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중국 ‘암 마을’을 아시나요?

입력 2014.11.29 (07:01) 수정 2014.11.2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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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
(上有天堂 下有蘇杭)

중국 남방지역의 대표적인 도시 쑤저우와 항저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말입니다. 항저우는 중국에서도 자연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지금은 공업이 발달한 동부연안지역에 위치한 저장성의 성도이기도 합니다. 중국 문명이 찬란하게 꽃피던 12세기에는 남송(1127∼1279)의 수도였습니다. 바다에 가까운 지리적 장점과 견직물 산업이 활성화돼 비단으로 유명한 상업 도시였습니다. 이 무렵 중국을 방문한 이탈리아의 탐험가이자 상인인 마르코 폴로는 항저우의 아름다움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문명의 도시란 오랜 명성과 달리 지금 항저우에는 경제 성장의 그늘이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급속한 산업화와 이로 인한 환경오염으로 비극적인 사회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른바 ‘암 마을’의 탄생입니다.
지난 11월 17일 항저우시 샤오산구 우리촌(杭州市 蕭山區 塢里村)을 찾았습니다. 항저우 샤오산 공항에서 차로 10분, 도심에서는 1시간 정도 달리면 도착합니다. 마을 바로 옆에는 항저우의 젖줄이자 어머니의 강으로 불리는 ‘첸탕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인구 천여 명의 평화로운 어촌 마을이었던 우리촌은 최근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암마을로 변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 우리촌이 암 마을이 된 사연은?

우리촌에 암이란 재앙이 닥쳐온 것은 1992년 마을 바로 옆에 난양 공업단지가 조성되고서부텁니다. 공단에는 300여 개에 달하는 염색공장과 화공약품 공장이 들어섰습니다. 중국 최대의 섬유생산지인 항저우 일대에는 방직공장과 염색공장이 특히 많습니다. 문제는 염색과정에서 사용된 염료로 오염된 폐수가 정화처리 되지 않고 바로 첸탄강으로 배출된다는 것입니다.

원래 공단에는 오폐수 정화처리시설이 있지만 정화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아끼기 위해 무단으로 배출하는 것입니다. 특히 인적이 드문 새벽에 오폐수가 집중적으로 배출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배출된 오폐수가 첸탕강을 오염시키고 강물을 이용하는 주민들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난양공단이 들어선 이후 우리촌에서는 원인 모를 암환자들이 속출했습니다. 주민 통계에 의하면 천여 명의 주민 중 2004년까지 이미 60여명이 암으로 사망했고 이후에도 매년 7-8명씩 암으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첸탄강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인 펑무건씨는 2달 전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유리공장 옆에 살던 이융숴 할아버지는 올 6월에 폐암 진단을 받고 8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2002년 남편을 폐암으로 떠나 보내고 2년 전에는 39살이던 외아들마저 간암으로 잃은 딩나이캉 할머니는 지금 혼자 살고 있습니다. 당국은 발병원인을 모른다며 보상을 거부했습니다.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할머니는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습니다.
“환경오염이 원인이에요. 염색공장, 화학공장과 관련이 있어요.
여기 오염은 너무 심해요.”

이런 참혹한 마을의 현실이 외부에 알려진 건 중국의 에린 브로코비치(환경오염으로 마을을 파괴시킨 대기업과의 소송에서 승소해 유명해진 미국 여성)로 불리는 웨이동잉씨(47세)의 노력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의 전화는 도청당하고 행동은 공안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습니다. 마을에 암환자가 발생하기 전까지 그는 평범한 주부로 살아 왔습니다. 어부인 남편 샤오관통씨가 첸탄강에서 잡아오는 고기를 팔아 넉넉하진 않지만 근심없는 생활을 누려 왔습니다. 하지만 공단이 들어선 이후 이들의 생계도 어려워졌습니다. 그 흔하던 물고기가 씨가 마른 듯 사라진 것입니다. 그나마 잡히는 것이라곤 기형어가 대부분입니다. 최근에는 등이 굽은 기형어가 많이 잡히고 있습니다.

암으로 고통속에서 죽어가는 이웃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웨이동잉씨는 지난 10년동안 이른바 ‘죽음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기에는 마을의 오염상황과 암환자의 고통이 낱낱이 기록돼 있습니다. 또 오염된 강물의 샘플을 채취해 관할 환경보호국에 보내고 암에 걸린 주민들의 현황도 조사해 일일이 손도장을 받았습니다. 이를 토대로 유해 공장의 폐쇄와 정화시설 설치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당국에 제출했습니다. 그때마다 당국은 시정을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지켜진 약속은 없습니다.

웨이동잉씨는 분노에 찬 어조로 말했습니다.
"주민들은 정부 관리들이 마약에 중독된 것 같다고 말해요. 그들은 마약중독이 심해요. 공장이 가동 안되면 돈도 생기지 않으니 마치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돈을 밝혀요. 주민들의 생사는 관심이 없어요.”

■  매년 140만 명이 암으로 사망

중국의 암 마을은 급속한 경제발전과 환경오염이 빚어낸 비극적인 사회현상입니다. 그린피스 베이징지부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 약 400여 곳 이상의 암마을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린피스는 공업화에 따른 심각한 수질과 토양 오염, 이에 대한 당국의 관리감독 부재를 암마을 발생원인으로 지목합니다. 지난해에는 중국 환경보호부도 암마을이 존재한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2013년 1월 발표한 <화학품으로 인한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12.5계획>이란 문건에서 환경부는 “유독화학물질과 대기오염이 많은 지역에서 식수의 위기를 불러왔고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암 마을’이란 심각한 사회문제가 나타났다”고 명시했습니다.

지난 30년간 중국인의 암사망률은 80%나 증가했습니다. 매년 중국에서는 200만 명이 암에 걸리고 그 중 140만 명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중국의 급속한 산업화가 불러온 환경재앙인 암마을. 중국발 스모그가 한반도의 하늘을 뒤덮는 요즘 암마을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볼 일은 아닌 듯 합니다.

11월 29일밤 10시 30분 KBS 1TV <세계는 지금>에서는, 항저우 우리촌이 암마을로 불리게 된 사연을 파헤칩니다.

황진성/KBS 중국지국 베이징PD특파원, hwangj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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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1-29 07:01:05
    • 수정2014-11-29 07:05:06
    취재후·사건후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
(上有天堂 下有蘇杭)

중국 남방지역의 대표적인 도시 쑤저우와 항저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말입니다. 항저우는 중국에서도 자연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지금은 공업이 발달한 동부연안지역에 위치한 저장성의 성도이기도 합니다. 중국 문명이 찬란하게 꽃피던 12세기에는 남송(1127∼1279)의 수도였습니다. 바다에 가까운 지리적 장점과 견직물 산업이 활성화돼 비단으로 유명한 상업 도시였습니다. 이 무렵 중국을 방문한 이탈리아의 탐험가이자 상인인 마르코 폴로는 항저우의 아름다움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문명의 도시란 오랜 명성과 달리 지금 항저우에는 경제 성장의 그늘이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급속한 산업화와 이로 인한 환경오염으로 비극적인 사회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른바 ‘암 마을’의 탄생입니다.
지난 11월 17일 항저우시 샤오산구 우리촌(杭州市 蕭山區 塢里村)을 찾았습니다. 항저우 샤오산 공항에서 차로 10분, 도심에서는 1시간 정도 달리면 도착합니다. 마을 바로 옆에는 항저우의 젖줄이자 어머니의 강으로 불리는 ‘첸탕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인구 천여 명의 평화로운 어촌 마을이었던 우리촌은 최근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암마을로 변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 우리촌이 암 마을이 된 사연은?

우리촌에 암이란 재앙이 닥쳐온 것은 1992년 마을 바로 옆에 난양 공업단지가 조성되고서부텁니다. 공단에는 300여 개에 달하는 염색공장과 화공약품 공장이 들어섰습니다. 중국 최대의 섬유생산지인 항저우 일대에는 방직공장과 염색공장이 특히 많습니다. 문제는 염색과정에서 사용된 염료로 오염된 폐수가 정화처리 되지 않고 바로 첸탄강으로 배출된다는 것입니다.

원래 공단에는 오폐수 정화처리시설이 있지만 정화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아끼기 위해 무단으로 배출하는 것입니다. 특히 인적이 드문 새벽에 오폐수가 집중적으로 배출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배출된 오폐수가 첸탕강을 오염시키고 강물을 이용하는 주민들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난양공단이 들어선 이후 우리촌에서는 원인 모를 암환자들이 속출했습니다. 주민 통계에 의하면 천여 명의 주민 중 2004년까지 이미 60여명이 암으로 사망했고 이후에도 매년 7-8명씩 암으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첸탄강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인 펑무건씨는 2달 전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유리공장 옆에 살던 이융숴 할아버지는 올 6월에 폐암 진단을 받고 8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2002년 남편을 폐암으로 떠나 보내고 2년 전에는 39살이던 외아들마저 간암으로 잃은 딩나이캉 할머니는 지금 혼자 살고 있습니다. 당국은 발병원인을 모른다며 보상을 거부했습니다.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할머니는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습니다.
“환경오염이 원인이에요. 염색공장, 화학공장과 관련이 있어요.
여기 오염은 너무 심해요.”

이런 참혹한 마을의 현실이 외부에 알려진 건 중국의 에린 브로코비치(환경오염으로 마을을 파괴시킨 대기업과의 소송에서 승소해 유명해진 미국 여성)로 불리는 웨이동잉씨(47세)의 노력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의 전화는 도청당하고 행동은 공안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습니다. 마을에 암환자가 발생하기 전까지 그는 평범한 주부로 살아 왔습니다. 어부인 남편 샤오관통씨가 첸탄강에서 잡아오는 고기를 팔아 넉넉하진 않지만 근심없는 생활을 누려 왔습니다. 하지만 공단이 들어선 이후 이들의 생계도 어려워졌습니다. 그 흔하던 물고기가 씨가 마른 듯 사라진 것입니다. 그나마 잡히는 것이라곤 기형어가 대부분입니다. 최근에는 등이 굽은 기형어가 많이 잡히고 있습니다.

암으로 고통속에서 죽어가는 이웃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웨이동잉씨는 지난 10년동안 이른바 ‘죽음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기에는 마을의 오염상황과 암환자의 고통이 낱낱이 기록돼 있습니다. 또 오염된 강물의 샘플을 채취해 관할 환경보호국에 보내고 암에 걸린 주민들의 현황도 조사해 일일이 손도장을 받았습니다. 이를 토대로 유해 공장의 폐쇄와 정화시설 설치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당국에 제출했습니다. 그때마다 당국은 시정을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지켜진 약속은 없습니다.

웨이동잉씨는 분노에 찬 어조로 말했습니다.
"주민들은 정부 관리들이 마약에 중독된 것 같다고 말해요. 그들은 마약중독이 심해요. 공장이 가동 안되면 돈도 생기지 않으니 마치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돈을 밝혀요. 주민들의 생사는 관심이 없어요.”

■  매년 140만 명이 암으로 사망

중국의 암 마을은 급속한 경제발전과 환경오염이 빚어낸 비극적인 사회현상입니다. 그린피스 베이징지부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 약 400여 곳 이상의 암마을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린피스는 공업화에 따른 심각한 수질과 토양 오염, 이에 대한 당국의 관리감독 부재를 암마을 발생원인으로 지목합니다. 지난해에는 중국 환경보호부도 암마을이 존재한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2013년 1월 발표한 <화학품으로 인한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12.5계획>이란 문건에서 환경부는 “유독화학물질과 대기오염이 많은 지역에서 식수의 위기를 불러왔고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암 마을’이란 심각한 사회문제가 나타났다”고 명시했습니다.

지난 30년간 중국인의 암사망률은 80%나 증가했습니다. 매년 중국에서는 200만 명이 암에 걸리고 그 중 140만 명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중국의 급속한 산업화가 불러온 환경재앙인 암마을. 중국발 스모그가 한반도의 하늘을 뒤덮는 요즘 암마을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볼 일은 아닌 듯 합니다.

11월 29일밤 10시 30분 KBS 1TV <세계는 지금>에서는, 항저우 우리촌이 암마을로 불리게 된 사연을 파헤칩니다.

황진성/KBS 중국지국 베이징PD특파원, hwangj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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