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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생존 학생 “승무원 도움 전혀 없었다”
입력 2014.07.28 (19:08) 수정 2014.07.28 (19:12) 사회
“승무원이나 해경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세월호 사고 당시 가까스로 살아남은 단원고 학생들이 처음으로 법정 증언을 했다.

오늘(28일) 오전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열린 세월호 승무원 15명에 대한 공판에서, 단원고 생존학생 6명이 처음 증인으로 나서 사고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이날 재판에서 생존학생들은 사고 당시 선실에서 빠져나와 비상구로 이어지는 복도에서 구조를 기다렸지만 승무원이나 해경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세월호 4층 선미 선실에 머물렀던 A양은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90도로 섰다”며 "옆에 있던 출입문이 위로 가 구명조끼를 입고 물이 차길 기다렸다가 친구들이 밑에서 밀어주고 위에서 손을 잡아줘 방에서 빠져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선실에서 나와 보니 비상구로 향하는 복도에 친구들 30여 명이 줄을 선 채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조대가 오지 않아 한명씩 바다로 뛰어들었는데 내가 뛰어든 뒤 파도가 비상구를 덮쳐 나머지 10여명의 친구들은 빠져나오지 못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A양과 같은 선실에 있던 B양 등 4명도 친구들끼리 서로 도와 A양과 같은 방법으로 탈출했고 이 과정에서 승무원의 도움은 전혀 없었다고 증언했다.

B양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던 고무보트에 탄 해경이 비상구에서 바다로 떨어진 사람들을 건져올리기만 했다"며 "비상구 안쪽에 친구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말했는데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친구를 만나러 선체 중앙 왼편 선실에 갔던 C양은 배가 기울어져 위쪽에 위치한 오른편 선실에서 누군가가 커튼으로 만든 줄을 던져줘서 탈출했지만 도움을 준 사람이 승무원이나 해경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증인으로 출석한 학생들은 "'특히 단원고 학생들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내용의 방송이 반복됐다"며 "탈출하라는 방송이 나왔다면 캐비닛 등을 밟고 많은 인원이 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생존학생들은 특히 자신들이 빠져나온 직후 비상구에 파도가 덮쳐 나머지 학생들이 배 안쪽으로 휩쓸렸다며, 승객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승무원들을 엄벌에 처해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재판부는 학생들이 미성년자인데다 대부분 안산에 거주하는 점을 고려해, 그동안 재판이 열린 광주가 아닌 안산에서 재판을 열기로 결정했다.

또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화상증언을 계획했지만, 학생 대부분이 친구와 함께 증인석에 앉는 조건으로 법정 증언을 희망해 5명의 학생이 직접 법정에 나왔다.

이준석 선장 등 피고인들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고 재판부의 비공개 결정에 따라 학생 가족과 취재진 등 10여 명만 재판을 지켜봤다.

오후 재판에는 사고 당시 부상으로 거동이 불편한 일반인 생존자 등 3명에 대한 신문도 진행됐다.

조타실에 있다가 구조된 필리핀 가수는 선원 가운데 한 명이 손짓으로 구명정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했으며, 조타실에서 안내 방송을 한 선원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내일(29일) 오전 10시부터 12시, 오후 1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학생들에 대한 증인신문을 이어갈 예정이다.
  • 세월호 생존 학생 “승무원 도움 전혀 없었다”
    • 입력 2014-07-28 19:08:01
    • 수정2014-07-28 19:12:44
    사회
“승무원이나 해경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세월호 사고 당시 가까스로 살아남은 단원고 학생들이 처음으로 법정 증언을 했다.

오늘(28일) 오전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열린 세월호 승무원 15명에 대한 공판에서, 단원고 생존학생 6명이 처음 증인으로 나서 사고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이날 재판에서 생존학생들은 사고 당시 선실에서 빠져나와 비상구로 이어지는 복도에서 구조를 기다렸지만 승무원이나 해경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세월호 4층 선미 선실에 머물렀던 A양은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90도로 섰다”며 "옆에 있던 출입문이 위로 가 구명조끼를 입고 물이 차길 기다렸다가 친구들이 밑에서 밀어주고 위에서 손을 잡아줘 방에서 빠져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선실에서 나와 보니 비상구로 향하는 복도에 친구들 30여 명이 줄을 선 채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조대가 오지 않아 한명씩 바다로 뛰어들었는데 내가 뛰어든 뒤 파도가 비상구를 덮쳐 나머지 10여명의 친구들은 빠져나오지 못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A양과 같은 선실에 있던 B양 등 4명도 친구들끼리 서로 도와 A양과 같은 방법으로 탈출했고 이 과정에서 승무원의 도움은 전혀 없었다고 증언했다.

B양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던 고무보트에 탄 해경이 비상구에서 바다로 떨어진 사람들을 건져올리기만 했다"며 "비상구 안쪽에 친구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말했는데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친구를 만나러 선체 중앙 왼편 선실에 갔던 C양은 배가 기울어져 위쪽에 위치한 오른편 선실에서 누군가가 커튼으로 만든 줄을 던져줘서 탈출했지만 도움을 준 사람이 승무원이나 해경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증인으로 출석한 학생들은 "'특히 단원고 학생들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내용의 방송이 반복됐다"며 "탈출하라는 방송이 나왔다면 캐비닛 등을 밟고 많은 인원이 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생존학생들은 특히 자신들이 빠져나온 직후 비상구에 파도가 덮쳐 나머지 학생들이 배 안쪽으로 휩쓸렸다며, 승객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승무원들을 엄벌에 처해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재판부는 학생들이 미성년자인데다 대부분 안산에 거주하는 점을 고려해, 그동안 재판이 열린 광주가 아닌 안산에서 재판을 열기로 결정했다.

또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화상증언을 계획했지만, 학생 대부분이 친구와 함께 증인석에 앉는 조건으로 법정 증언을 희망해 5명의 학생이 직접 법정에 나왔다.

이준석 선장 등 피고인들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고 재판부의 비공개 결정에 따라 학생 가족과 취재진 등 10여 명만 재판을 지켜봤다.

오후 재판에는 사고 당시 부상으로 거동이 불편한 일반인 생존자 등 3명에 대한 신문도 진행됐다.

조타실에 있다가 구조된 필리핀 가수는 선원 가운데 한 명이 손짓으로 구명정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했으며, 조타실에서 안내 방송을 한 선원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내일(29일) 오전 10시부터 12시, 오후 1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학생들에 대한 증인신문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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