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미소 지은 아베에 고개 돌린 시진핑…굳은 표정 의미는?

입력 2014.11.1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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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6개월 만에 중국과 일본 정상이 만났습니다. 만나기는 만났는데 '정상적인' 정상회담은 아니었습니다. 아베 일본 총리는 미소를 지으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악수를 청했습니다. 화면 상으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몇 마디 인사도 건넸습니다. 시 주석은 아베 총리 면전에서 시종일관 굳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통역원의 말도 듣지 않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두 정상은 회담 테이블도 없이 그냥 쇼파에 앉아 20여 분간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 흔한 양국 국기도 꽂혀있지 않았습니다. 배석자도 최소한의 인원으로 제한됐습니다. 시 주석은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얼굴 표정 하나로 아베 총리에게 그간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습니다.



● 아베 "일-중 정상회담을 사수하라"

이번 회담은 외교적 수세에 몰린 아베 총리가 나서 적극 추진했습니다. 중국 측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자신의 최측근 외교 책사인 야치 쇼타로 국가안보국장을 베이징으로 급파했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중일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야치 쇼타로 국장은 지난 7일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만나 양국 관계 개선 4대 원칙에 전격 합의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양국은 양국 관계에 영향을 주는 정치적 장애를 극복해 나간다는 선에서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댜오위다오, 일본명 센카쿠 열도 해역에서 위기관리 시스템을 가동해 불의의 사태도 막기로 했습니다. 바로 다음 날인 지난 8일 양국은 APEC 회의 기간에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했습니다.

● 시진핑 "중일 관계 악화 원인은 명확"

베이징의 한국 특파원들 입장에선 중일 정상회담이 10일에 열릴지 11일에 열릴 지가 관심이었습니다. 아마 중국이나 일본 기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10일 아침 사무실에 출근해서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동향을 파악해 보니 베이징의 일본 특파원들도 중일 정상회담 시간과 장소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직 통보받지 못했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중국 시간으로 오전 11시 10분이 지나자 평소 알던 일본 기자로부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이 기자는 고맙게도 12시 정각에 인민대회당에서 중일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귀띔을 해줬습니다. 정상회담 일정을 상대국에게 촉박하게 통보해 준 것도 알고 보니 일본측의 애를 태우는 중국의 외교 전술이었습니다. 지난 10일 막상 중일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분위기는 싸늘했습니다. 시 주석은 아베 총리에게 역사 문제를 집중 거론했습니다. 양국 관계 갈등의 원인이 일본 측에 있다는 입장도 명확히 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회담이 끝난 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양국의 전략적 호혜 관계의 원점에서 관계를 개선하는 첫걸음을 내딛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중국은 이번 회담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반면, 일본은 성과를 부각시키려고 애를 쓰는 모습입니다.

● 아베 총리의 뒷통수

이번 중일 정상회담에 대한 중국의 평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지난 10일 오후 중국 CCTV의 중일 정상회담 관련 보도입니다. 기자는 중일 정상회담 관련 뉴스를 모니터하다가 눈을 의심하게 됐습니다. 중일 정상회담 관련 영상이 불과 3초 남짓 나오다가 앵커로 화면이 바뀐 것입니다. 그것도 아베의 뒤통수만 보이는 영상이었습니다. 방송 사고가 아닌 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 뒤 뉴스에서도 아베 총리의 뒤통수만 보이는 똑같은 영상이 나왔습니다. 중국의 14억 시청자들은 저녁 7시 CCTV 메인 뉴스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베 총리의 뒤통수만 볼 수 있었습니다. 중국 당국의 보도 지침에 따른 것인 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의도적인 편집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베 총리 입장에선 그토록 원하던 정상회담을 성사시켰지만, 정작 중국 당국과 언론들로부터는 푸대접과 냉대를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일본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는 그 이전과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일본이 북한 또는 미국과 더 가까워지는 걸 경계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중일 정상회담을 받아들였을 수도 있습니다. 동북아 외교의 치열한 셈법을 우리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 바로가기 <뉴스9> 중-일, 2년 반 만에 정상회담…냉랭한 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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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미소 지은 아베에 고개 돌린 시진핑…굳은 표정 의미는?
    • 입력 2014-11-12 09:16:01
    취재후·사건후
2년 6개월 만에 중국과 일본 정상이 만났습니다. 만나기는 만났는데 '정상적인' 정상회담은 아니었습니다. 아베 일본 총리는 미소를 지으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악수를 청했습니다. 화면 상으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몇 마디 인사도 건넸습니다. 시 주석은 아베 총리 면전에서 시종일관 굳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통역원의 말도 듣지 않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두 정상은 회담 테이블도 없이 그냥 쇼파에 앉아 20여 분간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 흔한 양국 국기도 꽂혀있지 않았습니다. 배석자도 최소한의 인원으로 제한됐습니다. 시 주석은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얼굴 표정 하나로 아베 총리에게 그간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습니다. ● 아베 "일-중 정상회담을 사수하라" 이번 회담은 외교적 수세에 몰린 아베 총리가 나서 적극 추진했습니다. 중국 측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자신의 최측근 외교 책사인 야치 쇼타로 국가안보국장을 베이징으로 급파했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중일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야치 쇼타로 국장은 지난 7일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만나 양국 관계 개선 4대 원칙에 전격 합의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양국은 양국 관계에 영향을 주는 정치적 장애를 극복해 나간다는 선에서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댜오위다오, 일본명 센카쿠 열도 해역에서 위기관리 시스템을 가동해 불의의 사태도 막기로 했습니다. 바로 다음 날인 지난 8일 양국은 APEC 회의 기간에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했습니다. ● 시진핑 "중일 관계 악화 원인은 명확" 베이징의 한국 특파원들 입장에선 중일 정상회담이 10일에 열릴지 11일에 열릴 지가 관심이었습니다. 아마 중국이나 일본 기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10일 아침 사무실에 출근해서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동향을 파악해 보니 베이징의 일본 특파원들도 중일 정상회담 시간과 장소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직 통보받지 못했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중국 시간으로 오전 11시 10분이 지나자 평소 알던 일본 기자로부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이 기자는 고맙게도 12시 정각에 인민대회당에서 중일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귀띔을 해줬습니다. 정상회담 일정을 상대국에게 촉박하게 통보해 준 것도 알고 보니 일본측의 애를 태우는 중국의 외교 전술이었습니다. 지난 10일 막상 중일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분위기는 싸늘했습니다. 시 주석은 아베 총리에게 역사 문제를 집중 거론했습니다. 양국 관계 갈등의 원인이 일본 측에 있다는 입장도 명확히 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회담이 끝난 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양국의 전략적 호혜 관계의 원점에서 관계를 개선하는 첫걸음을 내딛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중국은 이번 회담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반면, 일본은 성과를 부각시키려고 애를 쓰는 모습입니다. ● 아베 총리의 뒷통수 이번 중일 정상회담에 대한 중국의 평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지난 10일 오후 중국 CCTV의 중일 정상회담 관련 보도입니다. 기자는 중일 정상회담 관련 뉴스를 모니터하다가 눈을 의심하게 됐습니다. 중일 정상회담 관련 영상이 불과 3초 남짓 나오다가 앵커로 화면이 바뀐 것입니다. 그것도 아베의 뒤통수만 보이는 영상이었습니다. 방송 사고가 아닌 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 뒤 뉴스에서도 아베 총리의 뒤통수만 보이는 똑같은 영상이 나왔습니다. 중국의 14억 시청자들은 저녁 7시 CCTV 메인 뉴스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베 총리의 뒤통수만 볼 수 있었습니다. 중국 당국의 보도 지침에 따른 것인 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의도적인 편집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베 총리 입장에선 그토록 원하던 정상회담을 성사시켰지만, 정작 중국 당국과 언론들로부터는 푸대접과 냉대를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일본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는 그 이전과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일본이 북한 또는 미국과 더 가까워지는 걸 경계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중일 정상회담을 받아들였을 수도 있습니다. 동북아 외교의 치열한 셈법을 우리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 바로가기 <뉴스9> 중-일, 2년 반 만에 정상회담…냉랭한 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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