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상가상으로 한국 덮친 엔저…뾰족한 대책이 없다

입력 2014.11.06 (06:0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 경제를 공포로 몰아넣은 '엔저(円低·엔화가치 약세)' 공습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 엔저 때와는 모든 게 달라졌다. 공습은 한층 빠르고 주도면밀해졌다. 세계 경제의 상황은 급변했다.

공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식시장에선 적신호가 켜졌다.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엔저 현상에 한국은 방어책이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불황기에 엔저까지 가속…"미·일 합작품" 주장도

엔저는 1995년 '역(逆) 플라자 합의(일본의 '버블 붕괴'에 따른 의도적 엔저 유도)' 이후, 세계 경제가 호황을 누린 2000년대 중반 등에 두드러졌다.

경제 성장을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은 이때마다 수출 경쟁력에서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그만큼 엔저 현상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최근의 엔저가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다른 환경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엔저의 속도와 일관성이다. 원·엔 재정환율로 지난달 16일 100엔당 1,000원이 깨지고 나서 15거래일 연속 하락, 전날 100엔당 947.44원까지 내렸다.

하락폭은 53.07원(약 5.3%)이다. 15일 연속 떨어진 경우는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거침없는 원·엔 환율 하락을 두고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의 주도면밀한 '작품'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김상훈 하나대투증권 이코노미스트는 6일 "일본의 내각과 중앙은행이 같이 나선 것은 처음"이라며 정부정책과 통화정책이 결합한 엔저 드라이브라고 표현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2012년 아베 정권의 출범 즈음부터 2년 넘게 엔화가치가 추세적으로 하락했다"며 "역 플라자 합의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엔저 광풍'이 불던 2006~2007년 원·엔 환율은 요즘보다 훨씬 낮은 100엔당 700~800원대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는 세계 경기가 빠르게 회복하는 호황기였다. 한국은 세계 경제의 거침없는 성장과 교역량 증가에 힘입어 수출 타격을 최소화했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당시 주요국 금리가 오르면서 엔저가 몰아쳤지만, 국내 기업들도 호황기라 견딜 만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다르다. 2006년 5.0%, 2007년 4.9% 성장한 세계 경제는 2013년 2.9%로 주저앉았다. 2006~2008년 15% 안팎 증가한 세계 교역량은 2012년 0.5%, 지난해 4.3%로 증가율이 부쩍 둔화했다.

최근 엔저의 배경에 국제 정세의 변화가 깔렸다는 견해도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정치·경제적 동반자로 삼으면서 엔저를 용인한다는 것이다.

김상훈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엔저를 용인하는 가운데 대중(對中) 의존도가 커진 한국은 중국의 상황 안 좋아지자 더 어려움을 겪게 됐다"고 주장했다.

◇"엔저, 한동안 더 심해져…한국 손쓸 방도 없다"

한국을 덮친 엔저 공습에 주식시장은 공포감을 보이고 있다. 수출 기업, 특히 일본과의 경합도가 높은 주요 기업의 주가가 대표적이다.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지난달 31일(4.83%↑), 이달 4일(2.73%↑), 5일(0.44%↑) 연속 상승 랠리를 타는 동안 한국 코스피지수는 이달 들어 3일(0.58%↓), 4일(0.91%↓), 5일 (0.19%↓) 내리 하향 곡선을 그렸다.

이 기간 도요타의 주가는 3.80%, 4.65%, 0.12%씩 오른 반면 현대자동차 주가는 신저가를 연거푸 갈아치우면서 지난달 29일을 제외하면 6거래일 연속 내렸고, 전날에는 장중 15만원까지 붕괴하면서 충격파를 던졌다.

더 큰 우려는 엔저가 언제까지, 어느 정도까지 전개될지는 모르지만 상당한 기간 지속하면서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2000년대 중반의 엔저가 2008년 금융위기로 자연스럽게 종식됐으나, 최근의 엔저는 당분간 더 탄력이 붙을 수 있다.

양적완화를 종료한 미국은 내년 하반기쯤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미국 금리 인상은 달러화 강세로 이어져 엔화 약세를 부추긴다.

오정근 건국대학교 특임교수는 엔저가 적어도 2018년까지 지속하면서 원·엔 환율이 100엔당 800원대 초·중반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오 교수는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 중앙은행 총재가 목표로 삼은 물가상승률 2%는 IMF 자료에 따르면 2018년에나 달성될 것"이라며 이때까지 엔저가 2~3년 더 유지될 것으로 봤다.

그는 "미국은 내년과 2016년, 2017년 단계적으로 금리를 정상화하면서 '슈퍼 달러(달러화 강세)'도 2~3년 지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엔저가 한국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주지만, 정작 한국이 이에 대응할 수단은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더 내려 '맞불 작전'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한·미·일 경제의 규모를 고려할 때 분명히 한계가 있는데다, 국내적으로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상황에서 섣불리 쓸 수 있는 카드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부형 연구위원은 "구조조정을 마친 일본 기업들이 지금껏 쌓아 둔 자금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면 아직 구조조정을 마치지 않은 한국 기업들의 경쟁 환경이 과거와는 전혀 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설상가상으로 한국 덮친 엔저…뾰족한 대책이 없다
    • 입력 2014-11-06 06:07:12
    연합뉴스
한국 경제를 공포로 몰아넣은 '엔저(円低·엔화가치 약세)' 공습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 엔저 때와는 모든 게 달라졌다. 공습은 한층 빠르고 주도면밀해졌다. 세계 경제의 상황은 급변했다. 공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식시장에선 적신호가 켜졌다.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엔저 현상에 한국은 방어책이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불황기에 엔저까지 가속…"미·일 합작품" 주장도 엔저는 1995년 '역(逆) 플라자 합의(일본의 '버블 붕괴'에 따른 의도적 엔저 유도)' 이후, 세계 경제가 호황을 누린 2000년대 중반 등에 두드러졌다. 경제 성장을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은 이때마다 수출 경쟁력에서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그만큼 엔저 현상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최근의 엔저가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다른 환경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엔저의 속도와 일관성이다. 원·엔 재정환율로 지난달 16일 100엔당 1,000원이 깨지고 나서 15거래일 연속 하락, 전날 100엔당 947.44원까지 내렸다. 하락폭은 53.07원(약 5.3%)이다. 15일 연속 떨어진 경우는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거침없는 원·엔 환율 하락을 두고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의 주도면밀한 '작품'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김상훈 하나대투증권 이코노미스트는 6일 "일본의 내각과 중앙은행이 같이 나선 것은 처음"이라며 정부정책과 통화정책이 결합한 엔저 드라이브라고 표현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2012년 아베 정권의 출범 즈음부터 2년 넘게 엔화가치가 추세적으로 하락했다"며 "역 플라자 합의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엔저 광풍'이 불던 2006~2007년 원·엔 환율은 요즘보다 훨씬 낮은 100엔당 700~800원대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는 세계 경기가 빠르게 회복하는 호황기였다. 한국은 세계 경제의 거침없는 성장과 교역량 증가에 힘입어 수출 타격을 최소화했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당시 주요국 금리가 오르면서 엔저가 몰아쳤지만, 국내 기업들도 호황기라 견딜 만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다르다. 2006년 5.0%, 2007년 4.9% 성장한 세계 경제는 2013년 2.9%로 주저앉았다. 2006~2008년 15% 안팎 증가한 세계 교역량은 2012년 0.5%, 지난해 4.3%로 증가율이 부쩍 둔화했다. 최근 엔저의 배경에 국제 정세의 변화가 깔렸다는 견해도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정치·경제적 동반자로 삼으면서 엔저를 용인한다는 것이다. 김상훈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엔저를 용인하는 가운데 대중(對中) 의존도가 커진 한국은 중국의 상황 안 좋아지자 더 어려움을 겪게 됐다"고 주장했다. ◇"엔저, 한동안 더 심해져…한국 손쓸 방도 없다" 한국을 덮친 엔저 공습에 주식시장은 공포감을 보이고 있다. 수출 기업, 특히 일본과의 경합도가 높은 주요 기업의 주가가 대표적이다.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지난달 31일(4.83%↑), 이달 4일(2.73%↑), 5일(0.44%↑) 연속 상승 랠리를 타는 동안 한국 코스피지수는 이달 들어 3일(0.58%↓), 4일(0.91%↓), 5일 (0.19%↓) 내리 하향 곡선을 그렸다. 이 기간 도요타의 주가는 3.80%, 4.65%, 0.12%씩 오른 반면 현대자동차 주가는 신저가를 연거푸 갈아치우면서 지난달 29일을 제외하면 6거래일 연속 내렸고, 전날에는 장중 15만원까지 붕괴하면서 충격파를 던졌다. 더 큰 우려는 엔저가 언제까지, 어느 정도까지 전개될지는 모르지만 상당한 기간 지속하면서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2000년대 중반의 엔저가 2008년 금융위기로 자연스럽게 종식됐으나, 최근의 엔저는 당분간 더 탄력이 붙을 수 있다. 양적완화를 종료한 미국은 내년 하반기쯤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미국 금리 인상은 달러화 강세로 이어져 엔화 약세를 부추긴다. 오정근 건국대학교 특임교수는 엔저가 적어도 2018년까지 지속하면서 원·엔 환율이 100엔당 800원대 초·중반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오 교수는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 중앙은행 총재가 목표로 삼은 물가상승률 2%는 IMF 자료에 따르면 2018년에나 달성될 것"이라며 이때까지 엔저가 2~3년 더 유지될 것으로 봤다. 그는 "미국은 내년과 2016년, 2017년 단계적으로 금리를 정상화하면서 '슈퍼 달러(달러화 강세)'도 2~3년 지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엔저가 한국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주지만, 정작 한국이 이에 대응할 수단은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더 내려 '맞불 작전'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한·미·일 경제의 규모를 고려할 때 분명히 한계가 있는데다, 국내적으로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상황에서 섣불리 쓸 수 있는 카드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부형 연구위원은 "구조조정을 마친 일본 기업들이 지금껏 쌓아 둔 자금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면 아직 구조조정을 마치지 않은 한국 기업들의 경쟁 환경이 과거와는 전혀 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