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광복군 표지석 찾아가보니 문이 잠겼다?

입력 2014.08.29 (14:18) 수정 2014.08.2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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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시성의 성도 시안(西安), 우리에게는 진시황의 장안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시안 성벽에서 차로 1시간 정도 외곽으로 나가면 창안구 두취진이 나온다.
전형적인 시골 모습 그대로인 외진 곳이다.

이곳이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광복군 제2 지대가 주둔했던 곳으로
'광복군 제2지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국권 회복의 염원을 품고 이억만리 떨어진 궁벽한 이곳까지 쫓겨 온 광복군의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자연 숙연해 지는 곳이다.

광복군 제2 지대는 1942년 9월 시안 시내에 있던 광복군 총사령부가 충칭으로 옮겨간 뒤 두취진에 자리잡았고, 1945년 5월부터는 미국 CIA(중앙정보국) 전신인 OSS와 연계해 국내 진공작전을 위한 훈련을 진행했다. 제2지대장은 총사령부 참모장이자 청산리 대첩 영웅 이범석 장군이 맡았으며, 병력은 18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1차로 50명이 선발돼 국내에 선발대로 진입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일제가 8월 10일 포츠담선언을 수용하는 항복의사를 밝힘에 따라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광복군 제 2지대 표지석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9일 시안 방문 때 자오정융 산시성 당서기를 만나 광복군 표지석 설치를 요청한 지 정확히 11개월 만인 지난 5월 말 건립이 완료됐다.
표지석은 높이 1.8m, 폭 1.1m 크기로 빨간색 기둥 4개가 받치고 있는 중국풍의 정자 안에 놓여 있다. 표지석 문구는 한중 양국이 합의한 내용으로 표지석 전면에는 “한국 광복군 제 2지대 주둔지 옛터”라고 씌어져 있고, 표지석 뒷면은 한글과 중국어로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총사령부는 중국 국민정부 지원 아래 중경에 설립되었으며 주요 임무는 항일 선전과 정보수집이었다.1942년 9월 한국광복군 제 2지대는 항일투쟁이 격렬하게 진행됨에 따라 서안시 장안현 두곡진 사파촌 관제묘 부근으로 본부를 이전하였으며 군사훈련과 대일 선전 임무를 담당하였다. 1945년 일본 제국주의 투항 후, 한국 광복군 제 2지대 및 그 가솔들은 속속 귀국하였다. 중한 인민이 함께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과 압박에 맞서 싸웠던 역사를 기념하고 항일 승리에 기여한 바를 기리기 위해 특별히 이곳에 기념비를 세웠다.”라고 병기돼 있다.
표지석 주위로는 660㎡ 넓이의 아담한 기념공원이 조성됐다. 공원에는 무궁화도 심어져 있어 나라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는 장으로 꾸며졌다.



그런데 이 광복군 표지석 기념공원이 건립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중국 정부 주관으로 제막식까지 열었지만 평일 주간인데도 문이 잠겨 있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원 내부를 보기도 어렵다. 중국측 공원 관리담당은 훼손을 우려해 잠가놓고 있다며 사전에 연락을 주면 문을 열어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 천리 길을 달려온 한국 관광객들이 힘들게 외진 기념공원을 찾았을 때 표지석을 눈앞에 두고 발길을 돌린다면 낭패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다녀간 한국인 관광객은 3~4개 단체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걸어 잠가놓은 기념 공원은 외부에서 보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전혀 알 수 없다. 공원 입구에 제대로 된 현판 하나 없기 때문이다.
기념 공원을 알리는 도로 안내 표지판도 없다.

장소를 알지 못하면 전혀 찾아 갈 수 없다. 아는 사람만 찾아 갈 수 있다. 바로 앞에서 일하는 노점상도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중국측 공원 담당은 공원 설계 때 현판이나 안내 표지판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왜 그걸 표지석 건립을 주도한 국가보훈처나 주중 한국 대사관에서 생각하지 못했을까? 의문이다. 중국측 공원 담당은 공원 착공 당시 100만 위안, 우리 돈으로 1억 7천만 원 정도를 한국으로부터 지원 받았다고 말했다. 사실상 공원 조성 비용을 우리가 모두 대다시피한 셈인데 아쉬움이 큰 대목이다.

광복군 표지석 설치는 항일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한·중 간 또 다른 역사 공조 행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 때문에 건립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면 먼저가신 선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을까?
한중 양국이 ‘그들’만 아는 갇힌 공간이 아닌 살아있는 역사 공간으로 당당히 대외에 개방하고 그 의미를 알리는 게 맞는 주장이 아닐까. 


☞ 바로가기 [뉴스7] 문 잠긴 ‘광복군 표지석’…훼손 우려 개방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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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광복군 표지석 찾아가보니 문이 잠겼다?
    • 입력 2014-08-29 14:18:17
    • 수정2014-08-29 18:08:44
    취재후·사건후
중국 산시성의 성도 시안(西安), 우리에게는 진시황의 장안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시안 성벽에서 차로 1시간 정도 외곽으로 나가면 창안구 두취진이 나온다.
전형적인 시골 모습 그대로인 외진 곳이다.

이곳이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광복군 제2 지대가 주둔했던 곳으로
'광복군 제2지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국권 회복의 염원을 품고 이억만리 떨어진 궁벽한 이곳까지 쫓겨 온 광복군의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자연 숙연해 지는 곳이다.

광복군 제2 지대는 1942년 9월 시안 시내에 있던 광복군 총사령부가 충칭으로 옮겨간 뒤 두취진에 자리잡았고, 1945년 5월부터는 미국 CIA(중앙정보국) 전신인 OSS와 연계해 국내 진공작전을 위한 훈련을 진행했다. 제2지대장은 총사령부 참모장이자 청산리 대첩 영웅 이범석 장군이 맡았으며, 병력은 18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1차로 50명이 선발돼 국내에 선발대로 진입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일제가 8월 10일 포츠담선언을 수용하는 항복의사를 밝힘에 따라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광복군 제 2지대 표지석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9일 시안 방문 때 자오정융 산시성 당서기를 만나 광복군 표지석 설치를 요청한 지 정확히 11개월 만인 지난 5월 말 건립이 완료됐다.
표지석은 높이 1.8m, 폭 1.1m 크기로 빨간색 기둥 4개가 받치고 있는 중국풍의 정자 안에 놓여 있다. 표지석 문구는 한중 양국이 합의한 내용으로 표지석 전면에는 “한국 광복군 제 2지대 주둔지 옛터”라고 씌어져 있고, 표지석 뒷면은 한글과 중국어로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총사령부는 중국 국민정부 지원 아래 중경에 설립되었으며 주요 임무는 항일 선전과 정보수집이었다.1942년 9월 한국광복군 제 2지대는 항일투쟁이 격렬하게 진행됨에 따라 서안시 장안현 두곡진 사파촌 관제묘 부근으로 본부를 이전하였으며 군사훈련과 대일 선전 임무를 담당하였다. 1945년 일본 제국주의 투항 후, 한국 광복군 제 2지대 및 그 가솔들은 속속 귀국하였다. 중한 인민이 함께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과 압박에 맞서 싸웠던 역사를 기념하고 항일 승리에 기여한 바를 기리기 위해 특별히 이곳에 기념비를 세웠다.”라고 병기돼 있다.
표지석 주위로는 660㎡ 넓이의 아담한 기념공원이 조성됐다. 공원에는 무궁화도 심어져 있어 나라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는 장으로 꾸며졌다.



그런데 이 광복군 표지석 기념공원이 건립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중국 정부 주관으로 제막식까지 열었지만 평일 주간인데도 문이 잠겨 있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원 내부를 보기도 어렵다. 중국측 공원 관리담당은 훼손을 우려해 잠가놓고 있다며 사전에 연락을 주면 문을 열어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 천리 길을 달려온 한국 관광객들이 힘들게 외진 기념공원을 찾았을 때 표지석을 눈앞에 두고 발길을 돌린다면 낭패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다녀간 한국인 관광객은 3~4개 단체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걸어 잠가놓은 기념 공원은 외부에서 보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전혀 알 수 없다. 공원 입구에 제대로 된 현판 하나 없기 때문이다.
기념 공원을 알리는 도로 안내 표지판도 없다.

장소를 알지 못하면 전혀 찾아 갈 수 없다. 아는 사람만 찾아 갈 수 있다. 바로 앞에서 일하는 노점상도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중국측 공원 담당은 공원 설계 때 현판이나 안내 표지판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왜 그걸 표지석 건립을 주도한 국가보훈처나 주중 한국 대사관에서 생각하지 못했을까? 의문이다. 중국측 공원 담당은 공원 착공 당시 100만 위안, 우리 돈으로 1억 7천만 원 정도를 한국으로부터 지원 받았다고 말했다. 사실상 공원 조성 비용을 우리가 모두 대다시피한 셈인데 아쉬움이 큰 대목이다.

광복군 표지석 설치는 항일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한·중 간 또 다른 역사 공조 행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 때문에 건립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면 먼저가신 선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을까?
한중 양국이 ‘그들’만 아는 갇힌 공간이 아닌 살아있는 역사 공간으로 당당히 대외에 개방하고 그 의미를 알리는 게 맞는 주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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