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길로 통하는 지하철 환풍구 안전한가?

입력 2014.10.20 (16:14) 수정 2014.10.2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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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판교에서 환풍구 붕괴로 16명이 목숨을 잃고 11명이 부상하는 참사가 발생한 가운데 인도 위에 설치된 지하철 환풍구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하철 환풍구는 지하철 입구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어 '설마 무너질까' 하는 생각에 대부분 무심코 위를 밟고 지나가는 사실상 인도처럼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판교 참사 이후 환풍구 덮개 구멍 너머로 까마득한 바닥을 내려다본 시민들은 아찔한 생각에 가슴을 쓸고 있다.

◇ "설마 했는데… 아찔하네요" = 직장인 이준석(41)씨는 지난 주말 시내에 나갔다가 지하철역 입구에 설치된 환풍구를 새삼 다시 들여다봤다.

이씨는 "안 그래도 지하철 환풍구 위를 가끔 지나가면서 바닥을 보면 꽤 구멍이 높은 것을 보고 아찔했었는데 판교 사고 이후 다시 보니 위험천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하철 1∼9호선의 환풍구는 총 2천418개이며, 이중 보도 위에 설치된 것은 절반가량인 1천777개다.

보도 위에 설치된 환풍구 중에서 지상 높이가 30㎝ 이상인 곳은 1천578개, 30㎝ 미만인 것은 199개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어 사실상 큰 차이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보도에 설치된 이들 환풍구는 펜스로 차단되는 등 별도의 안전시설이 없어 시민들 사이에서는 '걸어 다니는 길' 쯤으로 통한다는 점이다.

특히 상가 인근에 설치된 지하철 환풍구는 상인들이 물건을 쌓아놓거나 오토바이 등을 세워놓는 등 자투리 공간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는 환풍구 덮개가 1㎡당 350∼500㎏까지 견딜 수 있어서 붕괴 위험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설치할 때 기준이기에 시설이 노후화되거나 거리에서 대규모 집회나 행사가 열려 많은 시민이 환풍구 위에 한꺼번에 올라가게 되는 상황이 되면 장담할 수 없다.

◇ 대부분 사고는 건물 환풍구… 통계도 없어 = 환풍구 사고와 관련해 지금까지 지하철 환풍구와 관련해 발생한 사건은 집계된 것이 없다.

대부분 판교 참사와 같이 아파트와 상가 등에서 설치한 환풍구에서 사고가 났다.

작년 11월에는 부산 해운대구에서 백화점 환기구에 올라간 고교생이 열려 있던 환기구 덮개 사이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2009년에는 경기도 화성에서 아파트 단지 환풍구 위에서 뛰어놀던 중학생이 환풍구 지붕이 깨지면서 7m 아래 지하 주차장으로 추락해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환풍구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았지만 아직 환풍구 안전기준을 규정한 관련법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이렇기에 지방자치단체는 이들 환풍구에 대한 안전관리는커녕 관련 통계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들은 판교 참사를 계기로 시내 환풍구를 일제조사하기로 했으나 만시지탄이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 전문가 "환풍구, 더 이상 인도의 일부가 되면 안돼" = 전문가들은 늦었지만 판교 참사를 계기로 환풍구에 대한 확실한 안전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건국대 건축학부 안형준 교수는 "환풍구는 구조물이 아니라 시설물이기 때문에 사람이 탈 것이라고는 예상을 못 하고 환기 기능에만 주목해 왔다"며 "이제는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환풍기를 사람이 올라타지 못하도록 조형적으로 구조를 바꾼다든지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이번 사고의 경우 덮개 판을 지지하는 앵글이 부서져 일어났는데 지지대가 부서졌다 할지라도 20m를 그냥 무방비로 내려가게 돼 있다"며 "일정 높이마다 안전망을 설치해 놨으면 이런 사고가 없지 않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양대 기계공학부 오재응 교수는 "환풍구 시설에 대한 안전규격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며 "환풍구에는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으니 일반도로 건물에 대한 규정에 따라서 안전규격을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안전 불감증에 걸린 시민 의식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우송대 소방방재학과 인세진 교수는 "환풍구는 원래 절대 올라가선 안 되는 곳이라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점에서 시민 의식에도 문제가 있다"며 "이제라도 안전 교육을 똑바로 하고 시민들이 의식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공학부 교수는 "기본적으로 환풍구의 기본적인 역할이 '환풍' 기능이기에 지하 주차장이나 음식점, 지하철 등에서 나오는 가장 더러운 공기가 환풍구로 나온다"라며 "이를 시민들이 아무렇지 않게 밟고 지나다니면서 그 공기를 들이마시도록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입간판 등을 환풍구 주변에 세워서 '공기 질이 나쁘니 절대 접근하지 마라'고 경고하는 것이 단기적인 사고 예방책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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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20 16:14:30
    • 수정2014-10-20 18: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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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판교에서 환풍구 붕괴로 16명이 목숨을 잃고 11명이 부상하는 참사가 발생한 가운데 인도 위에 설치된 지하철 환풍구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하철 환풍구는 지하철 입구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어 '설마 무너질까' 하는 생각에 대부분 무심코 위를 밟고 지나가는 사실상 인도처럼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판교 참사 이후 환풍구 덮개 구멍 너머로 까마득한 바닥을 내려다본 시민들은 아찔한 생각에 가슴을 쓸고 있다.

◇ "설마 했는데… 아찔하네요" = 직장인 이준석(41)씨는 지난 주말 시내에 나갔다가 지하철역 입구에 설치된 환풍구를 새삼 다시 들여다봤다.

이씨는 "안 그래도 지하철 환풍구 위를 가끔 지나가면서 바닥을 보면 꽤 구멍이 높은 것을 보고 아찔했었는데 판교 사고 이후 다시 보니 위험천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하철 1∼9호선의 환풍구는 총 2천418개이며, 이중 보도 위에 설치된 것은 절반가량인 1천777개다.

보도 위에 설치된 환풍구 중에서 지상 높이가 30㎝ 이상인 곳은 1천578개, 30㎝ 미만인 것은 199개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어 사실상 큰 차이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보도에 설치된 이들 환풍구는 펜스로 차단되는 등 별도의 안전시설이 없어 시민들 사이에서는 '걸어 다니는 길' 쯤으로 통한다는 점이다.

특히 상가 인근에 설치된 지하철 환풍구는 상인들이 물건을 쌓아놓거나 오토바이 등을 세워놓는 등 자투리 공간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는 환풍구 덮개가 1㎡당 350∼500㎏까지 견딜 수 있어서 붕괴 위험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설치할 때 기준이기에 시설이 노후화되거나 거리에서 대규모 집회나 행사가 열려 많은 시민이 환풍구 위에 한꺼번에 올라가게 되는 상황이 되면 장담할 수 없다.

◇ 대부분 사고는 건물 환풍구… 통계도 없어 = 환풍구 사고와 관련해 지금까지 지하철 환풍구와 관련해 발생한 사건은 집계된 것이 없다.

대부분 판교 참사와 같이 아파트와 상가 등에서 설치한 환풍구에서 사고가 났다.

작년 11월에는 부산 해운대구에서 백화점 환기구에 올라간 고교생이 열려 있던 환기구 덮개 사이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2009년에는 경기도 화성에서 아파트 단지 환풍구 위에서 뛰어놀던 중학생이 환풍구 지붕이 깨지면서 7m 아래 지하 주차장으로 추락해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환풍구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았지만 아직 환풍구 안전기준을 규정한 관련법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이렇기에 지방자치단체는 이들 환풍구에 대한 안전관리는커녕 관련 통계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들은 판교 참사를 계기로 시내 환풍구를 일제조사하기로 했으나 만시지탄이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 전문가 "환풍구, 더 이상 인도의 일부가 되면 안돼" = 전문가들은 늦었지만 판교 참사를 계기로 환풍구에 대한 확실한 안전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건국대 건축학부 안형준 교수는 "환풍구는 구조물이 아니라 시설물이기 때문에 사람이 탈 것이라고는 예상을 못 하고 환기 기능에만 주목해 왔다"며 "이제는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환풍기를 사람이 올라타지 못하도록 조형적으로 구조를 바꾼다든지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이번 사고의 경우 덮개 판을 지지하는 앵글이 부서져 일어났는데 지지대가 부서졌다 할지라도 20m를 그냥 무방비로 내려가게 돼 있다"며 "일정 높이마다 안전망을 설치해 놨으면 이런 사고가 없지 않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양대 기계공학부 오재응 교수는 "환풍구 시설에 대한 안전규격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며 "환풍구에는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으니 일반도로 건물에 대한 규정에 따라서 안전규격을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안전 불감증에 걸린 시민 의식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우송대 소방방재학과 인세진 교수는 "환풍구는 원래 절대 올라가선 안 되는 곳이라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점에서 시민 의식에도 문제가 있다"며 "이제라도 안전 교육을 똑바로 하고 시민들이 의식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공학부 교수는 "기본적으로 환풍구의 기본적인 역할이 '환풍' 기능이기에 지하 주차장이나 음식점, 지하철 등에서 나오는 가장 더러운 공기가 환풍구로 나온다"라며 "이를 시민들이 아무렇지 않게 밟고 지나다니면서 그 공기를 들이마시도록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입간판 등을 환풍구 주변에 세워서 '공기 질이 나쁘니 절대 접근하지 마라'고 경고하는 것이 단기적인 사고 예방책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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