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가 ‘피범벅’…다큐영화로 본 간토대학살 참상

입력 2014.07.16 (06:09) 수정 2014.07.1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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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지진이 일어난 날 밤부터 총성이 들렸다. 다음날 아침에 거리로 나가보니 다리 위가 피범벅이었고 전날 헤어진 나의 사촌형도 죽은 채로 발견됐다."

간토대지진을 다룬 기록 다큐영화 '숨겨진 손톱자국-도쿄 아라카와 제방 주변으로부터 시타마치에 이른 학살'에 등장하는 증언자들은 간토대학살 당시의 상황이 '피범벅'이었다고 회상했다.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은 15일 오후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간토대지진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편을 상영하고 관련 강연을 진행했다고 16일 밝혔다.

관동(關東·간토)대지진은 지난 1923년 9월 1일 도쿄와 요코하마 등 일본 관동지방 일대를 강타한 규모 7.9의 지진을 말한다.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가 유포되면서 재일 조선인 6천여명이 일본군과 자경단에 의해 학살됐다.

재일동포인 오충공 감독이 제작한 다큐영화에는 간토대학살에서 살아남은 한인, 대학살을 목격한 일본인 등이 다양하게 등장했다.

한 일본인 할머니는 "마을 입구에 있는 나무에 조선인 세 명이 묶여 있다가 다음날 총살당했다. 어린 내가 자꾸 쳐다보니까 어머니가 고개를 돌렸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간토대지진 때 학살당한 정확한 희생자 수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영화 상영 직후 이진희 미 이스턴일리노이대학교(Eastern Illinois University) 사학과 교수와 오 감독의 강연이 이어졌다.

이 교수는 "일본은 간토대지진 직후부터 정부가 직접 나서서 조선인 학살을 은폐해왔다"며 "'민중이 유언비어를 퍼뜨려 한인을 학살했지만 경찰과 군대가 조선인 보호에 나섰다'고 뉴욕 타임 등 서구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간토대지진을 겪은 일본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림에서는 일본 군·경찰에 의해 끌려가 학살당하는 조선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교수는 간토대학살에 관한 지속적인 정보 수집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열심히 일해서 고향에 돈 좀 부치고 새끼 밥 먹여보겠다고 아등바등 살던 한인들이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일주일에서 열흘 사이 적어도 6천명이 죽임을 당했다"며 "이후 일본 정부의 조사도 없이 잊히고 있는 이 사건은 근대 식민주의가 어떤 식으로 정보를 통제하고 기억을 지우는지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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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거리가 ‘피범벅’…다큐영화로 본 간토대학살 참상
    • 입력 2014-07-16 06:09:06
    • 수정2014-07-16 09:07:51
    연합뉴스
"간토대지진이 일어난 날 밤부터 총성이 들렸다. 다음날 아침에 거리로 나가보니 다리 위가 피범벅이었고 전날 헤어진 나의 사촌형도 죽은 채로 발견됐다."

간토대지진을 다룬 기록 다큐영화 '숨겨진 손톱자국-도쿄 아라카와 제방 주변으로부터 시타마치에 이른 학살'에 등장하는 증언자들은 간토대학살 당시의 상황이 '피범벅'이었다고 회상했다.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은 15일 오후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간토대지진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편을 상영하고 관련 강연을 진행했다고 16일 밝혔다.

관동(關東·간토)대지진은 지난 1923년 9월 1일 도쿄와 요코하마 등 일본 관동지방 일대를 강타한 규모 7.9의 지진을 말한다.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가 유포되면서 재일 조선인 6천여명이 일본군과 자경단에 의해 학살됐다.

재일동포인 오충공 감독이 제작한 다큐영화에는 간토대학살에서 살아남은 한인, 대학살을 목격한 일본인 등이 다양하게 등장했다.

한 일본인 할머니는 "마을 입구에 있는 나무에 조선인 세 명이 묶여 있다가 다음날 총살당했다. 어린 내가 자꾸 쳐다보니까 어머니가 고개를 돌렸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간토대지진 때 학살당한 정확한 희생자 수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영화 상영 직후 이진희 미 이스턴일리노이대학교(Eastern Illinois University) 사학과 교수와 오 감독의 강연이 이어졌다.

이 교수는 "일본은 간토대지진 직후부터 정부가 직접 나서서 조선인 학살을 은폐해왔다"며 "'민중이 유언비어를 퍼뜨려 한인을 학살했지만 경찰과 군대가 조선인 보호에 나섰다'고 뉴욕 타임 등 서구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간토대지진을 겪은 일본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림에서는 일본 군·경찰에 의해 끌려가 학살당하는 조선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교수는 간토대학살에 관한 지속적인 정보 수집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열심히 일해서 고향에 돈 좀 부치고 새끼 밥 먹여보겠다고 아등바등 살던 한인들이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일주일에서 열흘 사이 적어도 6천명이 죽임을 당했다"며 "이후 일본 정부의 조사도 없이 잊히고 있는 이 사건은 근대 식민주의가 어떤 식으로 정보를 통제하고 기억을 지우는지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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