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 한일회담때 한국 문화재목록 총체적 은폐 정황

입력 2014.07.2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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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1950∼60년대 한일국교정상화 교섭의 하나로 진행된 문화재 반환 협상 과정에서 한국 문화재 목록과 내역 등을 총체적으로 은폐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판결문과 법정 문서를 통해 28일 확인됐다.

아울러 한국에 돌려줄 문화재들에 대해 희소성을 자체 평가한 뒤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다고 본 품목 위주로 반환을 결정한 정황도 포착됐다.

이 같은 정황은 한일국교정상화 협상 관련 일본 측 자료의 전면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의 항소심 판결문과 일본 외무성 당국자의 항소 이유 진술서 등에서 드러났다.

연합뉴스가 입수한 도쿄고법의 25일자 판결문에 의하면 한일회담이 진행중이던 1963년, 일본 정부는 1∼2대 조선통감인 이토 히로부미와 소네 아라스케가 재임 중 가져가 궁내청 쇼료부(書陵部)에 보관한 서적(총 163부 852책)들의 희소가치에 대해 일본내 조선 역사 전문가를 시켜 조사한 뒤 희소가치가 있는 서적에 대해서는 별도의 표시를 해 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외무성은 '희소본'으로 평가된 서적들의 목록이 공개되면 한국이 이후 대일 협상에서 '희소본'을 양도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이제까지 한국에 돌려준 서적의 선정 방식에 대해 비난할 수 있다며 목록의 비(非) 공개를 주장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또 작년 오노 게이이치(小野啓一) 외무성 북동아시아과장이 일본정부를 대리해 재판부에 제출한 진술서에는 궁내청 쇼료부 소장 서적 관련 문서를 공개할 수 없는 이유로 "한반도 유래(약탈) 서적, 특히 한국측에 인도(반환)할 예정의 서적에 대한 평가가 낮았음을 알 수 있는 발언 내용이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나와 있어 한국 측이 이를 알게 되면 가치가 높은 서적들은 일본이 인도하지 않은 것으로 보게 되는 등 양국 신뢰 관계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진술서는 도쿄지법이 2012년 10월 궁내청 쇼료부 소장 서적 목록, 도쿄국립박물관소장 한국문화재 일람표 및 미술품 리스트, 한국관계 중요문화재 일람, 데라우치(寺內)문고 관련 기록 등을 공개하라고 판결한 데 대해 이들 문서를 공개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진술서에서 일본 정부는 문화재 목록 등에 "입수와 유래 경위, (목록) 작성 장소와 시기, 취득 원인, 취득 가액 등이 나와 있고 일본이 지금까지 한국에 공개하지 않은 부분도 다수 포함돼 있어 이 목록 등이 공개되면 한국이 반환 재교섭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조선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1852∼1919)가 한반도에서 강탈한 서적 관련 문서에 대해서도 "서적 반출 경위에 대한 학자의 추측적인 견해지만 한국 측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경위가 쓰여있어 이것이 공개되면 한국 정부와 국민이 일본에 대해 강한 비판적 감정을 갖게 될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고 공개 거부 이유를 설명했다.

이와 같은 외무성의 주장은 항소심 재판부에 의해 대거 수용돼 1심에서 공개가 결정됐던 일본 측 문서 중 48건이 25일 판결에 따라 비공개로 뒤집혔다.

한국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전체 해외소재 한국 문화재 15만 6천160점 가운데 약 43%에 해당하는 6만 6천824점이 일본에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한일 양국은 1965년 체결한 한일협정 조약의 부속협정조약 중 하나로 '한일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한국 측이 요구한 반환 대상 품목의 약 32%에 해당하는 1천431점을 반환했다. 또 일본 민주당 정권시절인 2011년 조선왕실 의궤 1천205책이 돌아왔다.

한일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은 협정 체결을 계기로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취지의 조문이 없다. 오히려 부속 문서인 '합의 의사록'에는 "일본 측 대표는 일본이 소유한 문화재를 자발적으로 한국 측에 기증함은 한일 양국 간의 문화협력의 증진에 기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이를 장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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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정부, 한일회담때 한국 문화재목록 총체적 은폐 정황
    • 입력 2014-07-28 16:29:03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1950∼60년대 한일국교정상화 교섭의 하나로 진행된 문화재 반환 협상 과정에서 한국 문화재 목록과 내역 등을 총체적으로 은폐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판결문과 법정 문서를 통해 28일 확인됐다. 아울러 한국에 돌려줄 문화재들에 대해 희소성을 자체 평가한 뒤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다고 본 품목 위주로 반환을 결정한 정황도 포착됐다. 이 같은 정황은 한일국교정상화 협상 관련 일본 측 자료의 전면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의 항소심 판결문과 일본 외무성 당국자의 항소 이유 진술서 등에서 드러났다. 연합뉴스가 입수한 도쿄고법의 25일자 판결문에 의하면 한일회담이 진행중이던 1963년, 일본 정부는 1∼2대 조선통감인 이토 히로부미와 소네 아라스케가 재임 중 가져가 궁내청 쇼료부(書陵部)에 보관한 서적(총 163부 852책)들의 희소가치에 대해 일본내 조선 역사 전문가를 시켜 조사한 뒤 희소가치가 있는 서적에 대해서는 별도의 표시를 해 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외무성은 '희소본'으로 평가된 서적들의 목록이 공개되면 한국이 이후 대일 협상에서 '희소본'을 양도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이제까지 한국에 돌려준 서적의 선정 방식에 대해 비난할 수 있다며 목록의 비(非) 공개를 주장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또 작년 오노 게이이치(小野啓一) 외무성 북동아시아과장이 일본정부를 대리해 재판부에 제출한 진술서에는 궁내청 쇼료부 소장 서적 관련 문서를 공개할 수 없는 이유로 "한반도 유래(약탈) 서적, 특히 한국측에 인도(반환)할 예정의 서적에 대한 평가가 낮았음을 알 수 있는 발언 내용이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나와 있어 한국 측이 이를 알게 되면 가치가 높은 서적들은 일본이 인도하지 않은 것으로 보게 되는 등 양국 신뢰 관계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진술서는 도쿄지법이 2012년 10월 궁내청 쇼료부 소장 서적 목록, 도쿄국립박물관소장 한국문화재 일람표 및 미술품 리스트, 한국관계 중요문화재 일람, 데라우치(寺內)문고 관련 기록 등을 공개하라고 판결한 데 대해 이들 문서를 공개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진술서에서 일본 정부는 문화재 목록 등에 "입수와 유래 경위, (목록) 작성 장소와 시기, 취득 원인, 취득 가액 등이 나와 있고 일본이 지금까지 한국에 공개하지 않은 부분도 다수 포함돼 있어 이 목록 등이 공개되면 한국이 반환 재교섭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조선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1852∼1919)가 한반도에서 강탈한 서적 관련 문서에 대해서도 "서적 반출 경위에 대한 학자의 추측적인 견해지만 한국 측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경위가 쓰여있어 이것이 공개되면 한국 정부와 국민이 일본에 대해 강한 비판적 감정을 갖게 될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고 공개 거부 이유를 설명했다. 이와 같은 외무성의 주장은 항소심 재판부에 의해 대거 수용돼 1심에서 공개가 결정됐던 일본 측 문서 중 48건이 25일 판결에 따라 비공개로 뒤집혔다. 한국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전체 해외소재 한국 문화재 15만 6천160점 가운데 약 43%에 해당하는 6만 6천824점이 일본에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한일 양국은 1965년 체결한 한일협정 조약의 부속협정조약 중 하나로 '한일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한국 측이 요구한 반환 대상 품목의 약 32%에 해당하는 1천431점을 반환했다. 또 일본 민주당 정권시절인 2011년 조선왕실 의궤 1천205책이 돌아왔다. 한일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은 협정 체결을 계기로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취지의 조문이 없다. 오히려 부속 문서인 '합의 의사록'에는 "일본 측 대표는 일본이 소유한 문화재를 자발적으로 한국 측에 기증함은 한일 양국 간의 문화협력의 증진에 기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이를 장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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