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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원더스, 키워드로 본 1093일 간의 기록
입력 2014.09.11 (17:28) 수정 2014.09.11 (17:55) 야구
국내 최초의 ‘독립야구 구단’ 고양 원더스가 11일 공식 해체됐다.
2011년 9월 15일 공식 출범 후 3년 만이다.

‘열정에게 기회를’이라는 슬로건 아래, 꿈을 포기해야 했던 선수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마련해 주었지만 고양 원더스 역시 현실의 벽 앞에 도전을 멈추게 됐다는 점에서 야구팬들의 아쉬움도 크다.

야구팬은 물론, 다른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했던 고양 원더스의 무모하지만 아름다운 1,093일 간의 도전을 정리해 본다.

● 2011.09.15 ~ 2014.09.11, ‘1,093일’간의 기록

고양 원더스는 2011년 9월, 국내 최초의 독립구단으로 공식 출범했다.

'독립 야구단'이란, 기존 프로구단처럼 신인 드래프트나 트레이드 등을 통해 선수를 선발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선수단을 구성해 운영하는 구단을 말한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독립구단 리그가 따로 있을 정도로 활성화 돼 있지만, 국내에서는 고양 원더스가 최초다.



프로구단에 지명받지 못하거나 방출당한 선수들을 모아 창단한 원더스는 ‘야신’ 김성근 감독을 선임하며 출발부터 화제를 모았다. 창단 자체에 의미를 둘 뿐 이렇다 할 성적을 내기는 어려울 거라는 예상을 깨고, 2군 리그인 퓨처스리그 팀들과의 교류 경기에서 놀랄만한 성적을 거뒀다.

고양 원더스에서 제2의 야구 인생을 꿈꾸었던 선수들 중 22명이 프로팀으로 옮겼고, 올해는 신인 드래프트 지명선수까지 배출돼 ‘야구 사관학교’의 명성을 이어왔다.

하지만 독립구단으로서 어려움도 많았다.

퓨처스리그에 정식으로 편입돼 안정적으로 시즌을 운영하고 싶어하는 고양 원더스 구단과, 교류 경기수를 늘리는 것은 가능하지만 정규팀 편입은 어렵다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입장이 맞서며, 2012년 연말에는 양측이 공개적으로 비난전을 벌이기도 했다. 여기에 구단 운영비용 전체를 허민 구단주가 사비로 부담하는 등 재정적인 문제도 적지 않았다.

원더스 구단 내부에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회의가 담긴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구단은 팀 존폐에 대한 논의 끝에 해체를 결정하고 11일 이를 공식 발표했다.

● ‘괴짜’·‘야신’, 그리고 ‘열정’

허민과 김성근.

두 사람의 이름을 빼고 고양 원더스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양 원더스 창단부터 지난 3년간 거둔 모든 성과의 뒤에는 이 두 사람의 이름이 늘 함께 했다.

허민 구단주는 야구계에서는 괴짜로, 팬들 사이에서는 도전과 열정의 상징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서울대 공대 출신 사업가인 그는 인기 온라인게임 ‘던전 앤 파이터’의 제작사 네오플 대표이사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2008년 넥슨에 회사를 매각한 뒤 미국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떠났는데, 야구광이던 그가 수백통의 이메일을 보낸 끝에 그곳에서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투수 필 니크로를 직접 만나 너클볼을 사사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2011년 경기도 고양시에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창단하고 구단주가 됐다. 지난해 미국 독립리그인 캔암리그 소속 락랜드볼더스에 현역 투수로 입단해 올해는 미국 무대에서 감격적인 첫 승까지 거두는 등 끊이지 않는 도전과 열정으로 이슈의 중심에 서 있었다.

허민 구단주는 고양 원더스 창단 후 매년 30억 이상의 사비를 구단에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내에도 제대로 된 독립리그가 출범하기를 희망했던 그는 팀 해체 원인으로 “KBO와 뜻이 다름을 확인했고”, “독립구단 운영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팀의 퓨처스리그 정규 편입을 희망했지만, KBO와의 이견으로 바람이 이뤄지지 않자 결국 해체를 결심한 것 아니냐는 게 야구계 전반의 분석이다.

허민 구단주가 고양 원더스를 출범시킨 장본인이라면 원더스를 진짜 야구팀으로 성장시킨 주역은 김성근 감독이다.



2011년, 3년 계약을 체결하고 고양 원더스 사령탑을 맡은 김성근 감독은 창단 첫 해인 2012년부터 프로야구 퓨처스리그 팀과 교류경기를 펼치며 팀을 정비했다.

KBO 퓨처스리그 팀과 교류 경기를 치르며 2012년 20승 7무 21패(0.488), 2013년 27승 6무 15패(0.643), 2014년 43승 12무 25패(0.632)의 성적을 기록했다.
KBO 소속 프로구단에 스카우트 된 선수도 무려 22명이다.

김성근 감독을 향한 프로구단의 러브콜은 그가 원더스 사령탑으로 있는 동안에도 계속됐다. 프로팀 감독이 바뀔 때마다 그의 이름이 하마평에 올랐고, 특정 구단으로 간다는 소문이 기사화 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계약 기간 중 절대 프로팀에 가는 일은 없을 거라며 못을 박았다.

결과적으로 김성근 감독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양 원더스는 해체됐고 김성근 감독은 생애 13번째로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자유계약(FA) 신분이 된 그의 차기 행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 올랐다.

● 트라이아웃 & 패자 부활

독립구단인 고양 원더스는 드래프트(신인지명), 트레이드 등 KBO가 정한 제도권의 방식으로 선수를 수급할 수 없다. 대신 ‘트라이아웃’을 통해 선수를 선발한다. 입단을 원하는 선수가 직접 팀을 찾아와 공개 테스트를 거치는 방식이다. 프로농구 등 다른 종목에서는 정착된 제도지만,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 초반 2년 동안만 짧게 시행됐던 만큼 야구팬들에게는 익숙치 않은 선수선발 방식이다.



2011년 11월 23일, 창단을 준비하던 고양 원더스는 첫 트라이아웃을 실시했다.

82세 어르신부터 16살의 어린 야구 꿈나무, 서울법대 학생 등 야구를 좋아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테스트를 치렀다.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한 선수, 프로야구 구단에서 방출된 선수 등 좌절을 경험한 이들도 '패자 부활'을 위해 운동장을 찾았다. 넘치는 지원자를 감당하기 위해 구단은 당초 사흘 예정이던 테스트 일정을 이틀 연장해야 했다.

프로구단으로부터 외면받았던 선수들이 원더스를 통해 재기에 성공하면서 원더스를 '기회의 땅'으로 바라보는 선수도 늘었다.

지난해 10월 개인통산 112승을 기록한 김수경 전 넥센 투수코치가 원더스에 선수로 입단했고, 1군 무대에서 15시즌을 뛴 베테랑 투수 최향남도 원더스 유니폼을 입었다.

고양 원더스는 공식 해체 발표를 불과 2주 앞둔 지난달 28일 공식 홈페이지에 ‘2014 트라이아웃 실시’ 공지를 게재했다. 9월 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트라이아웃을 실시하니 지원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9월 2일, 트라이아웃 시행이 연기됐다는 공지가 다시 떴고, 열흘 뒤 팀은 공식 해체를 발표했다.

고양 원더스는 지난 7월부터 이미 팀 해체를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2014년도 트라이아웃을 계획했던 건 마지막까지 팀을 유지하고 싶었던 구단측 의지의 표현일 지도 모르겠다.

● 꿈을 이룬 23인


야구를 업(業)으로 하는 사람들의 궁극적 목표는 프로 무대에 서는 것이다.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에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한 선수들에게도 프로구단 입단은 최우선 목표였을 터.

지난 3년간 원더스 선수 중 KBO 소속 프로팀에 입단한 선수는 모두 22명.

2012년 7월 투수 이희성이 LG트윈스에 입단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 7월 KT위즈와 계약한 외야수 김진곤까지 2012년 5명, 2013년 12명, 2014년 5명 등 총 22명의 선수가 프로팀 유니폼을 입었다. 황목치승(LG)과 안태영(넥센), 송주호(한화) 등 프로 1군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도 나왔다.



지난 8월 열린 2015년 신인 2차 지명회의에서는 포수 정규식이 원더스 선수 중 처음으로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에 입성(LG에 2차 4라운드 지명)했다. 정규식은 계약을 마치면 원더스 출신 23번째 프로야구 진출 선수가 된다.

● "열정에게 기회를"...도전은 계속될까

창단 당시 고양 원더스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열정에게 기회를(Chance for the Passion)’이었다. 야구를 향한 열정을 가진 이들이 모여 다시 한 번 비상해 보자는 의미라고 구단은 설명했다. 그리고 그 기회는 3년만에 끝났다.

구단 해체 발표 직후 하송 고양 원더스 단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구단 운영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2년 여간 논의 끝에 출범했지만, 막상 출범하고 나니 여러가지가 달라졌고, 구단의 영속성을 보장할 수 없어 해체를 결심했다는 내용이었다.

야구계에서는 원더스의 해체와 관련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독립구단의 퓨처스리그 정규 편입 불발, 그 과정에서 불거진 고양 원더스와 KBO의 불편한 관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프로구단들이 고양 원더스 선수들을 데려다 쓰면서도 막상 독립구단 존속을 위한 현실적 해법 찾기에는 소극적이었던 것 아니냐는 팬들의 질타도 있다.

실제로 김성근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프로구단들이 고양 원더스를 ‘끼워주지’ 않으려고 했다“며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독립구단을 외면했다”고 서운함을 표하기도 했다.

현재 고양 원더스에는 80여 명에 이르는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남아 있다.
원더스의 해체로 가장 답답해진 것도 이곳에서 프로 진출을 위해 구슬땀을 흘렸던 선수들이다. 앞으로 이들의 거취는 어떻게 될까.

하송 단장은 앞으로 2~3개월 동안은 훈련을 계속 진행하면서 선수들이 다른 곳에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월급도 11월까지 정상적으로 지급할 예정이다. 해체 발표는 했지만, 선수들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도록 배려를 하겠다는 의미다.

원더스 선수들은 팀 해체가 발표된 11일에도 고양시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에서 ‘평소처럼’ 훈련을 진행했다. 야구를 향한 선수들의 뜨거운 ‘열정’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 고양 원더스, 키워드로 본 1093일 간의 기록
    • 입력 2014-09-11 17:28:59
    • 수정2014-09-11 17:55:05
    야구
국내 최초의 ‘독립야구 구단’ 고양 원더스가 11일 공식 해체됐다.
2011년 9월 15일 공식 출범 후 3년 만이다.

‘열정에게 기회를’이라는 슬로건 아래, 꿈을 포기해야 했던 선수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마련해 주었지만 고양 원더스 역시 현실의 벽 앞에 도전을 멈추게 됐다는 점에서 야구팬들의 아쉬움도 크다.

야구팬은 물론, 다른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했던 고양 원더스의 무모하지만 아름다운 1,093일 간의 도전을 정리해 본다.

● 2011.09.15 ~ 2014.09.11, ‘1,093일’간의 기록

고양 원더스는 2011년 9월, 국내 최초의 독립구단으로 공식 출범했다.

'독립 야구단'이란, 기존 프로구단처럼 신인 드래프트나 트레이드 등을 통해 선수를 선발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선수단을 구성해 운영하는 구단을 말한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독립구단 리그가 따로 있을 정도로 활성화 돼 있지만, 국내에서는 고양 원더스가 최초다.



프로구단에 지명받지 못하거나 방출당한 선수들을 모아 창단한 원더스는 ‘야신’ 김성근 감독을 선임하며 출발부터 화제를 모았다. 창단 자체에 의미를 둘 뿐 이렇다 할 성적을 내기는 어려울 거라는 예상을 깨고, 2군 리그인 퓨처스리그 팀들과의 교류 경기에서 놀랄만한 성적을 거뒀다.

고양 원더스에서 제2의 야구 인생을 꿈꾸었던 선수들 중 22명이 프로팀으로 옮겼고, 올해는 신인 드래프트 지명선수까지 배출돼 ‘야구 사관학교’의 명성을 이어왔다.

하지만 독립구단으로서 어려움도 많았다.

퓨처스리그에 정식으로 편입돼 안정적으로 시즌을 운영하고 싶어하는 고양 원더스 구단과, 교류 경기수를 늘리는 것은 가능하지만 정규팀 편입은 어렵다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입장이 맞서며, 2012년 연말에는 양측이 공개적으로 비난전을 벌이기도 했다. 여기에 구단 운영비용 전체를 허민 구단주가 사비로 부담하는 등 재정적인 문제도 적지 않았다.

원더스 구단 내부에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회의가 담긴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구단은 팀 존폐에 대한 논의 끝에 해체를 결정하고 11일 이를 공식 발표했다.

● ‘괴짜’·‘야신’, 그리고 ‘열정’

허민과 김성근.

두 사람의 이름을 빼고 고양 원더스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양 원더스 창단부터 지난 3년간 거둔 모든 성과의 뒤에는 이 두 사람의 이름이 늘 함께 했다.

허민 구단주는 야구계에서는 괴짜로, 팬들 사이에서는 도전과 열정의 상징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서울대 공대 출신 사업가인 그는 인기 온라인게임 ‘던전 앤 파이터’의 제작사 네오플 대표이사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2008년 넥슨에 회사를 매각한 뒤 미국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떠났는데, 야구광이던 그가 수백통의 이메일을 보낸 끝에 그곳에서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투수 필 니크로를 직접 만나 너클볼을 사사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2011년 경기도 고양시에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창단하고 구단주가 됐다. 지난해 미국 독립리그인 캔암리그 소속 락랜드볼더스에 현역 투수로 입단해 올해는 미국 무대에서 감격적인 첫 승까지 거두는 등 끊이지 않는 도전과 열정으로 이슈의 중심에 서 있었다.

허민 구단주는 고양 원더스 창단 후 매년 30억 이상의 사비를 구단에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내에도 제대로 된 독립리그가 출범하기를 희망했던 그는 팀 해체 원인으로 “KBO와 뜻이 다름을 확인했고”, “독립구단 운영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팀의 퓨처스리그 정규 편입을 희망했지만, KBO와의 이견으로 바람이 이뤄지지 않자 결국 해체를 결심한 것 아니냐는 게 야구계 전반의 분석이다.

허민 구단주가 고양 원더스를 출범시킨 장본인이라면 원더스를 진짜 야구팀으로 성장시킨 주역은 김성근 감독이다.



2011년, 3년 계약을 체결하고 고양 원더스 사령탑을 맡은 김성근 감독은 창단 첫 해인 2012년부터 프로야구 퓨처스리그 팀과 교류경기를 펼치며 팀을 정비했다.

KBO 퓨처스리그 팀과 교류 경기를 치르며 2012년 20승 7무 21패(0.488), 2013년 27승 6무 15패(0.643), 2014년 43승 12무 25패(0.632)의 성적을 기록했다.
KBO 소속 프로구단에 스카우트 된 선수도 무려 22명이다.

김성근 감독을 향한 프로구단의 러브콜은 그가 원더스 사령탑으로 있는 동안에도 계속됐다. 프로팀 감독이 바뀔 때마다 그의 이름이 하마평에 올랐고, 특정 구단으로 간다는 소문이 기사화 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계약 기간 중 절대 프로팀에 가는 일은 없을 거라며 못을 박았다.

결과적으로 김성근 감독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양 원더스는 해체됐고 김성근 감독은 생애 13번째로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자유계약(FA) 신분이 된 그의 차기 행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 올랐다.

● 트라이아웃 & 패자 부활

독립구단인 고양 원더스는 드래프트(신인지명), 트레이드 등 KBO가 정한 제도권의 방식으로 선수를 수급할 수 없다. 대신 ‘트라이아웃’을 통해 선수를 선발한다. 입단을 원하는 선수가 직접 팀을 찾아와 공개 테스트를 거치는 방식이다. 프로농구 등 다른 종목에서는 정착된 제도지만,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 초반 2년 동안만 짧게 시행됐던 만큼 야구팬들에게는 익숙치 않은 선수선발 방식이다.



2011년 11월 23일, 창단을 준비하던 고양 원더스는 첫 트라이아웃을 실시했다.

82세 어르신부터 16살의 어린 야구 꿈나무, 서울법대 학생 등 야구를 좋아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테스트를 치렀다.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한 선수, 프로야구 구단에서 방출된 선수 등 좌절을 경험한 이들도 '패자 부활'을 위해 운동장을 찾았다. 넘치는 지원자를 감당하기 위해 구단은 당초 사흘 예정이던 테스트 일정을 이틀 연장해야 했다.

프로구단으로부터 외면받았던 선수들이 원더스를 통해 재기에 성공하면서 원더스를 '기회의 땅'으로 바라보는 선수도 늘었다.

지난해 10월 개인통산 112승을 기록한 김수경 전 넥센 투수코치가 원더스에 선수로 입단했고, 1군 무대에서 15시즌을 뛴 베테랑 투수 최향남도 원더스 유니폼을 입었다.

고양 원더스는 공식 해체 발표를 불과 2주 앞둔 지난달 28일 공식 홈페이지에 ‘2014 트라이아웃 실시’ 공지를 게재했다. 9월 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트라이아웃을 실시하니 지원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9월 2일, 트라이아웃 시행이 연기됐다는 공지가 다시 떴고, 열흘 뒤 팀은 공식 해체를 발표했다.

고양 원더스는 지난 7월부터 이미 팀 해체를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2014년도 트라이아웃을 계획했던 건 마지막까지 팀을 유지하고 싶었던 구단측 의지의 표현일 지도 모르겠다.

● 꿈을 이룬 23인


야구를 업(業)으로 하는 사람들의 궁극적 목표는 프로 무대에 서는 것이다.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에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한 선수들에게도 프로구단 입단은 최우선 목표였을 터.

지난 3년간 원더스 선수 중 KBO 소속 프로팀에 입단한 선수는 모두 22명.

2012년 7월 투수 이희성이 LG트윈스에 입단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 7월 KT위즈와 계약한 외야수 김진곤까지 2012년 5명, 2013년 12명, 2014년 5명 등 총 22명의 선수가 프로팀 유니폼을 입었다. 황목치승(LG)과 안태영(넥센), 송주호(한화) 등 프로 1군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도 나왔다.



지난 8월 열린 2015년 신인 2차 지명회의에서는 포수 정규식이 원더스 선수 중 처음으로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에 입성(LG에 2차 4라운드 지명)했다. 정규식은 계약을 마치면 원더스 출신 23번째 프로야구 진출 선수가 된다.

● "열정에게 기회를"...도전은 계속될까

창단 당시 고양 원더스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열정에게 기회를(Chance for the Passion)’이었다. 야구를 향한 열정을 가진 이들이 모여 다시 한 번 비상해 보자는 의미라고 구단은 설명했다. 그리고 그 기회는 3년만에 끝났다.

구단 해체 발표 직후 하송 고양 원더스 단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구단 운영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2년 여간 논의 끝에 출범했지만, 막상 출범하고 나니 여러가지가 달라졌고, 구단의 영속성을 보장할 수 없어 해체를 결심했다는 내용이었다.

야구계에서는 원더스의 해체와 관련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독립구단의 퓨처스리그 정규 편입 불발, 그 과정에서 불거진 고양 원더스와 KBO의 불편한 관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프로구단들이 고양 원더스 선수들을 데려다 쓰면서도 막상 독립구단 존속을 위한 현실적 해법 찾기에는 소극적이었던 것 아니냐는 팬들의 질타도 있다.

실제로 김성근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프로구단들이 고양 원더스를 ‘끼워주지’ 않으려고 했다“며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독립구단을 외면했다”고 서운함을 표하기도 했다.

현재 고양 원더스에는 80여 명에 이르는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남아 있다.
원더스의 해체로 가장 답답해진 것도 이곳에서 프로 진출을 위해 구슬땀을 흘렸던 선수들이다. 앞으로 이들의 거취는 어떻게 될까.

하송 단장은 앞으로 2~3개월 동안은 훈련을 계속 진행하면서 선수들이 다른 곳에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월급도 11월까지 정상적으로 지급할 예정이다. 해체 발표는 했지만, 선수들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도록 배려를 하겠다는 의미다.

원더스 선수들은 팀 해체가 발표된 11일에도 고양시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에서 ‘평소처럼’ 훈련을 진행했다. 야구를 향한 선수들의 뜨거운 ‘열정’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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