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양대 고속철 합병, 한국 때문에?

입력 2014.10.3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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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속철 양대 산맥인 중국북차집단공사(CNR, 약칭 베이처)와 중국남차집단공사(CSR,약칭 난처)가 합병하기로 했다.

중국 관영 신화 통신은 국유기업을 관리 감독하는 국유자산관리위원회가 고속철 제조업체인 '베이처,CNR'과 '난처,CSR'이 실질적인 합병 단계에 들어섰다고 보도했다.



CSR과 CNR은 지난 상반기 기준으로 자산 규모가 각각 1423억 위안(한화 24조 1천억 원), 1489억 위안(한화 25조 3천억 원)에 달하는 중국내 최대 고속철도 제조업체다. 전 세계 고속철 업계의 지각 변동을 가져올 ‘거대 공룡기업’의 탄생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두 회사의 합병소식에 중국증시에서 고속철 관련 주식은 연일 급등하고 있다.

사실 이번 통합작업은 중국 국무원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명분은 해외 고속철 수주 경쟁에서 중국 고속철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통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부터 리커창 국무원 총리는 이른바 ‘고속철 세일즈 외교’를 펼치며 중국 고속철의 해외 진출을 독려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리커창 총리의 아프리카 4개국 순방 기간 동안 중국철도건설공사는 807억 7천 만 위안(14조 원)에 달하는 나이지리아 해안 철도 사업권을 따내기도 했다.

CNR은 지난 24일, 34억 8천 만 위안(6천억 원) 규모의 美 보스톤 경전철을 수주했다. 올들어 중국 고속철 관련 기업이 해외에서 따낸 수주액은 1,300억 위안(22조 2,500억 원)에 달한다.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 중국 고속철이 거침없이 진출하고 있다.

CSR은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추진중인 초대형 고속철 사업 입찰경쟁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1,287㎞에 이르는 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 구간을 연결하는 이번 고속철 사업의 전체 사업비만도 680억 달러(약 71조 6천900억 원)에 달한다.



이런 잇단 수주는 분기실적에 그대로 반영됐다.
CNR이 지난 28일 발표한 3분기 실적에 따르면 3분기 순이익이 39억 5천만 위안(6,700억 원) 으로 전년 동기 대비 65.1 %나 급증했다. 중국 CSR은 아직 3분기 실적 발표를 하지 않았지만 올해 상반기 순이익이 20억 6천 만 위안(3,5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1.09%나 늘었다.

이런 좋은 실적에도 불구하고 중국 국무원은 CNR과 CSR의 합병을 요구했다. 이유는 서로 너무 싸운다는 것이다. 수주과정에서 서로 출혈 경쟁으로 제살깎아먹기식 입찰에 나선다는 것이다.

CNR과 CSR은 모두 중앙국유기업으로 200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철로기차 차량공업총공사'라는 한 개 회사였다. 그러나 이후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고 경쟁 구조를 도입한다는 방침에 따라 두 회사로 분리됐다. 그런데 두 회사가 실적을 놓고 경쟁을 벌이다보니 출혈 경쟁까지 벌이게 된 것이다. 국내 내수 시장에서의 경쟁은 별 문제가 되지 않다가 해외 진출을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서로 덩치도 비슷한데다 수출 품목도 겹쳐서 자주 옥신각신 다퉜다. 그러던 차에 지난 2011년 터키 기관차 입찰에서 처음으로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CNR은 CSR과 경쟁을 위해 응찰가를 고의로 낮추는 저가경쟁을 벌였다. 그런데 두 회사가 싸우는 사이 한국 업체가 수주해 버린 것이다.



또 이런 허망한 일도 있었다. 2013년엔 아르헨티나 고속철 구매 입찰과정에서 CNR은 원래 대당 230만 달러에 제시하려 했다. 그런데 CSR이 거의 절반 가까이 낮춘 대당 127만 달러를 부른 것이다. 이에 질세라 CNR이 또다시 1달러 낮춘 대당 126달러를 제시했다. 이를 안 아르헨티나 정부는 가격이 단번에 230만 달러에서 어떻게 126만 달러까지 낮아질 수 있냐며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고 입찰 제시 가격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다른 중국기업이 계약한 프로젝트까지 정지시키기도 했다.

급기야 CNR이 CSR을 고소하는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다시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일로 2011년에도 두 기업의 수출 품목이 중복됐다며 기업 통합이 추진됐지만 일부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9월 초, 국유자산관리위원회는 두 기업의 해외 진출 경쟁력을 높이고 저가 가격 경쟁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통합해야 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에 독일의 지멘스, 캐나다의 봄바르디어, 프랑스의 알스톰사 같이 한 나라가 한 회사를 대표로 해서 해외 고속철 수주 경쟁에 나서야 국가적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는 논리가 먹히면서 통합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중국 내수에만 집중하던 기업들이 리커창 총리의 고속철 세일즈 외교를 타고 세계를 무대로 진출하려다 뜻밖에도 인수 합병되는 난감한 상황을 맞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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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중국 고속철 양대 산맥인 중국북차집단공사(CNR, 약칭 베이처)와 중국남차집단공사(CSR,약칭 난처)가 합병하기로 했다. 중국 관영 신화 통신은 국유기업을 관리 감독하는 국유자산관리위원회가 고속철 제조업체인 '베이처,CNR'과 '난처,CSR'이 실질적인 합병 단계에 들어섰다고 보도했다. CSR과 CNR은 지난 상반기 기준으로 자산 규모가 각각 1423억 위안(한화 24조 1천억 원), 1489억 위안(한화 25조 3천억 원)에 달하는 중국내 최대 고속철도 제조업체다. 전 세계 고속철 업계의 지각 변동을 가져올 ‘거대 공룡기업’의 탄생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두 회사의 합병소식에 중국증시에서 고속철 관련 주식은 연일 급등하고 있다. 사실 이번 통합작업은 중국 국무원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명분은 해외 고속철 수주 경쟁에서 중국 고속철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통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부터 리커창 국무원 총리는 이른바 ‘고속철 세일즈 외교’를 펼치며 중국 고속철의 해외 진출을 독려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리커창 총리의 아프리카 4개국 순방 기간 동안 중국철도건설공사는 807억 7천 만 위안(14조 원)에 달하는 나이지리아 해안 철도 사업권을 따내기도 했다. CNR은 지난 24일, 34억 8천 만 위안(6천억 원) 규모의 美 보스톤 경전철을 수주했다. 올들어 중국 고속철 관련 기업이 해외에서 따낸 수주액은 1,300억 위안(22조 2,500억 원)에 달한다.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 중국 고속철이 거침없이 진출하고 있다. CSR은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추진중인 초대형 고속철 사업 입찰경쟁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1,287㎞에 이르는 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 구간을 연결하는 이번 고속철 사업의 전체 사업비만도 680억 달러(약 71조 6천900억 원)에 달한다. 이런 잇단 수주는 분기실적에 그대로 반영됐다. CNR이 지난 28일 발표한 3분기 실적에 따르면 3분기 순이익이 39억 5천만 위안(6,700억 원) 으로 전년 동기 대비 65.1 %나 급증했다. 중국 CSR은 아직 3분기 실적 발표를 하지 않았지만 올해 상반기 순이익이 20억 6천 만 위안(3,5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1.09%나 늘었다. 이런 좋은 실적에도 불구하고 중국 국무원은 CNR과 CSR의 합병을 요구했다. 이유는 서로 너무 싸운다는 것이다. 수주과정에서 서로 출혈 경쟁으로 제살깎아먹기식 입찰에 나선다는 것이다. CNR과 CSR은 모두 중앙국유기업으로 200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철로기차 차량공업총공사'라는 한 개 회사였다. 그러나 이후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고 경쟁 구조를 도입한다는 방침에 따라 두 회사로 분리됐다. 그런데 두 회사가 실적을 놓고 경쟁을 벌이다보니 출혈 경쟁까지 벌이게 된 것이다. 국내 내수 시장에서의 경쟁은 별 문제가 되지 않다가 해외 진출을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서로 덩치도 비슷한데다 수출 품목도 겹쳐서 자주 옥신각신 다퉜다. 그러던 차에 지난 2011년 터키 기관차 입찰에서 처음으로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CNR은 CSR과 경쟁을 위해 응찰가를 고의로 낮추는 저가경쟁을 벌였다. 그런데 두 회사가 싸우는 사이 한국 업체가 수주해 버린 것이다. 또 이런 허망한 일도 있었다. 2013년엔 아르헨티나 고속철 구매 입찰과정에서 CNR은 원래 대당 230만 달러에 제시하려 했다. 그런데 CSR이 거의 절반 가까이 낮춘 대당 127만 달러를 부른 것이다. 이에 질세라 CNR이 또다시 1달러 낮춘 대당 126달러를 제시했다. 이를 안 아르헨티나 정부는 가격이 단번에 230만 달러에서 어떻게 126만 달러까지 낮아질 수 있냐며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고 입찰 제시 가격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다른 중국기업이 계약한 프로젝트까지 정지시키기도 했다. 급기야 CNR이 CSR을 고소하는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다시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일로 2011년에도 두 기업의 수출 품목이 중복됐다며 기업 통합이 추진됐지만 일부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9월 초, 국유자산관리위원회는 두 기업의 해외 진출 경쟁력을 높이고 저가 가격 경쟁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통합해야 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에 독일의 지멘스, 캐나다의 봄바르디어, 프랑스의 알스톰사 같이 한 나라가 한 회사를 대표로 해서 해외 고속철 수주 경쟁에 나서야 국가적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는 논리가 먹히면서 통합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중국 내수에만 집중하던 기업들이 리커창 총리의 고속철 세일즈 외교를 타고 세계를 무대로 진출하려다 뜻밖에도 인수 합병되는 난감한 상황을 맞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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