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회고록 이렇게 달랐다

입력 2014.11.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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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내년 초 나온다. 전직 대통령이 생전에 회고록을 내는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앞서 윤보선,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낸 바 있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강남에 사무실을 연 지난해 5월부터 회고록 집필을 시작해, 현재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업 속도에 따라 이르면 내년 1월에 회고록이 발간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담길 내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측근들에 따르면 자서전에는 자신의 재임 기간 동안 있었던 주요 치적을 소개하고 후일담을 소개하는 구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재임 기간 주력했던 금융위기 극복, G20(주요20개국) 회담 개최, 한·미 FTA, UAE 원전 수주등이 주요 내용이다.



특히 관심이 쏠리는 건 최근 야당이 주장하는 이른바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산비리)국정조사’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이 어떤 입장을 피력할지 여부다.

그는 혈세 낭비 논란이 있는 4대강 사업과 자원 외교를 당시 추진할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강조하며 야당의 주장을 반박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 파장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처럼 역대 대통령의 회고록은 발간 당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작지 않은 파장을 낳기도 한다.

◆ 대선자금 ‘비밀’ 밝힌 노태우

전직 대통령 회고록으로 관심을 끌었던 것으로는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꼽힌다.

2011년 8월에 나온 노태우 회고록은 정치자금 문제를 다뤄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회고록에서 그는 19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민자당 후보측에 3000억원대의 대선자금을 제공했다고 밝혀 파문이 일었다.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김영삼 후보의 요청으로 두 차례에 걸쳐 3000억원의 대선자금을 제공했다.

즉 김영삼 후보는 그해 5월 대선 후보로 결정되자 노 대통령에게 “대선에서 적어도 4000억~5000억원은 들지 않겠느냐. 대통령께서 알아서 해주십시오”라고 지원 요청을 했다는 게, 노 전 대통령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당시 실력자이던 금진호 상공부 장관과 이원조 의원을 통해 각각 1000억원씩의 기금을 기업인에게 거둬 제공했고, 선거 막판 김 후보의 SOS(긴급요청)를 받아들여 1000억원을 추가지원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1993년 2월 25일 청와대에서 인사를 나누고,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식장으로 떠나기 전에 청와대 금고 안에 100억원 이상의 돈을 넣어뒀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이처럼 ‘은밀한’ 돈 거래를 밝힌 이유는 뭘까. YS 집권 당시 불거져 세상을 뒤흔들었던 자신의 비자금 사건을 해명하기 위해서였다.

노 전 대통령은 대검의 비자금 수사에서 드러난 2075억원의 보유 배경에 대해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 후 청와대로 자신을 찾아오지 않아 (정치자금인 이 돈을) 전달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거둔 정치 자금이 대선을 치르면서 모두 사용될 것으로 봤는데 내가 민자당을 탈당하면서 자금지원의 공식창구가 없어졌다”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은 “선거 후 이현우 안기부장의 보고를 받고 예상 외로 많은 돈이 남아 있어 깜짝 놀랐다”며 “남은 돈을 꼭 후임 대통령에게 인계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비록 퇴임하더라도 국가를 위해 유용하게 쓰면 되는게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 전임자들에 독설 퍼부은 YS

YS는 회고록을 비교적 일찍냈다. 퇴임후 2년이 채 안된 2000년 1월 '김영삼 회고록’이란 책을 냈다. 여기서 그는 전직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치적을 홍보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정보 정치를 통해 나를 견제하는 데만 골몰했다”고 밝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부정부패의 원조”, 최규하 전 대통령을 “헛된 욕심과 좁은 시야에 갇혀 민주화를 지연시킨 인물”로 묘사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박정희에게 탐욕스러운 권력욕만 배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선 “자신의 역사적 소명에 대한 판단 착오를 일으켰다”고 비판했다.

그는 회고록의 대부분을 자신의 재임기간 있었던 치적을 소개하며 홍보하는데 할애했다. 하나회 숙청, 금융실명제 실제, 공직자 재산공개, 안전가옥 철거, 역사 바로 세우기 등은 역사적 소명을 가지고 한 일이라고 소개했다.

◆ 사후에 회고록 나온 김대중,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사후인 2010년 7월 ‘김대중 자서전’형태로 나왔다. 그도 전직 대통령들에 대해 박한 평가를 내놨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과거 건설회사 재직 때의 안하무인식 태도를 드러냈다. 정부 조직 개편안을 봐도 토건업식의 밀어붙이기 기운이 농후했다”고 비판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실용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실용적인 사람으로 알고 대세에 역행하지 않으리라 믿었지만 내가 잘못봤다”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 재직 중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와 경색된 대북 관계등에 대한 불만이 회고록의 내용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생전에 충분히 얘기해 보지 못한 게 지금도 한스럽다” 면서도 지역대립 조장을 박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으로 꼽았다.

DJ는 “박정희 대통령은 전라도에 대해 집요하고 계획적으로 차별했다”고 말했다. “드라마나 영화 속의 도둑이나 사기꾼들은 전라도 사투리를 썼는데 경상도 청년은 씩씩하고 남자답게 묘사됐다”고 주장했다.

YS에 대해서는 “민심에 대한 쿠데타였던 3당 합당의 주역이었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적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2002년 대북송금 특검 사건을 언급하며 “이해하기 황당하고 불쾌하다”고 섭섭해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공과 좌절: 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은 그가 집필 도중 자살하면서 서거 직후인 2009년 9월 출간됐다.

노 전 대통령은 DJ에 대해서는 “지역 분열을 막아내지 못한 책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세계에 자랑할 만한 지도자”로 치켜세웠다.

YS에 대해서도 “1987년 이전까지의 정치적 업적은 김대중 대통령 못지 않았다”면서도 “3당 합당이 모든 것을 망쳐놨다”고 평했다.

2공화국 시절 대통령을 지낸 윤보선 전 대통령도 생전에 회고록을 냈다. '구국의 가시밭 길’이란 이 책은 5.16 쿠테타로 실각되는 과정에서 겪었던 심리적 고통을 담고 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경우 갑작스런 하야로 생전에 회고록을 쓰지 못했다.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6.25와 이승만’이란 제목을 책을 낸 바 있다.

◆ 회고록 남기지 않은 전두환, 최규하

회고록을 쓸 수 있었지만 쓰지 않은 전직 대통령이 최규하,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고(故 )최규하 전 대통령은 5공 청문회 당시 출석조차 거부할 만큼 재직 중 있었던 일에 대한 일체의 증언을 거부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낼 가능성이 남아 있다.

그는 1988년 퇴임과 함께 청와대에서 연희동 사저로 거처를 옮기면서 상당히 많은 분량의 회고록 자료를 사저로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토대로 그가 오랫동안 회고록을 준비해 온 것으로 전해졌으며, 2010년 10월경에는 “조만간 회고록이 출간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측은 추징금 미납과 검찰 수사 등의 여파로 회고록 출간 시기를 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 전 대통령의 비서관을 지낸 민정기씨는 “오래전부터 회고록을 준비하고 있으니 내기는 낼 것”이라며 “평생을 기록한 것이니까 분량이 많다”고 말했다.

범위를 정치인으로 넓힐 경우 가장 읽고 싶은 회고록은 누가 쓴 회고록일까.

2013년 한 일간지가 전문가 20인에게 “가장 기대되는 회고록‘을 물은 결과 압도적인 숫자가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를 꼽았다. 1961년 5.16 쿠테타를 기획한 그는 ‘킹메이커’라는 별칭답게 지난 40년간 한국 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왼쪽부터) 김종필 전 국무총리,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5.16과 유신, 그리고 3당합당과 DJP연합 등 현대사의 알려지지 않은 속살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하지만 그는 지인들에게 “회고록은 쓰지 않겠다”는 뜻을 몇차례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중에서 회고록을 썼어야할 인물로 전직 대통령(이승만, 최규하)들과 함께 많이 거명된 인물이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다. 그는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과는 달리 생전에 회고록을 남기지 않았다.

2009년 그가 세상을 뜨자 많은 이들은 김대중 납치 사건과 7.4 남북공동성명 같이 그가 주도한 굵직굵직한 현대사의 진실이 그냥 묻혀진 것을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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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직 대통령 회고록 이렇게 달랐다
    • 입력 2014-11-22 06:00:35
    정치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내년 초 나온다. 전직 대통령이 생전에 회고록을 내는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앞서 윤보선,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낸 바 있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강남에 사무실을 연 지난해 5월부터 회고록 집필을 시작해, 현재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업 속도에 따라 이르면 내년 1월에 회고록이 발간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담길 내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측근들에 따르면 자서전에는 자신의 재임 기간 동안 있었던 주요 치적을 소개하고 후일담을 소개하는 구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재임 기간 주력했던 금융위기 극복, G20(주요20개국) 회담 개최, 한·미 FTA, UAE 원전 수주등이 주요 내용이다. 특히 관심이 쏠리는 건 최근 야당이 주장하는 이른바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산비리)국정조사’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이 어떤 입장을 피력할지 여부다. 그는 혈세 낭비 논란이 있는 4대강 사업과 자원 외교를 당시 추진할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강조하며 야당의 주장을 반박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 파장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처럼 역대 대통령의 회고록은 발간 당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작지 않은 파장을 낳기도 한다. ◆ 대선자금 ‘비밀’ 밝힌 노태우 전직 대통령 회고록으로 관심을 끌었던 것으로는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꼽힌다. 2011년 8월에 나온 노태우 회고록은 정치자금 문제를 다뤄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회고록에서 그는 19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민자당 후보측에 3000억원대의 대선자금을 제공했다고 밝혀 파문이 일었다.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김영삼 후보의 요청으로 두 차례에 걸쳐 3000억원의 대선자금을 제공했다. 즉 김영삼 후보는 그해 5월 대선 후보로 결정되자 노 대통령에게 “대선에서 적어도 4000억~5000억원은 들지 않겠느냐. 대통령께서 알아서 해주십시오”라고 지원 요청을 했다는 게, 노 전 대통령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당시 실력자이던 금진호 상공부 장관과 이원조 의원을 통해 각각 1000억원씩의 기금을 기업인에게 거둬 제공했고, 선거 막판 김 후보의 SOS(긴급요청)를 받아들여 1000억원을 추가지원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1993년 2월 25일 청와대에서 인사를 나누고,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식장으로 떠나기 전에 청와대 금고 안에 100억원 이상의 돈을 넣어뒀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이처럼 ‘은밀한’ 돈 거래를 밝힌 이유는 뭘까. YS 집권 당시 불거져 세상을 뒤흔들었던 자신의 비자금 사건을 해명하기 위해서였다. 노 전 대통령은 대검의 비자금 수사에서 드러난 2075억원의 보유 배경에 대해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 후 청와대로 자신을 찾아오지 않아 (정치자금인 이 돈을) 전달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거둔 정치 자금이 대선을 치르면서 모두 사용될 것으로 봤는데 내가 민자당을 탈당하면서 자금지원의 공식창구가 없어졌다”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은 “선거 후 이현우 안기부장의 보고를 받고 예상 외로 많은 돈이 남아 있어 깜짝 놀랐다”며 “남은 돈을 꼭 후임 대통령에게 인계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비록 퇴임하더라도 국가를 위해 유용하게 쓰면 되는게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 전임자들에 독설 퍼부은 YS YS는 회고록을 비교적 일찍냈다. 퇴임후 2년이 채 안된 2000년 1월 '김영삼 회고록’이란 책을 냈다. 여기서 그는 전직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치적을 홍보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정보 정치를 통해 나를 견제하는 데만 골몰했다”고 밝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부정부패의 원조”, 최규하 전 대통령을 “헛된 욕심과 좁은 시야에 갇혀 민주화를 지연시킨 인물”로 묘사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박정희에게 탐욕스러운 권력욕만 배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선 “자신의 역사적 소명에 대한 판단 착오를 일으켰다”고 비판했다. 그는 회고록의 대부분을 자신의 재임기간 있었던 치적을 소개하며 홍보하는데 할애했다. 하나회 숙청, 금융실명제 실제, 공직자 재산공개, 안전가옥 철거, 역사 바로 세우기 등은 역사적 소명을 가지고 한 일이라고 소개했다. ◆ 사후에 회고록 나온 김대중,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사후인 2010년 7월 ‘김대중 자서전’형태로 나왔다. 그도 전직 대통령들에 대해 박한 평가를 내놨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과거 건설회사 재직 때의 안하무인식 태도를 드러냈다. 정부 조직 개편안을 봐도 토건업식의 밀어붙이기 기운이 농후했다”고 비판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실용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실용적인 사람으로 알고 대세에 역행하지 않으리라 믿었지만 내가 잘못봤다”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 재직 중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와 경색된 대북 관계등에 대한 불만이 회고록의 내용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생전에 충분히 얘기해 보지 못한 게 지금도 한스럽다” 면서도 지역대립 조장을 박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으로 꼽았다. DJ는 “박정희 대통령은 전라도에 대해 집요하고 계획적으로 차별했다”고 말했다. “드라마나 영화 속의 도둑이나 사기꾼들은 전라도 사투리를 썼는데 경상도 청년은 씩씩하고 남자답게 묘사됐다”고 주장했다. YS에 대해서는 “민심에 대한 쿠데타였던 3당 합당의 주역이었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적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2002년 대북송금 특검 사건을 언급하며 “이해하기 황당하고 불쾌하다”고 섭섭해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공과 좌절: 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은 그가 집필 도중 자살하면서 서거 직후인 2009년 9월 출간됐다. 노 전 대통령은 DJ에 대해서는 “지역 분열을 막아내지 못한 책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세계에 자랑할 만한 지도자”로 치켜세웠다. YS에 대해서도 “1987년 이전까지의 정치적 업적은 김대중 대통령 못지 않았다”면서도 “3당 합당이 모든 것을 망쳐놨다”고 평했다. 2공화국 시절 대통령을 지낸 윤보선 전 대통령도 생전에 회고록을 냈다. '구국의 가시밭 길’이란 이 책은 5.16 쿠테타로 실각되는 과정에서 겪었던 심리적 고통을 담고 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경우 갑작스런 하야로 생전에 회고록을 쓰지 못했다.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6.25와 이승만’이란 제목을 책을 낸 바 있다. ◆ 회고록 남기지 않은 전두환, 최규하 회고록을 쓸 수 있었지만 쓰지 않은 전직 대통령이 최규하,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고(故 )최규하 전 대통령은 5공 청문회 당시 출석조차 거부할 만큼 재직 중 있었던 일에 대한 일체의 증언을 거부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낼 가능성이 남아 있다. 그는 1988년 퇴임과 함께 청와대에서 연희동 사저로 거처를 옮기면서 상당히 많은 분량의 회고록 자료를 사저로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토대로 그가 오랫동안 회고록을 준비해 온 것으로 전해졌으며, 2010년 10월경에는 “조만간 회고록이 출간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측은 추징금 미납과 검찰 수사 등의 여파로 회고록 출간 시기를 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 전 대통령의 비서관을 지낸 민정기씨는 “오래전부터 회고록을 준비하고 있으니 내기는 낼 것”이라며 “평생을 기록한 것이니까 분량이 많다”고 말했다. 범위를 정치인으로 넓힐 경우 가장 읽고 싶은 회고록은 누가 쓴 회고록일까. 2013년 한 일간지가 전문가 20인에게 “가장 기대되는 회고록‘을 물은 결과 압도적인 숫자가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를 꼽았다. 1961년 5.16 쿠테타를 기획한 그는 ‘킹메이커’라는 별칭답게 지난 40년간 한국 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왼쪽부터) 김종필 전 국무총리,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5.16과 유신, 그리고 3당합당과 DJP연합 등 현대사의 알려지지 않은 속살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하지만 그는 지인들에게 “회고록은 쓰지 않겠다”는 뜻을 몇차례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중에서 회고록을 썼어야할 인물로 전직 대통령(이승만, 최규하)들과 함께 많이 거명된 인물이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다. 그는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과는 달리 생전에 회고록을 남기지 않았다. 2009년 그가 세상을 뜨자 많은 이들은 김대중 납치 사건과 7.4 남북공동성명 같이 그가 주도한 굵직굵직한 현대사의 진실이 그냥 묻혀진 것을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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