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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eye] 일본 근대화 상징 데지마, 복원에 100년
입력 2014.09.13 (08:36) 수정 2014.09.13 (09:47) 특파원 현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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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본 나가사키에는 무려 100년에 걸쳐 장기간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옛 무역항이 있습니다.

에도시대 일본에서 유일한 대외교류 창구역할을 했던 인공섬 데지마가 바로 그곳인데요.

윤석구 특파원이 백년 복원의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일본 열도 가장 서쪽에 위치한 나가사키.

옛 모습의 노면전차는 역사의 도시, 나가사키를 상징하는 풍경입니다.

도심 한복판에 에도시대 서양과 유일한 교류창구 역할을 했던 데지마 복원현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200년전 에도시대 거리가 등장합니다.

전통 복장을 한 안내인이 방문자를 맞이합니다.

<녹취> 이시하라(데지마 안내인) : "이쪽엔 당시 바깥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던 다리가 있었습니다."

데지마에는 에도시대 네덜란드 무역상이 거주하던 건물과 창고 등이 옛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 상관장의 저택 식당에는 성탄절 축하 만찬이 재현돼 방문자들의 눈길을 끕니다.

<녹취> 안내인 : "이것은 '보아헤드'란 요리로 당시 북유럽의 성탄절 음식입니다."

<녹취> 아야 다츠미(관람객) : "지금도 사용할만한 것이 대부분이라 당시 문물이 참 대단하다고 여겨집니다."

데지마는 원래 쇄국정책을 펴던 에도막부가 서양과의 교류를 제한하기 위해 1636년 바다를 매립해 만든 부채 모양의 인공섬이었습니다.

220여년 동안 서양과 문물을 교류하는 유일한 창구역할을 했던 데지마는 개항과 함께 1859년 문을 닫고, 매립공사로 주변이 메워지면서 도심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데지마를 옛모습으로 복원하기로 한 것은 1951년, 완전 복원까지 무려 백년이 걸리는 장기 계획이었습니다.

토지 매입 등에도 시간이 걸렸지만 데지마의 원형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기 위한 치밀한 고증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 마미츠카(데지마 복원정비실장) : "데지마의 가치를 후세에 남긴다는 의미에서 충실한 복원이 매우 중요합니다."

복원 대상은 역사 자료가 가장 풍부한 1820년대 모습 입니다.

장기간의 자료수집과 현장 발굴조사, 그리고 전문가 협의를 거친 결정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건물은 75%가 복원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변 매립지를 모두 파내 원래의 인공섬 형태로 만들면 데지마 복원이 마무리됩니다.

건물외형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구조까지 원형 그대로 복원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마미츠카(데지마 복원정비실장) : "나무 골조에 새끼줄을 감고 진흙을 여러 층 두껍게 바르는 방화벽입니다."

데지마 복원사업에서 또하나의 중요한 원칙은 나가사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입니다.

시민들은 역사 자료와 건축 재료를 기부하고, 데지마와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 복원비용도 모금할 계획입니다.

자원봉사자 3백여명은 방문객들에게 데지마를 소개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인터뷰> 후나츠(자원봉사자) : "당시 세계와 교류했던 첨단 데지마의 역할을 알리는 것이 큰 보람입니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데지마 복원 현장은 연간 40만명 이상이 찾아오는 나가사키의 명소가 됐습니다.

과거를 복원해 미래를 열어 간다는 나가사키의 청사진이 조금씩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엔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복원사업을 나가사키 시민들이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힘은 일본 근대역사에서 나가사키, 그리고 데지마의 역할에 대한 각별한 자부심이었습니다.

나가사키현 히라도항.

16세기 중반 처음으로 포르투갈, 이어서 네덜란드 상선이 일본에 들어와 무역을 시작한 곳입니다.

서양과 첫 교류를 시작한 역사적 인연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네덜란드 상관 건물이 복원돼 있습니다.

<녹취> 상관 안내원(네덜란드 전통복장) : "어서오세요. 히라도 네덜란드 상관입니다."

안에선 당시 처음으로 일본에 전래된 서양문물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에도 막부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작성한 해외무역 허가증도 전시돼 있습니다.

<인터뷰> 이데구치(네덜란드 상관 연구원) : "1550년 포르투갈 배가 처음으로 일본에 들어와 서양과 무역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일본에 전래돼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조총,

대량 수입된 설탕과 함께 소개된 카스테라는 일본사람들에게 서양문물의 상징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포교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자, 에도 막부는 데지마에만 네덜란드인들을 받아들입니다.

종교활동은 금지하고 무역만 인정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쇄국 정책 하에서 종교와 무역을 분리해 실리를 취하고자 한 막부의 현실적 선택이 바로 데지마였던 겁니다.

<인터뷰> 기무라(나가사키 대학 다문화사회학부 교수) : "서양문물의 유일한 수입창구였던 데지마는 작지만 중요한 문명의 통로였습니다."

그후 220년간 데지마는 일본의 유일한 무역항이었습니다.

에도 시대 후기가 되자 나가사키는 데지마를 중심으로 서양문물이 활발하게 교류되는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나가사키는 일본이 근대화의 길로 들어서는 창구 역할을 했습니다. 그 교류의 중심 역할을 한 곳이 바로 데지마 였습니다.

특히 서양 인체해부서를 번역한 <해체 신서> 소개를 계기로 네덜란드 학문을 뜻하는 '난학’ 붐이 일어나면서, 나가사키는 근대 과학과 실용학문의 발원지가 됐습니다.

<인터뷰> 다우에(나가사키 시장) : "일본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데지마를 복원해서 그 역사를 미래로 이어가고자 합니다."

2050년 완전한 복원을 목표로 백년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데지마.

새로운 문물의 창구였던 데지마의 복원은 일본 근대 역사의 출발을 복원하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 [특파원 eye] 일본 근대화 상징 데지마, 복원에 100년
    • 입력 2014-09-13 08:45:40
    • 수정2014-09-13 09:47:45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일본 나가사키에는 무려 100년에 걸쳐 장기간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옛 무역항이 있습니다.

에도시대 일본에서 유일한 대외교류 창구역할을 했던 인공섬 데지마가 바로 그곳인데요.

윤석구 특파원이 백년 복원의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일본 열도 가장 서쪽에 위치한 나가사키.

옛 모습의 노면전차는 역사의 도시, 나가사키를 상징하는 풍경입니다.

도심 한복판에 에도시대 서양과 유일한 교류창구 역할을 했던 데지마 복원현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200년전 에도시대 거리가 등장합니다.

전통 복장을 한 안내인이 방문자를 맞이합니다.

<녹취> 이시하라(데지마 안내인) : "이쪽엔 당시 바깥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던 다리가 있었습니다."

데지마에는 에도시대 네덜란드 무역상이 거주하던 건물과 창고 등이 옛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 상관장의 저택 식당에는 성탄절 축하 만찬이 재현돼 방문자들의 눈길을 끕니다.

<녹취> 안내인 : "이것은 '보아헤드'란 요리로 당시 북유럽의 성탄절 음식입니다."

<녹취> 아야 다츠미(관람객) : "지금도 사용할만한 것이 대부분이라 당시 문물이 참 대단하다고 여겨집니다."

데지마는 원래 쇄국정책을 펴던 에도막부가 서양과의 교류를 제한하기 위해 1636년 바다를 매립해 만든 부채 모양의 인공섬이었습니다.

220여년 동안 서양과 문물을 교류하는 유일한 창구역할을 했던 데지마는 개항과 함께 1859년 문을 닫고, 매립공사로 주변이 메워지면서 도심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데지마를 옛모습으로 복원하기로 한 것은 1951년, 완전 복원까지 무려 백년이 걸리는 장기 계획이었습니다.

토지 매입 등에도 시간이 걸렸지만 데지마의 원형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기 위한 치밀한 고증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 마미츠카(데지마 복원정비실장) : "데지마의 가치를 후세에 남긴다는 의미에서 충실한 복원이 매우 중요합니다."

복원 대상은 역사 자료가 가장 풍부한 1820년대 모습 입니다.

장기간의 자료수집과 현장 발굴조사, 그리고 전문가 협의를 거친 결정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건물은 75%가 복원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변 매립지를 모두 파내 원래의 인공섬 형태로 만들면 데지마 복원이 마무리됩니다.

건물외형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구조까지 원형 그대로 복원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마미츠카(데지마 복원정비실장) : "나무 골조에 새끼줄을 감고 진흙을 여러 층 두껍게 바르는 방화벽입니다."

데지마 복원사업에서 또하나의 중요한 원칙은 나가사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입니다.

시민들은 역사 자료와 건축 재료를 기부하고, 데지마와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 복원비용도 모금할 계획입니다.

자원봉사자 3백여명은 방문객들에게 데지마를 소개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인터뷰> 후나츠(자원봉사자) : "당시 세계와 교류했던 첨단 데지마의 역할을 알리는 것이 큰 보람입니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데지마 복원 현장은 연간 40만명 이상이 찾아오는 나가사키의 명소가 됐습니다.

과거를 복원해 미래를 열어 간다는 나가사키의 청사진이 조금씩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엔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복원사업을 나가사키 시민들이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힘은 일본 근대역사에서 나가사키, 그리고 데지마의 역할에 대한 각별한 자부심이었습니다.

나가사키현 히라도항.

16세기 중반 처음으로 포르투갈, 이어서 네덜란드 상선이 일본에 들어와 무역을 시작한 곳입니다.

서양과 첫 교류를 시작한 역사적 인연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네덜란드 상관 건물이 복원돼 있습니다.

<녹취> 상관 안내원(네덜란드 전통복장) : "어서오세요. 히라도 네덜란드 상관입니다."

안에선 당시 처음으로 일본에 전래된 서양문물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에도 막부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작성한 해외무역 허가증도 전시돼 있습니다.

<인터뷰> 이데구치(네덜란드 상관 연구원) : "1550년 포르투갈 배가 처음으로 일본에 들어와 서양과 무역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일본에 전래돼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조총,

대량 수입된 설탕과 함께 소개된 카스테라는 일본사람들에게 서양문물의 상징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포교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자, 에도 막부는 데지마에만 네덜란드인들을 받아들입니다.

종교활동은 금지하고 무역만 인정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쇄국 정책 하에서 종교와 무역을 분리해 실리를 취하고자 한 막부의 현실적 선택이 바로 데지마였던 겁니다.

<인터뷰> 기무라(나가사키 대학 다문화사회학부 교수) : "서양문물의 유일한 수입창구였던 데지마는 작지만 중요한 문명의 통로였습니다."

그후 220년간 데지마는 일본의 유일한 무역항이었습니다.

에도 시대 후기가 되자 나가사키는 데지마를 중심으로 서양문물이 활발하게 교류되는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나가사키는 일본이 근대화의 길로 들어서는 창구 역할을 했습니다. 그 교류의 중심 역할을 한 곳이 바로 데지마 였습니다.

특히 서양 인체해부서를 번역한 <해체 신서> 소개를 계기로 네덜란드 학문을 뜻하는 '난학’ 붐이 일어나면서, 나가사키는 근대 과학과 실용학문의 발원지가 됐습니다.

<인터뷰> 다우에(나가사키 시장) : "일본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데지마를 복원해서 그 역사를 미래로 이어가고자 합니다."

2050년 완전한 복원을 목표로 백년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데지마.

새로운 문물의 창구였던 데지마의 복원은 일본 근대 역사의 출발을 복원하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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