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사설캠프 사고 1년…현장은 적막감만 감돌아

입력 2014.07.16 (07:35) 수정 2014.07.16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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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같은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의 심정이 오죽하겠어요. 다시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없어야지요"

지난해 7월 18일 충남 태안군 안면도 백사장항 해수욕장 근처에서 사설 해병캠프에 참가했던 공주사대부고생 5명이 교육훈련 중 급류에 휩쓸려 숨지는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1년이 돼 간다.

1년 만에 사고 현장을 다시 찾은 지난 16일 마을 입구에서 만난 50대의 한 주민은 이렇게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자연산 대하의 집산지로 매년 봄과 가을이면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백사장항에는 인근 드르니항으로 연결되는 높이 10m가량의 대형 인도교 '대하랑 꽃게랑'이 새 명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다리를 지나 해안 생태탐방로인 태안 해변길을 따라 사고 현장인 유스호스텔로 향하는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곳곳에 설치된 수영금지 표지판이었다.

표지판에는 '이 지역 인근에서 청소년 수련활동 중에 갯골에 빠져 다수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니 해수욕장 외에서는 물놀이는 물론 물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한다'는 태안군수 명의의 경고문이 담겨 있었다.

사고에 따른 사후조치로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행정당국과 해경의 의지가 느껴졌지만, 5명의 학생을 집어삼킨 바다와 해안도로 사이에 일종의 '완충지대'격으로 조성한 잡초밭의 무성한 풀과 어우러져 오히려 스산한 느낌을 자아냈다.

이 길을 따라 500여m가량 남쪽으로 걷다 보니 사고 당시 학생들이 머물렀던 유스호스텔이 나타났다.

사고 후 해병캠프 교관 등은 물론 유스호스텔 관계자들까지 구속되거나 재판을 받게 되면서 이 유스호스텔은 지난 2월부터 8월 말까지 태안군청에 휴업신고를 한 상태다.

유스호스텔에서 바다로 향하는 폭 10m가량의 통로는 바리케이드가 사람의 통행을 막았고, 이어지는 해변길에서 바닷가로 통하는 입구는 높이 1m가량의 목책으로 관광객의 출입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유스호스텔 내 유격훈련장의 그물은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았는지 무너져 내린 채 방치돼 있었고, 3층 규모의 숙박시설과 건너편 2층 규모의 휴게 및 학습시설에는 철제 셔터가 내려진 채 적막감만 흘렀다.

해무까지 짙어 스산한 유스호스텔을 지키는 것은 건물 관리 겸 요양차 머물고 있다는 노부부였다.

지난 5월부터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이들은 1년 전 사고에 대해 묻자 "이곳에 와서야 마을 주민들로부터 사고 소식을 들었을 뿐 유스호스텔 운영이나 해병대 캠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유스호스텔에서 해변길을 따라 800m가량 떨어진 곳에는 기존의 펜션에 오토캠핑장 조성이 한창이었다.

곳곳에 설치된 텐트에는 평일임에도 캠핑족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고, 근처에는 고급스러운 캠프장인 글램핑 시설 설치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캠프장 총무를 맡고 있다는 윤모(58)씨는 "작년 사고 이후 안면도내 9개 해수욕장에서는 피서객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며 "상인들이 하루에 튀김 하나를 팔기 어려울 정도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나름의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서해안은 하루아침에도 기상환경이 바뀌어 자고 나면 모래사장이 자갈밭으로 변하기도 한다"며 "몇 년 전에도 이 일대가 해일에 모두 잠겼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조건에서 자격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사설 캠프를 열다가 사고를 낸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는 "해병대의 공인을 받은 해병캠프는 전국에 1곳밖에 없다고 들었다"며 "기본교육도 받지 않은 사람들이 해병대 제대했다고 무작정 교관으로 나섰다가 사고가 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도 났지만 전국민이 안전불감증에 걸린 것 같다"며 "캠프장내 공용 화장실을 청소해 놓으면 불과 20∼30분만에 더럽혀지는 시민의식 수준도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태안지역에서는 지난해 안면도 외에 만리포 등 2∼3곳에서 사설 해병캠프가 열렸지만 올해는 단 한 곳도 신청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태안군의 한 관계자는 "청소년 캠프를 연다 해도 참가할 학교나 학생들도 없는 것 같다"며 "바다캠프는 물론이고 육지에서 진행되는 캠프도 올해는 전무하다"고 전했다.

지역 상인들은 지금의 관광경기 침체가 생계에 위협을 줄 정도나 더이상 어린 학생들의 허무한 희생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의식만은 확고했다. 사회 전반의 안전의식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지고, 철저한 재발방지 대책이 마련된 뒤에야 청소년 수련캠프가 재개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1년전 어린 학생들의 참사는 지역 주민들 가슴에도 깊은 생채기를 남겼고, 아물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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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안 사설캠프 사고 1년…현장은 적막감만 감돌아
    • 입력 2014-07-16 07:35:44
    • 수정2014-07-16 07:41:09
    연합뉴스
"금쪽같은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의 심정이 오죽하겠어요. 다시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없어야지요" 지난해 7월 18일 충남 태안군 안면도 백사장항 해수욕장 근처에서 사설 해병캠프에 참가했던 공주사대부고생 5명이 교육훈련 중 급류에 휩쓸려 숨지는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1년이 돼 간다. 1년 만에 사고 현장을 다시 찾은 지난 16일 마을 입구에서 만난 50대의 한 주민은 이렇게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자연산 대하의 집산지로 매년 봄과 가을이면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백사장항에는 인근 드르니항으로 연결되는 높이 10m가량의 대형 인도교 '대하랑 꽃게랑'이 새 명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다리를 지나 해안 생태탐방로인 태안 해변길을 따라 사고 현장인 유스호스텔로 향하는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곳곳에 설치된 수영금지 표지판이었다. 표지판에는 '이 지역 인근에서 청소년 수련활동 중에 갯골에 빠져 다수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니 해수욕장 외에서는 물놀이는 물론 물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한다'는 태안군수 명의의 경고문이 담겨 있었다. 사고에 따른 사후조치로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행정당국과 해경의 의지가 느껴졌지만, 5명의 학생을 집어삼킨 바다와 해안도로 사이에 일종의 '완충지대'격으로 조성한 잡초밭의 무성한 풀과 어우러져 오히려 스산한 느낌을 자아냈다. 이 길을 따라 500여m가량 남쪽으로 걷다 보니 사고 당시 학생들이 머물렀던 유스호스텔이 나타났다. 사고 후 해병캠프 교관 등은 물론 유스호스텔 관계자들까지 구속되거나 재판을 받게 되면서 이 유스호스텔은 지난 2월부터 8월 말까지 태안군청에 휴업신고를 한 상태다. 유스호스텔에서 바다로 향하는 폭 10m가량의 통로는 바리케이드가 사람의 통행을 막았고, 이어지는 해변길에서 바닷가로 통하는 입구는 높이 1m가량의 목책으로 관광객의 출입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유스호스텔 내 유격훈련장의 그물은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았는지 무너져 내린 채 방치돼 있었고, 3층 규모의 숙박시설과 건너편 2층 규모의 휴게 및 학습시설에는 철제 셔터가 내려진 채 적막감만 흘렀다. 해무까지 짙어 스산한 유스호스텔을 지키는 것은 건물 관리 겸 요양차 머물고 있다는 노부부였다. 지난 5월부터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이들은 1년 전 사고에 대해 묻자 "이곳에 와서야 마을 주민들로부터 사고 소식을 들었을 뿐 유스호스텔 운영이나 해병대 캠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유스호스텔에서 해변길을 따라 800m가량 떨어진 곳에는 기존의 펜션에 오토캠핑장 조성이 한창이었다. 곳곳에 설치된 텐트에는 평일임에도 캠핑족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고, 근처에는 고급스러운 캠프장인 글램핑 시설 설치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캠프장 총무를 맡고 있다는 윤모(58)씨는 "작년 사고 이후 안면도내 9개 해수욕장에서는 피서객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며 "상인들이 하루에 튀김 하나를 팔기 어려울 정도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나름의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서해안은 하루아침에도 기상환경이 바뀌어 자고 나면 모래사장이 자갈밭으로 변하기도 한다"며 "몇 년 전에도 이 일대가 해일에 모두 잠겼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조건에서 자격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사설 캠프를 열다가 사고를 낸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는 "해병대의 공인을 받은 해병캠프는 전국에 1곳밖에 없다고 들었다"며 "기본교육도 받지 않은 사람들이 해병대 제대했다고 무작정 교관으로 나섰다가 사고가 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도 났지만 전국민이 안전불감증에 걸린 것 같다"며 "캠프장내 공용 화장실을 청소해 놓으면 불과 20∼30분만에 더럽혀지는 시민의식 수준도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태안지역에서는 지난해 안면도 외에 만리포 등 2∼3곳에서 사설 해병캠프가 열렸지만 올해는 단 한 곳도 신청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태안군의 한 관계자는 "청소년 캠프를 연다 해도 참가할 학교나 학생들도 없는 것 같다"며 "바다캠프는 물론이고 육지에서 진행되는 캠프도 올해는 전무하다"고 전했다. 지역 상인들은 지금의 관광경기 침체가 생계에 위협을 줄 정도나 더이상 어린 학생들의 허무한 희생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의식만은 확고했다. 사회 전반의 안전의식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지고, 철저한 재발방지 대책이 마련된 뒤에야 청소년 수련캠프가 재개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1년전 어린 학생들의 참사는 지역 주민들 가슴에도 깊은 생채기를 남겼고, 아물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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