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어떻게 ‘일’ 하십니까?

입력 2014.12.1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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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에 취재한 내용을 갖고 이제 와서 글을 쓰는 것도, 사실 ‘일’ 때문입니다. 그 동안 이런 저런 방법으로 취재 뒷얘기를 제법 써 온 터였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출입처에서 익숙하지 않은 내용들과 씨름하다 보니 ‘일’에 치여 기사가 아닌 다른 글을 쓸 여유를 갖지 못 했다는 게 제 변명입니다. 진짜로 일에 치였던 걸까요, 아니면 일을 효율적으로 하지 못 했던 걸까요.

■ 정시 퇴근 압박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카메라 모듈 등 소재 부품을 만드는 LG이노텍은 2년 전부터 직원들에게 정시 퇴근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해외영업, 생산직처럼 특별한 사정이 잦은 업무를 맡아 보는 직원들에게까지 일괄 적용은 어렵겠지만, 서울에 있는 본사 직원 4백 여 명의 경우 오전 8시까지 출근이니까 오후 5시에는 다 퇴근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신입사원이고 임원이고 올해 정시퇴근 100% 달성을 위해 매진했고 실제로 목표 달성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100% 달성을 눈 앞에 둔 것은 하나 더 있습니다. 휴가 사용률입니다. 이 얘기를 들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이게 가능해?”라는 반응부터 나옵니다. 업무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조직 문화’라는 것도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LG이노텍은 몇 가지 장치를 마련해뒀습니다. 5시가 되면 부서장부터 퇴근을 서두르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직원은 상무에게 메신저로 보고해야 합니다. 부서장이 솔선수범하면 조직원들은 눈치가 덜 보이고, 임원에게 보고하는 건 뭐든 그다지 내키지 않는 게 평직원의 마음이니까 마지막 퇴근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퇴근 시간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있는 만큼, 출근해서 업무가 아닌 다른 용무를 보는 시간은 직원들이 알아서 줄입니다. 당연히 업무 집중도는 높아집니다.

휴가 사용도 비슷합니다. 각 부서 게시판에 모든 직원들의 이름과 연차 개수를 적어 공개하고 쓸 때마다 스티커를 붙여 연차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게 합니다. 동시에 업무 목표량과 꼭 해내야 하는 일에 대해서도 부서원 모두 게시판에 공개합니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휴가 사용만 1등을 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알 수 있겠죠. 반대로 휴가를 가지 않고 있는 사람도 대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 회사가 노린 것은 ‘업무 몰입’과 ‘효율성’입니다. 과거에는 열심히 일하고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 있으면 성실하다는 평가는 받았지만 이제는 ‘주어진 시간에 제대로 성과를 내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는 겁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있는지 하는 부분에서 개인의 노력을 요구하기에 앞서 회사가 먼저 조직 문화를 바꿔보겠다고 나선 게 ‘칼퇴근’ ‘휴가 100% 사용’의 결과를 가져온 겁니다.

집에서보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긴 현대 직장인들. 개인 입장에서는 직장 생활 스트레스가 적어야 몰입할 수 있고, 회사 입장에서는 만족스러운 직장 생활 환경을 만들어야 더 많은 성과 창출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LG이노텍 같은 방식은 아니어도 여러 가지 근무 형태를 고민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습니다. 정부 부처들도 마찬가지고요. 지난 주 KBS 뉴스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행정자치부는 긴급 상황이 아니면 오후 5시 이후 보고를 금지했고 여성가족부는 매주 수요일을 정시 퇴근의 날로 정했습니다.



■ 일하고 싶다...

우리가 직장이라는 조직에 속해 있다면, 그 조직이 갖고 있는 문화는 우리의 ‘일’ 뿐 아니라 ‘삶’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부분을 다뤄보고자 시작된 취재였고, 기사가 포털 사이트 많이 본 뉴스에 걸리면서 꽤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기사 제목에 ‘정시 퇴근’이라는 단어가 있었고, 그건 곧 모든 직장인들의 로망이니 많은 관심을 받았나 보다”라는 얄팍한 생각으로 댓글을 읽어보기 시작했던 저는...이내 취재를 하면서 보고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현실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대기업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중소기업은 정말 힘듭니다.”
“중소기업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
“정시퇴근 못 해도 좋습니다. 취직하고 싶습니다. 일하고 싶습니다”

☞ 바로가기 <뉴스7> “정해진 시간 제대로 일하자”…‘정시 퇴근’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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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어떻게 ‘일’ 하십니까?
    • 입력 2014-12-17 09:44:02
    취재후·사건후
#  두 달 전에 취재한 내용을 갖고 이제 와서 글을 쓰는 것도, 사실 ‘일’ 때문입니다. 그 동안 이런 저런 방법으로 취재 뒷얘기를 제법 써 온 터였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출입처에서 익숙하지 않은 내용들과 씨름하다 보니 ‘일’에 치여 기사가 아닌 다른 글을 쓸 여유를 갖지 못 했다는 게 제 변명입니다. 진짜로 일에 치였던 걸까요, 아니면 일을 효율적으로 하지 못 했던 걸까요. ■ 정시 퇴근 압박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카메라 모듈 등 소재 부품을 만드는 LG이노텍은 2년 전부터 직원들에게 정시 퇴근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해외영업, 생산직처럼 특별한 사정이 잦은 업무를 맡아 보는 직원들에게까지 일괄 적용은 어렵겠지만, 서울에 있는 본사 직원 4백 여 명의 경우 오전 8시까지 출근이니까 오후 5시에는 다 퇴근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신입사원이고 임원이고 올해 정시퇴근 100% 달성을 위해 매진했고 실제로 목표 달성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100% 달성을 눈 앞에 둔 것은 하나 더 있습니다. 휴가 사용률입니다. 이 얘기를 들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이게 가능해?”라는 반응부터 나옵니다. 업무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조직 문화’라는 것도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LG이노텍은 몇 가지 장치를 마련해뒀습니다. 5시가 되면 부서장부터 퇴근을 서두르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직원은 상무에게 메신저로 보고해야 합니다. 부서장이 솔선수범하면 조직원들은 눈치가 덜 보이고, 임원에게 보고하는 건 뭐든 그다지 내키지 않는 게 평직원의 마음이니까 마지막 퇴근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퇴근 시간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있는 만큼, 출근해서 업무가 아닌 다른 용무를 보는 시간은 직원들이 알아서 줄입니다. 당연히 업무 집중도는 높아집니다. 휴가 사용도 비슷합니다. 각 부서 게시판에 모든 직원들의 이름과 연차 개수를 적어 공개하고 쓸 때마다 스티커를 붙여 연차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게 합니다. 동시에 업무 목표량과 꼭 해내야 하는 일에 대해서도 부서원 모두 게시판에 공개합니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휴가 사용만 1등을 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알 수 있겠죠. 반대로 휴가를 가지 않고 있는 사람도 대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 회사가 노린 것은 ‘업무 몰입’과 ‘효율성’입니다. 과거에는 열심히 일하고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 있으면 성실하다는 평가는 받았지만 이제는 ‘주어진 시간에 제대로 성과를 내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는 겁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있는지 하는 부분에서 개인의 노력을 요구하기에 앞서 회사가 먼저 조직 문화를 바꿔보겠다고 나선 게 ‘칼퇴근’ ‘휴가 100% 사용’의 결과를 가져온 겁니다. 집에서보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긴 현대 직장인들. 개인 입장에서는 직장 생활 스트레스가 적어야 몰입할 수 있고, 회사 입장에서는 만족스러운 직장 생활 환경을 만들어야 더 많은 성과 창출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LG이노텍 같은 방식은 아니어도 여러 가지 근무 형태를 고민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습니다. 정부 부처들도 마찬가지고요. 지난 주 KBS 뉴스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행정자치부는 긴급 상황이 아니면 오후 5시 이후 보고를 금지했고 여성가족부는 매주 수요일을 정시 퇴근의 날로 정했습니다. ■ 일하고 싶다... 우리가 직장이라는 조직에 속해 있다면, 그 조직이 갖고 있는 문화는 우리의 ‘일’ 뿐 아니라 ‘삶’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부분을 다뤄보고자 시작된 취재였고, 기사가 포털 사이트 많이 본 뉴스에 걸리면서 꽤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기사 제목에 ‘정시 퇴근’이라는 단어가 있었고, 그건 곧 모든 직장인들의 로망이니 많은 관심을 받았나 보다”라는 얄팍한 생각으로 댓글을 읽어보기 시작했던 저는...이내 취재를 하면서 보고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현실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대기업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중소기업은 정말 힘듭니다.” “중소기업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 “정시퇴근 못 해도 좋습니다. 취직하고 싶습니다. 일하고 싶습니다” ☞ 바로가기 <뉴스7> “정해진 시간 제대로 일하자”…‘정시 퇴근’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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