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고민 끝에 내놓은 답…‘쌀 시장 개방’

입력 2014.07.18 (09:37) 수정 2014.07.18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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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시장 개방 여부를 두고 20년간 고심해 온 정부가 마침내 '개방'이라는 답을 내놨다.

쌀 개방을 또 한 번 미루는 대가로 의무수입 물량을 늘리는 것보다 차라리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문을 여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야권과 일부 농민단체는 "쌀 시장 개방은 곧 국내 쌀 산업을 죽이는 길이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을 설득하는 동시에 세계무역기구(WTO)를 상대로 관세율 협상을 벌여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 UR이 내준 숙제 '쌀 시장 개방' = 1993년 12월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을 위한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이 타결되자 우리나라도 새로운 국제 무역질서에 동참하기 위해 서둘러 UR 참여를 선언했다.

UR 참여를 위해서는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고 국제가격과 국내가격의 차이만큼 관세를 부과하는 '예외없는 관세화(tariffication without exception)'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없는 관세화' 의무를 이행하려고 했지만 쌀 시장만은 개방할 수 없었다.

식량안보 문제가 불거졌을 뿐 아니라 수천 년 간 이어온 쌀 농사를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는 정서적 거부감, '마음의 고향'인 농촌에 대한 우려 등이 어우러져 '쌀 개방 절대불가론'이 대세를 이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쌀 시장 개방을 유예하는 대신 매년 일정량을 의무 수입하기로 국제사회와 약속했다.

2004년 10년간의 유예기간이 종료되자 쌀 개방 문제가 다시 제기됐으나 여전히 개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고, 정부는 쌀 시장 개방을 10년 더 미루는 대신 의무수입물량을 늘리기로 했다.

◇ 20년 만에 개방키로 한 까닭은 = 1994년 이후 20년 동안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꾸준히 감소했지만, 의무수입 물량은 매년 늘어났다.

그 결과 올해 쌀 의무수입량은 지난해 국내 쌀 생산량 423만t의 9.7%에 해당하는 40만8천700t까지 불어났다.

20년간 숙제를 미뤄온 대가가 눈덩이처럼 커진 것이다.

여기서 또 한번 쌀 시장 개방을 미룬다면 의무수입물량은 더 늘어나게 된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쌀 개방을 미뤄온 필리핀은 2012년부터 2년간 WTO와 협상을 벌인 끝에 2017년까지 쌀 개방을 유예하는 대신 의무수입물량을 연간 35만t에서 80만5천t으로 2.3배 늘리기로 했다.

우리나라가 필리핀과 같은 조건으로 쌀 개방을 연기한다면 의무수입물량은 국내 쌀 생산량의 약 22%에 달하는 94만t에 육박하게 된다.

의무수입물량을 더 늘렸다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된다는 데에는 정부와 여야, 농업계 모두 이견이 없다.

◇ 고(高)관세율 적용시 추가 수입물량 거의 없어 = 지난 20년간 국내 쌀 시장을 둘러싼 여건이 악화한 것만은 아니다.

20년 전에는 국산 쌀 가격이 국제 가격보다 5∼6배가량 비쌌지만, 국제 쌀 가격이 급등한 결과 현재 국내외 쌀 가격 차이는 2∼3배로 줄었다.

현재 국산 쌀 가격은 한 가마니(80㎏)에 17만원 선이다.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산 중립종 쌀의 국제가격 평균 6만3천303원(80㎏)이었으나 올해 5월부터는 80㎏당 8만∼9만원 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중국산 단립종 쌀의 평균 가격은 8만5천177원(80㎏)이었다.

전문가들은 쌀 시장을 개방하면 300∼500%의 관세율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국제 쌀 가격을 가마니당 8만원으로 가정하고 400%의 관세율을 적용하면 수입 쌀의 국내 도입가는 '8만+(8만×400%)'로 40만원이 된다.

국제 쌀 가격이 1t당 700달러까지 떨어지고 관세율을 200%만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수입 쌀 가격은 국산 쌀 가격보다 비싼 18만원이 된다.

이것이 정부가 쌀 시장을 개방하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다.

◇ 험난한 설득 과정 거쳐야 = 정부가 쌀 시장 개방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반대 여론이 적지 않다.

정부는 그동안 쌀 시장 개방에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별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정부가 개최한 토론회는 대부분 파행을 빚거나 양측의 입장 차만 확인하는데 그쳤다.

쌀 시장 개방 반대를 주도해온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17일 오후부터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밤샘농성에 들어가는 등 이미 실력행사에 나섰다.

전농 등은 수입 쌀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자유무역협정(FTA)·환태평양경제동반자(TPP) 협상 등으로 관세율이 낮아지거나 관세가 폐지될 개연성이 크다는 반대논리를 펴고 있다.

정부는 FTA·TPP 협상에서 쌀을 양허(관세철폐 또는 인하) 대상에서 제외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국내 쌀 농가 보호를 위한 쌀 산업 발전대책을 마련해 이들을 설득할 방침이다.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은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쌀 시장 개방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는 앞으로 체결될 모든 FTA에서 쌀을 우선적으로 양허 제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심지어 TPP가 체결되는 한이 있더라도 쌀은 양허에서 제외한다는 확실한 방침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와 전농이 각각 최소 400% 이상, 500%대의 고율 관세 부과를 요구한 데 대해서는 가능한 한 최대치의 관세율을 도출해 제시하기로 했다.

이 장관은 관세율에 대해 "그동안 전문가 연구결과를 보면 대략 300∼500% 정도의 관세율을 이야기해 왔는데 정부 안도 그 범위 내에 있다"며 "300% 관세만 부과해도 수입 쌀 가격이 우리 쌀보다 비싸질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다만, 정부는 WTO와 협상에 대비해 9월 말까지는 최종 관세율을 공개하지 않고 비공개로 농업계와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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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 고민 끝에 내놓은 답…‘쌀 시장 개방’
    • 입력 2014-07-18 09:37:23
    • 수정2014-07-18 10:28:56
    연합뉴스
쌀 시장 개방 여부를 두고 20년간 고심해 온 정부가 마침내 '개방'이라는 답을 내놨다.

쌀 개방을 또 한 번 미루는 대가로 의무수입 물량을 늘리는 것보다 차라리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문을 여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야권과 일부 농민단체는 "쌀 시장 개방은 곧 국내 쌀 산업을 죽이는 길이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을 설득하는 동시에 세계무역기구(WTO)를 상대로 관세율 협상을 벌여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 UR이 내준 숙제 '쌀 시장 개방' = 1993년 12월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을 위한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이 타결되자 우리나라도 새로운 국제 무역질서에 동참하기 위해 서둘러 UR 참여를 선언했다.

UR 참여를 위해서는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고 국제가격과 국내가격의 차이만큼 관세를 부과하는 '예외없는 관세화(tariffication without exception)'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없는 관세화' 의무를 이행하려고 했지만 쌀 시장만은 개방할 수 없었다.

식량안보 문제가 불거졌을 뿐 아니라 수천 년 간 이어온 쌀 농사를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는 정서적 거부감, '마음의 고향'인 농촌에 대한 우려 등이 어우러져 '쌀 개방 절대불가론'이 대세를 이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쌀 시장 개방을 유예하는 대신 매년 일정량을 의무 수입하기로 국제사회와 약속했다.

2004년 10년간의 유예기간이 종료되자 쌀 개방 문제가 다시 제기됐으나 여전히 개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고, 정부는 쌀 시장 개방을 10년 더 미루는 대신 의무수입물량을 늘리기로 했다.

◇ 20년 만에 개방키로 한 까닭은 = 1994년 이후 20년 동안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꾸준히 감소했지만, 의무수입 물량은 매년 늘어났다.

그 결과 올해 쌀 의무수입량은 지난해 국내 쌀 생산량 423만t의 9.7%에 해당하는 40만8천700t까지 불어났다.

20년간 숙제를 미뤄온 대가가 눈덩이처럼 커진 것이다.

여기서 또 한번 쌀 시장 개방을 미룬다면 의무수입물량은 더 늘어나게 된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쌀 개방을 미뤄온 필리핀은 2012년부터 2년간 WTO와 협상을 벌인 끝에 2017년까지 쌀 개방을 유예하는 대신 의무수입물량을 연간 35만t에서 80만5천t으로 2.3배 늘리기로 했다.

우리나라가 필리핀과 같은 조건으로 쌀 개방을 연기한다면 의무수입물량은 국내 쌀 생산량의 약 22%에 달하는 94만t에 육박하게 된다.

의무수입물량을 더 늘렸다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된다는 데에는 정부와 여야, 농업계 모두 이견이 없다.

◇ 고(高)관세율 적용시 추가 수입물량 거의 없어 = 지난 20년간 국내 쌀 시장을 둘러싼 여건이 악화한 것만은 아니다.

20년 전에는 국산 쌀 가격이 국제 가격보다 5∼6배가량 비쌌지만, 국제 쌀 가격이 급등한 결과 현재 국내외 쌀 가격 차이는 2∼3배로 줄었다.

현재 국산 쌀 가격은 한 가마니(80㎏)에 17만원 선이다.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산 중립종 쌀의 국제가격 평균 6만3천303원(80㎏)이었으나 올해 5월부터는 80㎏당 8만∼9만원 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중국산 단립종 쌀의 평균 가격은 8만5천177원(80㎏)이었다.

전문가들은 쌀 시장을 개방하면 300∼500%의 관세율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국제 쌀 가격을 가마니당 8만원으로 가정하고 400%의 관세율을 적용하면 수입 쌀의 국내 도입가는 '8만+(8만×400%)'로 40만원이 된다.

국제 쌀 가격이 1t당 700달러까지 떨어지고 관세율을 200%만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수입 쌀 가격은 국산 쌀 가격보다 비싼 18만원이 된다.

이것이 정부가 쌀 시장을 개방하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다.

◇ 험난한 설득 과정 거쳐야 = 정부가 쌀 시장 개방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반대 여론이 적지 않다.

정부는 그동안 쌀 시장 개방에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별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정부가 개최한 토론회는 대부분 파행을 빚거나 양측의 입장 차만 확인하는데 그쳤다.

쌀 시장 개방 반대를 주도해온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17일 오후부터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밤샘농성에 들어가는 등 이미 실력행사에 나섰다.

전농 등은 수입 쌀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자유무역협정(FTA)·환태평양경제동반자(TPP) 협상 등으로 관세율이 낮아지거나 관세가 폐지될 개연성이 크다는 반대논리를 펴고 있다.

정부는 FTA·TPP 협상에서 쌀을 양허(관세철폐 또는 인하) 대상에서 제외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국내 쌀 농가 보호를 위한 쌀 산업 발전대책을 마련해 이들을 설득할 방침이다.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은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쌀 시장 개방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는 앞으로 체결될 모든 FTA에서 쌀을 우선적으로 양허 제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심지어 TPP가 체결되는 한이 있더라도 쌀은 양허에서 제외한다는 확실한 방침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와 전농이 각각 최소 400% 이상, 500%대의 고율 관세 부과를 요구한 데 대해서는 가능한 한 최대치의 관세율을 도출해 제시하기로 했다.

이 장관은 관세율에 대해 "그동안 전문가 연구결과를 보면 대략 300∼500% 정도의 관세율을 이야기해 왔는데 정부 안도 그 범위 내에 있다"며 "300% 관세만 부과해도 수입 쌀 가격이 우리 쌀보다 비싸질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다만, 정부는 WTO와 협상에 대비해 9월 말까지는 최종 관세율을 공개하지 않고 비공개로 농업계와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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