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뉴스] 국토 잠식하는 교란 식물…방제 ‘걸음마 수준’

입력 2014.10.23 (21:12) 수정 2014.10.23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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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눈을 뿌려놓은 것처럼 온통 하얀 꽃으로 덮여 있는 이곳은 서울 상암동에 있는 월드컵 공원입니다.

제 주변으로 광범위하게 피어 있는 꽃들.

보기엔 예쁘지만 알고 보면 환경부가 생태계 교란 식물로 지정한 '서양등골나물'입니다.

퇴치 대상이란 얘기죠.

이렇게 생태계 교란식물은 이미 우리 주변에 폭넓게 뿌리를 내리고, 우리나라 고유 식물들을 고사시키는 등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무서운 속도로 번지고 있는 생태계 교란 식물의 실태를 임명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은 남산.

이곳에도 '서양등골나물'이 우후죽순처럼 자라고 있습니다.

산 아래쪽은 물론 중턱과 꼭대기까지.. 이미 산 전체에 퍼져 있습니다.

특히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이 무기입니다.

<인터뷰> 전윤희(중부공원녹지사업소) : "씨앗이 어느 일순간에 동시에 발아돼서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 땅속에 깊이 묻힌 것은 나중에 발아가 돼서 계속 올라오는 겁니다."

철새 도래지로 생태 경관 보전 지역인 서울의 밤섬.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은 이곳은 또다른 생태 교란 식물인 '가시박' 천지입니다.

1년생 식물이지만 뛰어난 번식력을 앞세워 고유 식물들을 고사시키고 있습니다.

이미 고사한 가시박이지만 이 잎겨드랑이마다 씨앗이 있어 줄기당 최소 3만 개 이상의 씨앗이 퍼지게 됩니다.

주로 강변에서 볼 수 있던 가시박은 이제 농경지까지 침투해 농작물에도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인터뷰> 홍정태(농민) : "비만 오면 또 올라오고 뽑아도 한도 끝도 없어요. 그래서 결국은 포기하다 보면 넝쿨이 져가지고 이 작물을 위로 올라타가지고..."

천연 기념물인 충남 태안의 신두리 모래언덕.

보기드문 사막 지형을 자랑하는 이곳도 외래 식물 때문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모래 유실을 막아주던 기존 풀들을 '도깨비 가지'가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외래 식물들이 토종 생태계의 질서를 해치며 국토를 빠르게 잠식하고 있습니다.

<기자 멘트>

충북 영동군 금강변의 한 숲입니다.

이곳을 가득 뒤덮은 이 가시박의 생명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돈데요.

덩굴손은 어떤 식물이든 붙잡아 타고 오르기 시작해 10미터 안팎까지 자라나고 한 개체가 반경 5미터까지 잠식해 나갑니다.

건강한 나무조차 가시박 덩굴에 뒤덮이면 3년 안에 말라 죽게 됩니다.

번식력은 어떨까요.

열매 하나에 20~30개의 씨앗이 담겨있는데 1제곱미터에 천 개가 넘는 씨앗이 떨어져 7년 이상 땅속에서 썩지 않고 버티다 싹을 틔웁니다.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계 교란 식물은 모두 12종입니다.

이들의 전국적인 분포를 볼까요?

빈틈을 찾기 힘들 정도인데 전국 국립공원에서만 34만 제곱미터, 축구장 48개 면적이 생태계 교란식물로 뒤덮여 있습니다.

전국적인 면적은 추정조차 어렵습니다.

제거 작업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데 올해 서울시의 관련 예산만 15억 원이 넘습니다.

문제는 예산을 투입해도 확산을 막는데 별 효과가 없다는 겁니다.

이 식물들의 유입과 확산 경로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니 해법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관련 연구와 정부 대응도 여전히 걸음마 수준입니다.

<리포트>

가시박 제거 작업이 한창입니다.

현재 정부 대응은 이렇게 뽑거나 베어내는 게 거의 전부입니다.

그나마 효과를 보려면 인접 자치단체 간 유기적인 방제가 중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녹취> 00시 관계자 : "(중앙 정부에서) 가이드라인 같은 걸 마련해주면 좋은데,상호 동등한 입장의 자치단체니까 (자발적 협력은)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방제기술 개발은 어디까지 왔을까?

'가시박' 제거 기술을 실험 중인 하천변을 찾았습니다.

야자수 털로 촘촘히 엮은 매트를 깔아 '가시박' 떡잎의 성장을 막는 실험인데, 큰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방제 기술 개발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입니다.

<인터뷰> 홍선희(박사/고려대 연구 교수) : "모니터링(현황 파악) 이후에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컨트롤 할 것인가가 문젠데, 그것과 관련된 연구가 거의 진행이 안 되고 있어요."

더 큰 문제는 이런 연구조차 일부 분야에 국한돼 있다는 겁니다.

뒤늦게 정부는 앞으로 7년 동안 1800억 원을 들여 연구, 개발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 김종률(환경부 과장) : "예비 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에 있어서 이것이 통과되면 내년 하반기나 2016년부터 본격적인 기술 개발이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기술 개발부터 현장 적용까지 필요한 시간은 10년 안팎.

생태계 교란 식물은 하루 하루 무섭게 퍼지고 있지만 정부의 대응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최준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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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뉴스] 국토 잠식하는 교란 식물…방제 ‘걸음마 수준’
    • 입력 2014-10-23 21:13:37
    • 수정2014-10-23 2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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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뿌려놓은 것처럼 온통 하얀 꽃으로 덮여 있는 이곳은 서울 상암동에 있는 월드컵 공원입니다.

제 주변으로 광범위하게 피어 있는 꽃들.

보기엔 예쁘지만 알고 보면 환경부가 생태계 교란 식물로 지정한 '서양등골나물'입니다.

퇴치 대상이란 얘기죠.

이렇게 생태계 교란식물은 이미 우리 주변에 폭넓게 뿌리를 내리고, 우리나라 고유 식물들을 고사시키는 등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무서운 속도로 번지고 있는 생태계 교란 식물의 실태를 임명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은 남산.

이곳에도 '서양등골나물'이 우후죽순처럼 자라고 있습니다.

산 아래쪽은 물론 중턱과 꼭대기까지.. 이미 산 전체에 퍼져 있습니다.

특히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이 무기입니다.

<인터뷰> 전윤희(중부공원녹지사업소) : "씨앗이 어느 일순간에 동시에 발아돼서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 땅속에 깊이 묻힌 것은 나중에 발아가 돼서 계속 올라오는 겁니다."

철새 도래지로 생태 경관 보전 지역인 서울의 밤섬.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은 이곳은 또다른 생태 교란 식물인 '가시박' 천지입니다.

1년생 식물이지만 뛰어난 번식력을 앞세워 고유 식물들을 고사시키고 있습니다.

이미 고사한 가시박이지만 이 잎겨드랑이마다 씨앗이 있어 줄기당 최소 3만 개 이상의 씨앗이 퍼지게 됩니다.

주로 강변에서 볼 수 있던 가시박은 이제 농경지까지 침투해 농작물에도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인터뷰> 홍정태(농민) : "비만 오면 또 올라오고 뽑아도 한도 끝도 없어요. 그래서 결국은 포기하다 보면 넝쿨이 져가지고 이 작물을 위로 올라타가지고..."

천연 기념물인 충남 태안의 신두리 모래언덕.

보기드문 사막 지형을 자랑하는 이곳도 외래 식물 때문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모래 유실을 막아주던 기존 풀들을 '도깨비 가지'가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외래 식물들이 토종 생태계의 질서를 해치며 국토를 빠르게 잠식하고 있습니다.

<기자 멘트>

충북 영동군 금강변의 한 숲입니다.

이곳을 가득 뒤덮은 이 가시박의 생명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돈데요.

덩굴손은 어떤 식물이든 붙잡아 타고 오르기 시작해 10미터 안팎까지 자라나고 한 개체가 반경 5미터까지 잠식해 나갑니다.

건강한 나무조차 가시박 덩굴에 뒤덮이면 3년 안에 말라 죽게 됩니다.

번식력은 어떨까요.

열매 하나에 20~30개의 씨앗이 담겨있는데 1제곱미터에 천 개가 넘는 씨앗이 떨어져 7년 이상 땅속에서 썩지 않고 버티다 싹을 틔웁니다.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계 교란 식물은 모두 12종입니다.

이들의 전국적인 분포를 볼까요?

빈틈을 찾기 힘들 정도인데 전국 국립공원에서만 34만 제곱미터, 축구장 48개 면적이 생태계 교란식물로 뒤덮여 있습니다.

전국적인 면적은 추정조차 어렵습니다.

제거 작업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데 올해 서울시의 관련 예산만 15억 원이 넘습니다.

문제는 예산을 투입해도 확산을 막는데 별 효과가 없다는 겁니다.

이 식물들의 유입과 확산 경로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니 해법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관련 연구와 정부 대응도 여전히 걸음마 수준입니다.

<리포트>

가시박 제거 작업이 한창입니다.

현재 정부 대응은 이렇게 뽑거나 베어내는 게 거의 전부입니다.

그나마 효과를 보려면 인접 자치단체 간 유기적인 방제가 중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녹취> 00시 관계자 : "(중앙 정부에서) 가이드라인 같은 걸 마련해주면 좋은데,상호 동등한 입장의 자치단체니까 (자발적 협력은)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방제기술 개발은 어디까지 왔을까?

'가시박' 제거 기술을 실험 중인 하천변을 찾았습니다.

야자수 털로 촘촘히 엮은 매트를 깔아 '가시박' 떡잎의 성장을 막는 실험인데, 큰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방제 기술 개발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입니다.

<인터뷰> 홍선희(박사/고려대 연구 교수) : "모니터링(현황 파악) 이후에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컨트롤 할 것인가가 문젠데, 그것과 관련된 연구가 거의 진행이 안 되고 있어요."

더 큰 문제는 이런 연구조차 일부 분야에 국한돼 있다는 겁니다.

뒤늦게 정부는 앞으로 7년 동안 1800억 원을 들여 연구, 개발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 김종률(환경부 과장) : "예비 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에 있어서 이것이 통과되면 내년 하반기나 2016년부터 본격적인 기술 개발이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기술 개발부터 현장 적용까지 필요한 시간은 10년 안팎.

생태계 교란 식물은 하루 하루 무섭게 퍼지고 있지만 정부의 대응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최준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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