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간다] 착취 당하는 반달곰

입력 2014.08.29 (23:14) 수정 2014.08.3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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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리나라 곳곳에 민간이 사육하는 사육곰이 있다는 사실, 아십니까?

그 수도 천 마리에 이르고 있는데요.

그런데 대부분 반달가슴곰인 이 곰들은 오직 웅담 판매를 위해 길러집니다.

그러다보니, 사육되는 환경은 두 눈으로 보기에도 끔찍할 정도인데요.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왜 아직까지도 이렇듯 사육되고 있는걸까요?

김영민 기자가 사육곰의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서울을 벗어나 불과 1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는 이 마을의 뒷산엔 특이한 철창 우리가 늘어서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서자 기이한 울림소리가 들립니다.

일반인이 기르는 것으로, 이곳에만 23마리의 사육곰이 살아갑니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철창 밖을 벗어날 수 없는 곰들.

열 살 이후엔 몸속 웅담을 빼낸 뒤 도살당하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하루 한 번, 관리인이 우리에 넣어주는 잔반만 기다릴뿐입니다.

지난해 겨울 태어난 3마리의 새끼곰, 아직은 철망에 매달려 돌아다니고 서로 장난도 치며 움직임이 왕성합니다.

사람이 다가가자 팔을 내밀며 호기심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 새끼 곰 역시 뱃속 쓸개만을 위해 사육됩니다.

<인터뷰> "(이름은 없나요?) 네 특별하게 이름 같은 건 없어요. (그냥 말 그대로 사육용입니까?) 네..."

바로 옆 우리의 곰은 하루종일 구석에 매달려 있습니다.

시선은 우리 밖 세상에 고정된 채 온통 똥, 오줌으로 질퍽거리는 땅으로는 내려오지 않습니다.

<녹취> "아 쟤가 다리가 잘린 거구나."

발이 잘려나간 곰도 여러 마리.

짙은 갈색으로 뒤덮인 몸 아래 가슴에 흰색 V자 무늬가 선명한 반달가슴곰이지만, 두 앞발이 없습니다.

가만두면 낫는다며 치료나 건강검진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국 사육곰 대부분이 비슷한 환경에 놓여있는 겁니다.

가로, 세로 2미터 이 같은 철창 우리 안에서 사육곰들은 평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직 웅담채취를 위한 것인데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만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전국적으로 곰, 그것도 반달가슴곰 사육이 이뤄지고 있는걸까?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육되는 곰은 천 마리.

1981년부터 동남아 등지에서 수입한 곰은 지금은 전국의 사육 농가만 46곳에 이릅니다.

80년대 초중반 농정 당국이 농가소득을 보전할 수 있다며 곰사육을 장려했다고 농가들은 얘기합니다.

어린 곰을 들여와 키워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등지로 재수출하겠다는 구상이었다는 겁니다.

<녹취> 대한뉴스 : "최근들어 곰을 비롯한 야생동물의 사육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곰은 잡식성 동물로 안전관리만 유의하면 병없이 쉽게 키울수 있습니다. 곰에서 나오는 웅담과 피 가죽등은 국내 수요 뿐 아니라 수입 대체효과도 얻을 수 있는 사육 가능한 야생동물입니다."

당시 농촌진흥청이 발간한 특수가축사육 교본에도 곰사육 관련 내용은 자세히 담겨있습니다.

80년대 살아있는 곰의 웅담은부르는 게 값.

말린 웅담은 1g당 당시 돈으로 300만원에도 팔렸습니다.

이러다보니 살아있는 곰의 쓸개에 고무관을 꽂아 웅담, 쓸개즙을 빼내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윤영덕(곰사육농장주) : "당시에 이제 저는 소를 키우고 있었고, 근데 곰이 상당히 소득이 괜찮다고 해서 곰을 이쪽으로 옮겨와서 키우기 시작했죠. 당시에는 크게 뭐 규제라든가 따로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변화는 80년대 후반 찾아왔습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곰 보호 여론이 형성됐고, 1993년 정부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에 가입합니다.

이때부터 곰의 재수출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습니다.

수출길이 막힌 농가들, 곰 보호 여론에 웅담 판매도 신통치않아 소득은 뚝 떨어졌습니다.

들어서자마자 특유의 곰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이곳 농가는 2백 마리가 넘는 곰들이 살아갑니다.

철창 대부분이 녹슬었고, 곰 이동통로 사다리도 망가졌습니다.

온통 거미줄과 먼지로 뒤덮인 이곳 우리의 곰들 모두 웅담채취용 사육곰입니다.

1992년 시작한 이 농장은 현재 262마리의 사육곰이 길러지고 있습니다.

건간관리나 치료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한 우리에 대여섯마리의 사육곰이 있다보니 서로 물어뜯고 심지어 잡아먹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고개 젓기만을 반복하거나 왔다갔다 제자리걸음만 하고, 통로에 웅크리고 앉거나 드러누워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된 사육곰들..

팔 곳은 없고, 현행법으로 웅담 판매는 10년 이상의 도살된 곰으로 제한돼 농가도 이제는 힘들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김광수(곰사육놈가) : "(8~90년대) 한 마리에 그 당시는 한 천만원 천5백만원씩 이렇게 우리가 팔았는데 어느 기관에서도 관리감독을 심하게 안해서 그냥 뭐 음성적으로 많이 해서 저거를 해서 수익이 좋았어요. (지금은) 10년을 사육하다보면은 소나 돼지를 십 년 길러서 고기를 팔라고 하면 소고기 한근에 20만원씩은 받아야 될 것 같아요."

<녹취> "농가 집회 ~~~~정부는~~~!!!!"

지난해 11월, 서울 도심 청계천변에 난데없이 곰이 나타나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전국사육곰협회 회원들이 사육곰을 끌고 올라와 정부가 사육곰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달라고 요구한 겁니다.

사육곰은 사유재산이자 농가재산인 만큼 적절한 보상으로 정부가 구매하든지 아니면, 일반 가축처럼 법적인 제재를 줄여달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리고 1년, 여전히 실마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곰사육협회 측이 사육비, 시설 보상비, 위로금 등의 보상금 지급을 주장하는 사이, 곰들은 거의 방치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밤늦은 시간, 마을 한복판을 제집처럼 돌아다니는 20kg 무게의 반달가슴곰.

그물망을 치고, 마취총을 쏴 생포한 이 곰은 인근 곰 사육농장에서 탈출한 곰이었습니다.

이 농장에서만도 지난해와 지지난해 3차례 곰이 탈출했습니다.

<녹취> 이웃주민 : "첫번째는 여기까지 내려왔었고 두번째는 큰 곰 2마리가 탈출해서 난리 쳤었고..."

오랜 기간 시설 보수를 하지 못한 게 곰 탈출의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인터뷰> 김무응(곰사육 농장주) : "농가들이 돈을 차출해 가지고 돈을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정부에서 규제하면서 돈을 지원해줘 가면서 하라고"

농가의 경제적 어려움이 사육곰의 학대, 탈출로 이어진다는 판단으로 정치권에서 이미 관련 법안은 나왔습니다.

<녹취> "특촬한 것 보여주고..."

환경부가 사육곰 관리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고, 불임이나 거세시술 같은 수의학적 방법으로 증식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의무화한 것입니다.

사육자가 곰을 사달라고 청구할 때는 환경부가 매수하는 것을 의무화해 궁극적으로 곰 사육을 폐지하는 내용도 담았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초 발의된 이 법은 여전히 상임위에 계류중입니다.

담당 정부 부처인 환경부는 정부가 곰을 사들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입니다.

세찬 비가 내린 지난 25일 월요일, 이곳 사육사들이 먹이를 들고 곰 우리로 들어갑니다.

하루 2번, 곰이 야생에서 주로 먹는 밤과 도토리, 견과류를 비롯해 각종 계절별 과일이 주식입니다.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국립공원 종복원센터에서 키우고 있는 반달가슴곰입니다.

<인터뷰> 김만우(연구원/사육사) : "이런 것처럼 머루 아니면 저희가 인위적으로 대체작물로 쓰는 수박, 참외 이런 것들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언뜻 봐도 사육곰과 달리 건강해 보입니다.

지난 2004년부터 토종 반달가슴곰을 지리산에 방사시키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보호, 관리되고 있는 곰입니다.

10년에 걸친 복원사업 끝에 지리산에 야생으로 서식하는 반달가슴곰은 현재 34마리.

반달가슴곰은 서식지에 따라 7가지 종으로 구분되는데 이 가운데 우리나라 등지에 서식하는 토종곰은 우수리 종뿐입니다.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 중에서도 우수리 종만이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겁니다.

<인터뷰> 정동혁(센터장) : "복원사업이라는 거는 단순히 종만 같다고 해서 그 종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우리나라에 과거부터 살아왔던 쉽게 이야기해서, 한반도에서 있었던 그 곰들이 일부개체가 남아있거든요. 그거를 이제 개체수를 증가시켜주고 복원시키는 과정이거든요"

전남에선 운명이 바뀔 뻔했던 곰도 있습니다.

'영산강 01-02-009'란 번호로 10년 넘게 한 농장에서 길러진 이 사육곰.

한 연구진에 의해 모계혈통이 우수리 종이라고 밝혀진 겁니다.

<녹취> 농장 관리인 : "몰라. 뭐가 몇 년 산인지, 어떤 종류인지 몰라요."

한 시민단체에 의해 곰 구출을 위한 모금활동도 펼쳐졌고, '보담이'라는 이름도 붙여졌습니다.

하지만, 이름만 얻었을 뿐 지금도 여전히 사육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계혈통이 우수리 종이 아니라고 판명돼 보존 가치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토종 반달가슴곰은 국가가 나서 돌보지만 사육곰은 그냥 곰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녹취> 황인철(녹색연합 국장) : "해외에서도 한국이 어떻게 (사육곰 문제를) 해결하는지 관심이 높은데 그걸 공식화해서 공표를 해라. 그래야지 이게 국민들도 사육곰이 이렇게 해결되고 있구나라고 알텐데.. 정부 책임자가 바뀌면서 다시다 뒤집어진 경우들이 있고, 그러다보니 기존에 이야기했던 것들이 이제 다 없고.."

<녹취> "먼길 오셨습니다"

가정집 옆에 곰 우리를 마련해 45마리의 곰을 키우고 있는 전남의 한 농장을 찾았습니다.

하루 2번, 값비싼 사료만 먹이며 매주 우리 청소를 한다는 이곳.

사육곰의 털 빛깔만 보면 곰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다고 농장주인은 말합니다.

동물 학대 비난에서 벗어나 제대로 키우고, 제값에 웅담을 팔고 싶다고 이 농장주는 요구합니다.

<인터뷰> 유현재(곰사육농가) : "정말 꺼져가는 생명을 위해서 한 사람을 위해서 웅담을 이렇게 채취한다면 그 자체는 제가 볼 때 동물 학대도 아닐 뿐더러 정말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서 또 웅담을 이렇게 소득을 창출해야 나머지 곰을 사료를 사서 먹이기 때문에 곰 복지를 위하는 거죠."

마리당 연 사료값을 백만원으로 치면, 10년 이상의 곰만 웅담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사료값만 천만 원.

최소 천만 원에서 최대 2천만 원의 곰을 정부가 사들일 수 없다면 차라리 가축으로 인정해 도축 가능 연령을 낮추고, 곰발바닥 등 고기 판매도 허용하라는 게 이 농가의 얘기입니다.

곰사육은 목적은 오직 웅담 채취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일반적으로 웅담은 소염, 해독 작용을 하고, 뇌전증 소위 말하는 간질 치료에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지금도 암암리에 웅담은 판매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곰 쓸개즙을 주사기로 뽑아 건조시켜 알약 형태로 거래됩니다.

곰을 죽이지 않고 한 번에 뽑을 수 있는 쓸개즙은 마리당 100ml 정도.

이 쓸개즙으로 2백여 개의 웅담캡슐을 만들어 500만원 선에 파는 겁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명성에 비해 웅담의 효과가 과학적으로 연구된 적은 별로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김호철(경희대 교수) : "웅담이 고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몸에 좋을 것이라고 해서 웅담을 자꾸 섭취하려고 하는데 웅담은 실제로 알려진 것처럼 보약이 아닙니다. 웅담은 한방에서 청열 해독 종기나 염증을 없애는데 또 그리고 간질을 치료하는데 써왔기 때문에 굳이 쓰지 않더라도 많은 대체 약이 있습니다."

정부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사육곰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내놨습니다.

사육곰을 정부가 전량 사들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우선적으로 증식 금지 조치는 취하겠다는 것입니다.

농가 신청시 중성화 수술을 진행하고, 마리당 4백여만원 정도의 지원금을 주는 방안입니다.

환경부는 10년 뒤에는 모든 곰의 웅담 채취도 금지할 계획입니다.

<녹취> 김종률(환경부 과장) : "전량을 매입해서 국가가 관리하는 것은 매입 비용, 관리하는 데에 관리 비용, 그 다음에 향후 처리 비용 이런 부분들 때문에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가고..차선책으로서 증식금지를 통해서 점진적으로 줄여나가자는 안이 도출된 겁니다."

하지만, 이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사육곰이 언제쯤 지금의 우리를 떠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곰사육협회는 적정한 보상이 없다면 정부를 상대로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정부와 농가가 대립하는 사이, 지금도 천여 마리의 사육곰들은 아무 말 없이 좁고 더러운 우리 안에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앵커 멘트>

30년 넘게 해결하지 못한 곰사육 문제는 앞으로 최소 10년, 길게는 수십 년을 더 끌 수 있습니다.

멸종위기종인 곰을 사육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긴 세월 국제적 비난을 받아왔는데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정책 판단이 언제까지 사육곰 방치로 이어져야 하는 걸까요?

이제라도 정부와 농가, 시민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분명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취재파일 K, 다음주부턴 더 깊고, 다양한 내용을 담아 매주 금요일 밤 11시40분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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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가 간다] 착취 당하는 반달곰
    • 입력 2014-08-29 19:55:19
    • 수정2014-08-30 09:42:35
    취재파일K
<앵커 멘트>

우리나라 곳곳에 민간이 사육하는 사육곰이 있다는 사실, 아십니까?

그 수도 천 마리에 이르고 있는데요.

그런데 대부분 반달가슴곰인 이 곰들은 오직 웅담 판매를 위해 길러집니다.

그러다보니, 사육되는 환경은 두 눈으로 보기에도 끔찍할 정도인데요.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왜 아직까지도 이렇듯 사육되고 있는걸까요?

김영민 기자가 사육곰의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서울을 벗어나 불과 1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는 이 마을의 뒷산엔 특이한 철창 우리가 늘어서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서자 기이한 울림소리가 들립니다.

일반인이 기르는 것으로, 이곳에만 23마리의 사육곰이 살아갑니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철창 밖을 벗어날 수 없는 곰들.

열 살 이후엔 몸속 웅담을 빼낸 뒤 도살당하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하루 한 번, 관리인이 우리에 넣어주는 잔반만 기다릴뿐입니다.

지난해 겨울 태어난 3마리의 새끼곰, 아직은 철망에 매달려 돌아다니고 서로 장난도 치며 움직임이 왕성합니다.

사람이 다가가자 팔을 내밀며 호기심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 새끼 곰 역시 뱃속 쓸개만을 위해 사육됩니다.

<인터뷰> "(이름은 없나요?) 네 특별하게 이름 같은 건 없어요. (그냥 말 그대로 사육용입니까?) 네..."

바로 옆 우리의 곰은 하루종일 구석에 매달려 있습니다.

시선은 우리 밖 세상에 고정된 채 온통 똥, 오줌으로 질퍽거리는 땅으로는 내려오지 않습니다.

<녹취> "아 쟤가 다리가 잘린 거구나."

발이 잘려나간 곰도 여러 마리.

짙은 갈색으로 뒤덮인 몸 아래 가슴에 흰색 V자 무늬가 선명한 반달가슴곰이지만, 두 앞발이 없습니다.

가만두면 낫는다며 치료나 건강검진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국 사육곰 대부분이 비슷한 환경에 놓여있는 겁니다.

가로, 세로 2미터 이 같은 철창 우리 안에서 사육곰들은 평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직 웅담채취를 위한 것인데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만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전국적으로 곰, 그것도 반달가슴곰 사육이 이뤄지고 있는걸까?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육되는 곰은 천 마리.

1981년부터 동남아 등지에서 수입한 곰은 지금은 전국의 사육 농가만 46곳에 이릅니다.

80년대 초중반 농정 당국이 농가소득을 보전할 수 있다며 곰사육을 장려했다고 농가들은 얘기합니다.

어린 곰을 들여와 키워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등지로 재수출하겠다는 구상이었다는 겁니다.

<녹취> 대한뉴스 : "최근들어 곰을 비롯한 야생동물의 사육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곰은 잡식성 동물로 안전관리만 유의하면 병없이 쉽게 키울수 있습니다. 곰에서 나오는 웅담과 피 가죽등은 국내 수요 뿐 아니라 수입 대체효과도 얻을 수 있는 사육 가능한 야생동물입니다."

당시 농촌진흥청이 발간한 특수가축사육 교본에도 곰사육 관련 내용은 자세히 담겨있습니다.

80년대 살아있는 곰의 웅담은부르는 게 값.

말린 웅담은 1g당 당시 돈으로 300만원에도 팔렸습니다.

이러다보니 살아있는 곰의 쓸개에 고무관을 꽂아 웅담, 쓸개즙을 빼내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윤영덕(곰사육농장주) : "당시에 이제 저는 소를 키우고 있었고, 근데 곰이 상당히 소득이 괜찮다고 해서 곰을 이쪽으로 옮겨와서 키우기 시작했죠. 당시에는 크게 뭐 규제라든가 따로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변화는 80년대 후반 찾아왔습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곰 보호 여론이 형성됐고, 1993년 정부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에 가입합니다.

이때부터 곰의 재수출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습니다.

수출길이 막힌 농가들, 곰 보호 여론에 웅담 판매도 신통치않아 소득은 뚝 떨어졌습니다.

들어서자마자 특유의 곰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이곳 농가는 2백 마리가 넘는 곰들이 살아갑니다.

철창 대부분이 녹슬었고, 곰 이동통로 사다리도 망가졌습니다.

온통 거미줄과 먼지로 뒤덮인 이곳 우리의 곰들 모두 웅담채취용 사육곰입니다.

1992년 시작한 이 농장은 현재 262마리의 사육곰이 길러지고 있습니다.

건간관리나 치료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한 우리에 대여섯마리의 사육곰이 있다보니 서로 물어뜯고 심지어 잡아먹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고개 젓기만을 반복하거나 왔다갔다 제자리걸음만 하고, 통로에 웅크리고 앉거나 드러누워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된 사육곰들..

팔 곳은 없고, 현행법으로 웅담 판매는 10년 이상의 도살된 곰으로 제한돼 농가도 이제는 힘들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김광수(곰사육놈가) : "(8~90년대) 한 마리에 그 당시는 한 천만원 천5백만원씩 이렇게 우리가 팔았는데 어느 기관에서도 관리감독을 심하게 안해서 그냥 뭐 음성적으로 많이 해서 저거를 해서 수익이 좋았어요. (지금은) 10년을 사육하다보면은 소나 돼지를 십 년 길러서 고기를 팔라고 하면 소고기 한근에 20만원씩은 받아야 될 것 같아요."

<녹취> "농가 집회 ~~~~정부는~~~!!!!"

지난해 11월, 서울 도심 청계천변에 난데없이 곰이 나타나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전국사육곰협회 회원들이 사육곰을 끌고 올라와 정부가 사육곰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달라고 요구한 겁니다.

사육곰은 사유재산이자 농가재산인 만큼 적절한 보상으로 정부가 구매하든지 아니면, 일반 가축처럼 법적인 제재를 줄여달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리고 1년, 여전히 실마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곰사육협회 측이 사육비, 시설 보상비, 위로금 등의 보상금 지급을 주장하는 사이, 곰들은 거의 방치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밤늦은 시간, 마을 한복판을 제집처럼 돌아다니는 20kg 무게의 반달가슴곰.

그물망을 치고, 마취총을 쏴 생포한 이 곰은 인근 곰 사육농장에서 탈출한 곰이었습니다.

이 농장에서만도 지난해와 지지난해 3차례 곰이 탈출했습니다.

<녹취> 이웃주민 : "첫번째는 여기까지 내려왔었고 두번째는 큰 곰 2마리가 탈출해서 난리 쳤었고..."

오랜 기간 시설 보수를 하지 못한 게 곰 탈출의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인터뷰> 김무응(곰사육 농장주) : "농가들이 돈을 차출해 가지고 돈을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정부에서 규제하면서 돈을 지원해줘 가면서 하라고"

농가의 경제적 어려움이 사육곰의 학대, 탈출로 이어진다는 판단으로 정치권에서 이미 관련 법안은 나왔습니다.

<녹취> "특촬한 것 보여주고..."

환경부가 사육곰 관리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고, 불임이나 거세시술 같은 수의학적 방법으로 증식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의무화한 것입니다.

사육자가 곰을 사달라고 청구할 때는 환경부가 매수하는 것을 의무화해 궁극적으로 곰 사육을 폐지하는 내용도 담았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초 발의된 이 법은 여전히 상임위에 계류중입니다.

담당 정부 부처인 환경부는 정부가 곰을 사들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입니다.

세찬 비가 내린 지난 25일 월요일, 이곳 사육사들이 먹이를 들고 곰 우리로 들어갑니다.

하루 2번, 곰이 야생에서 주로 먹는 밤과 도토리, 견과류를 비롯해 각종 계절별 과일이 주식입니다.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국립공원 종복원센터에서 키우고 있는 반달가슴곰입니다.

<인터뷰> 김만우(연구원/사육사) : "이런 것처럼 머루 아니면 저희가 인위적으로 대체작물로 쓰는 수박, 참외 이런 것들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언뜻 봐도 사육곰과 달리 건강해 보입니다.

지난 2004년부터 토종 반달가슴곰을 지리산에 방사시키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보호, 관리되고 있는 곰입니다.

10년에 걸친 복원사업 끝에 지리산에 야생으로 서식하는 반달가슴곰은 현재 34마리.

반달가슴곰은 서식지에 따라 7가지 종으로 구분되는데 이 가운데 우리나라 등지에 서식하는 토종곰은 우수리 종뿐입니다.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 중에서도 우수리 종만이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겁니다.

<인터뷰> 정동혁(센터장) : "복원사업이라는 거는 단순히 종만 같다고 해서 그 종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우리나라에 과거부터 살아왔던 쉽게 이야기해서, 한반도에서 있었던 그 곰들이 일부개체가 남아있거든요. 그거를 이제 개체수를 증가시켜주고 복원시키는 과정이거든요"

전남에선 운명이 바뀔 뻔했던 곰도 있습니다.

'영산강 01-02-009'란 번호로 10년 넘게 한 농장에서 길러진 이 사육곰.

한 연구진에 의해 모계혈통이 우수리 종이라고 밝혀진 겁니다.

<녹취> 농장 관리인 : "몰라. 뭐가 몇 년 산인지, 어떤 종류인지 몰라요."

한 시민단체에 의해 곰 구출을 위한 모금활동도 펼쳐졌고, '보담이'라는 이름도 붙여졌습니다.

하지만, 이름만 얻었을 뿐 지금도 여전히 사육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계혈통이 우수리 종이 아니라고 판명돼 보존 가치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토종 반달가슴곰은 국가가 나서 돌보지만 사육곰은 그냥 곰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녹취> 황인철(녹색연합 국장) : "해외에서도 한국이 어떻게 (사육곰 문제를) 해결하는지 관심이 높은데 그걸 공식화해서 공표를 해라. 그래야지 이게 국민들도 사육곰이 이렇게 해결되고 있구나라고 알텐데.. 정부 책임자가 바뀌면서 다시다 뒤집어진 경우들이 있고, 그러다보니 기존에 이야기했던 것들이 이제 다 없고.."

<녹취> "먼길 오셨습니다"

가정집 옆에 곰 우리를 마련해 45마리의 곰을 키우고 있는 전남의 한 농장을 찾았습니다.

하루 2번, 값비싼 사료만 먹이며 매주 우리 청소를 한다는 이곳.

사육곰의 털 빛깔만 보면 곰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다고 농장주인은 말합니다.

동물 학대 비난에서 벗어나 제대로 키우고, 제값에 웅담을 팔고 싶다고 이 농장주는 요구합니다.

<인터뷰> 유현재(곰사육농가) : "정말 꺼져가는 생명을 위해서 한 사람을 위해서 웅담을 이렇게 채취한다면 그 자체는 제가 볼 때 동물 학대도 아닐 뿐더러 정말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서 또 웅담을 이렇게 소득을 창출해야 나머지 곰을 사료를 사서 먹이기 때문에 곰 복지를 위하는 거죠."

마리당 연 사료값을 백만원으로 치면, 10년 이상의 곰만 웅담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사료값만 천만 원.

최소 천만 원에서 최대 2천만 원의 곰을 정부가 사들일 수 없다면 차라리 가축으로 인정해 도축 가능 연령을 낮추고, 곰발바닥 등 고기 판매도 허용하라는 게 이 농가의 얘기입니다.

곰사육은 목적은 오직 웅담 채취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일반적으로 웅담은 소염, 해독 작용을 하고, 뇌전증 소위 말하는 간질 치료에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지금도 암암리에 웅담은 판매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곰 쓸개즙을 주사기로 뽑아 건조시켜 알약 형태로 거래됩니다.

곰을 죽이지 않고 한 번에 뽑을 수 있는 쓸개즙은 마리당 100ml 정도.

이 쓸개즙으로 2백여 개의 웅담캡슐을 만들어 500만원 선에 파는 겁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명성에 비해 웅담의 효과가 과학적으로 연구된 적은 별로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김호철(경희대 교수) : "웅담이 고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몸에 좋을 것이라고 해서 웅담을 자꾸 섭취하려고 하는데 웅담은 실제로 알려진 것처럼 보약이 아닙니다. 웅담은 한방에서 청열 해독 종기나 염증을 없애는데 또 그리고 간질을 치료하는데 써왔기 때문에 굳이 쓰지 않더라도 많은 대체 약이 있습니다."

정부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사육곰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내놨습니다.

사육곰을 정부가 전량 사들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우선적으로 증식 금지 조치는 취하겠다는 것입니다.

농가 신청시 중성화 수술을 진행하고, 마리당 4백여만원 정도의 지원금을 주는 방안입니다.

환경부는 10년 뒤에는 모든 곰의 웅담 채취도 금지할 계획입니다.

<녹취> 김종률(환경부 과장) : "전량을 매입해서 국가가 관리하는 것은 매입 비용, 관리하는 데에 관리 비용, 그 다음에 향후 처리 비용 이런 부분들 때문에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가고..차선책으로서 증식금지를 통해서 점진적으로 줄여나가자는 안이 도출된 겁니다."

하지만, 이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사육곰이 언제쯤 지금의 우리를 떠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곰사육협회는 적정한 보상이 없다면 정부를 상대로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정부와 농가가 대립하는 사이, 지금도 천여 마리의 사육곰들은 아무 말 없이 좁고 더러운 우리 안에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앵커 멘트>

30년 넘게 해결하지 못한 곰사육 문제는 앞으로 최소 10년, 길게는 수십 년을 더 끌 수 있습니다.

멸종위기종인 곰을 사육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긴 세월 국제적 비난을 받아왔는데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정책 판단이 언제까지 사육곰 방치로 이어져야 하는 걸까요?

이제라도 정부와 농가, 시민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분명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취재파일 K, 다음주부턴 더 깊고, 다양한 내용을 담아 매주 금요일 밤 11시40분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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