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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년왕성 경주 월성 내부 발굴 시작
입력 2014.12.11 (11:40) 연합뉴스
신라사람들은 그들의 왕성이 달을 닮았다 해서 월성(月城)이라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반달 모양이라 해서 반월성(半月城)이라고 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보면 제5대 파사왕 22년(101) 봄 2월에 성을 쌓아 월성(月城)이라 이름하고 가을 7월에는 왕이 월성으로 옮겨가 살았다고 했다.

이후 적어도 기록만으로 보면 월성은 935년 신라 멸망에 이르기까지 정확히는 835년간 신라왕이 대대로 거주하는 왕성이었다. 월성은 어쩌면 천년 왕국과 운명을 같이하기에 흔히 천년왕성이라 일컫는다.

한국고대사 유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곳으로 꼽히는 이 월성에 대한 역사적인 내부 발굴을 시작한다.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그동안 지하탐사 등을 통해 확인한 기초조사 결과를 토대로 동서 방향으로 길게 형성된 월성 전역을 서쪽 방향에서 동쪽으로 가면서 A~D 4개 지역으로 구분하고, 이 중에서 중앙부에 위치하는 C구역에 대한 시굴조사에 착수한다. 이들 네 구역은 1~14 구역으로 더욱 세분했다. D구역은 7~10구역으로 나뉜다.

발굴조사에 착수했음을 알리는 개토제(開土祭)는 12일 오후 2시 현장에서 개최한다. 두 기관은 11일 오전 11시 월성에서 언론을 대상으로 현장설명회를 연다. 월성을 어떤 계획에 따라 어떻게 발굴조사하고 보존정비해서 활용할 것인지를 공개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C 구역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 조사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전담해 오는 15일에 공식 착수하고는 내년 12월31일까지 시행한다. 장마 기간 등을 제외한 조사일수는 230일, 조사 면적은 5만7천㎡(약 1만7천240평)이다.

본격 발굴조사가 아니라 유적 분포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시굴조사다. 각 트렌치(시굴 조사구덩이)는 길이 20m, 너비 4m 규모이며, 동서 방향으로 11열, 남북 방향으로 9열을 넣는다. 트렌치간 폭은 약 20m.

월성 발굴에서 C구역을 첫 사업 대상지로 선택한 까닭은 지중탐사 결과 이곳에 왕궁 중심 건물로 생각되는 대형 건물 기초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9구역 대형 건물지와 7구역 역삼각형 구조물, 8구역 문지(門址), 그리고 10구역 건물터와 문지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다. 나아가 이 구역에 포함된 성벽 구조도 확인할 방침이다.

문화재청은 이런 기초 조사 결과를 토대로 향후 본격 발굴과 정보복원 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다.

월성 발굴이 얼마 걸릴지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다. 문화유산계에서는 적어도 40년은 걸릴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 때문에 당장의 성과에 목말라 하는 일부 경주 지역사회에서는 민간 매장문화재 전문발굴단을 한꺼번에 투입한 '속전속결식 발굴'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기도 하지만,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는 경주문화재연구소라는 단일 국가기관에 의한 '지속 발굴·정비'로 방향을 일단 정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월성 발굴에 천년고도 경주의 정체성 확보와 대통령 공약사항 이행 뒷받침이라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국민 문화향유 권리 보장을 위한 발굴현장 상시관람 및 전시·홍보체제를 운영하는 한편 발굴조사와 복원·정비를 동시에 추진할 방침이다.

앞서 문화재청은 월성 조사를 위해 지난해 10월21일 경상북도·경주시와 상호 업무협력 MOU를 체결하고 지난 4월28일에는 '신라왕경유적 복원·정비사업추진단'을 출범했다. 이어 지난 10월8일 경주시가 문화재청에 월성 발굴조사를 공식요청하고, 같은달 15일에는 왕경추진단 자문위원회에 발굴조사 계획을 보고하고 검토를 받았다.

이날 자문위에서는 국가기관에 의한 일관성 있는 책임조사가 필요하며, 전체적인 시굴조사보다는 일정 구역에 대한 조사를 우선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를 토대로 같은달 17일 문화재위 매장문화재분과는 월성 발굴을 허가하되, C지구 시굴조사를 먼저 하고 문지와 9구역 건물지 등에 대해서는 발굴조사로 전환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경주시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달 10일 월성 발굴조사 협약을 체결했으며,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에도 발굴착수 사실을 보고했다.

월성은 1915년 일본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가 처음으로 발굴조사를 했다. 당시 그는 월성 서쪽의 남쪽 성벽을 절개해 하부 5개 층위에서 골촉, 골침, 멧돼지 이빨, 사슴뿔, 동물뼈, 탄화곡물, 토기편 등을 수습했다.

이후 1979~1980년 동문지를 조사해 정면 1칸, 측면 2칸 규모의 문터를 확인하고 성벽에 대한 대략적인 토층 상황과 석축 해자 유구를 확인했다. 1984~1985년에는 성벽 바깥에서 해자 발굴에 들어가 그 규모와 성격을 파악했으며, 해자가 기능을 상실한 후 통일신라시대에는 건물을 지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1985~2014년 1~5호 해자와 계림 북편 건물터, 첨성대 남편 적심(積心) 건물지, 월성 북서편 건물지 등을 확인했다.

하지만 내부에 대한 본격 발굴조사는 없었다. 대신 2003~2004년 지표조사를 통해 월성의 자연적·인위적 훼손 양상을 확인, 70여 기에 이르는 초석과 연못터, 우물터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한편 '在城'(재성)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를 수습했다.

2007년에는 월성 내부 지하 레이더 탐사를 통해 2·3·6·9·14구역에 중요한 건물터가 집중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신라 천년왕성 경주 월성 내부 발굴 시작
    • 입력 2014-12-11 11:40:42
    연합뉴스
신라사람들은 그들의 왕성이 달을 닮았다 해서 월성(月城)이라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반달 모양이라 해서 반월성(半月城)이라고 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보면 제5대 파사왕 22년(101) 봄 2월에 성을 쌓아 월성(月城)이라 이름하고 가을 7월에는 왕이 월성으로 옮겨가 살았다고 했다.

이후 적어도 기록만으로 보면 월성은 935년 신라 멸망에 이르기까지 정확히는 835년간 신라왕이 대대로 거주하는 왕성이었다. 월성은 어쩌면 천년 왕국과 운명을 같이하기에 흔히 천년왕성이라 일컫는다.

한국고대사 유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곳으로 꼽히는 이 월성에 대한 역사적인 내부 발굴을 시작한다.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그동안 지하탐사 등을 통해 확인한 기초조사 결과를 토대로 동서 방향으로 길게 형성된 월성 전역을 서쪽 방향에서 동쪽으로 가면서 A~D 4개 지역으로 구분하고, 이 중에서 중앙부에 위치하는 C구역에 대한 시굴조사에 착수한다. 이들 네 구역은 1~14 구역으로 더욱 세분했다. D구역은 7~10구역으로 나뉜다.

발굴조사에 착수했음을 알리는 개토제(開土祭)는 12일 오후 2시 현장에서 개최한다. 두 기관은 11일 오전 11시 월성에서 언론을 대상으로 현장설명회를 연다. 월성을 어떤 계획에 따라 어떻게 발굴조사하고 보존정비해서 활용할 것인지를 공개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C 구역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 조사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전담해 오는 15일에 공식 착수하고는 내년 12월31일까지 시행한다. 장마 기간 등을 제외한 조사일수는 230일, 조사 면적은 5만7천㎡(약 1만7천240평)이다.

본격 발굴조사가 아니라 유적 분포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시굴조사다. 각 트렌치(시굴 조사구덩이)는 길이 20m, 너비 4m 규모이며, 동서 방향으로 11열, 남북 방향으로 9열을 넣는다. 트렌치간 폭은 약 20m.

월성 발굴에서 C구역을 첫 사업 대상지로 선택한 까닭은 지중탐사 결과 이곳에 왕궁 중심 건물로 생각되는 대형 건물 기초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9구역 대형 건물지와 7구역 역삼각형 구조물, 8구역 문지(門址), 그리고 10구역 건물터와 문지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다. 나아가 이 구역에 포함된 성벽 구조도 확인할 방침이다.

문화재청은 이런 기초 조사 결과를 토대로 향후 본격 발굴과 정보복원 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다.

월성 발굴이 얼마 걸릴지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다. 문화유산계에서는 적어도 40년은 걸릴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 때문에 당장의 성과에 목말라 하는 일부 경주 지역사회에서는 민간 매장문화재 전문발굴단을 한꺼번에 투입한 '속전속결식 발굴'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기도 하지만,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는 경주문화재연구소라는 단일 국가기관에 의한 '지속 발굴·정비'로 방향을 일단 정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월성 발굴에 천년고도 경주의 정체성 확보와 대통령 공약사항 이행 뒷받침이라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국민 문화향유 권리 보장을 위한 발굴현장 상시관람 및 전시·홍보체제를 운영하는 한편 발굴조사와 복원·정비를 동시에 추진할 방침이다.

앞서 문화재청은 월성 조사를 위해 지난해 10월21일 경상북도·경주시와 상호 업무협력 MOU를 체결하고 지난 4월28일에는 '신라왕경유적 복원·정비사업추진단'을 출범했다. 이어 지난 10월8일 경주시가 문화재청에 월성 발굴조사를 공식요청하고, 같은달 15일에는 왕경추진단 자문위원회에 발굴조사 계획을 보고하고 검토를 받았다.

이날 자문위에서는 국가기관에 의한 일관성 있는 책임조사가 필요하며, 전체적인 시굴조사보다는 일정 구역에 대한 조사를 우선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를 토대로 같은달 17일 문화재위 매장문화재분과는 월성 발굴을 허가하되, C지구 시굴조사를 먼저 하고 문지와 9구역 건물지 등에 대해서는 발굴조사로 전환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경주시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달 10일 월성 발굴조사 협약을 체결했으며,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에도 발굴착수 사실을 보고했다.

월성은 1915년 일본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가 처음으로 발굴조사를 했다. 당시 그는 월성 서쪽의 남쪽 성벽을 절개해 하부 5개 층위에서 골촉, 골침, 멧돼지 이빨, 사슴뿔, 동물뼈, 탄화곡물, 토기편 등을 수습했다.

이후 1979~1980년 동문지를 조사해 정면 1칸, 측면 2칸 규모의 문터를 확인하고 성벽에 대한 대략적인 토층 상황과 석축 해자 유구를 확인했다. 1984~1985년에는 성벽 바깥에서 해자 발굴에 들어가 그 규모와 성격을 파악했으며, 해자가 기능을 상실한 후 통일신라시대에는 건물을 지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1985~2014년 1~5호 해자와 계림 북편 건물터, 첨성대 남편 적심(積心) 건물지, 월성 북서편 건물지 등을 확인했다.

하지만 내부에 대한 본격 발굴조사는 없었다. 대신 2003~2004년 지표조사를 통해 월성의 자연적·인위적 훼손 양상을 확인, 70여 기에 이르는 초석과 연못터, 우물터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한편 '在城'(재성)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를 수습했다.

2007년에는 월성 내부 지하 레이더 탐사를 통해 2·3·6·9·14구역에 중요한 건물터가 집중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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