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도밍고와 카레라스는 정말 라이벌이었을까?

입력 2014.11.30 (07:40) 수정 2014.12.0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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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은 우리나라의 음악 팬들에게 행복한 주말이었다. 쓰리 테너스, 세계 3대 테너의 전설 가운데 세상을 떠난 파바로티를 제외한 도밍고와 카레라스 두 사람이 동시에 서울에서 공연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일요일에는 세종문화회관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카레라스와 도밍고의 공연이 각각 예정돼 성악팬들을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했다.

'플라시도 도밍고'라는 이름의 스페인어 뜻처럼 말 그대로 <즐거운 일요일 Placid Sunday>이었던 것이다. 비록 카레라스가 저녁에 예정된 공연 직전에 건강상의 이유로 공연을 취소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긴 했지만 도밍고와 카레라스라는 두 성악가가 동시에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다는 것 만으로 많은 음악팬들은 설렘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 두 거장의 동시 내한으로 자연히 이 둘 사이의 관계에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특히 둘이 '라이벌 관계'가 아니냐는 추측? 궁금증?이 많았다.  그래서 카레라스와 도밍고를 하루 간격으로 인터뷰하게 됐을 때 아예 작정한 듯 대놓고 그 질문을 던졌다.

과연 이 둘이 라이벌이 맞는지 아닐지...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두 사람을 조금 비교해보자.

■ 출생

플라시도 도밍고는 1941년 생, 호세 카레라스는 1946년 생으로 둘 다 스페인 출신이다. 그러나 도밍고는 마드리드에서 태어났고(열렬한 레알 마드리드 축구 팬), 카레라스는 바르셀로나가 고향이다. (열렬한 F.C. 바르셀로나 팬)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지방의 주도인데, 카탈루냐 지방은 오랫 동안 스페인과 이질적인 문화 등으로 갈등을 겪어왔고 지금도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 감정으로 피해 의식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카레라스는 처음부터 도밍고를 좋아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 유년기

카레라스와 도밍고가 언제, 어떻게 성악가의 길로 들어섰는지도 궁금했는데, 그래서 두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더니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카레라스는 여섯 살 때 부모님과 영화를 보러 갔는데, 미국의 유명한 테너인 마리오 란자가 주연한 '엔리코 카루소의 일생을 다룬 영화'였다고 한다. 그 영화 속 마리오 란자의 카리스마와 매력에 빠져 그 때부터 영화 속에서 나온 노래들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어린 아이가 성악가가 되겠다는 의지가 어찌나 강했던지 부모님이 일곱 살 때부터 정식으로 음악을 공부하게 해주셨다고 한다. 그 이후로 카레라스는 연주자도 지휘자도 아닌 오직 성악가의 길만 바라보고 달려왔다.

카레라스의 천직이 이렇게 다소 우연한 기회에 운명처럼 발견됐다면 도밍고는 너무나 당연히 성악가가 되는 게 운명지어져 있었다. 도밍고의 말에 따르면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성악가(스페인 뮤지컬인 사르수엘라 가수)이셨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그 분들이 공연하고 노래하는 걸 들으며 자랐고, 그래서 극장에 갈 때마다 '빨리 집에 가서 자자'고 이끄는 부모에게 '조금만 더 있게 해달라'고 조르곤 했다고 한다.

아무튼 이 둘은 모두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성악가가 되고 싶은 꿈과 열정, 그리고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카레라스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어린 나이에 테너로서 일찍 인정을 받으면  그 이후로는 인생에서 탄탄대로가 펼쳐지기 쉽기 때문"에 도밍고와 카레라스는 각각 멕시코와 스페인에서 촉망받는 성악가로, 이후에는 전 세계를 무대로 시대의 테너로 자리매김해나가고 있었다.

■ 새로운 관계

그러던 중 카레라스에게 뜻 밖의 시련이 찾아왔다. 1987년 백혈병에 걸린 것이다. 당시 의사의 말로는 '살아날 확률이 1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는데, 어쨌든 카레라스는 병을 이기고 기적처럼 살아났다. 한국에서 많은 언론들이 이미 카레라스에게(카레라스가 도밍고보다 서울에 사흘 먼저 도착했다.) 도밍고와 라이벌 관계가 아닌지 물었기 때문에 나는 질문을 조금 달리할 수 밖에 없었다. '도밍고와 라이벌 관계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 어떤지' 다소 열린 질문을 했더니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라면서도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일례를 들려주었다. 카레라스가 백혈병에 걸려 미국 씨애틀에 있는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을 때 도밍고가 직접 거기까지 찾아와 병문안을 와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카레라스는 그런 친절은  도밍고와 카레라스가 벌써 직업적 동료 이상의 관계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도밍고가 당시 절망에 빠져있던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자신을 응원해주고 있는데 대해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도밍고를 만나 카레라스가 들려준 일화를 공유하면서 그 때가 기억나느냐고 물었더니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는 답이 나왔다. 그러면서 도밍고는 카레라스가 병을 이기고 다시 노래를 하게 되어서 우리들에게 이토록 큰 기쁨을 선사해주고 있다는 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진정으로 감사해 했다. 자신이 카레라스가 입원해있는 병원에 찾아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으며,  이후로 쓰리 테너스가 함께 공연까지 하게 되었으니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 아니냐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도 같은 날, 함께 서울에 있게 되어 기쁘고, 다만 서로 다른 장소에서 공연을 하게 돼 한 무대에 설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도밍고는 이 정도로 답변을 마무리했지만, 사실은 그 보다 훨씬 더한 친절과 배려가 있었음을 이후 둘의 관계를 조사해보다 알게 되었다.

■ 도밍고와 카레라스의 우정



[영상 출처 = 유튜브]

두 사람을 만나본 나의 느낌으로도 이 둘은 한 때 선의의 경쟁을 벌였을지는 모르겠으나, 서로 첨예한 경쟁을 벌였을 것 같지는 않았다. 도밍고가 "카레라스처럼 재능 있는 성악가를 잃는 것은 인류에게 있어 큰 손실"이라고 말하며 병상의 카레라스를 보이게, 보이지 않게 도왔다고 알려진 것처럼 그 어디에서도 그런 느낌은 전해지지 않았다. 나이가 더 어리고, 또 지역적으로 아픔을 지닌 카레라스가 한 때 그런 느낌을 가졌을 수는 있겠다고 추측은 가능했으나, 최소한 백혈병에 걸렸을 때 도밍고의 전폭적인 지원과 배려를 받고 병상에서 일어난 카레라스는 도밍고에게 그 이전에 가졌던 감정에 대한 미안함까지 더해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 은퇴 계획

도밍고의 말처럼 이 둘이 함께 무대에 선 것을 보지 못한 것은 정말 안타깝다. 비단 투 테너스의 공연을 볼 수 없어서 뿐만이 아니라 각각 74세와 69세인 이들의 나이를 고려하면 말이다. 조심스레 은퇴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둘은 겸연쩍은 듯 답을 했다.

카레라스: "구체적인 은퇴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아요. 몸 상태도 좋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즐겁고요. 좀 이기적인 생각인지는 몰라도 저는 지금 이 일이 좋고, 세계를 돌며 공연하는 게 좋아요. 공연할 때 느끼는 그 긴장감이 아직도 좋고, 그래서 적어도 몇 년 동안은 계속 이렇게 노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도밍고: "은퇴요?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결국 목소리가 따라줘야 되는 건데, 언제 목소리가 안 따라줄 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제 제 나이에는 계약을 할 때도 '그 때까지 노래를 할 수 있다면'이라는 전제 하에 계약을 체결해요. 제가 앞으로 3개월을 더 노래할 수 있을지, 3년을 더 노래할 수 있을지, 아니면 3일이 될 지 알 수 없죠. 그래서 그냥 저의 바람은 그게 언제까지가 되었든 청중들이 공연장에서 제 노래를 듣고 나갈 때 행복하게 극장을 나설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거에요."

나이가 주는 깊이 때문이었을까? 어느 정도의 두려움과 초연함이 함께 느껴졌다.

다시 태어나도 노래를 하고 싶고, 그럼으로써 남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고,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고 싶다(I hope I can arrive to their heart)'고- 플라시도 도밍고 '단순히 가수로서라기 보다는 조금 더 깊이 있게, 감정을 전달하는 한 명의 노래하는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다 (I would not like to be remembered as a tenor, I want to be remembered as a human being that sings. I try to transmit emotions)'고-호세 카레라스 말 하는 이 두 거장이 다시 우리나라에 와서 한 무대에 서는 걸 볼 수 있기를, 이 둘을 직접 만나고 나서는 정말로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평생을 노래하며 살았고, 노래가 전부인 사람에게 이번처럼 노래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건 너무 가혹할 테니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서 자신들의 바람대로 오래오래 그 행복을 주위에 나눠줄 수 있기를 기도한다.

■ 호세 카레라스 “노래하는 인간으로 남고 싶어요”



■ 플라시도 도밍고가 말하는 성공의 비결



P.S. 호세 카레라스와 플라시도 도밍고 각각의 이야기는 다음 취재 후에서 공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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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도밍고와 카레라스는 정말 라이벌이었을까?
    • 입력 2014-11-30 07:40:04
    • 수정2014-12-02 20:40:08
    취재후·사건후
지난 주말은 우리나라의 음악 팬들에게 행복한 주말이었다. 쓰리 테너스, 세계 3대 테너의 전설 가운데 세상을 떠난 파바로티를 제외한 도밍고와 카레라스 두 사람이 동시에 서울에서 공연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일요일에는 세종문화회관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카레라스와 도밍고의 공연이 각각 예정돼 성악팬들을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했다.

'플라시도 도밍고'라는 이름의 스페인어 뜻처럼 말 그대로 <즐거운 일요일 Placid Sunday>이었던 것이다. 비록 카레라스가 저녁에 예정된 공연 직전에 건강상의 이유로 공연을 취소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긴 했지만 도밍고와 카레라스라는 두 성악가가 동시에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다는 것 만으로 많은 음악팬들은 설렘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 두 거장의 동시 내한으로 자연히 이 둘 사이의 관계에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특히 둘이 '라이벌 관계'가 아니냐는 추측? 궁금증?이 많았다.  그래서 카레라스와 도밍고를 하루 간격으로 인터뷰하게 됐을 때 아예 작정한 듯 대놓고 그 질문을 던졌다.

과연 이 둘이 라이벌이 맞는지 아닐지...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두 사람을 조금 비교해보자.

■ 출생

플라시도 도밍고는 1941년 생, 호세 카레라스는 1946년 생으로 둘 다 스페인 출신이다. 그러나 도밍고는 마드리드에서 태어났고(열렬한 레알 마드리드 축구 팬), 카레라스는 바르셀로나가 고향이다. (열렬한 F.C. 바르셀로나 팬)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지방의 주도인데, 카탈루냐 지방은 오랫 동안 스페인과 이질적인 문화 등으로 갈등을 겪어왔고 지금도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 감정으로 피해 의식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카레라스는 처음부터 도밍고를 좋아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 유년기

카레라스와 도밍고가 언제, 어떻게 성악가의 길로 들어섰는지도 궁금했는데, 그래서 두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더니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카레라스는 여섯 살 때 부모님과 영화를 보러 갔는데, 미국의 유명한 테너인 마리오 란자가 주연한 '엔리코 카루소의 일생을 다룬 영화'였다고 한다. 그 영화 속 마리오 란자의 카리스마와 매력에 빠져 그 때부터 영화 속에서 나온 노래들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어린 아이가 성악가가 되겠다는 의지가 어찌나 강했던지 부모님이 일곱 살 때부터 정식으로 음악을 공부하게 해주셨다고 한다. 그 이후로 카레라스는 연주자도 지휘자도 아닌 오직 성악가의 길만 바라보고 달려왔다.

카레라스의 천직이 이렇게 다소 우연한 기회에 운명처럼 발견됐다면 도밍고는 너무나 당연히 성악가가 되는 게 운명지어져 있었다. 도밍고의 말에 따르면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성악가(스페인 뮤지컬인 사르수엘라 가수)이셨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그 분들이 공연하고 노래하는 걸 들으며 자랐고, 그래서 극장에 갈 때마다 '빨리 집에 가서 자자'고 이끄는 부모에게 '조금만 더 있게 해달라'고 조르곤 했다고 한다.

아무튼 이 둘은 모두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성악가가 되고 싶은 꿈과 열정, 그리고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카레라스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어린 나이에 테너로서 일찍 인정을 받으면  그 이후로는 인생에서 탄탄대로가 펼쳐지기 쉽기 때문"에 도밍고와 카레라스는 각각 멕시코와 스페인에서 촉망받는 성악가로, 이후에는 전 세계를 무대로 시대의 테너로 자리매김해나가고 있었다.

■ 새로운 관계

그러던 중 카레라스에게 뜻 밖의 시련이 찾아왔다. 1987년 백혈병에 걸린 것이다. 당시 의사의 말로는 '살아날 확률이 1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는데, 어쨌든 카레라스는 병을 이기고 기적처럼 살아났다. 한국에서 많은 언론들이 이미 카레라스에게(카레라스가 도밍고보다 서울에 사흘 먼저 도착했다.) 도밍고와 라이벌 관계가 아닌지 물었기 때문에 나는 질문을 조금 달리할 수 밖에 없었다. '도밍고와 라이벌 관계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 어떤지' 다소 열린 질문을 했더니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라면서도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일례를 들려주었다. 카레라스가 백혈병에 걸려 미국 씨애틀에 있는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을 때 도밍고가 직접 거기까지 찾아와 병문안을 와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카레라스는 그런 친절은  도밍고와 카레라스가 벌써 직업적 동료 이상의 관계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도밍고가 당시 절망에 빠져있던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자신을 응원해주고 있는데 대해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도밍고를 만나 카레라스가 들려준 일화를 공유하면서 그 때가 기억나느냐고 물었더니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는 답이 나왔다. 그러면서 도밍고는 카레라스가 병을 이기고 다시 노래를 하게 되어서 우리들에게 이토록 큰 기쁨을 선사해주고 있다는 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진정으로 감사해 했다. 자신이 카레라스가 입원해있는 병원에 찾아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으며,  이후로 쓰리 테너스가 함께 공연까지 하게 되었으니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 아니냐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도 같은 날, 함께 서울에 있게 되어 기쁘고, 다만 서로 다른 장소에서 공연을 하게 돼 한 무대에 설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도밍고는 이 정도로 답변을 마무리했지만, 사실은 그 보다 훨씬 더한 친절과 배려가 있었음을 이후 둘의 관계를 조사해보다 알게 되었다.

■ 도밍고와 카레라스의 우정



[영상 출처 = 유튜브]

두 사람을 만나본 나의 느낌으로도 이 둘은 한 때 선의의 경쟁을 벌였을지는 모르겠으나, 서로 첨예한 경쟁을 벌였을 것 같지는 않았다. 도밍고가 "카레라스처럼 재능 있는 성악가를 잃는 것은 인류에게 있어 큰 손실"이라고 말하며 병상의 카레라스를 보이게, 보이지 않게 도왔다고 알려진 것처럼 그 어디에서도 그런 느낌은 전해지지 않았다. 나이가 더 어리고, 또 지역적으로 아픔을 지닌 카레라스가 한 때 그런 느낌을 가졌을 수는 있겠다고 추측은 가능했으나, 최소한 백혈병에 걸렸을 때 도밍고의 전폭적인 지원과 배려를 받고 병상에서 일어난 카레라스는 도밍고에게 그 이전에 가졌던 감정에 대한 미안함까지 더해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 은퇴 계획

도밍고의 말처럼 이 둘이 함께 무대에 선 것을 보지 못한 것은 정말 안타깝다. 비단 투 테너스의 공연을 볼 수 없어서 뿐만이 아니라 각각 74세와 69세인 이들의 나이를 고려하면 말이다. 조심스레 은퇴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둘은 겸연쩍은 듯 답을 했다.

카레라스: "구체적인 은퇴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아요. 몸 상태도 좋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즐겁고요. 좀 이기적인 생각인지는 몰라도 저는 지금 이 일이 좋고, 세계를 돌며 공연하는 게 좋아요. 공연할 때 느끼는 그 긴장감이 아직도 좋고, 그래서 적어도 몇 년 동안은 계속 이렇게 노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도밍고: "은퇴요?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결국 목소리가 따라줘야 되는 건데, 언제 목소리가 안 따라줄 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제 제 나이에는 계약을 할 때도 '그 때까지 노래를 할 수 있다면'이라는 전제 하에 계약을 체결해요. 제가 앞으로 3개월을 더 노래할 수 있을지, 3년을 더 노래할 수 있을지, 아니면 3일이 될 지 알 수 없죠. 그래서 그냥 저의 바람은 그게 언제까지가 되었든 청중들이 공연장에서 제 노래를 듣고 나갈 때 행복하게 극장을 나설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거에요."

나이가 주는 깊이 때문이었을까? 어느 정도의 두려움과 초연함이 함께 느껴졌다.

다시 태어나도 노래를 하고 싶고, 그럼으로써 남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고,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고 싶다(I hope I can arrive to their heart)'고- 플라시도 도밍고 '단순히 가수로서라기 보다는 조금 더 깊이 있게, 감정을 전달하는 한 명의 노래하는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다 (I would not like to be remembered as a tenor, I want to be remembered as a human being that sings. I try to transmit emotions)'고-호세 카레라스 말 하는 이 두 거장이 다시 우리나라에 와서 한 무대에 서는 걸 볼 수 있기를, 이 둘을 직접 만나고 나서는 정말로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평생을 노래하며 살았고, 노래가 전부인 사람에게 이번처럼 노래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건 너무 가혹할 테니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서 자신들의 바람대로 오래오래 그 행복을 주위에 나눠줄 수 있기를 기도한다.

■ 호세 카레라스 “노래하는 인간으로 남고 싶어요”



■ 플라시도 도밍고가 말하는 성공의 비결



P.S. 호세 카레라스와 플라시도 도밍고 각각의 이야기는 다음 취재 후에서 공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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