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회항’ 사태 확산…대한항공, 15년 만에 오너체제 위기

입력 2014.12.14 (06:16) 수정 2014.12.1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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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과 아버지인 조양호 회장이 '땅콩 회항' 사건으로 결국 고개를 숙였지만 당시 비행기에서 내쫓긴 승무원 사무장과 1등석 승객의 폭로로 사태는 오히려 끝없이 확대되고 있다.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은 12일 KBS 인터뷰에서 조 전 부사장으로부터 욕설을 듣고 폭행까지 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회사 측이 이 사건에 관해 거짓진술을 하도록 계속 강요했다고 밝혔다.

박 사무장은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도 이런 내용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부사장의 앞자리에 있던 1등석 승객 박모씨도 13일 서울서부지검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고 기자들과 만나 조 전 부사장이 사무장에게 내릴 것을 강요했고 승무원에게 고성을 지르는가 하면 손으로 승무원의 어깨를 밀쳤다고 전했다. 그는 사건 이후 대한항공 측에 항의했지만 제대로 된 사과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 전 부사장은 이에 대해 사무장을 상대로 욕설과 폭행을 했는지 묻는 말에 "처음 듣는 일이다", "모르는 일이다"고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수습 국면으로 넘어가는 듯했던 이번 사태는 이에 따라 진실게임과 형사사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 박 사무장 등의 주장대로 조 전 부사장의 욕설, 폭행과 회사 측의 사건은폐, 거짓진술 강요가 사실로 확인되면 대한항공과 오너 일가는 도덕적으로 치명상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으로 조만간 검찰에 소환될 조 전 부사장은 기내난동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형사처벌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나아가 조직적 증거인멸과 거짓진술 강요 등으로 관련 임원 등도 줄줄이 처벌받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조 회장 일가가 그간 물밑에서 추진해온 경영권 승계의 밑그림도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앞서 대한항공의 오너체제는 1999년에도 심각한 위기를 맞은 바 있다.

1997년 225명이 사망한 괌 추락사고 2년만에 다시 상하이공항 추락사고까지 터진 대한항공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오너경영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이 때문에 이틀 만에 창업주 조중훈 회장이 퇴진하고 조양호 당시 사장은 사장직에서 물러나 대외업무만 하는 회장직을 맡았다.

조 회장은 같은 해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이후 델타항공의 컨설팅을 받아 안전성 제고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덕에 2000년대 들어 경영체제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왔으나 이번 '땅콩 회항' 사건은 일순간에 이런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말았다.

특히 조 회장이 "제가 (자식) 교육을 잘못시킨 것 같다. 죄송하다"면서 딸을 그룹의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지만 조 전 부사장 퇴진만으로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 높다.

견과류 서비스 방식 때문에 비행기를 되돌린 이번 '땅콩 사건'은 조 전 부사장 개인의 우발적 행동이 아니라 대한항공 오너 가문 차원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김경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번 횡포는 이 비행기는 내 것이며 모든 직원이 내 소유물이라고 착각하는 전근대적 천민주의 사고방식이 불러온 제왕적 경영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논객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자신의 SNS를 통해 "직원을 신분적으로 예속된 봉건주의적 머슴으로 바라본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며 대한항공을 북한에 빗대 꼬집은 바 있다.

사건 이후 장본인인 조 전 부사장이나 총수인 조 회장이 직접 신속히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변명으로 일관하며 사무장에 책임을 돌린 '사과문'을 내놓게 해 화를 키운 것도 오너 일가가 절대적인 회사의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 탓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4일 페이스북에서 조 전 부사장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몰랐을 것이라면서 "평생 견제나 통제가 존재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으니 '내 비행기 안에서 하인들에게 무슨 말을 못하랴'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썼다.

그는 이어 "사과가 나오는데만 1주일이 걸렸다"면서 "사내변호사 포함 직원들이 '하명' 사안의 해결만 하지 총수와 그 가족에 대한 내부 통제를 하거나 상황을 적극적으로 타개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한국경영학회장인 이장우 경북대 교수는 "우리나라 재벌의 문제는 무혈 입성한 견제 없는 권력이라는 점"이라면서 "가족주의적이며 전근대적인 경영스타일로 인한 오너 리스크가 결국 터지고 말았다"고 진단했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도 이번 일에 대해 "개인적 사건이 아니다"고 잘라 말하면서 국내 재벌 3세들의 인성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대한항공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조원태 부사장 역시 도로에서 시비가 붙은 70대 할머니를 밀어 넘어뜨려 입건되고 시위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에 폭언하는 등 부적절한 언행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김 교수는 또 "극도로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이며 폐쇄적인 사주일가의 가풍이 그룹 전체의 위기관리 능력을 심각하게 마비시켰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의 한 간부는 "3세들이 경영진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족벌경영에 대한 우려나 불만이 커졌다"면서 "조 회장도 답답하지만 3세들을 보면 희망이 없다고 자조한다"고 말했다.

몇 년 전 국토부에서 항공 업무를 맡았던 한 공무원도 "대한항공 자체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지만 오너 일가 경영체제는 문제를 많이 안고 있었고 결국 이번 일로 그 바닥이 드러나는 것 같다"면서 "족벌경영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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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2-14 06:16:30
    • 수정2014-12-17 16:28:44
    연합뉴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과 아버지인 조양호 회장이 '땅콩 회항' 사건으로 결국 고개를 숙였지만 당시 비행기에서 내쫓긴 승무원 사무장과 1등석 승객의 폭로로 사태는 오히려 끝없이 확대되고 있다.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은 12일 KBS 인터뷰에서 조 전 부사장으로부터 욕설을 듣고 폭행까지 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회사 측이 이 사건에 관해 거짓진술을 하도록 계속 강요했다고 밝혔다.

박 사무장은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도 이런 내용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부사장의 앞자리에 있던 1등석 승객 박모씨도 13일 서울서부지검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고 기자들과 만나 조 전 부사장이 사무장에게 내릴 것을 강요했고 승무원에게 고성을 지르는가 하면 손으로 승무원의 어깨를 밀쳤다고 전했다. 그는 사건 이후 대한항공 측에 항의했지만 제대로 된 사과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 전 부사장은 이에 대해 사무장을 상대로 욕설과 폭행을 했는지 묻는 말에 "처음 듣는 일이다", "모르는 일이다"고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수습 국면으로 넘어가는 듯했던 이번 사태는 이에 따라 진실게임과 형사사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 박 사무장 등의 주장대로 조 전 부사장의 욕설, 폭행과 회사 측의 사건은폐, 거짓진술 강요가 사실로 확인되면 대한항공과 오너 일가는 도덕적으로 치명상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으로 조만간 검찰에 소환될 조 전 부사장은 기내난동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형사처벌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나아가 조직적 증거인멸과 거짓진술 강요 등으로 관련 임원 등도 줄줄이 처벌받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조 회장 일가가 그간 물밑에서 추진해온 경영권 승계의 밑그림도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앞서 대한항공의 오너체제는 1999년에도 심각한 위기를 맞은 바 있다.

1997년 225명이 사망한 괌 추락사고 2년만에 다시 상하이공항 추락사고까지 터진 대한항공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오너경영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이 때문에 이틀 만에 창업주 조중훈 회장이 퇴진하고 조양호 당시 사장은 사장직에서 물러나 대외업무만 하는 회장직을 맡았다.

조 회장은 같은 해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이후 델타항공의 컨설팅을 받아 안전성 제고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덕에 2000년대 들어 경영체제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왔으나 이번 '땅콩 회항' 사건은 일순간에 이런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말았다.

특히 조 회장이 "제가 (자식) 교육을 잘못시킨 것 같다. 죄송하다"면서 딸을 그룹의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지만 조 전 부사장 퇴진만으로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 높다.

견과류 서비스 방식 때문에 비행기를 되돌린 이번 '땅콩 사건'은 조 전 부사장 개인의 우발적 행동이 아니라 대한항공 오너 가문 차원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김경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번 횡포는 이 비행기는 내 것이며 모든 직원이 내 소유물이라고 착각하는 전근대적 천민주의 사고방식이 불러온 제왕적 경영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논객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자신의 SNS를 통해 "직원을 신분적으로 예속된 봉건주의적 머슴으로 바라본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며 대한항공을 북한에 빗대 꼬집은 바 있다.

사건 이후 장본인인 조 전 부사장이나 총수인 조 회장이 직접 신속히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변명으로 일관하며 사무장에 책임을 돌린 '사과문'을 내놓게 해 화를 키운 것도 오너 일가가 절대적인 회사의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 탓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4일 페이스북에서 조 전 부사장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몰랐을 것이라면서 "평생 견제나 통제가 존재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으니 '내 비행기 안에서 하인들에게 무슨 말을 못하랴'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썼다.

그는 이어 "사과가 나오는데만 1주일이 걸렸다"면서 "사내변호사 포함 직원들이 '하명' 사안의 해결만 하지 총수와 그 가족에 대한 내부 통제를 하거나 상황을 적극적으로 타개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한국경영학회장인 이장우 경북대 교수는 "우리나라 재벌의 문제는 무혈 입성한 견제 없는 권력이라는 점"이라면서 "가족주의적이며 전근대적인 경영스타일로 인한 오너 리스크가 결국 터지고 말았다"고 진단했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도 이번 일에 대해 "개인적 사건이 아니다"고 잘라 말하면서 국내 재벌 3세들의 인성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대한항공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조원태 부사장 역시 도로에서 시비가 붙은 70대 할머니를 밀어 넘어뜨려 입건되고 시위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에 폭언하는 등 부적절한 언행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김 교수는 또 "극도로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이며 폐쇄적인 사주일가의 가풍이 그룹 전체의 위기관리 능력을 심각하게 마비시켰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의 한 간부는 "3세들이 경영진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족벌경영에 대한 우려나 불만이 커졌다"면서 "조 회장도 답답하지만 3세들을 보면 희망이 없다고 자조한다"고 말했다.

몇 년 전 국토부에서 항공 업무를 맡았던 한 공무원도 "대한항공 자체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지만 오너 일가 경영체제는 문제를 많이 안고 있었고 결국 이번 일로 그 바닥이 드러나는 것 같다"면서 "족벌경영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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