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 “K리그 중심 대표팀 만들고 싶다”

입력 2015.01.01 (13:45) 수정 2015.01.0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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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축구가 아시아의 굴레를 벗고 세계로 나아가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새해 목표로 삼았다.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은 1일 호주 시드니의 코트야드 메리어트 호텔에서 가진 기자들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새해 구상을 묻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현재 대표팀은 이달 9일 개막하는 아시안컵에 출전하기 위해 호주 시드니에서 담금질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 아시안컵에서 공격적인 점유율 축구에 도전하겠다며 이를 위해 대표팀의 스타일을 단계적으로 가꿔가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축구에 남기고 싶은 발자취를 묻는 말에는 "대표팀과 K리그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슈틸리케 감독과의 문답.

-- 오늘 떡국을 드시더라. 대표팀이 한식을 먹는데 생활이 괜찮은가.

▲ 맛있게 잘 먹었다. 해외 생활을 오래 해봤기 때문에 각 나라의 음식이 문제가 되는 일은 없다.

-- 한국 축구의 사령탑으로서 꼭 성인 대표팀뿐만 아니라 한국 축구 전반의 발전을 이끌어야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새해를 맞아 어떤 구상을 하고 있나.

▲ 한국 축구가 발전하려면 아시아라는 우물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 한국은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하는 데 신경을 쓰고 세계 축구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런 편협한 시각을 교정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 현대 축구에서는 유럽이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도 스페인이나 독일과 같은 국가를 참고해야 한다. 대표팀뿐만 아니라 리그 차원에서도, 우리는 리그 질이나 관중수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독일 분데스리가에 한참 뒤진 게 현실이다.

2015년에 아시안컵이라는 중요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게 중요하지만 우리가 어떤 스타일의 축구를 하는지도 중요하다. 우리의 스타일이 한국 축구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대표팀이 좋은 축구를 하면 팬들이 즐거워 할 것이다. 적극적이고 과감한 축구을 통해 우리 선수들이 변화의 선봉에 설 것이다.

-- 아시안컵은 슈틸리케 감독이 추구하는 스타일을 조율해가는 과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어떤 것을 개선하거나 집중적으로 발전시키고 싶은가.

▲ K리그 경기의 내용과 결과를 보면 상당히 많은 팀이 지지 않기 위한 경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아시안컵의 한국 엔트리를 봐도 알겠지만 우리에게는 수비수가 많다. 국내에서도 좋은 수비수가 양성되고 있다. 그러나 공격수의 부재는 아쉽다. 이번 대회에서 공격진을 어떻게 짤지 구상할 때 고민이 많았다. 해결 과제다.

내 축구 철학은 0-0에서 지지 않을 축구를 추구해 승점 1을 따는 것보다 승점 3을 따려고 계속 도전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적극적으로 공격에 집중하는 것이다. 팀이 지키기 위한 축구를 하게 되면 수비적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다. 지키기 위한 축구를 한다고 하더라도 볼을 점유해서 경기는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플레이 스타일은 바로 이것이다.

-- 그래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훈련장에서 보면 슈틸리케 감독은 볼을 지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있다.

▲ 너무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우리가 볼을 소유하는 동안에 상대는 절대로 득점할 수 없다. 매우 간단한 이유이다. 그러나 볼을 점유하는 데도 두 가지 스타일이 있다. 하나는 지루하게 횡패스나 백패스를 남발하는 식으로 볼을 오래 지니는 것이다. 다른 방식은 출중한 팀에서 볼 수 있는데, 팀이 볼을 소유하면서 끊임없이 전진하려고 노력하면서 공격 기회를 양산하는 스타일이다.

우리는 후자를 선택해 팀을 만들어가고 있다. 작년 11월 요르단과의 평가전을 예로 들면 70%의 볼 점유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슈팅은 단 4차례에 그쳤다. 우리가 효율적으로 볼을 점유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것들이 하루아침에 고쳐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현재 우리는 첫 단계로 볼을 점유하면서 안정적으로 돌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 수 있는 경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게 이뤄지면 다음 단계로 전진하면서 공격기회를 양산하는 경지에 도전할 것이다.

-- 대표팀 훈련장에서 골키퍼들도 필드 플레이어처럼 발로 빌드업(공을 앞으로 운반해 나가는 체계)을 연마하는 것을 봤다. 슈틸리케 감독이 말하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볼 점유, 그것은 골키퍼,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 등 각 포지션을 따질 때 어떤 차별화된, 구체적인 방식으로 적용되는지.

▲ 골키퍼들은 백패스를 손으로 잡지 못하는 규정이 도입된 뒤로 활동에 큰 제약이 생겼다. 골키퍼는 패스를 받아서 발로 플레이를 할 때 더는 자기가 골키퍼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골키퍼는 공격에 가담하는 팀의 첫 번째 필드 필레이어가 돼야 한다는 인식을 지녀야 한다. 골키퍼들이 롱킥을 하면 볼이 50∼60m 날아가서 우리가 상대와 경쟁해야만 한다. 우리가 볼을 따낼 확률은 50% 미만이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이는 비단 골키퍼만의 문제는 아니다. 골키퍼들이 롱킥을 할 수밖에 없도록 몰리지 않게 수비수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여 줘야 한다. 롱킥을 유발하는 수비수의 움직임은 지적을 받아 마땅하다. 수비수들에게 골키퍼로부터 짧은 패스를 받을 수 있도록 움직이는 옵션을 만들라고 주문하고 있다.

나는 선수 시절 중원에서 활동하는 미드필더였다. 그때 지도자께서 나를 따로 불러 식당을 예로 들면서 당신은 주방장과 다름없다고 얘기했다. 내 조리법이 먹는 이의 입맛을 좌우한다는 것이었다. 미드필더들이 얼마나 좋은 패스를 하느냐에 따라 팀 전체의 플레이 수준이 좌우된다는 의미다. 그 생각에 동의한다.

공격수는 적극성을 필요하다. 그 적극성은 수비수와의 적극성과는 다르다. 수비수는 강한 몸싸움, 피지컬의 면이 강조된다. 공격수의 적극성은 어떻게 수비수들의 몸싸움을 피하거나 돌파할지와 관련된다. 나는 지금 우리 공격수들에게 볼을 점유할 때 반드시 슈팅이나 골로 마무리까지 하라는 적극성을 주문하고 있다.

-- 슈틸리케 감독은 늘 수첩에 모든 상황을 기록하던데. 언제부터 그렇게 해왔고 왜 그런 습관을 갖게 됐는가.

▲ 어제 훈련 내용을 보고 하는 말 같다. 어제 훈련 중에 차두리가 경미하게 다쳤다. 그래서 끝까지 훈련을 소화하지 못했다. 훈련 계획이 변경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을 재구상하느라고 메모를 오랜 시간 했다. 감독은 전술의 유연성, 계획의 유연성을 지녀야 한다. 상황에 맞는 신속한 대응력이 필요하다. 상대가 원톱을 쓸 때, 경기 중에 투톱, 스리톱으로 바꿨을 때 감독은 바로 대처해야 한다. 그런 변화에 순간적으로 잘 대응하려고 항상 메모지를 들고 다니고 기록한다.

-- 한국 축구 대표팀은 그간 주전 라인업에 변화가 잘 없었다.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한 뒤 4차례 평가전에서는 골키퍼뿐만 아니라 수비라인이 같은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공격진도 완전히 새로 구성해 새로운 모험에 나선다. 주전 전열을 구성하는 데 골치가 아프지는 않은가. 아시안컵에서도 선수 구성이 경기마다 바뀔 가능성이 있는가.

▲ 내가 9월 24일에 한국에 들어와 감독직을 수행하면서 단 한 차례도 해외에 나가 해외파 선수를 점검한 적이 없다. 오로지 국내에 머물며 국내 선수들을 분석했다. 국내 선수들, K리그를 보면서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얼마나 활약을 해줄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 했다. 그래서 평가전에서는 다양한 선수 조합을 놓고 실험을 했다.

내 생각 중에 결코 변화가 없는 게 있다. 아시안컵과 같은 대회는 11명의 선수로 우승할 수 있는 대회가 절대로 아니다. 모든 감독의 꿈이겠지만 나도 그 꿈을 꾼다. 어떤 선수가 투입되더라도 그전에 투입된 어떤 선수만큼 주어진 역할을 충분히 해줄 수 있는 팀을 만들려고 한다. 전술의 유연성이 중요하다. 선수들이 어떤 전술을 펼치더라도 다 소화해낼 수 있도록 준비된다면 좋겠다. 그런 팀이 만들어지면 상대가 전혀 예측을 할 수 없는 전술을 구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분데스리가를 자주 언급했는데. 한국에서도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다. 평소에 선수들에게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고 전해들었다. 어떤 조언을 하고 있나.

▲ 선수들이 이적할 때 정말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선수의 잘못된 이적은 선수의 실수 탓일 수 있지만 에이전트의 판단 오류 때문일 때도 있다. 어떤 에이전트들은 당장 눈앞에 있는 이적료, 연봉 등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금액을 따질 때가 있다. 에이전트들이 중장기적으로 선수가 어떤 커리어를 갖고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 할지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선수로서는 본인이 뛸 수 있는 클럽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선수가 작은 클럽에서 시작하더라도 단계별로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 빅클럽이 아닌 작은 구단에서 뛰더라도 벤치에 앉지 않고 필드를 누빈다면 더 좋은 선택일 수 있다. 내가 코트디부아르 대표팀을 맡았을 때 처음에 거기 선수들이 벨기에 중소구단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거기서 충분히 기량을 쌓고 단계를 밟다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하곤 했다.

-- 한국 축구의 고질적 문제를 전에 언급한 적이 있는데. 축구를 대하는 자세를 고치겠다고 했는데. 한국 축구에 남기고 싶은 족적이 있다면 무엇인가.

▲ 지금 대표팀이 처한 현실을 보자. 정확히 계산해봤다면 알겠지만 우리 대표팀은 지금 8개 국가의 20개 다른 클럽에서 뛰는 선수들의 집단이다. 한 두 클럽의 선수들이 대표팀의 대다수를 이루는 스페인, 독일과는 확연히 다르다. 스페인, 독일과 같은 대표팀의 감독을 맡으면 기존의 큰 틀에서 선수들에게 해오던 것을 관리, 유지만 하면 된다. 우리는 그와 다른 상황이라서 문제가 어렵다. 대표팀 감독으로서 내가 바꾸고 싶은 게 있다면 K리그 우승팀에서 상당히 많은, 4∼5명의 선수가 대표팀에 합류했으면 한다. 그렇게 대표팀이 이뤄질 수 있도록 클럽의 수준이 올라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려면 선수 육성이나 K리그의 경쟁력 강화가 중요하다. 대표팀과 K리그의 선순환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게 내가 한국 축구에 남기고 싶은 족적이다.

-- 한국 축구 대표팀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굉장히 부담스러워 하거나 꺼리는 감독이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심정은 어떤가.

▲ 언론, 팬들의 관심도 중요하지만 진짜 관심의 척도는 경기장에 오는 관중수다. 관중이 얼마나 많이 모이는지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이다. K리그 관중이 많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은 필드 위에 있을 때 관중이 얼마나 많은지다. 많은 관중은 선수들에 대한 부담, 압박이 될 수 있다. 선수는 그런 환경에서도 잘할 수 있다면 대표팀에 와서도 심리적 변수를 제어하고 승리할 수 있다. 경기장 관중수가 진짜 관심이다.

이를 위해 선수들이 해야 할 역할도 있다. 축구는 오케스트라이고 축구 경기는 공연으로 볼 수 있다. 관중을 즐겁게 해주는 게 우리 선수들의 역할이다. 선수들은 지휘자가 될 때도 있고 악기 연주자일 수도 있다. 그런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행위가 관중을 즐겁게 하고 그들의 관심을 끌어내야 한다.

-- 새해에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시안컵 각오를 포함해서.

▲ 국민 여러분이 하시는 일이 다 잘됐으면 좋겠다. 새해 소원을 많이 비는데 그중에는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건강 문제 같은 사안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축구 대표팀은 우리의 소원을 우리의 의지로 충분히 이룰 수 있다. 우리는 올해 소원을 꼭 이루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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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틸리케 “K리그 중심 대표팀 만들고 싶다”
    • 입력 2015-01-01 13:45:08
    • 수정2015-01-06 16:46:49
    연합뉴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축구가 아시아의 굴레를 벗고 세계로 나아가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새해 목표로 삼았다.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은 1일 호주 시드니의 코트야드 메리어트 호텔에서 가진 기자들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새해 구상을 묻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현재 대표팀은 이달 9일 개막하는 아시안컵에 출전하기 위해 호주 시드니에서 담금질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 아시안컵에서 공격적인 점유율 축구에 도전하겠다며 이를 위해 대표팀의 스타일을 단계적으로 가꿔가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축구에 남기고 싶은 발자취를 묻는 말에는 "대표팀과 K리그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슈틸리케 감독과의 문답.

-- 오늘 떡국을 드시더라. 대표팀이 한식을 먹는데 생활이 괜찮은가.

▲ 맛있게 잘 먹었다. 해외 생활을 오래 해봤기 때문에 각 나라의 음식이 문제가 되는 일은 없다.

-- 한국 축구의 사령탑으로서 꼭 성인 대표팀뿐만 아니라 한국 축구 전반의 발전을 이끌어야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새해를 맞아 어떤 구상을 하고 있나.

▲ 한국 축구가 발전하려면 아시아라는 우물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 한국은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하는 데 신경을 쓰고 세계 축구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런 편협한 시각을 교정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 현대 축구에서는 유럽이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도 스페인이나 독일과 같은 국가를 참고해야 한다. 대표팀뿐만 아니라 리그 차원에서도, 우리는 리그 질이나 관중수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독일 분데스리가에 한참 뒤진 게 현실이다.

2015년에 아시안컵이라는 중요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게 중요하지만 우리가 어떤 스타일의 축구를 하는지도 중요하다. 우리의 스타일이 한국 축구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대표팀이 좋은 축구를 하면 팬들이 즐거워 할 것이다. 적극적이고 과감한 축구을 통해 우리 선수들이 변화의 선봉에 설 것이다.

-- 아시안컵은 슈틸리케 감독이 추구하는 스타일을 조율해가는 과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어떤 것을 개선하거나 집중적으로 발전시키고 싶은가.

▲ K리그 경기의 내용과 결과를 보면 상당히 많은 팀이 지지 않기 위한 경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아시안컵의 한국 엔트리를 봐도 알겠지만 우리에게는 수비수가 많다. 국내에서도 좋은 수비수가 양성되고 있다. 그러나 공격수의 부재는 아쉽다. 이번 대회에서 공격진을 어떻게 짤지 구상할 때 고민이 많았다. 해결 과제다.

내 축구 철학은 0-0에서 지지 않을 축구를 추구해 승점 1을 따는 것보다 승점 3을 따려고 계속 도전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적극적으로 공격에 집중하는 것이다. 팀이 지키기 위한 축구를 하게 되면 수비적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다. 지키기 위한 축구를 한다고 하더라도 볼을 점유해서 경기는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플레이 스타일은 바로 이것이다.

-- 그래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훈련장에서 보면 슈틸리케 감독은 볼을 지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있다.

▲ 너무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우리가 볼을 소유하는 동안에 상대는 절대로 득점할 수 없다. 매우 간단한 이유이다. 그러나 볼을 점유하는 데도 두 가지 스타일이 있다. 하나는 지루하게 횡패스나 백패스를 남발하는 식으로 볼을 오래 지니는 것이다. 다른 방식은 출중한 팀에서 볼 수 있는데, 팀이 볼을 소유하면서 끊임없이 전진하려고 노력하면서 공격 기회를 양산하는 스타일이다.

우리는 후자를 선택해 팀을 만들어가고 있다. 작년 11월 요르단과의 평가전을 예로 들면 70%의 볼 점유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슈팅은 단 4차례에 그쳤다. 우리가 효율적으로 볼을 점유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것들이 하루아침에 고쳐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현재 우리는 첫 단계로 볼을 점유하면서 안정적으로 돌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 수 있는 경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게 이뤄지면 다음 단계로 전진하면서 공격기회를 양산하는 경지에 도전할 것이다.

-- 대표팀 훈련장에서 골키퍼들도 필드 플레이어처럼 발로 빌드업(공을 앞으로 운반해 나가는 체계)을 연마하는 것을 봤다. 슈틸리케 감독이 말하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볼 점유, 그것은 골키퍼,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 등 각 포지션을 따질 때 어떤 차별화된, 구체적인 방식으로 적용되는지.

▲ 골키퍼들은 백패스를 손으로 잡지 못하는 규정이 도입된 뒤로 활동에 큰 제약이 생겼다. 골키퍼는 패스를 받아서 발로 플레이를 할 때 더는 자기가 골키퍼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골키퍼는 공격에 가담하는 팀의 첫 번째 필드 필레이어가 돼야 한다는 인식을 지녀야 한다. 골키퍼들이 롱킥을 하면 볼이 50∼60m 날아가서 우리가 상대와 경쟁해야만 한다. 우리가 볼을 따낼 확률은 50% 미만이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이는 비단 골키퍼만의 문제는 아니다. 골키퍼들이 롱킥을 할 수밖에 없도록 몰리지 않게 수비수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여 줘야 한다. 롱킥을 유발하는 수비수의 움직임은 지적을 받아 마땅하다. 수비수들에게 골키퍼로부터 짧은 패스를 받을 수 있도록 움직이는 옵션을 만들라고 주문하고 있다.

나는 선수 시절 중원에서 활동하는 미드필더였다. 그때 지도자께서 나를 따로 불러 식당을 예로 들면서 당신은 주방장과 다름없다고 얘기했다. 내 조리법이 먹는 이의 입맛을 좌우한다는 것이었다. 미드필더들이 얼마나 좋은 패스를 하느냐에 따라 팀 전체의 플레이 수준이 좌우된다는 의미다. 그 생각에 동의한다.

공격수는 적극성을 필요하다. 그 적극성은 수비수와의 적극성과는 다르다. 수비수는 강한 몸싸움, 피지컬의 면이 강조된다. 공격수의 적극성은 어떻게 수비수들의 몸싸움을 피하거나 돌파할지와 관련된다. 나는 지금 우리 공격수들에게 볼을 점유할 때 반드시 슈팅이나 골로 마무리까지 하라는 적극성을 주문하고 있다.

-- 슈틸리케 감독은 늘 수첩에 모든 상황을 기록하던데. 언제부터 그렇게 해왔고 왜 그런 습관을 갖게 됐는가.

▲ 어제 훈련 내용을 보고 하는 말 같다. 어제 훈련 중에 차두리가 경미하게 다쳤다. 그래서 끝까지 훈련을 소화하지 못했다. 훈련 계획이 변경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을 재구상하느라고 메모를 오랜 시간 했다. 감독은 전술의 유연성, 계획의 유연성을 지녀야 한다. 상황에 맞는 신속한 대응력이 필요하다. 상대가 원톱을 쓸 때, 경기 중에 투톱, 스리톱으로 바꿨을 때 감독은 바로 대처해야 한다. 그런 변화에 순간적으로 잘 대응하려고 항상 메모지를 들고 다니고 기록한다.

-- 한국 축구 대표팀은 그간 주전 라인업에 변화가 잘 없었다.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한 뒤 4차례 평가전에서는 골키퍼뿐만 아니라 수비라인이 같은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공격진도 완전히 새로 구성해 새로운 모험에 나선다. 주전 전열을 구성하는 데 골치가 아프지는 않은가. 아시안컵에서도 선수 구성이 경기마다 바뀔 가능성이 있는가.

▲ 내가 9월 24일에 한국에 들어와 감독직을 수행하면서 단 한 차례도 해외에 나가 해외파 선수를 점검한 적이 없다. 오로지 국내에 머물며 국내 선수들을 분석했다. 국내 선수들, K리그를 보면서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얼마나 활약을 해줄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 했다. 그래서 평가전에서는 다양한 선수 조합을 놓고 실험을 했다.

내 생각 중에 결코 변화가 없는 게 있다. 아시안컵과 같은 대회는 11명의 선수로 우승할 수 있는 대회가 절대로 아니다. 모든 감독의 꿈이겠지만 나도 그 꿈을 꾼다. 어떤 선수가 투입되더라도 그전에 투입된 어떤 선수만큼 주어진 역할을 충분히 해줄 수 있는 팀을 만들려고 한다. 전술의 유연성이 중요하다. 선수들이 어떤 전술을 펼치더라도 다 소화해낼 수 있도록 준비된다면 좋겠다. 그런 팀이 만들어지면 상대가 전혀 예측을 할 수 없는 전술을 구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분데스리가를 자주 언급했는데. 한국에서도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다. 평소에 선수들에게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고 전해들었다. 어떤 조언을 하고 있나.

▲ 선수들이 이적할 때 정말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선수의 잘못된 이적은 선수의 실수 탓일 수 있지만 에이전트의 판단 오류 때문일 때도 있다. 어떤 에이전트들은 당장 눈앞에 있는 이적료, 연봉 등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금액을 따질 때가 있다. 에이전트들이 중장기적으로 선수가 어떤 커리어를 갖고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 할지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선수로서는 본인이 뛸 수 있는 클럽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선수가 작은 클럽에서 시작하더라도 단계별로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 빅클럽이 아닌 작은 구단에서 뛰더라도 벤치에 앉지 않고 필드를 누빈다면 더 좋은 선택일 수 있다. 내가 코트디부아르 대표팀을 맡았을 때 처음에 거기 선수들이 벨기에 중소구단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거기서 충분히 기량을 쌓고 단계를 밟다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하곤 했다.

-- 한국 축구의 고질적 문제를 전에 언급한 적이 있는데. 축구를 대하는 자세를 고치겠다고 했는데. 한국 축구에 남기고 싶은 족적이 있다면 무엇인가.

▲ 지금 대표팀이 처한 현실을 보자. 정확히 계산해봤다면 알겠지만 우리 대표팀은 지금 8개 국가의 20개 다른 클럽에서 뛰는 선수들의 집단이다. 한 두 클럽의 선수들이 대표팀의 대다수를 이루는 스페인, 독일과는 확연히 다르다. 스페인, 독일과 같은 대표팀의 감독을 맡으면 기존의 큰 틀에서 선수들에게 해오던 것을 관리, 유지만 하면 된다. 우리는 그와 다른 상황이라서 문제가 어렵다. 대표팀 감독으로서 내가 바꾸고 싶은 게 있다면 K리그 우승팀에서 상당히 많은, 4∼5명의 선수가 대표팀에 합류했으면 한다. 그렇게 대표팀이 이뤄질 수 있도록 클럽의 수준이 올라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려면 선수 육성이나 K리그의 경쟁력 강화가 중요하다. 대표팀과 K리그의 선순환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게 내가 한국 축구에 남기고 싶은 족적이다.

-- 한국 축구 대표팀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굉장히 부담스러워 하거나 꺼리는 감독이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심정은 어떤가.

▲ 언론, 팬들의 관심도 중요하지만 진짜 관심의 척도는 경기장에 오는 관중수다. 관중이 얼마나 많이 모이는지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이다. K리그 관중이 많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은 필드 위에 있을 때 관중이 얼마나 많은지다. 많은 관중은 선수들에 대한 부담, 압박이 될 수 있다. 선수는 그런 환경에서도 잘할 수 있다면 대표팀에 와서도 심리적 변수를 제어하고 승리할 수 있다. 경기장 관중수가 진짜 관심이다.

이를 위해 선수들이 해야 할 역할도 있다. 축구는 오케스트라이고 축구 경기는 공연으로 볼 수 있다. 관중을 즐겁게 해주는 게 우리 선수들의 역할이다. 선수들은 지휘자가 될 때도 있고 악기 연주자일 수도 있다. 그런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행위가 관중을 즐겁게 하고 그들의 관심을 끌어내야 한다.

-- 새해에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시안컵 각오를 포함해서.

▲ 국민 여러분이 하시는 일이 다 잘됐으면 좋겠다. 새해 소원을 많이 비는데 그중에는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건강 문제 같은 사안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축구 대표팀은 우리의 소원을 우리의 의지로 충분히 이룰 수 있다. 우리는 올해 소원을 꼭 이루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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