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사설캠프 사고 1년…멍든 유족 가슴은 여전

입력 2014.07.16 (07:35) 수정 2014.07.16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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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18일'

충남 천안공원묘원의 한 추모비에는 다섯 명의 이름과 각자의 생일에 이어 이 날짜가 나란히 새겨져 있다.

추모비 앞 묘소에 함께 안장된 공주사대부고 학생 5명은 사설 해병대 캠프에 참가했다가 이날 바다에서 숨졌다.

많은 이가 구명조끼 없이 학생들을 바다에 내몬 어른의 '안전불감증'을 사고 원인으로 꼽으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후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캠프 사고 책임자에 대한 재판과 함께 유사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다양한 후속 대처 발표가 이어졌다.

다섯 학생의 1주기 추모식을 이틀 앞둔 16일 유족은 그러나 "1년 전과 크게 변한 게 없다"며 거리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 안전 뒷전에 둔 '인재'

지난해 7월 18일 충남 태안군 안면읍 백사장항 인근에서는 공주사대부고 학생 5명이 사설 해병대 캠프 훈련 도중 실종됐다가 바닷속에서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직전 학생들은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바다에 들어가 '뒤로 취침', '좌우로 굴러'를 하고 군가를 불러야 했다. 캠프 교관의 지시였다.

학생들이 걸어 들어간 바다의 깊이는 성인 키를 넘었으나, 누구도 바닥지형을 미리 확인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인명구조요원이나 구조선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인솔교사도 보이지 않았다. 안전확보 조치 자체가 없었다는 뜻이다.

검찰은 사고와 관련한 책임자 6명을 재판에 넘겼고 1심에서 피해 학생들이 머문 유스호스텔 운영자이자 수상레저사업체 대표 오모(51)씨에게 수상레저안전법 위반죄로 징역 6월이 선고되고 나머지 5명에 대해서는 금고 1∼2년씩이 선고됐다.

이 같은 형에 피해 학생 부모들은 "이렇게 솜방망이 처벌하려면 차라리 모두 풀어주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오씨 등도 모두 "1심 양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며 항소했고 검찰도 구형량(금고 2∼5년)의 절반에 미치지 않는 형이 선고된 일부 피고인에 대해 항소한 가운데 2심 선고는 오는 25일 오전 11시 내려진다.

◇ 박 대통령 "안전사고 예방 만전 기하라"

박근혜 대통령은 공주사대부고 학생들의 사고 직후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더이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히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사고 과정 전반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는 한편 유사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교육부는 시·도교육청 교육국장 회의를 열어 해병대를 사칭한 유사 캠프에 참여하지 않도록 지시했다.

해병대는 상표 및 업무표장 등록으로 사설 해병대 캠프의 난립을 막기 위한 법적 조처를 했다.

정부는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통해 초·중·고교에서 체험중심 교육 활동을 운영할 경우 사전에 안전교육을 하도록 했다.

오는 22일부터는 태안 캠프 사고를 계기로 청소년의 안전한 수련 활동을 위해 개별 활동 및 시설 관리 전반의 안전 기준을 강화한 '청소년활동 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이 전면 시행된다.

청소년 체험캠프의 인증을 의무화하고, 모든 이동·숙박형 청소년활동 주최자는 지자체에 사전신고를 하도록 하는 안전대책도 내놨다.

◇ 유족 "정부대책 미흡" 1인 시위

유족들은 지난해 12월 3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책임자 처벌과 정부대책이 미흡하고 사고의 더 큰 원인이 따로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족들은 "전에 영업정지를 당했던 유스호스텔에서 학생들을 맡은 점, 캠프 훈련을 위해 위탁 형태의 계약이 이뤄진 폐단, 사고 현장에서의 모래 불법 채취 정황, 공유수면 점·사용허가 과정에서의 의혹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숱하게 있다"며 "수사기관과 지자체는 이를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았다. 멍든 유족 가슴은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유족 대표 이후식 씨는 앞서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국정감사 현장과 신문고를 통해 철저한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지만 허사였다"며 "초동부터 재수사해야 사고의 진실이 밝혀지고, 진실이 밝혀져야만 책임자 처벌과 아이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장학재단 설립과 국가 차원의 의사자 지정 등 공주대와의 합의 사안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유족들은 답답해했다.

무엇보다 유족들은 마우나리조트 사고와 세월호 참사 등 안전불감에 따른 대형 사고가 계속 이어진 것에 힘들어하고 있다.

태안 캠프 사고 유족들은 세월호 참사와 씨랜드 화재 등 재난 사고 유족과 함께 '재난안전가족협의회'를 결성해 이달 말 발대식을 할 예정이다.

희생 학생 한 학년 선배인 이 학교 졸업생 30여명도 유족들에게 힘을 보태고 나섰다.

이들은 17일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고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전면 재수사 및 감사, 책임자 엄중처벌, 사고 직후 내놓은 정부 차원의 약속 이행 등에 대해 요구할 계획이다.

이들은 이어 크라우드 펀딩(온라인을 통해 자금을 모으는 방식)으로 후원을 받아 만든 피켓 등을 들고 감사원 앞과 광화문광장 등지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한다.

졸업생들은 "학생안전 불감으로 비롯된 사고가 이어진 것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공주사대부고는 18일 교내에서 1주기 추모식을 한다.

전교생이 참여하는 추모의 편지글 쓰기, 소망의 학 접기, 추모 사진전을 비롯해 공주사대부고 학생안전헌장을 선포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어 천안공원묘원을 찾아 묘소를 참배하며 고인들의 넋을 기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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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안 사설캠프 사고 1년…멍든 유족 가슴은 여전
    • 입력 2014-07-16 07:35:44
    • 수정2014-07-16 07:41:09
    연합뉴스
'2013년 7월 18일' 충남 천안공원묘원의 한 추모비에는 다섯 명의 이름과 각자의 생일에 이어 이 날짜가 나란히 새겨져 있다. 추모비 앞 묘소에 함께 안장된 공주사대부고 학생 5명은 사설 해병대 캠프에 참가했다가 이날 바다에서 숨졌다. 많은 이가 구명조끼 없이 학생들을 바다에 내몬 어른의 '안전불감증'을 사고 원인으로 꼽으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후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캠프 사고 책임자에 대한 재판과 함께 유사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다양한 후속 대처 발표가 이어졌다. 다섯 학생의 1주기 추모식을 이틀 앞둔 16일 유족은 그러나 "1년 전과 크게 변한 게 없다"며 거리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 안전 뒷전에 둔 '인재' 지난해 7월 18일 충남 태안군 안면읍 백사장항 인근에서는 공주사대부고 학생 5명이 사설 해병대 캠프 훈련 도중 실종됐다가 바닷속에서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직전 학생들은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바다에 들어가 '뒤로 취침', '좌우로 굴러'를 하고 군가를 불러야 했다. 캠프 교관의 지시였다. 학생들이 걸어 들어간 바다의 깊이는 성인 키를 넘었으나, 누구도 바닥지형을 미리 확인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인명구조요원이나 구조선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인솔교사도 보이지 않았다. 안전확보 조치 자체가 없었다는 뜻이다. 검찰은 사고와 관련한 책임자 6명을 재판에 넘겼고 1심에서 피해 학생들이 머문 유스호스텔 운영자이자 수상레저사업체 대표 오모(51)씨에게 수상레저안전법 위반죄로 징역 6월이 선고되고 나머지 5명에 대해서는 금고 1∼2년씩이 선고됐다. 이 같은 형에 피해 학생 부모들은 "이렇게 솜방망이 처벌하려면 차라리 모두 풀어주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오씨 등도 모두 "1심 양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며 항소했고 검찰도 구형량(금고 2∼5년)의 절반에 미치지 않는 형이 선고된 일부 피고인에 대해 항소한 가운데 2심 선고는 오는 25일 오전 11시 내려진다. ◇ 박 대통령 "안전사고 예방 만전 기하라" 박근혜 대통령은 공주사대부고 학생들의 사고 직후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더이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히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사고 과정 전반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는 한편 유사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교육부는 시·도교육청 교육국장 회의를 열어 해병대를 사칭한 유사 캠프에 참여하지 않도록 지시했다. 해병대는 상표 및 업무표장 등록으로 사설 해병대 캠프의 난립을 막기 위한 법적 조처를 했다. 정부는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통해 초·중·고교에서 체험중심 교육 활동을 운영할 경우 사전에 안전교육을 하도록 했다. 오는 22일부터는 태안 캠프 사고를 계기로 청소년의 안전한 수련 활동을 위해 개별 활동 및 시설 관리 전반의 안전 기준을 강화한 '청소년활동 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이 전면 시행된다. 청소년 체험캠프의 인증을 의무화하고, 모든 이동·숙박형 청소년활동 주최자는 지자체에 사전신고를 하도록 하는 안전대책도 내놨다. ◇ 유족 "정부대책 미흡" 1인 시위 유족들은 지난해 12월 3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책임자 처벌과 정부대책이 미흡하고 사고의 더 큰 원인이 따로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족들은 "전에 영업정지를 당했던 유스호스텔에서 학생들을 맡은 점, 캠프 훈련을 위해 위탁 형태의 계약이 이뤄진 폐단, 사고 현장에서의 모래 불법 채취 정황, 공유수면 점·사용허가 과정에서의 의혹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숱하게 있다"며 "수사기관과 지자체는 이를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았다. 멍든 유족 가슴은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유족 대표 이후식 씨는 앞서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국정감사 현장과 신문고를 통해 철저한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지만 허사였다"며 "초동부터 재수사해야 사고의 진실이 밝혀지고, 진실이 밝혀져야만 책임자 처벌과 아이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장학재단 설립과 국가 차원의 의사자 지정 등 공주대와의 합의 사안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유족들은 답답해했다. 무엇보다 유족들은 마우나리조트 사고와 세월호 참사 등 안전불감에 따른 대형 사고가 계속 이어진 것에 힘들어하고 있다. 태안 캠프 사고 유족들은 세월호 참사와 씨랜드 화재 등 재난 사고 유족과 함께 '재난안전가족협의회'를 결성해 이달 말 발대식을 할 예정이다. 희생 학생 한 학년 선배인 이 학교 졸업생 30여명도 유족들에게 힘을 보태고 나섰다. 이들은 17일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고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전면 재수사 및 감사, 책임자 엄중처벌, 사고 직후 내놓은 정부 차원의 약속 이행 등에 대해 요구할 계획이다. 이들은 이어 크라우드 펀딩(온라인을 통해 자금을 모으는 방식)으로 후원을 받아 만든 피켓 등을 들고 감사원 앞과 광화문광장 등지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한다. 졸업생들은 "학생안전 불감으로 비롯된 사고가 이어진 것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공주사대부고는 18일 교내에서 1주기 추모식을 한다. 전교생이 참여하는 추모의 편지글 쓰기, 소망의 학 접기, 추모 사진전을 비롯해 공주사대부고 학생안전헌장을 선포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어 천안공원묘원을 찾아 묘소를 참배하며 고인들의 넋을 기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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