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전성시대 연 슈틸리케, 한국 축구도?

입력 2014.09.05 (10:59) 수정 2014.09.0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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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대표팀을 이끌 새로운 선장으로 낙점된 울리 슈틸리케(60) 감독은 독일 대표팀이 '체질 개선'을 시작하던 2000년대 초반 유망주 육성을 맡으며 힘을 보탠 지도자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감독 물색 초기에 밝힌 조건에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을 계기로 세계 축구의 '대세'로 떠오른 독일 축구의 DNA를 한국에 이식할 적임자로 선택받은 것으로 보인다.

1990년 서독이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1996년 유럽선수권대회(유로)에서 통일 이후 첫 메이저대회 정상에 오르는 등 독일은 '유럽 축구의 맹주'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에 0-3으로 완패하며 8강에서 탈락하는 등 한동안 하락세를 보이며 '녹슨 전차'라는 오명을 쓴 시기도 있었다.

2006년 월드컵 개최국으로 선정된 2000년에도 이런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 독일은 유로 2000에서 조별리그 '무승 탈락'의 수모를 겪었다.

독일에 대해서는 창의성과 스피드가 떨어지며 재미없는 축구를 한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던 시기였다.

유로 2000 탈락 이후 독일축구협회는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대비해 어린 유망주들을 길러내기 위한 '팀 2006'을 운영했는데, 맨 처음 이 팀의 지휘봉을 잡은 이가 바로 슈틸리케 감독이었다.

그는 '국가대표 2진' 개념이었던 이 팀을 2003년까지 지휘했다.

이 팀을 거쳐 2006 월드컵 대표가 된 선수는 팀 보로프스키, 아르네 프리드리히, 마이크 한케, 티모 힐데브란트 등 4명뿐이었지만, 슈테판 키슬링, 지몬 롤페스, 마리오 고메즈, 로만 바이덴펠러 등 프로 무대에서 정상급 선수로 활약하고 대표팀에도 들어올 만한 선수들이 성장했다.

'재건'을 시작한 독일 대표팀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지휘 아래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3위에 올라 자국 팬들의 지지를 되찾았다.

이후 독일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도 3위에 오르는 등 각종 메이저대회에서 '2인자' 딱지를 한참 동안 떼지 못했으나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으로 세계 축구의 정점에 섰다.

특유의 힘과 조직력에 기술까지 갖춘 축구를 선보이며 세계 챔피언에 오른 독일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도 지난 7월 20년 만에 1위에 올랐다.

결국 이런 변화의 시작점에 있었던 슈틸리케 감독을 통해 국가대표팀은 물론 한국 축구의 전반적인 발전을 모색하려는 게 축구협회의 의중으로 보인다.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7월 취임 기자회견 당시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감독은 대표팀의 경기력은 물론이고 유소년까지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비전을 가진 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월드컵 등 큰 대회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으나 슈틸리케 감독은 독일, 코트디부아르 대표팀, 독일 유소년 대표팀, 다양한 클럽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을 발휘해주리라는 기대 속에 한국과 동행을 시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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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9-05 10:59:34
    • 수정2014-09-05 11:14:07
    연합뉴스
한국 축구대표팀을 이끌 새로운 선장으로 낙점된 울리 슈틸리케(60) 감독은 독일 대표팀이 '체질 개선'을 시작하던 2000년대 초반 유망주 육성을 맡으며 힘을 보탠 지도자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감독 물색 초기에 밝힌 조건에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을 계기로 세계 축구의 '대세'로 떠오른 독일 축구의 DNA를 한국에 이식할 적임자로 선택받은 것으로 보인다. 1990년 서독이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1996년 유럽선수권대회(유로)에서 통일 이후 첫 메이저대회 정상에 오르는 등 독일은 '유럽 축구의 맹주'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에 0-3으로 완패하며 8강에서 탈락하는 등 한동안 하락세를 보이며 '녹슨 전차'라는 오명을 쓴 시기도 있었다. 2006년 월드컵 개최국으로 선정된 2000년에도 이런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 독일은 유로 2000에서 조별리그 '무승 탈락'의 수모를 겪었다. 독일에 대해서는 창의성과 스피드가 떨어지며 재미없는 축구를 한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던 시기였다. 유로 2000 탈락 이후 독일축구협회는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대비해 어린 유망주들을 길러내기 위한 '팀 2006'을 운영했는데, 맨 처음 이 팀의 지휘봉을 잡은 이가 바로 슈틸리케 감독이었다. 그는 '국가대표 2진' 개념이었던 이 팀을 2003년까지 지휘했다. 이 팀을 거쳐 2006 월드컵 대표가 된 선수는 팀 보로프스키, 아르네 프리드리히, 마이크 한케, 티모 힐데브란트 등 4명뿐이었지만, 슈테판 키슬링, 지몬 롤페스, 마리오 고메즈, 로만 바이덴펠러 등 프로 무대에서 정상급 선수로 활약하고 대표팀에도 들어올 만한 선수들이 성장했다. '재건'을 시작한 독일 대표팀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지휘 아래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3위에 올라 자국 팬들의 지지를 되찾았다. 이후 독일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도 3위에 오르는 등 각종 메이저대회에서 '2인자' 딱지를 한참 동안 떼지 못했으나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으로 세계 축구의 정점에 섰다. 특유의 힘과 조직력에 기술까지 갖춘 축구를 선보이며 세계 챔피언에 오른 독일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도 지난 7월 20년 만에 1위에 올랐다. 결국 이런 변화의 시작점에 있었던 슈틸리케 감독을 통해 국가대표팀은 물론 한국 축구의 전반적인 발전을 모색하려는 게 축구협회의 의중으로 보인다.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7월 취임 기자회견 당시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감독은 대표팀의 경기력은 물론이고 유소년까지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비전을 가진 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월드컵 등 큰 대회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으나 슈틸리케 감독은 독일, 코트디부아르 대표팀, 독일 유소년 대표팀, 다양한 클럽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을 발휘해주리라는 기대 속에 한국과 동행을 시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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