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선조들이 목 놓아 통곡했던 을사조약, 후세는 ‘성공’?

입력 2014.12.11 (15:38) 수정 2014.12.1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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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 날, 목 놓아 통곡하노라(是日也放聲大哭)’

언론인 장지연은 1905년 11월 20일 자 《황성신문》 논설에서 이날을 이렇게 개탄했다.

이것은 조약 체결의 강압성을 비판하는 뜻에서 조약이 아닌 '늑약(勒約)'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것을 체결할 때 동의한 5명의 대신은 나라의 주권을 팔아먹었다 하여 ‘오적(五賊)’이라 했다. 일본에 외교권을 강탈당했던 조약. 울분에 겨웠던 수많은 지식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저항했으며 그 후 의병 운동을 촉발시켰던 조약. 이토 히로부미가 주도했고 이를 통해 스스로 통감이 되어 대한제국의 숨통을 끊게 했던 조약. 우리 역사를 배운 국민이라면 이 설명들이 기억의 실타래에서 하나하나 되살아날 것이다. 바로 을사조약이다.

2."이거 우리나라 교과서 맞나요?"

초등 사회 국정 교과서 실험본 95쪽은 이 을사조약을 이렇게 표현한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설명에 나오는 표현이다.



'을사조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이토 히로부미는 대한 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 드는 것에 대하여 러시아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하얼빈에 온 것이었다.

이토 히로부미에게 을사조약은 '성공적인' 조약이었을지 모르나 우리 민족에게는 '치욕'이었다. 세심한 고민을 기울이지 못한 실수라 보자. 그럼 이건 어떤가?



일본은 쌀을 수출하는.../의병들을 소탕

일제의 대표적인 수탈 대상이었던 쌀은 '수출'이란 표현을, 일제의 의병 탄압은 아군이 적군을 제압할 때 쓰는 '소탕'이란 단어로 표현했다. 중학생들에게 배경 설명을 하지 않고 이 문구들을 보여주고 생각을 물었다.

"일본 기준으로 얘기했고 한국에서 이런 기준으로 얘기하면 한국 사람들은 기분 나쁜데 왜 이렇게 쓴 건지 묻고 싶어요"
"이거 우리나라 교과서 맞나요?"


3.부실한 심의…국정이기에 폐해는 더 클 수 있다.

이 교과서는 조선후기부터 근현대사까지 우리 역사를 다뤘다. 식민통치를 한 일본 입장의 설명뿐 아니라 사실과 다른 오류도 상당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를 다룬 기사를 설명하며 7년의 유신 체제를 18년으로 설명했고(146쪽) 고종이 제사를 지낸 환구단을 기술할 때는 '제단'을 '재단'으로 표기했다.(79쪽) 청에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의 삽화엔 왕이 입는 곤룡포가 그려져 있다.(15쪽)

시민단체인 역사정의실천연대가 지적한 오류는 350여 건, 교과서가 176쪽이니 쪽당 2건의 오류나 부적절한 표현이 사용된 셈이다. 저작권자는 교육부다. 지난 2012년 공모를 통해 국내 한 대학의 교과서편찬위원회를 선정했고 전체 편찬 기획을 교육부가 맡아 나온 교과서이다. 제작 과정은 총 18개월. 교육부는 집필, 심의과정을 세세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교과서 제작진에 심의진이 포함돼 있으니 심의가 이뤄진 교과서다.

이 책을 분석한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 소장은 한마디로 이런 결과를 안타까워했다.

"국정교과서는 일률적으로 사용하게 돼 있어요. 검정은 오류가 있거나 편향돼 있다면 학교에서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배제할 수 있지만 국정은 선택의 여지가 없죠. 이 때문에 그 파장이나 폐해는 무척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육부는 이 교과서는 아직 실험본일뿐이라고 해명한다. 실험본을 연구학교에서 가르치면서 현장 적합성을 따져보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전면 사용할 때까지 남아 있는 1년간 교과용 도서 심의회와 전문 기관의 감수 과정 등을 거쳐서 수정·보완할 사항이 있으면 반영을 하겠다 한다.



그런데 이 오류투성이 책은 이번 2학기 동안 이미 16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교재로 사용됐다. 이 책으로 역사를 배운 5학년 학생들을 실험용이라 말하기엔 학생들에게 정말 미안한 일이다. 어른으로서 부끄러울 뿐 아니라 교육적으로도 폐해가 크기 때문이다. 오류로 몸살을 앓았던 교육계, 교육의 기본인 교과서에 오류가 없어야 함은 절대 지나치지 않은 요구이다.

☞바로가기 [뉴스9] ‘을사조약 성공’, ‘의병 소탕’ 이게 국정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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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선조들이 목 놓아 통곡했던 을사조약, 후세는 ‘성공’?
    • 입력 2014-12-11 15:38:40
    • 수정2014-12-11 16:14:22
    취재후·사건후
1.‘이 날, 목 놓아 통곡하노라(是日也放聲大哭)’

언론인 장지연은 1905년 11월 20일 자 《황성신문》 논설에서 이날을 이렇게 개탄했다.

이것은 조약 체결의 강압성을 비판하는 뜻에서 조약이 아닌 '늑약(勒約)'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것을 체결할 때 동의한 5명의 대신은 나라의 주권을 팔아먹었다 하여 ‘오적(五賊)’이라 했다. 일본에 외교권을 강탈당했던 조약. 울분에 겨웠던 수많은 지식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저항했으며 그 후 의병 운동을 촉발시켰던 조약. 이토 히로부미가 주도했고 이를 통해 스스로 통감이 되어 대한제국의 숨통을 끊게 했던 조약. 우리 역사를 배운 국민이라면 이 설명들이 기억의 실타래에서 하나하나 되살아날 것이다. 바로 을사조약이다.

2."이거 우리나라 교과서 맞나요?"

초등 사회 국정 교과서 실험본 95쪽은 이 을사조약을 이렇게 표현한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설명에 나오는 표현이다.



'을사조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이토 히로부미는 대한 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 드는 것에 대하여 러시아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하얼빈에 온 것이었다.

이토 히로부미에게 을사조약은 '성공적인' 조약이었을지 모르나 우리 민족에게는 '치욕'이었다. 세심한 고민을 기울이지 못한 실수라 보자. 그럼 이건 어떤가?



일본은 쌀을 수출하는.../의병들을 소탕

일제의 대표적인 수탈 대상이었던 쌀은 '수출'이란 표현을, 일제의 의병 탄압은 아군이 적군을 제압할 때 쓰는 '소탕'이란 단어로 표현했다. 중학생들에게 배경 설명을 하지 않고 이 문구들을 보여주고 생각을 물었다.

"일본 기준으로 얘기했고 한국에서 이런 기준으로 얘기하면 한국 사람들은 기분 나쁜데 왜 이렇게 쓴 건지 묻고 싶어요"
"이거 우리나라 교과서 맞나요?"


3.부실한 심의…국정이기에 폐해는 더 클 수 있다.

이 교과서는 조선후기부터 근현대사까지 우리 역사를 다뤘다. 식민통치를 한 일본 입장의 설명뿐 아니라 사실과 다른 오류도 상당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를 다룬 기사를 설명하며 7년의 유신 체제를 18년으로 설명했고(146쪽) 고종이 제사를 지낸 환구단을 기술할 때는 '제단'을 '재단'으로 표기했다.(79쪽) 청에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의 삽화엔 왕이 입는 곤룡포가 그려져 있다.(15쪽)

시민단체인 역사정의실천연대가 지적한 오류는 350여 건, 교과서가 176쪽이니 쪽당 2건의 오류나 부적절한 표현이 사용된 셈이다. 저작권자는 교육부다. 지난 2012년 공모를 통해 국내 한 대학의 교과서편찬위원회를 선정했고 전체 편찬 기획을 교육부가 맡아 나온 교과서이다. 제작 과정은 총 18개월. 교육부는 집필, 심의과정을 세세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교과서 제작진에 심의진이 포함돼 있으니 심의가 이뤄진 교과서다.

이 책을 분석한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 소장은 한마디로 이런 결과를 안타까워했다.

"국정교과서는 일률적으로 사용하게 돼 있어요. 검정은 오류가 있거나 편향돼 있다면 학교에서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배제할 수 있지만 국정은 선택의 여지가 없죠. 이 때문에 그 파장이나 폐해는 무척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육부는 이 교과서는 아직 실험본일뿐이라고 해명한다. 실험본을 연구학교에서 가르치면서 현장 적합성을 따져보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전면 사용할 때까지 남아 있는 1년간 교과용 도서 심의회와 전문 기관의 감수 과정 등을 거쳐서 수정·보완할 사항이 있으면 반영을 하겠다 한다.



그런데 이 오류투성이 책은 이번 2학기 동안 이미 16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교재로 사용됐다. 이 책으로 역사를 배운 5학년 학생들을 실험용이라 말하기엔 학생들에게 정말 미안한 일이다. 어른으로서 부끄러울 뿐 아니라 교육적으로도 폐해가 크기 때문이다. 오류로 몸살을 앓았던 교육계, 교육의 기본인 교과서에 오류가 없어야 함은 절대 지나치지 않은 요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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