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돈으로 사고 파는 ‘최고 존엄’

입력 2014.12.04 (11:53) 수정 2014.12.0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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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와 인민의 생명 ‘최고존엄’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있어서 최고존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 운명의 전부”

『우리 군대와 인민은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광란적인 《인권》소동을 절대로 용서치 않을 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성명(11.23)

“최고존엄을 자기의 생명보다 더 귀중히 여기는 우리 군대와 인민”
『남조선당국은 반공화국삐라살포란동을 즉시 중지시켜야 한다』 조선중앙통신(11.10)

북한의 공식 성명과 보도가 밝힌 ‘최고 존엄’에 대한 설명이다.
지난달 18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되자 북한은 이를 선전포고로 받아들이며 4차 핵실험을 비롯한 초강경 대응전을 펼치겠다고 위협했다. 결의안에 북한 인권 최고책임자 처벌을 권고하는 내용이 담겨 감히 자신들의 최고존엄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핵심 측근 3인방의 10월 초 인천 방문 당시 남북이 전격 합의했던 제2차 고위급접촉이 무산된 배경에도 ‘최고 존엄’이 있다. 최고 존엄을 비방하는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를 우리 정부가 방관하고 심지어 뒤에서 지원했다고 북한은 주장했다.

북한은 최고존엄 모독에 대해서는 그 상대가 누구이든 최고 수준의 표현을 동원해 위협을 가한다. “무자비하게 징벌” “추호도 묵과하지 않고” “극단적인 조치” 등이 공식 성명에 나온 표현들이다. 최고존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민의 생명이자 운명이기 때문이다.

■‘최고 존엄’을 모신 ‘초상 휘장’



북한 사람 모두는 이 최고 존엄을 항상 가슴에 모시고 다닌다. 현재의 최고존엄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부터 소년단원까지 ‘초상휘장’이라 부르는 배지를 가슴에 단다. 하지만 신분에 따라 착용하는 배지의 종류가 다르다. 가장 고급 배지는‘쌍상’이다. 노동당기 안에 김일성 수령과 김정일 대원수, 2명의 얼굴을 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김 부자가 군복을 입은 쌍상은 군인들용으로, 사단장이나 사단 정치위원 이상이 달 수 있다. 김일성이 양복을 입은 쌍상은 ‘태양상’이라고도 불리는데,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등 상위 5% 이내 당 고위 간부가 착용한다.

그 다음 김일성 혼자만의 얼굴이 담긴 ‘김일성 단상’이 있다. 대원수복 단상은 군 연대장이나 대대장, 양복 단상은 당 중간 간부용이다. ‘김정일 단상’은 주로 보위부나 군 검찰 관계자들이 착용한다.

일반 주민들은 ‘목란상’을 다는데, 모란꽃 받침이 있는 원 안에 김일성 얼굴이 담겨 있다. 청년동맹원용인 ‘청년전위상’, 소학교 학생용인 ‘소년단휘장’도 있다. 초상휘장은 충성심의 표시이기 때문에, 이를 달지 않고 외출할 경우에는 거리 곳곳에 있는 규찰대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최고존엄’을 사고팔다니…

흥미로운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인민의 생명’ 최고존엄을 모신 초상휘장을 몰래 내다파는 것이다. 시작은 군 간부 부인들이 했다고 한다. 분실과 파손에 대비해 공급되는 배지 여유분을 처음에는 주변에 선물로 줬는데, 받은 사람이 사례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맛들인 부인들이 아예 돈을 받고 장마당(시장)에 내다팔기 시작했다. 배지가 곧 부와 권력을 나타내기 때문에 돈이 있는 사람들이 자기 과시를 위해 고급 배지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수요가 증가하다보니 쌍상은 현재 개당 중국돈 100위안(북한돈 13만원, 우리돈 2만원 정도)까지 올랐다고 한다.

시장에는 ‘짝퉁’ 밀거래도 생겨났다. 사람들이 돈벌이를 위해 배지를 자체 제작해 팔기 시작한 것이다. 제작 기술이 없는 국경 쪽에서는 중국에 대량 제작을 의뢰해 밀수를 해와 팔기 시작했다. 짝퉁 배지는 정품의 절반 가격인 50위안에 팔린다고 한다.

■화난 ‘최고존엄’, 근절 지시



배지 밀거래가 성행하자 김정은 제1위원장이 나섰다. KBS가 입수한 북한군 내부 문건을 보면, 김정은은 정중성이 보장되지 못한 초상휘장(가짜 배지)을 사서 모시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전 군에 지시했다. 또 군과 가족, 주민들의 배지 착용 실태를 전반적으로 조사해 지위에 맞는 배지를 착용하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최고존엄을 돈을 주고 사고파는 행위를 묵과할 수 없다는 현 최고존엄의 강력한 조치이다.

■김일성 시계, 훈장…돈 되는 건 다 판다

밀거래되는 건 초상휘장만이 아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이름이 새겨진 ‘김일성 시계’ ‘김정일 시계’도 사고판다. 이들 존함 시계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농민과 노동자, 교원 등 각 부문 우수 일군들이나 현지지도 접견자들에게 포상의 의미로 선물한 것이다. 스위스제 고급시계다. 그런데 가문의 보물로 소중히 간직해야 할 이 귀한 선물도 생계를 위해 시장에 내다판다. 훈장과 메달도 같은 이유로 밀매된다. 이 때문에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은 이런 현상을 중대 사건으로 규정하고, 시계나 훈장 등을 수여받았거나 부모.친척으로부터 물려받은 현황을 빠짐없이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또 사고파는 현상이 적발되면 철저히 해명을 받고 문제 있는 대상을 당적.법적으로 엄중히 조사 처리하라고 강조했다.



■돈에 밀린 최고존엄


북한은, 인민에게 있어 최고존엄은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생활이 궁핍한 주민들에게 최고존엄의 가치보다는 돈이 더 귀중한 것 같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심장에 최고존엄을 모시도록 했지만, 주민들의 가슴에서 존경심은 사라지고 있다. 돈벌이와 자기과시가 존경심이 떠난 자리를 메우고 있다.

☞바로가기[뉴스9] 김일성·김정일 배지 밀거래…“근절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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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돈으로 사고 파는 ‘최고 존엄’
    • 입력 2014-12-04 11:53:20
    • 수정2014-12-04 16:06:41
    취재후·사건후
■군대와 인민의 생명 ‘최고존엄’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있어서 최고존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 운명의 전부”

『우리 군대와 인민은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광란적인 《인권》소동을 절대로 용서치 않을 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성명(11.23)

“최고존엄을 자기의 생명보다 더 귀중히 여기는 우리 군대와 인민”
『남조선당국은 반공화국삐라살포란동을 즉시 중지시켜야 한다』 조선중앙통신(11.10)

북한의 공식 성명과 보도가 밝힌 ‘최고 존엄’에 대한 설명이다.
지난달 18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되자 북한은 이를 선전포고로 받아들이며 4차 핵실험을 비롯한 초강경 대응전을 펼치겠다고 위협했다. 결의안에 북한 인권 최고책임자 처벌을 권고하는 내용이 담겨 감히 자신들의 최고존엄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핵심 측근 3인방의 10월 초 인천 방문 당시 남북이 전격 합의했던 제2차 고위급접촉이 무산된 배경에도 ‘최고 존엄’이 있다. 최고 존엄을 비방하는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를 우리 정부가 방관하고 심지어 뒤에서 지원했다고 북한은 주장했다.

북한은 최고존엄 모독에 대해서는 그 상대가 누구이든 최고 수준의 표현을 동원해 위협을 가한다. “무자비하게 징벌” “추호도 묵과하지 않고” “극단적인 조치” 등이 공식 성명에 나온 표현들이다. 최고존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민의 생명이자 운명이기 때문이다.

■‘최고 존엄’을 모신 ‘초상 휘장’



북한 사람 모두는 이 최고 존엄을 항상 가슴에 모시고 다닌다. 현재의 최고존엄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부터 소년단원까지 ‘초상휘장’이라 부르는 배지를 가슴에 단다. 하지만 신분에 따라 착용하는 배지의 종류가 다르다. 가장 고급 배지는‘쌍상’이다. 노동당기 안에 김일성 수령과 김정일 대원수, 2명의 얼굴을 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김 부자가 군복을 입은 쌍상은 군인들용으로, 사단장이나 사단 정치위원 이상이 달 수 있다. 김일성이 양복을 입은 쌍상은 ‘태양상’이라고도 불리는데,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등 상위 5% 이내 당 고위 간부가 착용한다.

그 다음 김일성 혼자만의 얼굴이 담긴 ‘김일성 단상’이 있다. 대원수복 단상은 군 연대장이나 대대장, 양복 단상은 당 중간 간부용이다. ‘김정일 단상’은 주로 보위부나 군 검찰 관계자들이 착용한다.

일반 주민들은 ‘목란상’을 다는데, 모란꽃 받침이 있는 원 안에 김일성 얼굴이 담겨 있다. 청년동맹원용인 ‘청년전위상’, 소학교 학생용인 ‘소년단휘장’도 있다. 초상휘장은 충성심의 표시이기 때문에, 이를 달지 않고 외출할 경우에는 거리 곳곳에 있는 규찰대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최고존엄’을 사고팔다니…

흥미로운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인민의 생명’ 최고존엄을 모신 초상휘장을 몰래 내다파는 것이다. 시작은 군 간부 부인들이 했다고 한다. 분실과 파손에 대비해 공급되는 배지 여유분을 처음에는 주변에 선물로 줬는데, 받은 사람이 사례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맛들인 부인들이 아예 돈을 받고 장마당(시장)에 내다팔기 시작했다. 배지가 곧 부와 권력을 나타내기 때문에 돈이 있는 사람들이 자기 과시를 위해 고급 배지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수요가 증가하다보니 쌍상은 현재 개당 중국돈 100위안(북한돈 13만원, 우리돈 2만원 정도)까지 올랐다고 한다.

시장에는 ‘짝퉁’ 밀거래도 생겨났다. 사람들이 돈벌이를 위해 배지를 자체 제작해 팔기 시작한 것이다. 제작 기술이 없는 국경 쪽에서는 중국에 대량 제작을 의뢰해 밀수를 해와 팔기 시작했다. 짝퉁 배지는 정품의 절반 가격인 50위안에 팔린다고 한다.

■화난 ‘최고존엄’, 근절 지시



배지 밀거래가 성행하자 김정은 제1위원장이 나섰다. KBS가 입수한 북한군 내부 문건을 보면, 김정은은 정중성이 보장되지 못한 초상휘장(가짜 배지)을 사서 모시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전 군에 지시했다. 또 군과 가족, 주민들의 배지 착용 실태를 전반적으로 조사해 지위에 맞는 배지를 착용하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최고존엄을 돈을 주고 사고파는 행위를 묵과할 수 없다는 현 최고존엄의 강력한 조치이다.

■김일성 시계, 훈장…돈 되는 건 다 판다

밀거래되는 건 초상휘장만이 아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이름이 새겨진 ‘김일성 시계’ ‘김정일 시계’도 사고판다. 이들 존함 시계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농민과 노동자, 교원 등 각 부문 우수 일군들이나 현지지도 접견자들에게 포상의 의미로 선물한 것이다. 스위스제 고급시계다. 그런데 가문의 보물로 소중히 간직해야 할 이 귀한 선물도 생계를 위해 시장에 내다판다. 훈장과 메달도 같은 이유로 밀매된다. 이 때문에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은 이런 현상을 중대 사건으로 규정하고, 시계나 훈장 등을 수여받았거나 부모.친척으로부터 물려받은 현황을 빠짐없이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또 사고파는 현상이 적발되면 철저히 해명을 받고 문제 있는 대상을 당적.법적으로 엄중히 조사 처리하라고 강조했다.



■돈에 밀린 최고존엄


북한은, 인민에게 있어 최고존엄은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생활이 궁핍한 주민들에게 최고존엄의 가치보다는 돈이 더 귀중한 것 같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심장에 최고존엄을 모시도록 했지만, 주민들의 가슴에서 존경심은 사라지고 있다. 돈벌이와 자기과시가 존경심이 떠난 자리를 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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