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뒤흔든 세월호 ‘끝나지 않은 참사’

입력 2014.12.2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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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6일. 전남 진도군 병풍도 인근 해상에서 세월호가 갑자기 왼쪽으로 기울면서 전복돼 침몰했다.

승객과 승무원 476명이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길이었다. 이들 중에는 수학 여행길에 오른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도 포함돼 있었다.

사고 초기 온 국민이 모두 구조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과 달리 현실은 절망적이었고, 그 모든 상황을 방송사 중계 화면을 통해 지켜봤기에 충격은 더 컸다.

사망자 295명. 이들 중 단원고 학생·교사만 261명에 달한다. 11월11일 수색이 종료될 때까지 실종자 9명은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정부가 수색 종료를 선언한 날, 이준석 선장 등 승무원 15명은 1심에서 징역 5년~36년을 선고받았다.

검찰 수사 결과, 사고 당시 세월호는 물살이 거친 맹골수도 운항 경력이 없는 3등 항해사와 조타 실력이 미숙한 조타수에게 맡겨졌다.

결국 조타수가 급격한 변침을 하면서 배가 왼쪽으로 기울었고 과적에 제대로 묶이지도 않은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침몰한 것으로 밝혀졌다.

운항에서 침몰까지 안전 불감증의 총체였다. 세월호는 불법 증·개축 등으로 복원성을 현저히 잃어 애초 운항해서는 안 될 배였다.

피해자 휴대전화에 생생하게 녹화된 사고 당시 영상과 ‘가만히 있으라’는 승객 대기 방송은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질적 경영자로 지목된 유병언 전 회장과 그 일가, 무책임한 모습으로 일관한 이준석 선장, 당국의 미숙한 대처와 지지부진한 후속 조치는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4월16일은 잊을 수 없는, 잊어서도 안 되는 ‘안전국치일’로 기록됐다.



◇ 사고 책임자들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유족들 ‘분통’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이준석 선장 등 선원들을 비롯해 청해진해운 임직원, 해경과 해운업계 관계자까지 모두 399명이 입건됐다.

하지만 침몰하는 배와 승객을 뒤로하고 탈출한 이준석 선장에 대한 판결은 유족들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광주지법은 지난달(11월) 세월호 승무원 15명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이 선장에 대해 유기치사상, 선원법 위반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36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살인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1등 항해사와 2등 항해사에 대해서도 살인 혐의가 없다고 봤다. 그나마 혐의가 인정된 기관장마저 승객 살인은 무죄, 동료 승무원 살인은 유죄라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정은 판결이 너무 가볍다고 항의하는 유족들의 오열과 고성으로 가득 찼다.

이후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선원 15명은 1심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전원 항소한 상태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횡령·배임 등의 혐의를 받는 故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와 측근 대부분도 1심에서 무더기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장남인 유대균 씨(44)에게 징역 3년을, 유 전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탤런트 전양자 씨(73.본명 김경숙)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유 전 회장의 형 병일 씨(75)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동생 병호 씨(62)에게는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밖에 변기춘 천해지 대표(42)와 고창환 세모 대표(67) 등 측근 11명에게 징역 1년6월~징역 4년에 이르는 실형을 선고했다.

대균 씨 등 5명이 항소해 2심 재판을 앞둔 가운데, 유 전 회장의 돈줄을 관리한 것으로 알려진 김혜경(52.여) 한국제약 대표와 비자금 총책으로 지목된 김필배(76) 문진미디어 전 대표 등 최측근들도 최근 재판에 넘겨져 속속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월부터 시작된 세월호 실소유주 비리 수사는 8개월째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숨진 유 전 회장과 함께 경영 비리의 핵심으로 꼽힌 유씨의 차남 혁기(42)씨가 해외에서 여전히 도피 생활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혁기 씨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 쏟아진 재발방지 대책들…안전불감증은 여전 

구난·구조당국의 초동대응 실패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빗발치자 정부는 11월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고 국무총리실 산하 '국민안전처' 를 신설했다.

해경이 갖고 있던 정보·수사 분야를 경찰청으로 넘기고 남은 조직은 안전행정부의 안전관리본부, 소방방재청과 합쳐 각종 재난·사고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의도에서다.

하지만 국민안전처는 출범하자마자 비판 어린 시선에 직면해야 했다.

12월1일 러시아 서베링해에서 조업 중이던 ‘501 오룡호’가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수습 과정에서 사령탑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조난 신고를 가장 먼저 접수한 건 국민안전처 산하에 있는 해양안전센터였지만 조난 상황을 외교부를 통해 러시아 측에 알리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3시간이 지나서야 해양수산부에 사고대책본부가 마련됐고, 다시 5시간이 지난 뒤 외교부로 옮겨졌다. 선원 구조나 후속 대책은 해수부와 외교부가 맡았다.



국민안전처는 해외재난의 경우 외교부 장관이 중앙대책본부장을 맡도록 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른 것이라고 뒤늦게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대형 재난사고에 긴밀하게 대응하기 위해 만든 안전처가 ‘컨트롤 타워’가 아닌 ‘알림 타워’역할만 했다는 비아냥 섞인 비난이 한동안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는 재발 방지를 위한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여객선 승선권 발권을 전면 전산화하고 안전운항관리 업무를 한국해운조합과 분리하기로 했다. 여객선 정원을 늘리는 구조변경은 금지됐고 여객선 내 블랙박스를 의무적으로 탑재하게 했다.

또 1급 항해사만 대형 여객선 선장을 맡도록 조치했다. 비행기 조종사처럼 선장도 주기적으로 적성심사를 받게 하고 탈락하면 퇴출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한국해운조합 포항지부의 한 운항관리사가 세월호 사고 이후인 5월에도 선박 안전점검을 하지 않고 ‘문제없다’는 가짜 보고서를 쓴 사실이 드러나 구속되기도 했다.



정부·지자체의 ‘말 뿐인’ 관리 실태는 오룡호 사고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선사인 사조산업은 서류상 유령 선장을 내세워 선원의 이름과 직책, 자격을 검증하는 승선공인을 통과시키는가 하면 부적격자가 선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법적으로 반드시 승선해야 하는 선원도 다 갖추지 못한 채 오룡호를 출항시켰다.

승선공인을 담당한 부산해항청은 승무원 명부가 조작됐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마련해도 이를 뒷받침할 실천의지나 인식의 변화가 없으면 쓸모없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사고도 계속됐다.

5월에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열차 추돌사고로 240명가량이 다쳤고, 경기도 고양 종합버스터미널에서는 화재가 발생해 8명이 목숨을 잃는 등 6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남 장성군의 한 요양병원에선 입원해 있던 치매 노인이 불을 질러 22명이 숨졌고, 10월에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공연장에서 환풍구 덮개가 무너져 16명이 숨지는 참사가 이어졌다.

11월에는 전남 담양군 대덕면 모 펜션 바비큐장에서 불이 나 대학생 5명이 목숨을 잃었다.

모두 안전관리·감독이 소홀한데서 비롯된 인재였다.



◇ 세월호 선체 인양, 가능할까?

정부는 현재 세월호 선체 인양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이를 위해 다음 달 8일부터 현장조사에 착수한다. 선체주변의 해역 특성조사와 3차원 정밀 선체탐사 등을 거쳐 기술검토보고서를 작성할 계획이다.

현재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은 물론 전라남도와 진도군 모두 선체 인양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사고 해역의 물살이 워낙 빠른데다, 40m가 넘는 수심이어서 선체 인양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세월호의 무게가 6천825t으로, 과거 침몰했다 인양한 서해훼리호(170t)의 40배, 천안함(1200t)의 5배가 넘는다.

세월호가 지난 8개월 동안 바닷물 속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선체 내에 개흙이 들어 찬데다 상당히 부식됐을 것이라는 점은 인양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소다.

해수부는 인양기간이 최소 1년 이상, 비용은 최소 1천억 이상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소 여건이 이 정도여서 비용과 시간은 더 늘어날 가망성이 높다.

피해자 가족들은 아직 찾지 못한 실종자 9명이 선체 안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정확한 사고 원인 조사를 하려면 반드시 선체를 인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여전히 남은 의혹들, 진상조사는 해 넘겨 

사고 원인과 후속 조치 등을 둘러싼 의혹은 사고 직후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제기됐다. 이후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됐지만, 여러 의문점들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은 결정적 침몰 원인으로 꼽힌 ‘급격한 변침’의 이유와 세월호 내부 CCTV 64개가 사고 직전 한꺼번에 정지된 이유, 사고 직후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해경 123정이 선장과 선원을 먼저 구조한 뒤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서지 않은 이유, 사고 직후 선장 이준석씨를 해경 수사관 집에서 재운 이유 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의혹들이 많다는 입장이다.

이들이 사고 발생 8개월이 지나도록 정부에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이유다.



진통 끝에 정치권이 지난달 사고조사를 위한 ‘세월호법’에 합의했지만, 피해자 가족들이 요구해 온 ‘진상조사위원회의 수사권·기소권 보장’원칙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이 여러모로 미흡하지만, 입법부와 정치권이 넉 달 가까이 고민한 끝에 내놓은 결정인 만큼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국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작업은 올해를 넘겨 새해로 이어지게 됐다. 특별조사위원회는 내년 1월부터 가동돼 최장 1년9개월 동안 활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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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뒤흔든 세월호 ‘끝나지 않은 참사’
    • 입력 2014-12-29 09:55:30
    사회
지난 4월16일. 전남 진도군 병풍도 인근 해상에서 세월호가 갑자기 왼쪽으로 기울면서 전복돼 침몰했다. 승객과 승무원 476명이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길이었다. 이들 중에는 수학 여행길에 오른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도 포함돼 있었다. 사고 초기 온 국민이 모두 구조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과 달리 현실은 절망적이었고, 그 모든 상황을 방송사 중계 화면을 통해 지켜봤기에 충격은 더 컸다. 사망자 295명. 이들 중 단원고 학생·교사만 261명에 달한다. 11월11일 수색이 종료될 때까지 실종자 9명은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정부가 수색 종료를 선언한 날, 이준석 선장 등 승무원 15명은 1심에서 징역 5년~36년을 선고받았다. 검찰 수사 결과, 사고 당시 세월호는 물살이 거친 맹골수도 운항 경력이 없는 3등 항해사와 조타 실력이 미숙한 조타수에게 맡겨졌다. 결국 조타수가 급격한 변침을 하면서 배가 왼쪽으로 기울었고 과적에 제대로 묶이지도 않은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침몰한 것으로 밝혀졌다. 운항에서 침몰까지 안전 불감증의 총체였다. 세월호는 불법 증·개축 등으로 복원성을 현저히 잃어 애초 운항해서는 안 될 배였다. 피해자 휴대전화에 생생하게 녹화된 사고 당시 영상과 ‘가만히 있으라’는 승객 대기 방송은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질적 경영자로 지목된 유병언 전 회장과 그 일가, 무책임한 모습으로 일관한 이준석 선장, 당국의 미숙한 대처와 지지부진한 후속 조치는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4월16일은 잊을 수 없는, 잊어서도 안 되는 ‘안전국치일’로 기록됐다. ◇ 사고 책임자들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유족들 ‘분통’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이준석 선장 등 선원들을 비롯해 청해진해운 임직원, 해경과 해운업계 관계자까지 모두 399명이 입건됐다. 하지만 침몰하는 배와 승객을 뒤로하고 탈출한 이준석 선장에 대한 판결은 유족들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광주지법은 지난달(11월) 세월호 승무원 15명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이 선장에 대해 유기치사상, 선원법 위반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36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살인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1등 항해사와 2등 항해사에 대해서도 살인 혐의가 없다고 봤다. 그나마 혐의가 인정된 기관장마저 승객 살인은 무죄, 동료 승무원 살인은 유죄라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정은 판결이 너무 가볍다고 항의하는 유족들의 오열과 고성으로 가득 찼다. 이후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선원 15명은 1심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전원 항소한 상태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횡령·배임 등의 혐의를 받는 故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와 측근 대부분도 1심에서 무더기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장남인 유대균 씨(44)에게 징역 3년을, 유 전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탤런트 전양자 씨(73.본명 김경숙)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유 전 회장의 형 병일 씨(75)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동생 병호 씨(62)에게는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밖에 변기춘 천해지 대표(42)와 고창환 세모 대표(67) 등 측근 11명에게 징역 1년6월~징역 4년에 이르는 실형을 선고했다. 대균 씨 등 5명이 항소해 2심 재판을 앞둔 가운데, 유 전 회장의 돈줄을 관리한 것으로 알려진 김혜경(52.여) 한국제약 대표와 비자금 총책으로 지목된 김필배(76) 문진미디어 전 대표 등 최측근들도 최근 재판에 넘겨져 속속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월부터 시작된 세월호 실소유주 비리 수사는 8개월째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숨진 유 전 회장과 함께 경영 비리의 핵심으로 꼽힌 유씨의 차남 혁기(42)씨가 해외에서 여전히 도피 생활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혁기 씨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 쏟아진 재발방지 대책들…안전불감증은 여전  구난·구조당국의 초동대응 실패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빗발치자 정부는 11월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고 국무총리실 산하 '국민안전처' 를 신설했다. 해경이 갖고 있던 정보·수사 분야를 경찰청으로 넘기고 남은 조직은 안전행정부의 안전관리본부, 소방방재청과 합쳐 각종 재난·사고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의도에서다. 하지만 국민안전처는 출범하자마자 비판 어린 시선에 직면해야 했다. 12월1일 러시아 서베링해에서 조업 중이던 ‘501 오룡호’가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수습 과정에서 사령탑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조난 신고를 가장 먼저 접수한 건 국민안전처 산하에 있는 해양안전센터였지만 조난 상황을 외교부를 통해 러시아 측에 알리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3시간이 지나서야 해양수산부에 사고대책본부가 마련됐고, 다시 5시간이 지난 뒤 외교부로 옮겨졌다. 선원 구조나 후속 대책은 해수부와 외교부가 맡았다. 국민안전처는 해외재난의 경우 외교부 장관이 중앙대책본부장을 맡도록 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른 것이라고 뒤늦게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대형 재난사고에 긴밀하게 대응하기 위해 만든 안전처가 ‘컨트롤 타워’가 아닌 ‘알림 타워’역할만 했다는 비아냥 섞인 비난이 한동안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는 재발 방지를 위한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여객선 승선권 발권을 전면 전산화하고 안전운항관리 업무를 한국해운조합과 분리하기로 했다. 여객선 정원을 늘리는 구조변경은 금지됐고 여객선 내 블랙박스를 의무적으로 탑재하게 했다. 또 1급 항해사만 대형 여객선 선장을 맡도록 조치했다. 비행기 조종사처럼 선장도 주기적으로 적성심사를 받게 하고 탈락하면 퇴출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한국해운조합 포항지부의 한 운항관리사가 세월호 사고 이후인 5월에도 선박 안전점검을 하지 않고 ‘문제없다’는 가짜 보고서를 쓴 사실이 드러나 구속되기도 했다. 정부·지자체의 ‘말 뿐인’ 관리 실태는 오룡호 사고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선사인 사조산업은 서류상 유령 선장을 내세워 선원의 이름과 직책, 자격을 검증하는 승선공인을 통과시키는가 하면 부적격자가 선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법적으로 반드시 승선해야 하는 선원도 다 갖추지 못한 채 오룡호를 출항시켰다. 승선공인을 담당한 부산해항청은 승무원 명부가 조작됐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마련해도 이를 뒷받침할 실천의지나 인식의 변화가 없으면 쓸모없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사고도 계속됐다. 5월에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열차 추돌사고로 240명가량이 다쳤고, 경기도 고양 종합버스터미널에서는 화재가 발생해 8명이 목숨을 잃는 등 6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남 장성군의 한 요양병원에선 입원해 있던 치매 노인이 불을 질러 22명이 숨졌고, 10월에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공연장에서 환풍구 덮개가 무너져 16명이 숨지는 참사가 이어졌다. 11월에는 전남 담양군 대덕면 모 펜션 바비큐장에서 불이 나 대학생 5명이 목숨을 잃었다. 모두 안전관리·감독이 소홀한데서 비롯된 인재였다. ◇ 세월호 선체 인양, 가능할까? 정부는 현재 세월호 선체 인양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이를 위해 다음 달 8일부터 현장조사에 착수한다. 선체주변의 해역 특성조사와 3차원 정밀 선체탐사 등을 거쳐 기술검토보고서를 작성할 계획이다. 현재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은 물론 전라남도와 진도군 모두 선체 인양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사고 해역의 물살이 워낙 빠른데다, 40m가 넘는 수심이어서 선체 인양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세월호의 무게가 6천825t으로, 과거 침몰했다 인양한 서해훼리호(170t)의 40배, 천안함(1200t)의 5배가 넘는다. 세월호가 지난 8개월 동안 바닷물 속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선체 내에 개흙이 들어 찬데다 상당히 부식됐을 것이라는 점은 인양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소다. 해수부는 인양기간이 최소 1년 이상, 비용은 최소 1천억 이상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소 여건이 이 정도여서 비용과 시간은 더 늘어날 가망성이 높다. 피해자 가족들은 아직 찾지 못한 실종자 9명이 선체 안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정확한 사고 원인 조사를 하려면 반드시 선체를 인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여전히 남은 의혹들, 진상조사는 해 넘겨  사고 원인과 후속 조치 등을 둘러싼 의혹은 사고 직후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제기됐다. 이후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됐지만, 여러 의문점들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은 결정적 침몰 원인으로 꼽힌 ‘급격한 변침’의 이유와 세월호 내부 CCTV 64개가 사고 직전 한꺼번에 정지된 이유, 사고 직후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해경 123정이 선장과 선원을 먼저 구조한 뒤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서지 않은 이유, 사고 직후 선장 이준석씨를 해경 수사관 집에서 재운 이유 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의혹들이 많다는 입장이다. 이들이 사고 발생 8개월이 지나도록 정부에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이유다. 진통 끝에 정치권이 지난달 사고조사를 위한 ‘세월호법’에 합의했지만, 피해자 가족들이 요구해 온 ‘진상조사위원회의 수사권·기소권 보장’원칙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이 여러모로 미흡하지만, 입법부와 정치권이 넉 달 가까이 고민한 끝에 내놓은 결정인 만큼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국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작업은 올해를 넘겨 새해로 이어지게 됐다. 특별조사위원회는 내년 1월부터 가동돼 최장 1년9개월 동안 활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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