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인생 50년’ 배우 최불암

입력 2014.11.25 (16:00) 수정 2014.11.2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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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황상무입니다.

오늘 헌법재판소에서는 통합진보당 해산청구심판에 대한 정부와 통합진보당 측의 최종 변론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부 측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통진당 측은 이정희 대표가 참석했는데요.

지금 이 순간에도 날선 공방이 진행 중입니다.

민주적 기존 질서에 위배되므로 통진당은 반드시 해산돼야 한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말이고요.

이에 대해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정당해산 청구가 정치탄압이라고 강력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최종 변론을 들은 뒤 재판관 9명 전원이 참여하는 평의에 들어갑니다.

연내에는 평의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요.

헌정 사상 최초의 정당해산 청구심판.

쟁점은 무엇이고 전망은 어떻게 될지 잠시 후 시사격론에서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오늘 첫 순서는 화제의 인물입니다.

잠시 전 화면에서 보셨겠습니다마는 정의로운 수사반장으로 또 늘 변함없는 고향의 아버지로 지난 50년 동안 국민들을 울리고 웃기며 가장 한국적인 남성의 모습을 연기해 온 국민배우입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서 최근에는 정부로부터 대중문화예술인의 최고 영예인 은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죠.

국민배우 최불암 씨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어서 오십시오.

감사합니다.

은관문화훈장 수상하셨는데 그동안 상도 많이 받으셨겠지만 훈장은 혹시 처음 아닌지 궁금합니다.

잠깐만 선생님, 마이크가 일어서서 인사하시면서 마이크가 빠진 것 같습니다.

채우시죠.

-은관문화훈장을 두 번 받을 수는 없죠.

그런데 처음 받았습니다마는 죽을 때 한 번 남아 있다고 해요.

그것이 금관문화훈장이라고 그래요.

-그러시군요.

-그래서 그걸 타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저에게는 더 영광스러운 일인데 좀 일찍 받은 감이 있지 않은가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게 아니라 일찍 받으셨으면 다음에는 금관문화훈장을 타셔야 되는데.

-그건 죽어서 타는 거죠.

-그건 돌아가신 뒤에 주는 건가요? 아마 틀림없이 그것도 받으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지금 뵈니까 건강이 워낙 좋으셔서.

-앞에 모니터 보니까 아주 중요한 날이네요.

시사진단 시간에 지금 상당히 어려운 재판이 열리면서.

-이제 헌법재판소.

-저 시사진단 저거 보니까 제가 겁이 나요.

황상무한테 진단 받으러 나오는 거 아닌가.

-화제의 인물로 모셨으니까 오늘은 여러 가지 얘기들.

특히 우리 국민들이 최불암 선생님에 대해서 애정도 있지만 궁금한 부분들이 많아서 이것저것 질문 드리고.

-뭐든지 물어봐주십시오.

솔직하게 대답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연기인생 50년 되셨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는지 저도 사실 실감이 안 납니다.

어느새 이렇게 확 지나갔는지.

이제 선배들이 세월 참 빠르다, 빨리 준비해라.

이런 얘기들을 하고 그랬는데, 그것이 이 나이 되니까 그렇게 많이 와요.

틀림없는 말씀들을 하셨구나.

-그렇군요.

그러면 이제 본격 말씀 나누기에 앞서서 우리 이승연 아나운서가 연기인생 50년 정리를 했거든요.

소개를 해 주시죠.

-국민배우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한국인의 아버지상이 되시기까지 지금까지 걸어오셨던 길을 저희가 정리해 봤습니다.

먼저 1959년 국립극장에서 연극 햄릿으로 연극배우로 처음으로 데뷔를 합니다.

이 사진은 연극 토끼와 포수라는 작품에 출연한 사진인데요.

1965년에는 국립극단 단원으로 입단하셔서 연극계에서 활약을 하셨습니다.

-저 사진에 어디 계십니까? 잘 안 보이는데.

-저게 아마 명동예술극장 1961년 아니면 2년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저 체크무늬.

다음 사진 보여주시죠.

28살 되던 1967년 서울중앙방송, 그러니까 지금 KBS의 전신입니다.

공채 탤런트로 정식 입문해서 드라마 수양대군에서 김종서 역할로 TV드라마 전격 데뷔를 하시게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67년도이죠.

-67년도에 그때 특채 6기로 지금 활약을 중단하고 있습니다마는 오지명, 최불암 이렇게 둘이 특채로 6기로 들어갔죠.

-KBS 공채 탤런트 6기.

-그런데 69년입니다.

MBC 특채 탤런트로 저희로서는 아쉽지만 스카우트 되셔서.

-유명한 수사반장 장면입니다.

-그러네요.

저 수사반장은 1972년부터 89년까지 방영이 됐는데 박 반장 역할을 무려 18년 동안이나 해 오셨습니다.

-그랬었습니다.

안방의 보안관 이렇게 하고 그때 국민의식들이 형사들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일제강점기 때 형사들이 너무 나쁜 짓을 해서 싫어했는데.

-정의로운 박 반장 역할을 하셨죠.

-거기서 경찰의 이미지 쇄신 또 경찰과 민간의 말하자면 다리 역할도 하고.

-다음 사진이 떠 있는데요.

80년부터 2002년까지.

따뜻한 서민적인 부장, 국민의 아버지 양촌리 김 회장 역할로 22년 동안이나 사랑을 받으셨고요.

그리고 현재 음식 속에 담긴 한민족의 삶을 되돌아보는 우리 한국인의 밥상을 열심히 진행하시고 계십니다.

-저희들은 아무래도 최불암 선생님 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수사반장 또 전원일기의 김 회장님 그때인데 당시 인기가 시청률을 보니까 70% 정도까지 했다는데, 인기가 어느 정도였습니까?

-당시에 인기라고 보면 수신기 대수가 적었으니까 아마 간과하셔야 될 거예요.

그때는 하여간 수사반장 시간에는 택시를 못 잡았다고 그랬으니까요.

그리고 그때도 기사분들 식사하시는 데는 기사식당이 있기 때문에 모두 그리로 집합을 하셨어요.

보면서 식사하시고 그냥 택시가 설 수밖에는 없었죠.

그러니까 사회의 방향판 같은 그런 역할을 했으니까 기사분들이 또 민감하시잖아요.

보고서는 이런 범죄가 아직도 우리나라에 있나, 어디를 고쳐야 된다 이런 의견들이 방송국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죠.

-수사반장 하실 때 육영수 여사 전화를 받으셨다고 하는데.

-받았죠.

-무슨 전화를 받으셨습니까?

-방송이 끝났는데 끝나자마자 전화가 따르릉 왔어요.

그런데 저희 집사람이 받았죠.

거기가 최불암 씨 댁이냐.

네.

여기가 뭡니까?비서가 아니라 단어를 잊어버렸는데.

가족들이 쓰는.

-관저.

-관저에 있는 전화를 뭐라고 그러죠?그 전화인데 잠깐 기다리십시오 그래요.

그래서 우리 집사람이 뭐라 그랬냐면 청와대에 이런 보수, 보수 아니라 그거 고치는 데가 있느냐.

아니, 나는 모르는데.

그런데 전화 왔다고 받아보라고 막 웃으시면서 제가 육영수예요.

지금 방송 봤습니다.

너무 아픈 마음이에요.

그런데 담배를 많이 태우시네요.

속상했어요? 이래.

내가 넉 대를, 그때는 또.

-한 드라마에서.

-넉 대를 태웁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넉 대를 태우세요? 1시간 안에 넉 대 태우는 게 이상하셨나 봐요.

도입부에 태우고 중간에 태우고 클라이막스에 태우고 맨 마지막에 한 대 태우고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조금 줄이셔야 되겠어요.

이 양반도 박 반장 담배 태울 때 꼭 따라 피우신대요.

-따라 피우신다.

-그러니까 이 양반도 조심해야겠지만.

옆에서.

쓸데없는 얘기를 해?

-그래요?옆에서 들려오고.

-모든 국민이 속상하게 그렇게 따라피우면 건강이 모두 나빠지지 않겠습니까 하는데 제가 정말 요지부동이 돼가지고 차려 자세로 네, 알겠습니다, 반드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다음부터.

-줄이셨습니까?

-2대를 태웠죠.

그때는 연기가 전부 담배를 많이 피웠어요.

-그랬죠.

요즘에는 화면에 일체 못 나오게 하는데.

-못 나오죠.

-그러시군요.

그리고 전원일기 하실 때는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무슨 연기지도를 받으셨다 이런 얘기가 있는데 무슨 뜻인지 궁금합니다.

-그분 드라마를 했었습니다.

욕망 25시.

그런데 그때 다 끝나니까 초청을 받아서 갔는데, 이거 봐요.

당신 지게 지는 법을 잘 모르더구먼, 그래요.

네?저 지게 잘 지고 있는데요.

틀렸어요.

지게를 뭘로 지어요, 물으세요.

그거야 몸의 기운으로 지거나 몸의 중심으로 지겠죠, 그랬더니 뭘로 지냐니까 얘기 하라고.

그런데 그 얘기를 제가 못 알아들었어요.

그리고 생각도 못 하고.

-그렇죠, 지게는 몸으로 지는 거 아닙니까? 어깨로 지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게 목으로 진다고 그래요.

이걸 빼야지 몸의 중심이 잡혀지고.

목이 이렇게 되면 핸들이래.

이렇게 돌리면 저절로 돈대요, 무거운 거 지면.

-그렇습니까?-그래서 몸의 중심을 맞추는 것이 목이다.

그걸 모르고서는 말이야, 전원일기 하고 있다고 그러시더니 한 번 출연해서 내 농사론을 얘기하고 싶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가지고 약속까지 됐다가 결국 이제 그룹이니까 각 사장님들이 나가지 마십시오 이런 모양이에요.

취소가 돼서 못 나왔습니다.

-그 인연으로 정주영 회장님하고 아셨고.

-그렇죠.

-그래서 정치까지 하셨죠.

국회의원까지 하셨습니다.

-그랬었죠.

저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렇게 해서 요구가 왔는데 저는 국회의원이 당에서 많이 당선돼가지고 비례대표가 나오는지 몰랐습니다.

충분히 됐다고 제가 4번을 가졌었는데, 제가 4번인지도 몰랐습니다.

나오라고 해서 나갔었습니다마는 이걸 말까, 할까 망설이는데 그래도 연기자로서 세상 구경을 한번 하고 싶다.

그 넓은 대한민국을 다스리는 행정을 한번 보고 싶다 이래서 했는데, 잘 못했습니다.

-아니, 뭐 생소한 분야였으니까.

그런데 이제 당시 국회의원을 하시면서도 전원일기 출연은 계속 하셨죠?

-선거 3개월 전에는 전부 내려놨습니다.

-그랬죠.

-그다음에 간헐적으로 했죠.

그 3개월만 못하고 있다가 그다음에는 그렇게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쭉 나갔습니다.

했습니다.

-그러셨군요.

이승현 아나운서, 우리 최불암 선생님 모셨는데 최불암 선생님의 제일 특기, 푸하 하는 웃음 있는데 이승현 아나운서 잘하실 수 있죠? 해 보시죠.

-지금 황상무 앵커께서 해 주셨는데 선생님께서 앞에 계셔서 제가 참 이걸 한다는 게 민망하고 쑥스럽지만.

-우리 이승현 아나운서 흉내를 잘 냅니다.

-감정을 잡은 거예요?

-잘 안 되는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

-손이 입으로 가야 되는데 손이 안 갔어요.

-그래서 저희가 제대로 따라하시는 분들 화면으로 정리해 봤습니다.

함께 보시죠.

-들어가서 확인 한번 해 보시죠.

파하.

최불암 선생님.

-틀렸어.

손이 올라가야 하는데.

-박명수.

-빌딩이 높을수록 그림자는 길어지지.

어쩐 일이야?

-어서 오십시오, 수사반장님.

-여기도 손이 안 올라가세요.

별말씀을.

-웃어주시고.

-유동근 씨까지.

-손이 올라가야 됩니까?다시 한 번 보여주시죠.

-저희가 안방을 쓰고 있는데 어머니를 안방으로 모시려고 하는데 죽어도 안 하세요.

-전원일기에서?

-네, 전원일기에서.

옆방을 쓰시는데 이제 김혜자 씨가 제 부인 아니에요.

그런데 재미있으면 웃고, 큰 소리로.

쉿.

어머니가 외로우시지, 우리 웃음소리 들으면.

행복도 같이 나눠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웃음 좀 자제합시다, 약속을 해가지고 우리 집사람은, 김혜자 씨는 웃지 않기로 하고.

호호호 입고 닫고.

나는 재미있으면 파하~.

웃음소리를 그래서 파하라고 했죠.

-그러니까 그 웃음에도 효심이 배어 있는 웃음이다 이렇게 봐야겠네요?

-그건 작가가 써주지 않았으니까 저도 어머니를 잃고 이러면서 스스로 느껴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면 연기도 스스로의 경험이 묻어나서 그것을 소위 해석을 하셔서 연기를 하신 거네요?

-그렇죠.

연기에 도움이 되겠죠.

-이제 저희들이 파하~ 웃음도 나눠봤는데 최불암 시리즈라는 것도 굉장히 유행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학교에서 교직을 그만두었지만 박동규 씨가 박목월 씨 아드님이.

-서울대 교수 하시던.

-제 친구인데 야, 네 얘기가 학교에서 돈다 그래요.

무슨 얘기인데 그랬더니 너무너무 재미있어.

뭐 하나 해 봐라 그랬더니 야, 네가 붕어빵을 굽고 있대요.

그런데 금동이가 대학을 들어가게 됐는데 학적부를 쓰지 않습니까? 쓰러 왔는데 아버지 직업을 못 쓰고 아버지한테 와서 짜증을 부리는 거예요.

아버지 직업을 쓰려고 하니까 붕어빵장사라고 써야 돼 그러니까 붕어빵 장사가 어떠냐.

아버지는 이러지만 자식으로서는 좀 그게 좀 싫었겠죠.

그래서 아버지가 고민을 이렇게 하더니 야,수산업이라고 써.

얼마나 기지가 있어요.

그렇죠? 그냥 금동이가 끄덕거리고 수산업이라고 썼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때 그런 최불암 시리즈가 아주 유행을 했었어요.

그래서 그야말로 국민들을 울리고 웃기고 그렇게 해 왔던 정말 국민배우인데, 최근에는 저희 KBS에서 한국인의 밥상 이걸 좀 계속하시면서 다른 면모를 보이고 계세요.

-한국인의 밥상은 우리 음식문화뿐만 아니라 여러 문화적 상식도 그 안에 들어가 있고 또 인문학적 요소도 그 안에 들어가 있고 해서 참으로 저에게는 소중한 프로그램입니다.

지금 4년 딱 돼가는군요.

12월 말이면 4년입니다.

-시청률이 교양프로그램인데도 두자릿수 이상이어서 저희들이 사실 궁금한 게 보면서 이건 주인공의 역할이 정말 큰 것 같다 그렇게 생각을 하거든요.

-아니요.

-최불암 선생님 아니면 과연 그 프로그램이.

-그건 황상무님이 하셔도 그건 그렇게 돼요.

왜냐하면 워낙 포맷이 좋습니다.

그리고 진짜 한국을.

저는 배우로서 주장이 있다면 한국인이 어떤 사람인가 이걸 한번 규명해 보고 싶은데, 배우라는 게 결국 사람을 규명하는 작업자거든요.

그런데 우리 음식을 한번 규명해 보는데 이에 따라서 한국인이 생성될 수 있다는 느낌을 가져봤어요.

이 배역은 나한테 참 잘 맞는 배역이다.

열심히 해서 관객들의 식사부터 또는 일종의 말하자면 마을을 형성한 지방문화라든지 경치라든지 이런 풍광 이런 것들이 더 어우러져서 한국인의 정체성이 분명해지지 않을까 하는 의미로 시작을 했는데 마침 시청자 여러분께서 많이 봐주시고 KBS에서도 열심히 명분이 있는 거니까 열심히 해야 된다 하는 주문도 제가 받고 그래서 했습니다.

-한 4년 하시면서 저도 그 프로 아주 애청자입니다마는 가장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으시는 편이 있었으면 어떤 게 있습니까?

-아까 잠깐 김치 먹는 게 나왔는데 우리 어머니가 해 주시던 김치를 우연스럽게 찾았어요.

섬인데.

생선을.

지금은 생선 많이 넣습니다마는 조기, 작은 조기가 있습니다.

그걸 넣은.

그 맛이 이렇게 먹어보는데, 아주머니가 내주신 걸 먹어보고 이게 조기를 넣었죠 그랬더니 네, 조기예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그런데 그 젓가락 들면서 어머니 냄새가 확 나는 거예요.

어떻게 눈물이 나던지.

그 어머니가 해 주시던 그 맛이.

또 인천 바로 제 고향이 난 데는 인천입니다.

그 바로 건너 섬에 들어가서 음식을 만나서 그렇게 김치, 지금 김치 담글 때가 됐습니다마는 김치에 어머니가 들어가 있는지.

또 그 맛이 아직도 살아 있는지, 이런 것들 때문에 보통 가슴이 울먹거리지가 않았어요.

-누구나 그럴 것 같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 맛이 확 느껴질 때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마 다 그런 감정을 느낄 것 같은데 마침 저희들이 화면을 준비를 해 놨거든요.

화면 한번 잠깐 보시죠.

-밴댕이 넣은 거구먼요.

아주 오랜만에 김치 속의 생선을 먹어보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게 저희 어머니 손맛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오래간만에.

-울컥하셔가지고 말씀을 못 이으시는군요.

-보기만 해도 울컥해지네.

-무의도에 들어와서 어머니의 김치 맛을 봅니다.

-이렇게 다니시면서 수많은 우리 김치도 있었습니다마는 밥상 많이 접해 보셨는데,개인적으로 이 맛은 정말 한국 고유의 맛이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이걸 한번 권유해 보고 싶다 하는 게 있으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런데 선조 때부터 개발하셔서 음식을 해먹는 방법부터 다 아시니까 말씀드릴 게 없고.

그런데 우리나라에 나물, 나물이 참 희귀해요.

나물이 먹는 것이 제가 언뜻 생각해도 한 우리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나물이 12가지가 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나물 맛이 그렇게 좋습니다, 사실은.

영양에도 좋고.

그래서 참 귀한.

대한민국에 귀한 나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해먹는 또 방법을 알고 그러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래서 저 지리산 저쪽으로 내려가서 나물 먹으라고, 모두 참 맛있는 것만 먹고 다니고 좋은 거 구경하는 거 언제나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나물을 추천합니다.

-기르는 채소가 아니라 우리 그냥 들과 산에 나는 한국 고유의 토종 풀들.

그게 나물이죠, 그걸 갖다가 해서 먹어보면 좋죠.

-그러니까 저희 선조들 모두 가난했을 때 초근목피로 연명을 했다고 해서 나물이 초근이죠, 초근, 뿌리까지 해서.

나물을 이제 나무껍질을 벗겨가지고 그 안에 하얀 걸 고아서 먹고 그랬으니까.

-특별한 양념도 아니고 삶아가지고 그냥 간장이나.

조물조물해서.

-얼마나 맛있는지 지방 내려가면 나물이 참 먹거리가 좋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부인 하면 김민자 선생님, 김민자 선생님이 해 주시는 밥상하고 다니시면서 맛본 밥상하고 어느 게 더 낫습니까?

-저희 집사람도 이 한국인의 밥상을 빼놓지 않고 보죠.

적고 이래요.

그런데 그 맛이 나오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어떤 때는 더 맛있고 어떤 때는 더 못하고 이럴 때도 있죠.

똑같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모님 얘기가 나왔으니까 여쭤보겠습니다.

일반 우리 국민들 사이에는 사모님이 김민자 선생님이 아니라 김혜자 선생님인 줄 아십니다.

-그렇게 보시는 분은 없어요.

-23년이라는 세월을 김혜자 씨하고 같이 했으니까.

옛날에는 한 20년 전에는 그런 얘기가 나왔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이 같은 배우신데 배역상으로 보면 부인으로서는 혹시 김혜자 씨가 더 어울리는 것 아닌가 싶은데.

-아니에요.

-그건 아닙니까? 아니,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저희들이 조사를 했는데 평생 딱 한 번 스캔들이 있으셨는데 그 스캔들이 지금 부인 김민자 선생님하고 결혼하기 직전에 무슨 사귄다,그거였다.

그렇습니까?

-결혼 전에는 김혜자 씨 못 만났는데요.

-아니, 김민자 선생님.

김민자 선생님이랑 연애한다 그 기사가 한 번 난 게 유일한 스캔들이다.

-잡지로.

-지금 저 사진인 것 같아요.

-이 사진 맞습니다.

이게 옆에 가서 슬며시 기자 보고 찍으라고.

그래서 저걸 방송국을 저 사람 때문에 올라갔습니다.

저는 연극만 하기로 결심했는데, 저도 결혼할 날짜가 돼어.

날짜가 아니고 나이가 돼가지고 그러니까 너한테는 김민자가 제일 맞을 것이다, 그래서 방송국에서 역할 프러포즈가 왔을 때 일부러 가서 저런 시늉을 하고 김혜자를 아내로 만들었죠.

-김민자를, 김혜자가 아니라.

신혼여행 사진이군요.

-1970년도입니다.

저게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으로 경부선 뚫은.

-경부고속도로.

-그걸 기념하기 위해서.

-기념사진을.

-차를 타고 내려갔죠.

-정말 로맨티스트시더라고요.

이번에 훈장 받으시면서도 우리 아내 어디 갔나, 김민자 여사를 찾으시는 모습이.

-왔는데 보이지 않아가지고 그때는 누가 옆에서 여기 있다고 그래서 감사하다고 그랬죠.

-죄송한 질문인데, 죄송합니다마는 아니,그런 국민배우 당대 톱스타셨는데 어떻게 다른 스캔들이 하나도 없습니까? 소위 대시하는 젊은 여배우들도 많이 있었을 법한데 왜 그러셨는지요?-그렇죠.

아름다움이라는 건 눈에 벗어나는 건 없으니까 보고 느끼는 건 있죠.

그렇지만 자신을 다스리는 게 문제죠.

못 다스리면 잘못되는 거고.

-아니, 누가 말이죠.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사실은 젊어서부터 노인 배역 전문배우시다 보니까.

-그것도 있어요, 참.

-그래서 아무도 젊은 여인들이 최 선생님한테 다가가지를 않았다.

-접근을 못하는 거죠.

항상 아버지로 보고 할아버지로 보고 그러니까.

저는 평생 노역만 했습니다.

언제 좀 젊은 역을 한 번 하니까 최불암 변신하다 그랬어요.

변신은 아닌데, 그게 원모습인데 변신자로 오해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멜로드라마 주인공도 하셨죠? 그전에 왜 그대 그리고 나에 보면.

-바로 그 얘기를 드리는 겁니다.

그때 처음 그런 애정드라마를 했었죠.

-그때 멋있었었습니다.

중견 남성으로서 아령도 좀 하시고.

배도 타시는 선장 모습으로 나오시고.

-비린내 나는 모습.

-50년 배우 인생을 살아오셨는데 배우 최불암에게 연기란 무엇입니까?

-연기란 삶의 형태를 규명하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수학적이건 과학적이건 분석을 잘해가지고 내 몸을 그 사람 몸으로 만들어주는 일이죠.

그러니까 그 사람의 영혼까지도 나한테 빌려온다고 하니까.

그 사람이 돼버리는 작업이죠, 작업자.

사실은 큰 예술가가 돼야 됩니다.

예술가라는 건 제가 연기자를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더 이상의 혼이 정말 표현될 수 있도록 저는 우리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가 이것이 내 모습에서 나와야 되고.

아직 뭐 부족하고 또 많은 서적을 봐도 한국인이 선비정신이 있고 질박함 이런 건 표현되어도 정말 한국인의 모습이 어느 남자일까.

어떤 한국인이 진짜 우리 사나이일까, 이런 것들을 그냥 걱정만 하고 세월을 다 잃었습니다.

-연기를 통해서 참한국인의 모습을 구현해 보고 싶으시다.

-그렇습니다.

-최근에 그 얘기 하나 더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사회봉사활동 많이 하신다고 했는데 잠깐.

저희들이 그런 게 아니라 하시는 일이 워낙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해서 잠깐 좀 소개를 하시는 걸로.

그래야 또 저희들이 많은 도움이 돼서 옆에서 도와도 드리고 싶고요.

-고맙습니다.

저는 어린이재단 일을 보고 있습니다.

1981년도에 시작을 했으니까 삼십 몇 년이 됐죠.

그런데 내가 앞장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니까 뒤에 좇아오는 우리 후세들이 좋고 아름다운 터전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해서 어린이재단에 30년 넘게 봉사죠,봉사입니다.

봉사를 하고 있고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제로캠프입니까?

-제로캠프는 아니고요.

제로캠프는 조금 성년이 된 요즘 사회문제가 상당히 심각합니다.

가출한 아이들 또 책상을 버리고 싶은 아이들 이래가지고 혼돈이 오기 시작하는데 요즘 어느 언론사에서도 시리즈로 하고 있는데 참 걱정해 줘야 될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선 교도소부터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될 것 같아서 그래서 연극으로 아이들을 교화, 교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해서 신경을 썼더니 마침 법무부에서 참 우리가 늘 하는데 그런 교육방법이 있다면 한번 해 봐라 그래가지고 오늘 마침 제가 황교안 장관이 저한테 진짜 프러포즈를 하셨어요.

그래서 담당을 해서 우리 교도소 애들한테 밝은 빛을 던져줘라.

그래서 그 임무를 맡고 있고 예산 같은 건 없습니다마는 독지가가 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 아이들을 세 번째 연극을 올립니다.

-알겠습니다.

어린이 후원사업도 하시고 또 청소년 교화사업도 하시고 한국인의 모습, 어떤 것이 한국인의 삶인지 꼭 좀 구현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정말 더 좀 얘기하고 싶은 게 많은데.

-시간 관계상 여기까지만.

-제가 진단을 잘 못 받은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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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기 인생 50년’ 배우 최불암
    • 입력 2014-11-25 16:06:08
    • 수정2014-11-25 17:51:35
    시사진단
-안녕하십니까? 황상무입니다.

오늘 헌법재판소에서는 통합진보당 해산청구심판에 대한 정부와 통합진보당 측의 최종 변론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부 측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통진당 측은 이정희 대표가 참석했는데요.

지금 이 순간에도 날선 공방이 진행 중입니다.

민주적 기존 질서에 위배되므로 통진당은 반드시 해산돼야 한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말이고요.

이에 대해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정당해산 청구가 정치탄압이라고 강력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최종 변론을 들은 뒤 재판관 9명 전원이 참여하는 평의에 들어갑니다.

연내에는 평의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요.

헌정 사상 최초의 정당해산 청구심판.

쟁점은 무엇이고 전망은 어떻게 될지 잠시 후 시사격론에서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오늘 첫 순서는 화제의 인물입니다.

잠시 전 화면에서 보셨겠습니다마는 정의로운 수사반장으로 또 늘 변함없는 고향의 아버지로 지난 50년 동안 국민들을 울리고 웃기며 가장 한국적인 남성의 모습을 연기해 온 국민배우입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서 최근에는 정부로부터 대중문화예술인의 최고 영예인 은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죠.

국민배우 최불암 씨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어서 오십시오.

감사합니다.

은관문화훈장 수상하셨는데 그동안 상도 많이 받으셨겠지만 훈장은 혹시 처음 아닌지 궁금합니다.

잠깐만 선생님, 마이크가 일어서서 인사하시면서 마이크가 빠진 것 같습니다.

채우시죠.

-은관문화훈장을 두 번 받을 수는 없죠.

그런데 처음 받았습니다마는 죽을 때 한 번 남아 있다고 해요.

그것이 금관문화훈장이라고 그래요.

-그러시군요.

-그래서 그걸 타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저에게는 더 영광스러운 일인데 좀 일찍 받은 감이 있지 않은가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게 아니라 일찍 받으셨으면 다음에는 금관문화훈장을 타셔야 되는데.

-그건 죽어서 타는 거죠.

-그건 돌아가신 뒤에 주는 건가요? 아마 틀림없이 그것도 받으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지금 뵈니까 건강이 워낙 좋으셔서.

-앞에 모니터 보니까 아주 중요한 날이네요.

시사진단 시간에 지금 상당히 어려운 재판이 열리면서.

-이제 헌법재판소.

-저 시사진단 저거 보니까 제가 겁이 나요.

황상무한테 진단 받으러 나오는 거 아닌가.

-화제의 인물로 모셨으니까 오늘은 여러 가지 얘기들.

특히 우리 국민들이 최불암 선생님에 대해서 애정도 있지만 궁금한 부분들이 많아서 이것저것 질문 드리고.

-뭐든지 물어봐주십시오.

솔직하게 대답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연기인생 50년 되셨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는지 저도 사실 실감이 안 납니다.

어느새 이렇게 확 지나갔는지.

이제 선배들이 세월 참 빠르다, 빨리 준비해라.

이런 얘기들을 하고 그랬는데, 그것이 이 나이 되니까 그렇게 많이 와요.

틀림없는 말씀들을 하셨구나.

-그렇군요.

그러면 이제 본격 말씀 나누기에 앞서서 우리 이승연 아나운서가 연기인생 50년 정리를 했거든요.

소개를 해 주시죠.

-국민배우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한국인의 아버지상이 되시기까지 지금까지 걸어오셨던 길을 저희가 정리해 봤습니다.

먼저 1959년 국립극장에서 연극 햄릿으로 연극배우로 처음으로 데뷔를 합니다.

이 사진은 연극 토끼와 포수라는 작품에 출연한 사진인데요.

1965년에는 국립극단 단원으로 입단하셔서 연극계에서 활약을 하셨습니다.

-저 사진에 어디 계십니까? 잘 안 보이는데.

-저게 아마 명동예술극장 1961년 아니면 2년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저 체크무늬.

다음 사진 보여주시죠.

28살 되던 1967년 서울중앙방송, 그러니까 지금 KBS의 전신입니다.

공채 탤런트로 정식 입문해서 드라마 수양대군에서 김종서 역할로 TV드라마 전격 데뷔를 하시게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67년도이죠.

-67년도에 그때 특채 6기로 지금 활약을 중단하고 있습니다마는 오지명, 최불암 이렇게 둘이 특채로 6기로 들어갔죠.

-KBS 공채 탤런트 6기.

-그런데 69년입니다.

MBC 특채 탤런트로 저희로서는 아쉽지만 스카우트 되셔서.

-유명한 수사반장 장면입니다.

-그러네요.

저 수사반장은 1972년부터 89년까지 방영이 됐는데 박 반장 역할을 무려 18년 동안이나 해 오셨습니다.

-그랬었습니다.

안방의 보안관 이렇게 하고 그때 국민의식들이 형사들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일제강점기 때 형사들이 너무 나쁜 짓을 해서 싫어했는데.

-정의로운 박 반장 역할을 하셨죠.

-거기서 경찰의 이미지 쇄신 또 경찰과 민간의 말하자면 다리 역할도 하고.

-다음 사진이 떠 있는데요.

80년부터 2002년까지.

따뜻한 서민적인 부장, 국민의 아버지 양촌리 김 회장 역할로 22년 동안이나 사랑을 받으셨고요.

그리고 현재 음식 속에 담긴 한민족의 삶을 되돌아보는 우리 한국인의 밥상을 열심히 진행하시고 계십니다.

-저희들은 아무래도 최불암 선생님 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수사반장 또 전원일기의 김 회장님 그때인데 당시 인기가 시청률을 보니까 70% 정도까지 했다는데, 인기가 어느 정도였습니까?

-당시에 인기라고 보면 수신기 대수가 적었으니까 아마 간과하셔야 될 거예요.

그때는 하여간 수사반장 시간에는 택시를 못 잡았다고 그랬으니까요.

그리고 그때도 기사분들 식사하시는 데는 기사식당이 있기 때문에 모두 그리로 집합을 하셨어요.

보면서 식사하시고 그냥 택시가 설 수밖에는 없었죠.

그러니까 사회의 방향판 같은 그런 역할을 했으니까 기사분들이 또 민감하시잖아요.

보고서는 이런 범죄가 아직도 우리나라에 있나, 어디를 고쳐야 된다 이런 의견들이 방송국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죠.

-수사반장 하실 때 육영수 여사 전화를 받으셨다고 하는데.

-받았죠.

-무슨 전화를 받으셨습니까?

-방송이 끝났는데 끝나자마자 전화가 따르릉 왔어요.

그런데 저희 집사람이 받았죠.

거기가 최불암 씨 댁이냐.

네.

여기가 뭡니까?비서가 아니라 단어를 잊어버렸는데.

가족들이 쓰는.

-관저.

-관저에 있는 전화를 뭐라고 그러죠?그 전화인데 잠깐 기다리십시오 그래요.

그래서 우리 집사람이 뭐라 그랬냐면 청와대에 이런 보수, 보수 아니라 그거 고치는 데가 있느냐.

아니, 나는 모르는데.

그런데 전화 왔다고 받아보라고 막 웃으시면서 제가 육영수예요.

지금 방송 봤습니다.

너무 아픈 마음이에요.

그런데 담배를 많이 태우시네요.

속상했어요? 이래.

내가 넉 대를, 그때는 또.

-한 드라마에서.

-넉 대를 태웁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넉 대를 태우세요? 1시간 안에 넉 대 태우는 게 이상하셨나 봐요.

도입부에 태우고 중간에 태우고 클라이막스에 태우고 맨 마지막에 한 대 태우고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조금 줄이셔야 되겠어요.

이 양반도 박 반장 담배 태울 때 꼭 따라 피우신대요.

-따라 피우신다.

-그러니까 이 양반도 조심해야겠지만.

옆에서.

쓸데없는 얘기를 해?

-그래요?옆에서 들려오고.

-모든 국민이 속상하게 그렇게 따라피우면 건강이 모두 나빠지지 않겠습니까 하는데 제가 정말 요지부동이 돼가지고 차려 자세로 네, 알겠습니다, 반드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다음부터.

-줄이셨습니까?

-2대를 태웠죠.

그때는 연기가 전부 담배를 많이 피웠어요.

-그랬죠.

요즘에는 화면에 일체 못 나오게 하는데.

-못 나오죠.

-그러시군요.

그리고 전원일기 하실 때는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무슨 연기지도를 받으셨다 이런 얘기가 있는데 무슨 뜻인지 궁금합니다.

-그분 드라마를 했었습니다.

욕망 25시.

그런데 그때 다 끝나니까 초청을 받아서 갔는데, 이거 봐요.

당신 지게 지는 법을 잘 모르더구먼, 그래요.

네?저 지게 잘 지고 있는데요.

틀렸어요.

지게를 뭘로 지어요, 물으세요.

그거야 몸의 기운으로 지거나 몸의 중심으로 지겠죠, 그랬더니 뭘로 지냐니까 얘기 하라고.

그런데 그 얘기를 제가 못 알아들었어요.

그리고 생각도 못 하고.

-그렇죠, 지게는 몸으로 지는 거 아닙니까? 어깨로 지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게 목으로 진다고 그래요.

이걸 빼야지 몸의 중심이 잡혀지고.

목이 이렇게 되면 핸들이래.

이렇게 돌리면 저절로 돈대요, 무거운 거 지면.

-그렇습니까?-그래서 몸의 중심을 맞추는 것이 목이다.

그걸 모르고서는 말이야, 전원일기 하고 있다고 그러시더니 한 번 출연해서 내 농사론을 얘기하고 싶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가지고 약속까지 됐다가 결국 이제 그룹이니까 각 사장님들이 나가지 마십시오 이런 모양이에요.

취소가 돼서 못 나왔습니다.

-그 인연으로 정주영 회장님하고 아셨고.

-그렇죠.

-그래서 정치까지 하셨죠.

국회의원까지 하셨습니다.

-그랬었죠.

저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렇게 해서 요구가 왔는데 저는 국회의원이 당에서 많이 당선돼가지고 비례대표가 나오는지 몰랐습니다.

충분히 됐다고 제가 4번을 가졌었는데, 제가 4번인지도 몰랐습니다.

나오라고 해서 나갔었습니다마는 이걸 말까, 할까 망설이는데 그래도 연기자로서 세상 구경을 한번 하고 싶다.

그 넓은 대한민국을 다스리는 행정을 한번 보고 싶다 이래서 했는데, 잘 못했습니다.

-아니, 뭐 생소한 분야였으니까.

그런데 이제 당시 국회의원을 하시면서도 전원일기 출연은 계속 하셨죠?

-선거 3개월 전에는 전부 내려놨습니다.

-그랬죠.

-그다음에 간헐적으로 했죠.

그 3개월만 못하고 있다가 그다음에는 그렇게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쭉 나갔습니다.

했습니다.

-그러셨군요.

이승현 아나운서, 우리 최불암 선생님 모셨는데 최불암 선생님의 제일 특기, 푸하 하는 웃음 있는데 이승현 아나운서 잘하실 수 있죠? 해 보시죠.

-지금 황상무 앵커께서 해 주셨는데 선생님께서 앞에 계셔서 제가 참 이걸 한다는 게 민망하고 쑥스럽지만.

-우리 이승현 아나운서 흉내를 잘 냅니다.

-감정을 잡은 거예요?

-잘 안 되는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

-손이 입으로 가야 되는데 손이 안 갔어요.

-그래서 저희가 제대로 따라하시는 분들 화면으로 정리해 봤습니다.

함께 보시죠.

-들어가서 확인 한번 해 보시죠.

파하.

최불암 선생님.

-틀렸어.

손이 올라가야 하는데.

-박명수.

-빌딩이 높을수록 그림자는 길어지지.

어쩐 일이야?

-어서 오십시오, 수사반장님.

-여기도 손이 안 올라가세요.

별말씀을.

-웃어주시고.

-유동근 씨까지.

-손이 올라가야 됩니까?다시 한 번 보여주시죠.

-저희가 안방을 쓰고 있는데 어머니를 안방으로 모시려고 하는데 죽어도 안 하세요.

-전원일기에서?

-네, 전원일기에서.

옆방을 쓰시는데 이제 김혜자 씨가 제 부인 아니에요.

그런데 재미있으면 웃고, 큰 소리로.

쉿.

어머니가 외로우시지, 우리 웃음소리 들으면.

행복도 같이 나눠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웃음 좀 자제합시다, 약속을 해가지고 우리 집사람은, 김혜자 씨는 웃지 않기로 하고.

호호호 입고 닫고.

나는 재미있으면 파하~.

웃음소리를 그래서 파하라고 했죠.

-그러니까 그 웃음에도 효심이 배어 있는 웃음이다 이렇게 봐야겠네요?

-그건 작가가 써주지 않았으니까 저도 어머니를 잃고 이러면서 스스로 느껴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면 연기도 스스로의 경험이 묻어나서 그것을 소위 해석을 하셔서 연기를 하신 거네요?

-그렇죠.

연기에 도움이 되겠죠.

-이제 저희들이 파하~ 웃음도 나눠봤는데 최불암 시리즈라는 것도 굉장히 유행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학교에서 교직을 그만두었지만 박동규 씨가 박목월 씨 아드님이.

-서울대 교수 하시던.

-제 친구인데 야, 네 얘기가 학교에서 돈다 그래요.

무슨 얘기인데 그랬더니 너무너무 재미있어.

뭐 하나 해 봐라 그랬더니 야, 네가 붕어빵을 굽고 있대요.

그런데 금동이가 대학을 들어가게 됐는데 학적부를 쓰지 않습니까? 쓰러 왔는데 아버지 직업을 못 쓰고 아버지한테 와서 짜증을 부리는 거예요.

아버지 직업을 쓰려고 하니까 붕어빵장사라고 써야 돼 그러니까 붕어빵 장사가 어떠냐.

아버지는 이러지만 자식으로서는 좀 그게 좀 싫었겠죠.

그래서 아버지가 고민을 이렇게 하더니 야,수산업이라고 써.

얼마나 기지가 있어요.

그렇죠? 그냥 금동이가 끄덕거리고 수산업이라고 썼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때 그런 최불암 시리즈가 아주 유행을 했었어요.

그래서 그야말로 국민들을 울리고 웃기고 그렇게 해 왔던 정말 국민배우인데, 최근에는 저희 KBS에서 한국인의 밥상 이걸 좀 계속하시면서 다른 면모를 보이고 계세요.

-한국인의 밥상은 우리 음식문화뿐만 아니라 여러 문화적 상식도 그 안에 들어가 있고 또 인문학적 요소도 그 안에 들어가 있고 해서 참으로 저에게는 소중한 프로그램입니다.

지금 4년 딱 돼가는군요.

12월 말이면 4년입니다.

-시청률이 교양프로그램인데도 두자릿수 이상이어서 저희들이 사실 궁금한 게 보면서 이건 주인공의 역할이 정말 큰 것 같다 그렇게 생각을 하거든요.

-아니요.

-최불암 선생님 아니면 과연 그 프로그램이.

-그건 황상무님이 하셔도 그건 그렇게 돼요.

왜냐하면 워낙 포맷이 좋습니다.

그리고 진짜 한국을.

저는 배우로서 주장이 있다면 한국인이 어떤 사람인가 이걸 한번 규명해 보고 싶은데, 배우라는 게 결국 사람을 규명하는 작업자거든요.

그런데 우리 음식을 한번 규명해 보는데 이에 따라서 한국인이 생성될 수 있다는 느낌을 가져봤어요.

이 배역은 나한테 참 잘 맞는 배역이다.

열심히 해서 관객들의 식사부터 또는 일종의 말하자면 마을을 형성한 지방문화라든지 경치라든지 이런 풍광 이런 것들이 더 어우러져서 한국인의 정체성이 분명해지지 않을까 하는 의미로 시작을 했는데 마침 시청자 여러분께서 많이 봐주시고 KBS에서도 열심히 명분이 있는 거니까 열심히 해야 된다 하는 주문도 제가 받고 그래서 했습니다.

-한 4년 하시면서 저도 그 프로 아주 애청자입니다마는 가장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으시는 편이 있었으면 어떤 게 있습니까?

-아까 잠깐 김치 먹는 게 나왔는데 우리 어머니가 해 주시던 김치를 우연스럽게 찾았어요.

섬인데.

생선을.

지금은 생선 많이 넣습니다마는 조기, 작은 조기가 있습니다.

그걸 넣은.

그 맛이 이렇게 먹어보는데, 아주머니가 내주신 걸 먹어보고 이게 조기를 넣었죠 그랬더니 네, 조기예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그런데 그 젓가락 들면서 어머니 냄새가 확 나는 거예요.

어떻게 눈물이 나던지.

그 어머니가 해 주시던 그 맛이.

또 인천 바로 제 고향이 난 데는 인천입니다.

그 바로 건너 섬에 들어가서 음식을 만나서 그렇게 김치, 지금 김치 담글 때가 됐습니다마는 김치에 어머니가 들어가 있는지.

또 그 맛이 아직도 살아 있는지, 이런 것들 때문에 보통 가슴이 울먹거리지가 않았어요.

-누구나 그럴 것 같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 맛이 확 느껴질 때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마 다 그런 감정을 느낄 것 같은데 마침 저희들이 화면을 준비를 해 놨거든요.

화면 한번 잠깐 보시죠.

-밴댕이 넣은 거구먼요.

아주 오랜만에 김치 속의 생선을 먹어보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게 저희 어머니 손맛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오래간만에.

-울컥하셔가지고 말씀을 못 이으시는군요.

-보기만 해도 울컥해지네.

-무의도에 들어와서 어머니의 김치 맛을 봅니다.

-이렇게 다니시면서 수많은 우리 김치도 있었습니다마는 밥상 많이 접해 보셨는데,개인적으로 이 맛은 정말 한국 고유의 맛이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이걸 한번 권유해 보고 싶다 하는 게 있으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런데 선조 때부터 개발하셔서 음식을 해먹는 방법부터 다 아시니까 말씀드릴 게 없고.

그런데 우리나라에 나물, 나물이 참 희귀해요.

나물이 먹는 것이 제가 언뜻 생각해도 한 우리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나물이 12가지가 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나물 맛이 그렇게 좋습니다, 사실은.

영양에도 좋고.

그래서 참 귀한.

대한민국에 귀한 나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해먹는 또 방법을 알고 그러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래서 저 지리산 저쪽으로 내려가서 나물 먹으라고, 모두 참 맛있는 것만 먹고 다니고 좋은 거 구경하는 거 언제나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나물을 추천합니다.

-기르는 채소가 아니라 우리 그냥 들과 산에 나는 한국 고유의 토종 풀들.

그게 나물이죠, 그걸 갖다가 해서 먹어보면 좋죠.

-그러니까 저희 선조들 모두 가난했을 때 초근목피로 연명을 했다고 해서 나물이 초근이죠, 초근, 뿌리까지 해서.

나물을 이제 나무껍질을 벗겨가지고 그 안에 하얀 걸 고아서 먹고 그랬으니까.

-특별한 양념도 아니고 삶아가지고 그냥 간장이나.

조물조물해서.

-얼마나 맛있는지 지방 내려가면 나물이 참 먹거리가 좋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부인 하면 김민자 선생님, 김민자 선생님이 해 주시는 밥상하고 다니시면서 맛본 밥상하고 어느 게 더 낫습니까?

-저희 집사람도 이 한국인의 밥상을 빼놓지 않고 보죠.

적고 이래요.

그런데 그 맛이 나오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어떤 때는 더 맛있고 어떤 때는 더 못하고 이럴 때도 있죠.

똑같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모님 얘기가 나왔으니까 여쭤보겠습니다.

일반 우리 국민들 사이에는 사모님이 김민자 선생님이 아니라 김혜자 선생님인 줄 아십니다.

-그렇게 보시는 분은 없어요.

-23년이라는 세월을 김혜자 씨하고 같이 했으니까.

옛날에는 한 20년 전에는 그런 얘기가 나왔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이 같은 배우신데 배역상으로 보면 부인으로서는 혹시 김혜자 씨가 더 어울리는 것 아닌가 싶은데.

-아니에요.

-그건 아닙니까? 아니,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저희들이 조사를 했는데 평생 딱 한 번 스캔들이 있으셨는데 그 스캔들이 지금 부인 김민자 선생님하고 결혼하기 직전에 무슨 사귄다,그거였다.

그렇습니까?

-결혼 전에는 김혜자 씨 못 만났는데요.

-아니, 김민자 선생님.

김민자 선생님이랑 연애한다 그 기사가 한 번 난 게 유일한 스캔들이다.

-잡지로.

-지금 저 사진인 것 같아요.

-이 사진 맞습니다.

이게 옆에 가서 슬며시 기자 보고 찍으라고.

그래서 저걸 방송국을 저 사람 때문에 올라갔습니다.

저는 연극만 하기로 결심했는데, 저도 결혼할 날짜가 돼어.

날짜가 아니고 나이가 돼가지고 그러니까 너한테는 김민자가 제일 맞을 것이다, 그래서 방송국에서 역할 프러포즈가 왔을 때 일부러 가서 저런 시늉을 하고 김혜자를 아내로 만들었죠.

-김민자를, 김혜자가 아니라.

신혼여행 사진이군요.

-1970년도입니다.

저게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으로 경부선 뚫은.

-경부고속도로.

-그걸 기념하기 위해서.

-기념사진을.

-차를 타고 내려갔죠.

-정말 로맨티스트시더라고요.

이번에 훈장 받으시면서도 우리 아내 어디 갔나, 김민자 여사를 찾으시는 모습이.

-왔는데 보이지 않아가지고 그때는 누가 옆에서 여기 있다고 그래서 감사하다고 그랬죠.

-죄송한 질문인데, 죄송합니다마는 아니,그런 국민배우 당대 톱스타셨는데 어떻게 다른 스캔들이 하나도 없습니까? 소위 대시하는 젊은 여배우들도 많이 있었을 법한데 왜 그러셨는지요?-그렇죠.

아름다움이라는 건 눈에 벗어나는 건 없으니까 보고 느끼는 건 있죠.

그렇지만 자신을 다스리는 게 문제죠.

못 다스리면 잘못되는 거고.

-아니, 누가 말이죠.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사실은 젊어서부터 노인 배역 전문배우시다 보니까.

-그것도 있어요, 참.

-그래서 아무도 젊은 여인들이 최 선생님한테 다가가지를 않았다.

-접근을 못하는 거죠.

항상 아버지로 보고 할아버지로 보고 그러니까.

저는 평생 노역만 했습니다.

언제 좀 젊은 역을 한 번 하니까 최불암 변신하다 그랬어요.

변신은 아닌데, 그게 원모습인데 변신자로 오해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멜로드라마 주인공도 하셨죠? 그전에 왜 그대 그리고 나에 보면.

-바로 그 얘기를 드리는 겁니다.

그때 처음 그런 애정드라마를 했었죠.

-그때 멋있었었습니다.

중견 남성으로서 아령도 좀 하시고.

배도 타시는 선장 모습으로 나오시고.

-비린내 나는 모습.

-50년 배우 인생을 살아오셨는데 배우 최불암에게 연기란 무엇입니까?

-연기란 삶의 형태를 규명하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수학적이건 과학적이건 분석을 잘해가지고 내 몸을 그 사람 몸으로 만들어주는 일이죠.

그러니까 그 사람의 영혼까지도 나한테 빌려온다고 하니까.

그 사람이 돼버리는 작업이죠, 작업자.

사실은 큰 예술가가 돼야 됩니다.

예술가라는 건 제가 연기자를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더 이상의 혼이 정말 표현될 수 있도록 저는 우리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가 이것이 내 모습에서 나와야 되고.

아직 뭐 부족하고 또 많은 서적을 봐도 한국인이 선비정신이 있고 질박함 이런 건 표현되어도 정말 한국인의 모습이 어느 남자일까.

어떤 한국인이 진짜 우리 사나이일까, 이런 것들을 그냥 걱정만 하고 세월을 다 잃었습니다.

-연기를 통해서 참한국인의 모습을 구현해 보고 싶으시다.

-그렇습니다.

-최근에 그 얘기 하나 더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사회봉사활동 많이 하신다고 했는데 잠깐.

저희들이 그런 게 아니라 하시는 일이 워낙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해서 잠깐 좀 소개를 하시는 걸로.

그래야 또 저희들이 많은 도움이 돼서 옆에서 도와도 드리고 싶고요.

-고맙습니다.

저는 어린이재단 일을 보고 있습니다.

1981년도에 시작을 했으니까 삼십 몇 년이 됐죠.

그런데 내가 앞장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니까 뒤에 좇아오는 우리 후세들이 좋고 아름다운 터전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해서 어린이재단에 30년 넘게 봉사죠,봉사입니다.

봉사를 하고 있고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제로캠프입니까?

-제로캠프는 아니고요.

제로캠프는 조금 성년이 된 요즘 사회문제가 상당히 심각합니다.

가출한 아이들 또 책상을 버리고 싶은 아이들 이래가지고 혼돈이 오기 시작하는데 요즘 어느 언론사에서도 시리즈로 하고 있는데 참 걱정해 줘야 될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선 교도소부터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될 것 같아서 그래서 연극으로 아이들을 교화, 교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해서 신경을 썼더니 마침 법무부에서 참 우리가 늘 하는데 그런 교육방법이 있다면 한번 해 봐라 그래가지고 오늘 마침 제가 황교안 장관이 저한테 진짜 프러포즈를 하셨어요.

그래서 담당을 해서 우리 교도소 애들한테 밝은 빛을 던져줘라.

그래서 그 임무를 맡고 있고 예산 같은 건 없습니다마는 독지가가 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 아이들을 세 번째 연극을 올립니다.

-알겠습니다.

어린이 후원사업도 하시고 또 청소년 교화사업도 하시고 한국인의 모습, 어떤 것이 한국인의 삶인지 꼭 좀 구현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정말 더 좀 얘기하고 싶은 게 많은데.

-시간 관계상 여기까지만.

-제가 진단을 잘 못 받은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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