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다이빙 사고로 ‘사지마비’ 누구의 잘못?

입력 2015.01.13 (06:03) 수정 2015.01.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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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야외수영장.

27살 김모 씨는 찌는 듯한 더위를 피해 여자친구와 물놀이를 즐겼습니다. 다이빙도 했습니다. 멋지게 입수하나 싶었는데 머리를 수영장 바닥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알고보니 수심은 어른 키보다 훨씬 낮은 1.2미터여서 다이빙을 하기엔 너무 얕았습니다.

김 씨는 머리를 세게 바닥에 찧는 바람에 목뼈와 중추신경이 심하게 손상돼 사지가 마비됐습니다. 이제는 휠체어에 의지해야 겨우 이동 가능하고, 간병인이 없으면 스스로 일상 생활을 할 수가 없게 돼버렸습니다. 20대에 대기업에 다니며 꿈을 키우던 청년의 삶이 단 한번 다이빙으로 인해 바뀌어 버린 겁니다.

결국 김 씨와 가족은 호텔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해 이달 초 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호텔이 김 씨에게 3억 2천여만 원, 김 씨의 부모님에게 위자료 천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재판부는 수영장 이용객들이 들뜬 마음에 다이빙을 할 것이라고 예견할 수 있는데도 위험성을 미리 알리지도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경고 표지를 설치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고발생을 방지할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물론 재판부가 보기에도 특급호텔인 만큼 시설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수영장 바닥과 벽면에 수심이 표시되어 있었고, 안전요원 등이 배치돼 체육시설법에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다소 낮아보이는 수심도 관련법은 0.9미터에서 2.7미터 이하의 범위의 수심은 적정하다고 규정한 만큼 문제는 없었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그러나 민법 758조 1항에 따라 시설물이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고, 이용객 보호 의무를 위반한 점은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그렇다면 김 씨의 책임은 어떨까요?

재판부는 김 씨의 책임이 더 무겁다고 봤습니다. 대낮에 야외에 있는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했다면 수심이 얕다는 걸 인식할 수 있었는데도 다이빙을 했기 때문에 사고를 유발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 사고에 대해 김 씨의 책임이 80%, 호텔의 책임은 20%로 판단했습니다.

김 씨 가족은 재판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씨가 현재 재활원에서 간병인의 보살핌을 받고 있으며, 이런 생활을 기약없이 계속 해야하는데 1심 판결이 확정되면 앞으로 김 씨의 치료와 간호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게다가 병원비 외에 휠체어와 특수침대는 정기적으로 교체해야 하고 앞으로도 물티슈, 욕창방지용 매트 등 소모품 비용은 계속 들어간다는 게 가족들의 입장입니다. 김 씨 측이 이번 소송에서 청구한 금액은 18억 원이었습니다.

해당 호텔은 1심 판결에 대해 항소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난 것에 대해 유감이고, 사고 이후 다이빙을 하지말라는 경고판을 설치했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김 씨와 호텔 둘다 잘못이 있다는 결론이 났지만, 양쪽 모두 홀가분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최근 법원 판결을 보면 대개 비슷합니다.

지난 2012년 35살 박모 씨는 경기도 가평의 한 펜션에서 술을 마신 뒤 밤늦게 수영장에 다이빙을 했다가 머리를 다쳐 하반신 마비가 됐습니다. 이번엔 어땠을까요? 앞선 사고와 비슷합니다. 펜션 주인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습니다.

박 씨 측에 치료비와 위자료로 2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었습니다. 투숙객들이 야간 수영을 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음주 수영을 적극적으로 제지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사고를 방지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펜션 주인의 책임은 15%로 제한했습니다.

지난 2011년 열린 경북 영덕대게축제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한 관광객이 대게 낚시 체험행사에서 임시 수조에 다이빙했다가 목뼈가 부러져 전신이 마비된 겁니다. 법원은 영덕군이 5억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수심이 43센티미터에 불과한 곳에서 사회자가 다이빙한 참가자에게 대게 2마리를 주겠다고 유도했고, 영덕군도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정확한 통계로 낼 수는 없지만 앞의 사례들을 종합하면 대체로 시설물 관리자의 책임은 15~20%, 나머지는 다이빙을 한 사람의 책임으로 돌아가는 구조입니다.

얼핏 억대가 넘는 지급액을 보면, 원고 측에게 상당히 유리한 판결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다이빙으로 인한 목뼈나 척추 손상으로 중추신경이 마비되면 대부분의 노동능력을 상실해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게다가 평생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거동을 하기 힘듭니다. 이에 따라 다친 사람이 평생동안 벌 수 있는 금액과 치료비, 기타 비용에 대해 청구하게 되고 일부만 인정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렇다보니 시설물을 이용하다 사고로 신체 일부가 마비될 정도로 크게 다친 분들은 소송을 망설이는 경향도 있다고 법조계에서는 말합니다. 소송을 이겨서 확정된 금액을 얻어내더라도 일단 먼저 자신의 과실 범위가 정해지는 데다, 시간이 지나면 생각보다 더 큰 금액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는 겁니다. 결국 당연한 얘기지만 시설물을 이용할 때 몇번이고 안전한지 확인하고 즐기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아무래도 다치면 몸도 힘들지만 손해를 받아내는 일도 고달프니 말입니다.

☞ 바로가기 [뉴스광장] 호텔 수영장 다이빙 사고…호텔도 일부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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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다이빙 사고로 ‘사지마비’ 누구의 잘못?
    • 입력 2015-01-13 06:03:51
    • 수정2015-01-13 16:23:18
    취재후·사건후
2011년 8월,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야외수영장.

27살 김모 씨는 찌는 듯한 더위를 피해 여자친구와 물놀이를 즐겼습니다. 다이빙도 했습니다. 멋지게 입수하나 싶었는데 머리를 수영장 바닥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알고보니 수심은 어른 키보다 훨씬 낮은 1.2미터여서 다이빙을 하기엔 너무 얕았습니다.

김 씨는 머리를 세게 바닥에 찧는 바람에 목뼈와 중추신경이 심하게 손상돼 사지가 마비됐습니다. 이제는 휠체어에 의지해야 겨우 이동 가능하고, 간병인이 없으면 스스로 일상 생활을 할 수가 없게 돼버렸습니다. 20대에 대기업에 다니며 꿈을 키우던 청년의 삶이 단 한번 다이빙으로 인해 바뀌어 버린 겁니다.

결국 김 씨와 가족은 호텔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해 이달 초 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호텔이 김 씨에게 3억 2천여만 원, 김 씨의 부모님에게 위자료 천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재판부는 수영장 이용객들이 들뜬 마음에 다이빙을 할 것이라고 예견할 수 있는데도 위험성을 미리 알리지도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경고 표지를 설치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고발생을 방지할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물론 재판부가 보기에도 특급호텔인 만큼 시설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수영장 바닥과 벽면에 수심이 표시되어 있었고, 안전요원 등이 배치돼 체육시설법에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다소 낮아보이는 수심도 관련법은 0.9미터에서 2.7미터 이하의 범위의 수심은 적정하다고 규정한 만큼 문제는 없었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그러나 민법 758조 1항에 따라 시설물이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고, 이용객 보호 의무를 위반한 점은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그렇다면 김 씨의 책임은 어떨까요?

재판부는 김 씨의 책임이 더 무겁다고 봤습니다. 대낮에 야외에 있는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했다면 수심이 얕다는 걸 인식할 수 있었는데도 다이빙을 했기 때문에 사고를 유발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 사고에 대해 김 씨의 책임이 80%, 호텔의 책임은 20%로 판단했습니다.

김 씨 가족은 재판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씨가 현재 재활원에서 간병인의 보살핌을 받고 있으며, 이런 생활을 기약없이 계속 해야하는데 1심 판결이 확정되면 앞으로 김 씨의 치료와 간호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게다가 병원비 외에 휠체어와 특수침대는 정기적으로 교체해야 하고 앞으로도 물티슈, 욕창방지용 매트 등 소모품 비용은 계속 들어간다는 게 가족들의 입장입니다. 김 씨 측이 이번 소송에서 청구한 금액은 18억 원이었습니다.

해당 호텔은 1심 판결에 대해 항소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난 것에 대해 유감이고, 사고 이후 다이빙을 하지말라는 경고판을 설치했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김 씨와 호텔 둘다 잘못이 있다는 결론이 났지만, 양쪽 모두 홀가분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최근 법원 판결을 보면 대개 비슷합니다.

지난 2012년 35살 박모 씨는 경기도 가평의 한 펜션에서 술을 마신 뒤 밤늦게 수영장에 다이빙을 했다가 머리를 다쳐 하반신 마비가 됐습니다. 이번엔 어땠을까요? 앞선 사고와 비슷합니다. 펜션 주인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습니다.

박 씨 측에 치료비와 위자료로 2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었습니다. 투숙객들이 야간 수영을 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음주 수영을 적극적으로 제지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사고를 방지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펜션 주인의 책임은 15%로 제한했습니다.

지난 2011년 열린 경북 영덕대게축제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한 관광객이 대게 낚시 체험행사에서 임시 수조에 다이빙했다가 목뼈가 부러져 전신이 마비된 겁니다. 법원은 영덕군이 5억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수심이 43센티미터에 불과한 곳에서 사회자가 다이빙한 참가자에게 대게 2마리를 주겠다고 유도했고, 영덕군도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정확한 통계로 낼 수는 없지만 앞의 사례들을 종합하면 대체로 시설물 관리자의 책임은 15~20%, 나머지는 다이빙을 한 사람의 책임으로 돌아가는 구조입니다.

얼핏 억대가 넘는 지급액을 보면, 원고 측에게 상당히 유리한 판결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다이빙으로 인한 목뼈나 척추 손상으로 중추신경이 마비되면 대부분의 노동능력을 상실해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게다가 평생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거동을 하기 힘듭니다. 이에 따라 다친 사람이 평생동안 벌 수 있는 금액과 치료비, 기타 비용에 대해 청구하게 되고 일부만 인정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렇다보니 시설물을 이용하다 사고로 신체 일부가 마비될 정도로 크게 다친 분들은 소송을 망설이는 경향도 있다고 법조계에서는 말합니다. 소송을 이겨서 확정된 금액을 얻어내더라도 일단 먼저 자신의 과실 범위가 정해지는 데다, 시간이 지나면 생각보다 더 큰 금액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는 겁니다. 결국 당연한 얘기지만 시설물을 이용할 때 몇번이고 안전한지 확인하고 즐기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아무래도 다치면 몸도 힘들지만 손해를 받아내는 일도 고달프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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