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대가 궁금하다] 위안부 할머니, 징용 장면에 고개 떨군 채…

입력 2014.08.07 (16:30) 수정 2014.08.0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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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뮤지컬 '꽃신' 작지만 큰 울림

화려한 세트도, 놀랄만한 특수 효과도 없다. 단순한 조명과 녹음된 반주만 있을 뿐이다. 스크린에서는 꽃잎이 날리거나 눈이 날리면서 상황을 말해주고, 무대 중앙에 놓인 유일한 세트는 배우들이 밀어 이동한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아픔을 다룬 뮤지컬 '꽃신'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드러내듯 미완성이었다.

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부족한 무대 장치마저 아프단다. 작품에서는 일제강점기,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전한다.

순옥이 시집가던 날, 가난이 미안했던 아버지는 "좋은 길만, 예쁜 길만 가라"며 꽃신을 선물한다. 가장 행복해야 할 그 순간은 비극의 시작이 된다. 일본 순사들이 몰려와 신랑 윤재를 징병해가고, 순옥과 동생 금옥은 위안부로 끌려간다.

히로시마 원폭으로 전쟁은 끝났지만, 짓밟힌 영혼의 상처는 회복되지 않는다. 평생을 악몽과 두려움에 시달리고, 참혹했던 기억을 힘겹게 지워내는 모습은 배우들의 연기가 아닌 할머니들이 겪어 온 현실이었다.

어제(6일) 공연장에는 특별손님이 방문했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7) 할머니다.

"감사해요.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힘이 납니다."

이 할머니는 공연 관계자에게 거듭 인사를 했다. 하지만 잊고 싶은 과거를 대면하는 일은 힘겨웠다. 이 할머니는 일본군이 총으로 위협하며 조선의 젊은 처녀들을 강제 연행하는 장면에 한참동안 고개를 숙인 채 큰 숨을 내쉬었다. "일본이 참으로 원망스러워요. 잘못을 사과하지 않고, 우리가 죽기를 기다리는 것 같아요."라며 한서린 마음을 내비친다.

지난 6월, 또 한 명의 증인 배춘희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이로써 이제는 54명의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를 오래오래 기억해주세요. 이런 일이 또 생기지 않도록…."
주인공 순옥의 마지막 부탁은 이 시간도 현재진행형인 위안부 피해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제작비 1억 원의 저예산 뮤지컬 '꽃신'은 감독을 맡은 이종서 대표의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이 대표는 지난해 8월 광화문을 지나다 故(고) 이용녀 할머니의 노제를 보고 궁금한 마음에 버스에서 내렸다. 당시 생존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57명 중 한 분의 마지막 길이었다.

그는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면 이 문제는 누가 해결하나 고민이 들었다. 역사의 증인이 사라지기 전에, 할머니들의 아픔과 일본의 만행을 작품으로 남겨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며 뮤지컬 제작 이유를 밝혔다.

제작비는 기업이나 개인의 후원 없이, '2014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창작 지원금과 감독 개인의 돈으로 충당했다. 제작 여건은 열악했지만, 뜻을 같이하는 손길이 이어졌다. 윤복희, 김진태, 서범석, 강효성 등 유명 배우들이 동참했고, 극본과 작곡 등 제작진도 재능기부로 완성됐다. 앙상블 무대를 꾸미는 배우들도 오디션을 통한 재능기부로 작품에 힘을 보탰다.

공연 후, 이용수 할머니는 배우 김진태씨의 손을 잡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막혔던 게 뻥 뚫리듯 위로가 됩니다"며 인사를 전했다. 뮤지컬 '꽃신'은 마포아트센터에서 17일까지 공연된다. 이후 성남과 대전 등 지방 순회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문의 070-7745-3337.)



◆ 일본인이 만든 위안부 연극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

1995년 한 일본인의 진심 어린 반성이 있었다. 일본 연극계의 지성인 후지타 아사아씨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연극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를 대학로 무대에 올렸다.

당시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한 고노 담화가 발표된 지 2년 후였다. 19년이 지난 2014년에는 아베 정권의 우경화로 고노 담화 재검증이 이뤄지고 한·일 양국의 관계가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반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 서울에서 연극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가 재공연됐다. 원작과 연출을 맡은 후지타 아사아씨는 "일본에도 아베 총리 같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여러분이 알아줬으면 한다"며 "소수파이지만 저 같은 사람이 주위에 많다. 그들의 힘을 모아 여러분에게 저희를 알리면서 이 일을 진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연극 한 편으로 역사가 바뀌진 않겠지만 한 사람이라도 연극을 통해 진실을 알 수 있다면, 내가 보았던 사실을 밝히는데 주저하지 않겠다"며 연극 제작 이유를 설명했다.

일제 강점기, 주인공 영자는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위안부로 끌려간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오지만, 자신의 과거를 밝히기 싫어 평생 거짓말을 하고 살아간다. 그렇게 과거를 외면하며 살던 영자는 생을 얼마 남기지 않은 노인이 돼서야 가슴에 묻어 둔 한과 전쟁의 진실을 쏟아낸다.

지난달 20일 막을 내린 이 작품은 지방 순회공연과 중국 등 해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일본 주요도시 순회공연도 계획 중이다.

공동 제작을 맡은 사토 카이치 씨는 "내년 일본 공연을 위해서는 방탄조끼를 입는 일이 있더라도, 연극을 통해 세계에 진실을 알리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문의 070-4066-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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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07 16:30:17
    • 수정2014-08-07 16:34:03
    문화

◆ 창작뮤지컬 '꽃신' 작지만 큰 울림

화려한 세트도, 놀랄만한 특수 효과도 없다. 단순한 조명과 녹음된 반주만 있을 뿐이다. 스크린에서는 꽃잎이 날리거나 눈이 날리면서 상황을 말해주고, 무대 중앙에 놓인 유일한 세트는 배우들이 밀어 이동한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아픔을 다룬 뮤지컬 '꽃신'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드러내듯 미완성이었다.

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부족한 무대 장치마저 아프단다. 작품에서는 일제강점기,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전한다.

순옥이 시집가던 날, 가난이 미안했던 아버지는 "좋은 길만, 예쁜 길만 가라"며 꽃신을 선물한다. 가장 행복해야 할 그 순간은 비극의 시작이 된다. 일본 순사들이 몰려와 신랑 윤재를 징병해가고, 순옥과 동생 금옥은 위안부로 끌려간다.

히로시마 원폭으로 전쟁은 끝났지만, 짓밟힌 영혼의 상처는 회복되지 않는다. 평생을 악몽과 두려움에 시달리고, 참혹했던 기억을 힘겹게 지워내는 모습은 배우들의 연기가 아닌 할머니들이 겪어 온 현실이었다.

어제(6일) 공연장에는 특별손님이 방문했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7) 할머니다.

"감사해요.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힘이 납니다."

이 할머니는 공연 관계자에게 거듭 인사를 했다. 하지만 잊고 싶은 과거를 대면하는 일은 힘겨웠다. 이 할머니는 일본군이 총으로 위협하며 조선의 젊은 처녀들을 강제 연행하는 장면에 한참동안 고개를 숙인 채 큰 숨을 내쉬었다. "일본이 참으로 원망스러워요. 잘못을 사과하지 않고, 우리가 죽기를 기다리는 것 같아요."라며 한서린 마음을 내비친다.

지난 6월, 또 한 명의 증인 배춘희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이로써 이제는 54명의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를 오래오래 기억해주세요. 이런 일이 또 생기지 않도록…."
주인공 순옥의 마지막 부탁은 이 시간도 현재진행형인 위안부 피해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제작비 1억 원의 저예산 뮤지컬 '꽃신'은 감독을 맡은 이종서 대표의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이 대표는 지난해 8월 광화문을 지나다 故(고) 이용녀 할머니의 노제를 보고 궁금한 마음에 버스에서 내렸다. 당시 생존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57명 중 한 분의 마지막 길이었다.

그는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면 이 문제는 누가 해결하나 고민이 들었다. 역사의 증인이 사라지기 전에, 할머니들의 아픔과 일본의 만행을 작품으로 남겨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며 뮤지컬 제작 이유를 밝혔다.

제작비는 기업이나 개인의 후원 없이, '2014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창작 지원금과 감독 개인의 돈으로 충당했다. 제작 여건은 열악했지만, 뜻을 같이하는 손길이 이어졌다. 윤복희, 김진태, 서범석, 강효성 등 유명 배우들이 동참했고, 극본과 작곡 등 제작진도 재능기부로 완성됐다. 앙상블 무대를 꾸미는 배우들도 오디션을 통한 재능기부로 작품에 힘을 보탰다.

공연 후, 이용수 할머니는 배우 김진태씨의 손을 잡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막혔던 게 뻥 뚫리듯 위로가 됩니다"며 인사를 전했다. 뮤지컬 '꽃신'은 마포아트센터에서 17일까지 공연된다. 이후 성남과 대전 등 지방 순회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문의 070-7745-3337.)



◆ 일본인이 만든 위안부 연극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

1995년 한 일본인의 진심 어린 반성이 있었다. 일본 연극계의 지성인 후지타 아사아씨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연극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를 대학로 무대에 올렸다.

당시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한 고노 담화가 발표된 지 2년 후였다. 19년이 지난 2014년에는 아베 정권의 우경화로 고노 담화 재검증이 이뤄지고 한·일 양국의 관계가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반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 서울에서 연극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가 재공연됐다. 원작과 연출을 맡은 후지타 아사아씨는 "일본에도 아베 총리 같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여러분이 알아줬으면 한다"며 "소수파이지만 저 같은 사람이 주위에 많다. 그들의 힘을 모아 여러분에게 저희를 알리면서 이 일을 진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연극 한 편으로 역사가 바뀌진 않겠지만 한 사람이라도 연극을 통해 진실을 알 수 있다면, 내가 보았던 사실을 밝히는데 주저하지 않겠다"며 연극 제작 이유를 설명했다.

일제 강점기, 주인공 영자는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위안부로 끌려간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오지만, 자신의 과거를 밝히기 싫어 평생 거짓말을 하고 살아간다. 그렇게 과거를 외면하며 살던 영자는 생을 얼마 남기지 않은 노인이 돼서야 가슴에 묻어 둔 한과 전쟁의 진실을 쏟아낸다.

지난달 20일 막을 내린 이 작품은 지방 순회공연과 중국 등 해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일본 주요도시 순회공연도 계획 중이다.

공동 제작을 맡은 사토 카이치 씨는 "내년 일본 공연을 위해서는 방탄조끼를 입는 일이 있더라도, 연극을 통해 세계에 진실을 알리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문의 070-4066-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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