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까기 인형이 ‘온가족 크리스마스 발레’ 된 사연

입력 2014.12.11 (17:1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은 전세계 발레단의 대목이다. 세계 주요 발레단들이 이 즈음에 무대에 올리는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에 가족 관객이 대거 몰리기 때문이다.

"어떤 발레단이든 1월부터 11월까지는 돈 안 되는 발레를 하고 12월에는 호두까기 인형을 한다"는 얘기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기도 한다. 미국 주요 발레단의 매출 중 40∼50%가 호두까기 인형에서 나온다는 통계도 있다.

호두까기 인형이 처음부터 이렇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호두까기 인형이 최고의 인기 발레가 된 것은 70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뤄진 미국 초연이 계기가 됐다.

이 작품은 1892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마리우스 프티파와 레프 이바노프의 안무로 초연이 이뤄진 후 수십년간 발레로서는 그리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음악은 훌륭하지만 줄거리에 통일성이 없고 유치하다는 혹평을 받았다.

이 탓에 일부 곡을 발췌해 연주회용 음악으로 만든 모음곡은 자주 연주됐지만, 발레 전체가 상연되는 사례는 드물었다.

러시아 외 지역에서 호두까기 인형 전막이 상연된 것은 1934년 영국 런던이 처음이었다. 다시 말해 러시아를 빼면 42년간 전막이 공연된 적이 없다는 얘기다.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발레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던 셈이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이 194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 도시의 전쟁기념 오페라하우스에서 윌리엄 크리스텐슨 예술감독의 안무로 호두까기 인형의 미국 초연을 했는데, 이 공연이 상상을 초월하는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은 1933년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발레단으로 출범해 1942년 오페라단에서 독립한지 몇 년 되지 않은 신생 단체였다.

그래서 공연장 배정에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에 늘 밀리는 설움을 당했고, 전쟁기념 오페라하우스가 텅텅 비는 공연 비성수기였던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날짜를 잡아야만 했다.

예산도 형편없이 부족했는데, 때마침 헐려 문을 닫은 근처 극장에 달려 있던 초대형 커튼을 헐값에 사들여서 의상으로 쓸 코트 143벌을 만들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호두까기 인형을 공연하는 전통의 원조가 됐으며, 1949년부터는 이를 연례행사로 못박았다.

이런 풍습은 1952년 런던, 1954년 뉴욕 등에 퍼졌고, 1957년과 1958년에는 미국 CBS TV가 크리스마스 저녁 황금시간대에 조지 발란신이 안무를 맡은 뉴욕 시티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을 미국 전역에 방영해 '크리스마스에는 온 가족이 함께 호두까기 인형을 본다'는 관념을 심었다.

이어 1960∼1970년대에는 이 전통이 세계 전체로 퍼져 나가 지금은 사실상 모든 대도시에서 이를 볼 수 있다.

이 전통의 원조인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은 올해 30년째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헬기 토마손의 2004년판 안무로 12일부터 29일까지 30차례 공연을 한다.

한국에서도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SBT) 등 주요 발레단들이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호두까기 인형이 ‘온가족 크리스마스 발레’ 된 사연
    • 입력 2014-12-11 17:17:10
    연합뉴스
크리스마스 시즌은 전세계 발레단의 대목이다. 세계 주요 발레단들이 이 즈음에 무대에 올리는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에 가족 관객이 대거 몰리기 때문이다. "어떤 발레단이든 1월부터 11월까지는 돈 안 되는 발레를 하고 12월에는 호두까기 인형을 한다"는 얘기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기도 한다. 미국 주요 발레단의 매출 중 40∼50%가 호두까기 인형에서 나온다는 통계도 있다. 호두까기 인형이 처음부터 이렇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호두까기 인형이 최고의 인기 발레가 된 것은 70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뤄진 미국 초연이 계기가 됐다. 이 작품은 1892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마리우스 프티파와 레프 이바노프의 안무로 초연이 이뤄진 후 수십년간 발레로서는 그리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음악은 훌륭하지만 줄거리에 통일성이 없고 유치하다는 혹평을 받았다. 이 탓에 일부 곡을 발췌해 연주회용 음악으로 만든 모음곡은 자주 연주됐지만, 발레 전체가 상연되는 사례는 드물었다. 러시아 외 지역에서 호두까기 인형 전막이 상연된 것은 1934년 영국 런던이 처음이었다. 다시 말해 러시아를 빼면 42년간 전막이 공연된 적이 없다는 얘기다.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발레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던 셈이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이 194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 도시의 전쟁기념 오페라하우스에서 윌리엄 크리스텐슨 예술감독의 안무로 호두까기 인형의 미국 초연을 했는데, 이 공연이 상상을 초월하는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은 1933년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발레단으로 출범해 1942년 오페라단에서 독립한지 몇 년 되지 않은 신생 단체였다. 그래서 공연장 배정에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에 늘 밀리는 설움을 당했고, 전쟁기념 오페라하우스가 텅텅 비는 공연 비성수기였던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날짜를 잡아야만 했다. 예산도 형편없이 부족했는데, 때마침 헐려 문을 닫은 근처 극장에 달려 있던 초대형 커튼을 헐값에 사들여서 의상으로 쓸 코트 143벌을 만들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호두까기 인형을 공연하는 전통의 원조가 됐으며, 1949년부터는 이를 연례행사로 못박았다. 이런 풍습은 1952년 런던, 1954년 뉴욕 등에 퍼졌고, 1957년과 1958년에는 미국 CBS TV가 크리스마스 저녁 황금시간대에 조지 발란신이 안무를 맡은 뉴욕 시티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을 미국 전역에 방영해 '크리스마스에는 온 가족이 함께 호두까기 인형을 본다'는 관념을 심었다. 이어 1960∼1970년대에는 이 전통이 세계 전체로 퍼져 나가 지금은 사실상 모든 대도시에서 이를 볼 수 있다. 이 전통의 원조인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은 올해 30년째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헬기 토마손의 2004년판 안무로 12일부터 29일까지 30차례 공연을 한다. 한국에서도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SBT) 등 주요 발레단들이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