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 위한 화룡점정’ 나서는 암벽여제 김자인

입력 2014.08.2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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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각 종목의 국가대표들이 막바지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시안게임에 나서지는 않지만 그에 못지않게 긴장하며 한여름 구슬땀을 쏟는 세계 일인자도 있다.

'암벽 여제'로 불리는 한국 스포츠클라이밍의 간판 김자인(26)의 이야기다.

김자인은 9월 8일부터 14일까지 스페인 히혼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에 도전한다.

◇ 지존 위한 화룡점정 = 김자인은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여자부 리드에서 세계랭킹 1위를 유지하는 스타다.

국제대회 때마다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독보적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최고의 체력, 기술, 창의성에 농익은 경험까지 더해 누구도 그를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암벽등반에서 김자인은 축구의 리오넬 메시나 농구의 마이클 조던과 같은 존재다.

IFSC는 김자인을 '암벽 위의 발레리나'라고까지 칭하고 있다.

선수들은 간혹 초인적인 기량을 지닌 동료를 예술가로 부르곤 한다.

데니스 로드맨은 조던이 발레리노라며 다른 빅스타와의 비교를 거부한 적이 있다.

최고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김자인에게는 지존을 향해 풀어야 할 숙제가 하나 있다.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이다.

김자인은 월드컵에서 수많은 금메달을 땄으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불운을 겪었다.

그는 2005년, 2007년, 2009년, 2011년, 2012년 등 5차례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섰다.

기량이 완숙한 2009년부터 줄곧 우승 후보로 꼽혔으나 세 차례 연속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자인은 29일 인터뷰에서 "아쉬운 결과 때문에 많은 분이 이번 대회를 더 많이 기대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종목이 아닌 스포츠클라이밍에서 세계선수권은 선수에게 최고 영예다.

김자인은 이번 대회가 전성기에 맞는 마지막 세계선수권 도전일 수도 있어 갈망이 더 심하다.

그는 올해 들어 국제대회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로 기록되는 때를 종종 목격하고 있다.

베테랑 선수들이 지병처럼 안고 활동하는 잔 부상도 신예 때보다 부쩍 늘어나 선수생활의 황혼기가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실제로 김자인은 체력, 기술, 창의력을 크게 강화하기보다는 부상 예방을 위한 훈련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그러나 김자인은 진정한 1인자임을 선포할 수 있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과도한 의욕은 애써 경계했다.

"우승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지요. 하지만 우승에만 집착하고 싶지는 않아요. 매번 대회 때마다 지닌 태도를 이번에도 유지하려고 합니다. 완등을 위한 등반을 즐기고 싶어요."

◇ "비인기? 암벽을 좋아할 뿐" = 특정 종목에서 김자인처럼 독보적 위상을 지닌 한국 선수는 드물다.

여자 암벽등반은 전국체전에서도 정식종목이 아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나 프로 스타처럼 주목을 받지 못하는 김자인이 겪는 설움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그는 비인기 종목의 대형스타로서 겪는 소외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김자인은 스포츠클라이밍 외에는 전문적으로 도전한 운동 종목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클라이밍 말고는 잘하는 운동이 없고 클라이밍보다 더 재미있는 일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벽을 오를 때 오로지 벽과 자신의 존재만 느낄 뿐 다른 모든 생각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황홀을 즐길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그가 직업선수이고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소외감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김자인은 올해 핵심 후원자를 잃어 두 차례 월드컵에 개인 비용을 들여 출전했다.

우승 상금 3천 유로(400만원) 정도는 유럽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하는 비용에 잠식됐다.

◇ "산악인과 선수의 사이" = 클라이밍은 산악 활동이면서도 스포츠인 특이한 분야다.

김자인의 주종목인 리드는 올라가기 어렵게 꾸민 인공암벽을 제한된 시간에 누가 더 높이 오르는지 겨루는 경기다.

이는 험난한 자연암벽에 루트를 개척하는 산악 활동에서 파생된 종목이다.

동료를 위해 길을 트려고 오른다는 선등(先登)의 의미에서 리드(lead)라는 이름이 붙었다.

김자인은 대한산악연맹에 선수로 등록돼 있지만 국제산악연맹에서 활동하는 선수는 아니다.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이 스포츠를 표방하며 국제산악연맹에서 독립했기 때문이다.

산악인들은 규정도 심판도 없는 게 등반이라며 각자 느끼는 무형의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경쟁과 승패가 있는 스포츠클라이밍과 거리를 두는 산악인도 있다.

김자인은 "나는 한 번도 내가 산악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자인은 산악 활동을 즐기는 부모의 영향으로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이름도 등반에 쓰는 로프인 자일과 국내 암벽등반의 성지 북한산 인수봉의 첫 글자를 따 지어졌다.

김자인은 올해 산악인들이 개척한 최고 난도의 자연암벽을 완등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산악인이 아니라고 했으나 산악인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인 것 같기도 하다.

김자인은 "스포츠클라이밍에는 스포츠 요소도 있고 산악인들이 추구하는 가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는 대회에 나설 때 누구를 이기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며 "주어진 코스를 완등하겠다는 생각만으로 벽을 오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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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존 위한 화룡점정’ 나서는 암벽여제 김자인
    • 입력 2014-08-29 09:39:40
    연합뉴스
인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각 종목의 국가대표들이 막바지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시안게임에 나서지는 않지만 그에 못지않게 긴장하며 한여름 구슬땀을 쏟는 세계 일인자도 있다. '암벽 여제'로 불리는 한국 스포츠클라이밍의 간판 김자인(26)의 이야기다. 김자인은 9월 8일부터 14일까지 스페인 히혼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에 도전한다. ◇ 지존 위한 화룡점정 = 김자인은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여자부 리드에서 세계랭킹 1위를 유지하는 스타다. 국제대회 때마다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독보적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최고의 체력, 기술, 창의성에 농익은 경험까지 더해 누구도 그를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암벽등반에서 김자인은 축구의 리오넬 메시나 농구의 마이클 조던과 같은 존재다. IFSC는 김자인을 '암벽 위의 발레리나'라고까지 칭하고 있다. 선수들은 간혹 초인적인 기량을 지닌 동료를 예술가로 부르곤 한다. 데니스 로드맨은 조던이 발레리노라며 다른 빅스타와의 비교를 거부한 적이 있다. 최고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김자인에게는 지존을 향해 풀어야 할 숙제가 하나 있다.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이다. 김자인은 월드컵에서 수많은 금메달을 땄으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불운을 겪었다. 그는 2005년, 2007년, 2009년, 2011년, 2012년 등 5차례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섰다. 기량이 완숙한 2009년부터 줄곧 우승 후보로 꼽혔으나 세 차례 연속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자인은 29일 인터뷰에서 "아쉬운 결과 때문에 많은 분이 이번 대회를 더 많이 기대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종목이 아닌 스포츠클라이밍에서 세계선수권은 선수에게 최고 영예다. 김자인은 이번 대회가 전성기에 맞는 마지막 세계선수권 도전일 수도 있어 갈망이 더 심하다. 그는 올해 들어 국제대회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로 기록되는 때를 종종 목격하고 있다. 베테랑 선수들이 지병처럼 안고 활동하는 잔 부상도 신예 때보다 부쩍 늘어나 선수생활의 황혼기가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실제로 김자인은 체력, 기술, 창의력을 크게 강화하기보다는 부상 예방을 위한 훈련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그러나 김자인은 진정한 1인자임을 선포할 수 있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과도한 의욕은 애써 경계했다. "우승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지요. 하지만 우승에만 집착하고 싶지는 않아요. 매번 대회 때마다 지닌 태도를 이번에도 유지하려고 합니다. 완등을 위한 등반을 즐기고 싶어요." ◇ "비인기? 암벽을 좋아할 뿐" = 특정 종목에서 김자인처럼 독보적 위상을 지닌 한국 선수는 드물다. 여자 암벽등반은 전국체전에서도 정식종목이 아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나 프로 스타처럼 주목을 받지 못하는 김자인이 겪는 설움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그는 비인기 종목의 대형스타로서 겪는 소외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김자인은 스포츠클라이밍 외에는 전문적으로 도전한 운동 종목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클라이밍 말고는 잘하는 운동이 없고 클라이밍보다 더 재미있는 일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벽을 오를 때 오로지 벽과 자신의 존재만 느낄 뿐 다른 모든 생각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황홀을 즐길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그가 직업선수이고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소외감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김자인은 올해 핵심 후원자를 잃어 두 차례 월드컵에 개인 비용을 들여 출전했다. 우승 상금 3천 유로(400만원) 정도는 유럽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하는 비용에 잠식됐다. ◇ "산악인과 선수의 사이" = 클라이밍은 산악 활동이면서도 스포츠인 특이한 분야다. 김자인의 주종목인 리드는 올라가기 어렵게 꾸민 인공암벽을 제한된 시간에 누가 더 높이 오르는지 겨루는 경기다. 이는 험난한 자연암벽에 루트를 개척하는 산악 활동에서 파생된 종목이다. 동료를 위해 길을 트려고 오른다는 선등(先登)의 의미에서 리드(lead)라는 이름이 붙었다. 김자인은 대한산악연맹에 선수로 등록돼 있지만 국제산악연맹에서 활동하는 선수는 아니다.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이 스포츠를 표방하며 국제산악연맹에서 독립했기 때문이다. 산악인들은 규정도 심판도 없는 게 등반이라며 각자 느끼는 무형의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경쟁과 승패가 있는 스포츠클라이밍과 거리를 두는 산악인도 있다. 김자인은 "나는 한 번도 내가 산악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자인은 산악 활동을 즐기는 부모의 영향으로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이름도 등반에 쓰는 로프인 자일과 국내 암벽등반의 성지 북한산 인수봉의 첫 글자를 따 지어졌다. 김자인은 올해 산악인들이 개척한 최고 난도의 자연암벽을 완등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산악인이 아니라고 했으나 산악인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인 것 같기도 하다. 김자인은 "스포츠클라이밍에는 스포츠 요소도 있고 산악인들이 추구하는 가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는 대회에 나설 때 누구를 이기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며 "주어진 코스를 완등하겠다는 생각만으로 벽을 오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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