북한이 빠른 시간 안에 중국 집안에서 만포시를 둘러보는 당일 관광을 시작하겠다고 알려진 것도 다리 개통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쪽에서 바라본 외관은 다리 개통에 맞춰 지어진 신식 아파트들로 세련된 모습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속사정은 조금 다릅니다.

<인터뷰> 박건하(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 : "중국을 의식한 그런 느낌이 들거든요. 중국을 의식해서 새로 짓고. 아파트를 국가에서 배정을 하다 보니까 내가 돈 주고 사서 들어가는 게 아니니까 그건 경제형편이 안 되는 사람도 있잖아 요. 비닐도 막 치고 사는 집도 있는데. 그런 집들은 형편이 안 되는 집으로 보이거든요."

압록강 상류 지역인 양강도 김정숙군입니다.

김일성 우상화의 일환으로 김정일 주도하에 80년대에 기존 명칭인 ‘신파군’에서 김일성 부인 이름인 김정숙군으로 개칭됐습니다.

각종 건물과 기차역, 그리고 산중턱에도 김정은과 김정숙 우상화를 위한 선동적인 문구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빨간 깃발을 따라 군복을 입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걸어갑니다.

김정숙 동상과 신파혁명사적지, 김일성-김정일 벽화가 설치돼있어 북한 전역에서 각계각층 사람들이 ‘사상교육’의 일환으로 답사를 하러 오는 겁니다.

<인터뷰> 이석영(자유북한방송 방송국장) : "외관적으로 볼 때는 군인인 것 같지만 일반인입니다. 민간인들인데 김정숙의 업적을 따라 배운다고 해서 답사에 왔습니다. 이 사람들이 올 때 는 꼭 김일성, 김정숙이 입었던 항일복을 입어야만 답사에 참가할 수 있고. 가장 우수한 사람들. 당에 충실하거나, 또 공장, 기업소 생활 을 잘 한다거나, 일을 잘 한다 거나 하는 사람들을 선발해서 보내는 겁니다."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여성이 포즈를 취하자, 남자가 카메라를 꺼내 자세를 잡는 모습이 우리네 연인들과 비슷해 보입니다.

북한 당국은 이곳을 김정숙의 항일투쟁지역으로 선전하면서 아파트들을 집중적으로 건설했습니다.

그러나 압록강 주변에서 좀 떨어진 곳엔 창살이 앙상하게 남은 아파트나 허름한 하모니카 주택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주민들의 애환과는 상관없이 여러 마리의 염소들이 강변에서 풀을 뜯고 있고, 풀밭 위에 누워있는 황소는 여유로워 보입니다.

북한에서는 소가 토지 다음으로 중요한 생산 수단 중의 하납니다.

따라서 소는 개인 소유할 수 없고 당국에 반드시 등록을 해야 합니다.

<인터뷰> 이석영(자유북한방송 방송국장) : "북한에서 예전에 김일성이 이 소를 전쟁 시기에 전쟁 물자를 운반하는 운반수단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 소를 국가의 승인 없이 도축을 했다거나 하면 군법에 걸리는 거예요. 승인 없이 도살 을 했다고 하면 재판은 이루어지지만 무조건 총살이다 그거예요."

철로를 따라 천천히,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낡은 열차.

객실 칸칸마다 일제히 창문을 열고, 남녀노소 고개를 내밀어 밖을 내다봅니다.

<인터뷰> 이석영(자유북한방송 방송국장) : "왜 중국은 저렇게 몇 십 년 동안에 발전을 했는데 우리는 이렇게 아무 것도 발전이 없냐. 30년 안 에 저렇게 중국이 변화가 빨리 오니까 이 사람들 의 심리도 '아, 중국은 정말 비약적으로 발전했구나' 이걸 알고 싶은 거죠."

놀라운 중국의 발전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신기한 듯 바라보는 북한 사람들.

압록강변 북한 국경마을은 멈춰서있는 북한의 현재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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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압록강변 국경 마을 ‘3색 탐방기’
    • 입력 2014-07-12 08:36:21
    • 수정2014-07-12 11:30:55
    남북의 창
총 길이 800km 한반도에서 가장 긴 길이를 자랑하는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 압록강입니다.

한반도 끝인 압록강 변의 북한 국경 마을에도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평안북도 삭주군에 위치한 청수구입니다.

땡볕 아래 작업을 하던 군인들이 상의를 벗고 흰색 내의 차림으로 강가에 나와 발을 담그고 빨래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맨몸으로 강둑에 눕거나 차가운 강물로 온몸을 적시며 한 여름의 무더위를 날립니다.

압록강에 많은 붕어와 숭어, 미꾸라지, 뱀장어를 잡기 위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낚시에 열중합니다.

마을 곳곳의 텃밭과 마을 뒤편의 민둥산엔 옥수수를 심어놓았고 고구마와 고추, 마늘도 주요 작물입니다.

강 주변 넓고 평평한 곳은 국영 소유의 옥수수 밭입니다.

그러나 집 주변 개인 텃밭에서 자라는 옥수수가 더 크고 더 푸르러 보입니다.

<인터뷰> 김00(탈북자/2007년 탈북) : "개인들 건 크잖아요. 강냉이가, 옥수수가. 아까 국영 건 조금 자그마하고 시들시들하고, 좀 노랗고. 개인들은 정성들여서 자기 거니까 열심히 하고. 국영 거는 나라 거니까 제 것이 아니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거죠)."

시골 마을을 지나자, 폐허가 된 공장 건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앙상한 골격만 남아있는 건물이 이 곳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인터뷰> 김00(탈북자/2007년 탈북) : "90년대 고난의 행군 들어서면서부터 군수 공장, 그런 큰 공장들은 국가에서 투자가 되니까 어느 정도 유지가 됐는데, 지방 공장들은 싹 다 폐허가 되고, 문을 닫다시피 했었어요. 전기가 우선 들어오지 않으니까 싹 다 끊기니까. 그 다음에 공장이 다 폐허가 되고, 다 녹슬고 없다시피 했었어요."

툭 끊어진, 육중한 다리는 청수구 주민들의 침체된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 합니다.

압록강변 북한 주민들의 삶은 처참할 정도로 열악합니다.

중국과의 밀거래 덕분에 그나마 끼니는 거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국 주민들의 이야기입니다.

힘겹게 손수레를 끌고 가는 두 명의 중년 여성.

자세히 보면 수레 안엔 흙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인터뷰> 김00(탈북자/2007년 탈북) : "북한에서는 집집마다 시골에서 나무를 때거나 연 탄을 때면 이렇게 구들 골이 막혀요. 그러면 탄내가 나던가 불이 잘 안 들고 하면 이때 구들을 다 들고(들어내고). 그 안에 있는 재를 다 긁어내고, 다시 공사를 하는 거죠 압록강이 바로 옆이니까 여기 와서 이런 모래를 퍼갈 때는 필시 그걸 작업을 하려고 하는 거지."

강가에서 퍼온 모래에 시멘트를 섞어 겨우내 허술해진 집을 수리하는데 쓴다는 겁니다.

화창한 날씨에 장화를 신은 건 이 아이가 김매기에 동원됐다는 걸 말해줍니다.

노부부가 사이좋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그 뒤로 노모와 어린 아이를 태운 여성이 열심히 페달을 밟습니다.

뒤따라가는 사람의 자전거엔 짐 보따리가 한가득 실려 있습니다.

모두 같은 방향입니다.

<인터뷰> 김00(탈북자/2007년 탈북) : "장 보러 갈 적에 이렇게 입고 나가는 거예요. 그 리고 이 사람들이 갈 데라는 게 장 보러 갈 날 밖에는 갈 데가 없잖아요. 시내에 무슨 읍에, 영화관도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전기도 안 (들어)오니까. 그러니까 장 보러 가면서 이 사람들이 자전거 뒤에는 자기네 팔 거 (싣는 거죠)."

이 지역 주민들에겐 장에 나가는 날이 유일한 외출입니다.

깔끔한 외출복을 차려입고 신발도 나름 멋을 부린 운동화를 신었습니다.

압록강 너머 공장이 보이는 이곳은 자강도 만포시입니다.

‘만포’는 배들이 가득 몰리는 포구라는 뜻으로 예로부터 압록강 물류를 포함해 중국과의 교역 비중도 큰 곳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도시가 압록강을 따라 길게 늘어선 형태여서 건너편 중국에서도 만포 시내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세련된 옷차림의 주민들을 쉽게 흔히 찾아볼 수 있고, 자동차와 대형 트럭들도 지나다닙니다.

시 외곽에 위치한 만포 시멘트 공장은 쉴 새 없이 연기를 뿜어내 공장이 가동 중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국경마을에 비해 생활 형편이 양호함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인터뷰> 박건하(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 : "만포시 인구의 절반 인원 정도가 그런 군수공장 에 다 출근하거든요. 군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한테는 배급을 줬어요. 또 중국 하고 인접해 있다 보니까. 중국 사람들 왕래가 많았어요. 그 전 에도 장사하는 경우도 많고. 어쨌든 그만큼 왕래가 많았다는 건 뭐, 먹고 살만 했고..."

만포와 중국 집안시를 연결하는 만포 집안 철교입니다.

하루에 한번 열차가 지나지만 중국과의 교역이 이뤄지는 통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철교 주변에 차량이 오갈 수 있는 다리가 세워졌지만 중국 정부와 주민들간의 보상 문제가 불거지면서 개통일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다리 건설비용을 일부 부담할 정도로 교량 건설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해에 만포시를 경제 개발구 열 세 곳 중에 하나로 지정하고 해외 자본 유치에 나선 상태입니다.

다리 완공 이후 중국과의 경제 교류 효과를 기대하고 경제 개발구로 지정한 셈입니다.

북한이 빠른 시간 안에 중국 집안에서 만포시를 둘러보는 당일 관광을 시작하겠다고 알려진 것도 다리 개통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쪽에서 바라본 외관은 다리 개통에 맞춰 지어진 신식 아파트들로 세련된 모습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속사정은 조금 다릅니다.

<인터뷰> 박건하(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 : "중국을 의식한 그런 느낌이 들거든요. 중국을 의식해서 새로 짓고. 아파트를 국가에서 배정을 하다 보니까 내가 돈 주고 사서 들어가는 게 아니니까 그건 경제형편이 안 되는 사람도 있잖아 요. 비닐도 막 치고 사는 집도 있는데. 그런 집들은 형편이 안 되는 집으로 보이거든요."

압록강 상류 지역인 양강도 김정숙군입니다.

김일성 우상화의 일환으로 김정일 주도하에 80년대에 기존 명칭인 ‘신파군’에서 김일성 부인 이름인 김정숙군으로 개칭됐습니다.

각종 건물과 기차역, 그리고 산중턱에도 김정은과 김정숙 우상화를 위한 선동적인 문구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빨간 깃발을 따라 군복을 입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걸어갑니다.

김정숙 동상과 신파혁명사적지, 김일성-김정일 벽화가 설치돼있어 북한 전역에서 각계각층 사람들이 ‘사상교육’의 일환으로 답사를 하러 오는 겁니다.

<인터뷰> 이석영(자유북한방송 방송국장) : "외관적으로 볼 때는 군인인 것 같지만 일반인입니다. 민간인들인데 김정숙의 업적을 따라 배운다고 해서 답사에 왔습니다. 이 사람들이 올 때 는 꼭 김일성, 김정숙이 입었던 항일복을 입어야만 답사에 참가할 수 있고. 가장 우수한 사람들. 당에 충실하거나, 또 공장, 기업소 생활 을 잘 한다거나, 일을 잘 한다 거나 하는 사람들을 선발해서 보내는 겁니다."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여성이 포즈를 취하자, 남자가 카메라를 꺼내 자세를 잡는 모습이 우리네 연인들과 비슷해 보입니다.

북한 당국은 이곳을 김정숙의 항일투쟁지역으로 선전하면서 아파트들을 집중적으로 건설했습니다.

그러나 압록강 주변에서 좀 떨어진 곳엔 창살이 앙상하게 남은 아파트나 허름한 하모니카 주택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주민들의 애환과는 상관없이 여러 마리의 염소들이 강변에서 풀을 뜯고 있고, 풀밭 위에 누워있는 황소는 여유로워 보입니다.

북한에서는 소가 토지 다음으로 중요한 생산 수단 중의 하납니다.

따라서 소는 개인 소유할 수 없고 당국에 반드시 등록을 해야 합니다.

<인터뷰> 이석영(자유북한방송 방송국장) : "북한에서 예전에 김일성이 이 소를 전쟁 시기에 전쟁 물자를 운반하는 운반수단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 소를 국가의 승인 없이 도축을 했다거나 하면 군법에 걸리는 거예요. 승인 없이 도살 을 했다고 하면 재판은 이루어지지만 무조건 총살이다 그거예요."

철로를 따라 천천히,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낡은 열차.

객실 칸칸마다 일제히 창문을 열고, 남녀노소 고개를 내밀어 밖을 내다봅니다.

<인터뷰> 이석영(자유북한방송 방송국장) : "왜 중국은 저렇게 몇 십 년 동안에 발전을 했는데 우리는 이렇게 아무 것도 발전이 없냐. 30년 안 에 저렇게 중국이 변화가 빨리 오니까 이 사람들 의 심리도 '아, 중국은 정말 비약적으로 발전했구나' 이걸 알고 싶은 거죠."

놀라운 중국의 발전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신기한 듯 바라보는 북한 사람들.

압록강변 북한 국경마을은 멈춰서있는 북한의 현재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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