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우리 사회 마지막 성역, 헌법재판소”

입력 2014.07.1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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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에 대한 심층 보고서]

헌법재판관들의 이념 다양성을 분석한 보도는 이번 <시사기획 창-헌법재판소에 대한 심층보고서>가 최초다. 기자가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두렵고 외로운 일이다. 애초 가졌던 취재에 대한 확신은 쉽게 흔들리고, 주변에서의 “잘 되고 있어?”라는 격려는 힘이 되기보다는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길을 개척해 가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있고 마지막 결과가 좋을 때는 즐거움은 배가 된다. 이번 헌법재판소에 대한 취재도 그런 경우였다.

헌법재판소를 취재해 봐야겠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다.
기자가 생각하기에 헌법재판소는 우리 사회에서 마지막 남은 성역이었다.
특히 영향력과 신뢰도에서 공공기관 가운데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헌법재판소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검색 엔진을 이용해 “헌법재판소”를 검색하면 99%가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사건에 대한 기사들이었다. 헌재가 내린 결정에 대한 보도는 있었지만 그 결정을 내린 헌재 자체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몇 년 전에 우연히 '기명투표(roll call)' 분석 방법에 대해서 알게 됐다. 기명투표 분석 방법으로 미국 대법관들의 이념 다양성을 분석한 뒤 이를 이용해 미국 언론의 다양성 정도를 확인하는 논문이었다. 그 논문을 보면서 그때 들었던 생각이 우리의 경우 같은 방식으로 헌법재판관의 다양성을 분석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디어일 뿐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이 없었다.

아이디어 차원을 벗어나 <시사기획 창> 프로그램으로 제작해 봐야겠다는 무모한(?) 결정을 한 뒤 취재는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우선 기명투표(roll call) 분석 방법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헌재가 그동안 내린 사건들의 최종 결정문을 입수해야 했다. 무엇보다 기명투표 분석 방법이 가진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결정문 전수가 있어야 한다. 재판관의 이념 다양성에 대한 분석은 가장 중요한 이슈만을 중심으로 한 질적 분석에서 출발해서 이후 몇 가지 중요한 이슈들을 선별해서 그 이슈들에서 몇 번 정도로 같은 의견으로 판결했는가 보는 방식을 거쳐 현재는 전체 판결문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양적 분석까지 발전한 상태다.



결정문을 입수하기 위해 헌재 홈페이지, 판례집을 뒤졌고 취재원도 접촉했다. 우여 곡절 끝에 사실상 결정문 전수를 입수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한정훈 숭실대 교수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기명투표 방법을 이용해 박사학위 논문을 썼을 정도로 한 교수는 전문가였고 한 교수와의 공동 작업으로 분석 과정에 대한 부담은 많이 줄어들었다.

다음으로 헌법재판소 자체에 대한 언론 보도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심층 문헌연구에 들어갔다. 국내 저널에 실린 헌법재판소 관련한 수십 편의 논문들은 물론 관련 도서들도 읽었다. 이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헌법재판소 자체에 대해서 알게 됐다. 핵심은 “헌법재판소는 결국 헌법재판관 9명이고 9명의 재판관은 낙하산이다”는 것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구성에 전혀 권한이 없었다. 따라서 재판관의 이념 다양성이 부족한 책임을 헌재에 물을 수가 없는 구조였다. 결국 프로그램도 이 방향에 초점이 맞춰져 갔다.

이제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이 남았다. 취재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두려웠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맞을까? 현직 재판관들은 인터뷰를 안 할 것이고 그럼 전직 재판관들은 만날 수 있을까? 누구를 만나야 하지?
모든 것이 어려운 결정이었다.

우선 교수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진보와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헌법 전공 교수 네 분을 만났고 이분들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서서히 가설단계로 발전해 갔다. 네 분의 교수들은 취재 후반 기명투표 분석 결과에 대한 해석에서도 큰 도움을 주셨다. 프로그램에서 현직 재판관들의 이념 다양성을 공개하지 않은 것도 네 분 교수들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전직 재판관들을 인터뷰하는 것은 참 즐거웠다. 물론 인터뷰를 거절하거나 내가 미처 접촉하지 못한 재판관도 있지만 여러 전직 재판관들이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그분들이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하나였다. 헌재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기대 이상의 솔직한 답변에 인터뷰 내내 신이 났었다. 정식 인터뷰는 하지 않았지만 두 분의 전 헌법재판소장으로부터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나는 프로그램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재판관들로부터 솔직한 얘기를 들을 수 있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전직 재판관들을 만나면서 빠지지 않고 확인하려 했던 것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진실이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당시 재판관들 뿐만 아니라 많은 헌재 관계자들을 만났다.

탄핵 사건에 대한 취재에서 "진실은 한 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반복된 취재와 조각 맞추기 끝에 최종적으로 당시 세 명의 재판관들이 탄핵 인용을 주장했고, 그들은 어떤 주장을 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당시 탄핵을 주장한 재판관들이 소수의견을 작성했고 이 소수의견 역시 역사적 기록으로 헌재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다. 어찌 보면 두 개의 결정문이 존재하는 셈이다.

이제 기자의 다음 목표는 소수의견을 취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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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우리 사회 마지막 성역, 헌법재판소”
    • 입력 2014-07-16 17:41:17
    취재후·사건후
[헌법재판소에 대한 심층 보고서] 헌법재판관들의 이념 다양성을 분석한 보도는 이번 <시사기획 창-헌법재판소에 대한 심층보고서>가 최초다. 기자가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두렵고 외로운 일이다. 애초 가졌던 취재에 대한 확신은 쉽게 흔들리고, 주변에서의 “잘 되고 있어?”라는 격려는 힘이 되기보다는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길을 개척해 가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있고 마지막 결과가 좋을 때는 즐거움은 배가 된다. 이번 헌법재판소에 대한 취재도 그런 경우였다. 헌법재판소를 취재해 봐야겠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다. 기자가 생각하기에 헌법재판소는 우리 사회에서 마지막 남은 성역이었다. 특히 영향력과 신뢰도에서 공공기관 가운데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헌법재판소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검색 엔진을 이용해 “헌법재판소”를 검색하면 99%가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사건에 대한 기사들이었다. 헌재가 내린 결정에 대한 보도는 있었지만 그 결정을 내린 헌재 자체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몇 년 전에 우연히 '기명투표(roll call)' 분석 방법에 대해서 알게 됐다. 기명투표 분석 방법으로 미국 대법관들의 이념 다양성을 분석한 뒤 이를 이용해 미국 언론의 다양성 정도를 확인하는 논문이었다. 그 논문을 보면서 그때 들었던 생각이 우리의 경우 같은 방식으로 헌법재판관의 다양성을 분석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디어일 뿐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이 없었다. 아이디어 차원을 벗어나 <시사기획 창> 프로그램으로 제작해 봐야겠다는 무모한(?) 결정을 한 뒤 취재는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우선 기명투표(roll call) 분석 방법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헌재가 그동안 내린 사건들의 최종 결정문을 입수해야 했다. 무엇보다 기명투표 분석 방법이 가진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결정문 전수가 있어야 한다. 재판관의 이념 다양성에 대한 분석은 가장 중요한 이슈만을 중심으로 한 질적 분석에서 출발해서 이후 몇 가지 중요한 이슈들을 선별해서 그 이슈들에서 몇 번 정도로 같은 의견으로 판결했는가 보는 방식을 거쳐 현재는 전체 판결문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양적 분석까지 발전한 상태다. 결정문을 입수하기 위해 헌재 홈페이지, 판례집을 뒤졌고 취재원도 접촉했다. 우여 곡절 끝에 사실상 결정문 전수를 입수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한정훈 숭실대 교수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기명투표 방법을 이용해 박사학위 논문을 썼을 정도로 한 교수는 전문가였고 한 교수와의 공동 작업으로 분석 과정에 대한 부담은 많이 줄어들었다. 다음으로 헌법재판소 자체에 대한 언론 보도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심층 문헌연구에 들어갔다. 국내 저널에 실린 헌법재판소 관련한 수십 편의 논문들은 물론 관련 도서들도 읽었다. 이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헌법재판소 자체에 대해서 알게 됐다. 핵심은 “헌법재판소는 결국 헌법재판관 9명이고 9명의 재판관은 낙하산이다”는 것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구성에 전혀 권한이 없었다. 따라서 재판관의 이념 다양성이 부족한 책임을 헌재에 물을 수가 없는 구조였다. 결국 프로그램도 이 방향에 초점이 맞춰져 갔다. 이제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이 남았다. 취재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두려웠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맞을까? 현직 재판관들은 인터뷰를 안 할 것이고 그럼 전직 재판관들은 만날 수 있을까? 누구를 만나야 하지? 모든 것이 어려운 결정이었다. 우선 교수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진보와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헌법 전공 교수 네 분을 만났고 이분들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서서히 가설단계로 발전해 갔다. 네 분의 교수들은 취재 후반 기명투표 분석 결과에 대한 해석에서도 큰 도움을 주셨다. 프로그램에서 현직 재판관들의 이념 다양성을 공개하지 않은 것도 네 분 교수들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전직 재판관들을 인터뷰하는 것은 참 즐거웠다. 물론 인터뷰를 거절하거나 내가 미처 접촉하지 못한 재판관도 있지만 여러 전직 재판관들이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그분들이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하나였다. 헌재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기대 이상의 솔직한 답변에 인터뷰 내내 신이 났었다. 정식 인터뷰는 하지 않았지만 두 분의 전 헌법재판소장으로부터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나는 프로그램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재판관들로부터 솔직한 얘기를 들을 수 있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전직 재판관들을 만나면서 빠지지 않고 확인하려 했던 것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진실이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당시 재판관들 뿐만 아니라 많은 헌재 관계자들을 만났다. 탄핵 사건에 대한 취재에서 "진실은 한 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반복된 취재와 조각 맞추기 끝에 최종적으로 당시 세 명의 재판관들이 탄핵 인용을 주장했고, 그들은 어떤 주장을 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당시 탄핵을 주장한 재판관들이 소수의견을 작성했고 이 소수의견 역시 역사적 기록으로 헌재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다. 어찌 보면 두 개의 결정문이 존재하는 셈이다. 이제 기자의 다음 목표는 소수의견을 취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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