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축구하려면 군대에 가야 한다고?

입력 2014.11.06 (06:02) 수정 2014.11.0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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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예능 최대 히트작 가운데 하나는 MBC의 <진짜 사나이-여군 특집편>이다.

탤런트 홍은희와 걸그룹 걸스데이의 이혜리가 군복을 입고, 그 어렵다는 유격과 화생방을 악전고투 끝에 해내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선물했다.

남자도 어려운 군사훈련을 여자가 해냈다는 과정에서 나온 카타르시스였다. 그만큼 군대는 남녀를 불문하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곳이다.

그런데, 여자 축구 선수들 가운데 일부는 그 어렵다는 군대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바로 국내 유일의 여자 국군체육부대팀인 '부산 상무' 선수들이다. 상무팀에 선발된 선수들은 모두 부사관으로 임용된 군인들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이들은 군대에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반 강제적'으로 들어갔다는 점이다.



부산 상무는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서 선수를 선발한다. 그런데 해마다 11월에 열리는 신인 드래프트는 선수 개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지명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즉 대학을 갓 졸업한 한 선수가 특정 팀에 지목되면 좋든 싫든 입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어느 팀에 입단하든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지만, 상무의 경우는 다르다. 왜냐하면 상무의 선택을 받게 되면 군대를 가야 하는, '입영 영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상무에 입단하는 선수는 적어도 6개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다. 축구 대신 그 선수가 가야 할 곳은 훈련소다. 3개월 넘는 부사관 기초 군사 교육을 받아야 한다. 사격은 물론이고 화생방과 유격, 각개전투까지 모든 훈련을 남자와 똑같은 수준으로 소화해야 한다. 엄격하고 통제된 내무 생활도 복무 기간 3년 내내 견뎌내야 한다.

이 과정이 '자의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 상무의 지명을 받은 선수는 비자발적으로 군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신인 드래프트 현장에서 상무의 지명을 받은 선수는 군대 가야 한다는 막막함에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스포츠의 드래프트 제도 자체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지만, 상무의 경우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 국방의 의무가 없는 여성들을 상대로 일방적인 입대를 강요하는 지금의 선발 방식은 심각한 인권 침해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평론가인 정윤수 씨는 "여자 선수들에 있어서 군 복무가 준 강제화되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와 인권에 있어서 방해, 나아가서는 침해까지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속한 개선이 요구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저변이 취약한 여자 축구에서 상무팀의 존재 자체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여자축구 WK리그는 총 7개 팀으로 구성돼 있는데, 상무도 당당히 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여자 축구에 몸담고 있는 선수들로서는 상무라는 '일자리'가 있는 것 자체가 고마움의 대상이다.



뿐만 아니라, 상무 팀에 입대한 선수들이 잘만 적응하면 실업팀 못지 않은 대우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부산 상무의 이미연 감독은 "처음 드래프트 지명을 받으면 선수와 부모님 모두 크게 당황하지만, 나중에 부사관에 임용되고 군 생활에 훌륭히 적응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더 만족감을 크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면서 "또 축구를 그만 두더라도 직업 군인이 돼 연금 혜택 등 자신의 미래와 진로를 더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많은 선수들은 상무행을 선호하고 있는 추세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4일 열린 신인 드래프트 현장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상무의 1순위 지명을 받은 최유리 선수는 군인이 되야 한다는 사실에 큰 부담과 실망감을 느꼈지만, 전한솔 선수의 경우는 정반대였다. 전한솔은 "어렸을 적부터 여군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상무에 들어갈 수 있게 돼 영광이고 열심히 복무해서 훌륭한 축구선수인 동시에 군인이 되고 싶다"고 당당히 소감을 밝혔다.

이런 엇갈린 반응이 바로 '여자축구 상무팀'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딜레마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찌보면 헌법소원감인 이 비상식적인 선발이 여자 축구 전체의 시스템을 놓고 봤을 때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딜레마를 해결할 방법은 전혀 없을까. 축구계에서는 상무팀의 선발 방식의 부분적인 개선을 해결 방안으로 보고 있다. 직업 군인이 되는 것을 원하는 선수층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선발하면 된다는 것이다.

즉 반드시 신인 드래프트를 통한 강제적 선발이 아닌, 자원 입대를 희망하는 선수들로 대상을 한정시켜 놓고 뽑는 방안이다.이 방법은 실제로 2007년 부산 상무팀이 처음 창단됐을 때 적용한 방식이기도 하다.

물론 이 방법을 상무가 시도하다 중단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군인이 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력 외에도 인성과 같은 다양한 차원의 요소가 충족되어야 한다. 상무도 더 좋은 선수, 더 군생활에 잘 적응하는 선수를 뽑기 위해 신인 드래프트 선발을 고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선발 방식은 명백한 문제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제도적인 결함은 반드시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설사 상무 입대를 꺼리는 선수가 1%에 불과하더라도, 우리는 이 1%의 인권을 무시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바로가기 [뉴스9]‘축구하려면 군대가?’ 여자 상무팀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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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축구하려면 군대에 가야 한다고?
    • 입력 2014-11-06 06:02:27
    • 수정2014-11-06 14:58:28
    취재후·사건후
올 한해 예능 최대 히트작 가운데 하나는 MBC의 <진짜 사나이-여군 특집편>이다.

탤런트 홍은희와 걸그룹 걸스데이의 이혜리가 군복을 입고, 그 어렵다는 유격과 화생방을 악전고투 끝에 해내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선물했다.

남자도 어려운 군사훈련을 여자가 해냈다는 과정에서 나온 카타르시스였다. 그만큼 군대는 남녀를 불문하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곳이다.

그런데, 여자 축구 선수들 가운데 일부는 그 어렵다는 군대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바로 국내 유일의 여자 국군체육부대팀인 '부산 상무' 선수들이다. 상무팀에 선발된 선수들은 모두 부사관으로 임용된 군인들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이들은 군대에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반 강제적'으로 들어갔다는 점이다.



부산 상무는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서 선수를 선발한다. 그런데 해마다 11월에 열리는 신인 드래프트는 선수 개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지명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즉 대학을 갓 졸업한 한 선수가 특정 팀에 지목되면 좋든 싫든 입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어느 팀에 입단하든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지만, 상무의 경우는 다르다. 왜냐하면 상무의 선택을 받게 되면 군대를 가야 하는, '입영 영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상무에 입단하는 선수는 적어도 6개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다. 축구 대신 그 선수가 가야 할 곳은 훈련소다. 3개월 넘는 부사관 기초 군사 교육을 받아야 한다. 사격은 물론이고 화생방과 유격, 각개전투까지 모든 훈련을 남자와 똑같은 수준으로 소화해야 한다. 엄격하고 통제된 내무 생활도 복무 기간 3년 내내 견뎌내야 한다.

이 과정이 '자의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 상무의 지명을 받은 선수는 비자발적으로 군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신인 드래프트 현장에서 상무의 지명을 받은 선수는 군대 가야 한다는 막막함에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스포츠의 드래프트 제도 자체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지만, 상무의 경우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 국방의 의무가 없는 여성들을 상대로 일방적인 입대를 강요하는 지금의 선발 방식은 심각한 인권 침해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평론가인 정윤수 씨는 "여자 선수들에 있어서 군 복무가 준 강제화되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와 인권에 있어서 방해, 나아가서는 침해까지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속한 개선이 요구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저변이 취약한 여자 축구에서 상무팀의 존재 자체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여자축구 WK리그는 총 7개 팀으로 구성돼 있는데, 상무도 당당히 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여자 축구에 몸담고 있는 선수들로서는 상무라는 '일자리'가 있는 것 자체가 고마움의 대상이다.



뿐만 아니라, 상무 팀에 입대한 선수들이 잘만 적응하면 실업팀 못지 않은 대우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부산 상무의 이미연 감독은 "처음 드래프트 지명을 받으면 선수와 부모님 모두 크게 당황하지만, 나중에 부사관에 임용되고 군 생활에 훌륭히 적응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더 만족감을 크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면서 "또 축구를 그만 두더라도 직업 군인이 돼 연금 혜택 등 자신의 미래와 진로를 더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많은 선수들은 상무행을 선호하고 있는 추세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4일 열린 신인 드래프트 현장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상무의 1순위 지명을 받은 최유리 선수는 군인이 되야 한다는 사실에 큰 부담과 실망감을 느꼈지만, 전한솔 선수의 경우는 정반대였다. 전한솔은 "어렸을 적부터 여군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상무에 들어갈 수 있게 돼 영광이고 열심히 복무해서 훌륭한 축구선수인 동시에 군인이 되고 싶다"고 당당히 소감을 밝혔다.

이런 엇갈린 반응이 바로 '여자축구 상무팀'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딜레마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찌보면 헌법소원감인 이 비상식적인 선발이 여자 축구 전체의 시스템을 놓고 봤을 때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딜레마를 해결할 방법은 전혀 없을까. 축구계에서는 상무팀의 선발 방식의 부분적인 개선을 해결 방안으로 보고 있다. 직업 군인이 되는 것을 원하는 선수층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선발하면 된다는 것이다.

즉 반드시 신인 드래프트를 통한 강제적 선발이 아닌, 자원 입대를 희망하는 선수들로 대상을 한정시켜 놓고 뽑는 방안이다.이 방법은 실제로 2007년 부산 상무팀이 처음 창단됐을 때 적용한 방식이기도 하다.

물론 이 방법을 상무가 시도하다 중단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군인이 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력 외에도 인성과 같은 다양한 차원의 요소가 충족되어야 한다. 상무도 더 좋은 선수, 더 군생활에 잘 적응하는 선수를 뽑기 위해 신인 드래프트 선발을 고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선발 방식은 명백한 문제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제도적인 결함은 반드시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설사 상무 입대를 꺼리는 선수가 1%에 불과하더라도, 우리는 이 1%의 인권을 무시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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