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서울에서 숨만 쉬는데도 75만 원 들어요

입력 2015.01.13 (14:36) 수정 2015.01.1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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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계좌에 돈이 없어서 돈이 안 나갔으면 문자나 이런 걸 해주면 되는데 꼭 3개월 이렇게 연체가 되고 나서 '당장 갚지 않으면 신용불량자가 될 거야, 너는.'

이렇게 문자가 와요. 그럴 때는 진짜 머리가 하얘져요. 신용불량자라는 단어가 엄청 무서운 거예요. 이 사회에서, 뭐라고 해야 되지. 이렇게 제도권 내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엄청 게으르고 빚에 대해서 자기가 갚으려는 의지도 없고 이런 사람들을 신용불량자라고 하는 것 같은데 저는 그렇지 않은데 자꾸 그런 단어가 오니까 무섭기도 하고 화도 나고...."



지난해 12월, 저는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아직 학생 티를 채 못 벗은 27살 이 모양이었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이 양과 인터뷰까지 하게 된 계기는, 이 양이 '빚더미에 깔린 청년'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자로서 인터뷰는 늘 하게 되는 일이지만, 이 양과의 대화는 저를 여러 번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인상 깊었습니다. 급기야 인터뷰 도중 제가 울어버리는 '사고'가 생기까지 할 정도로요. 그래서, 들을 가치가 충분했지만 시간 관계상 방송에 나가지 못한 이 양의 사연을 조금 더 전하려고 합니다.

■ "숨만 쉬는 데 75만 원"

이 양은, 서울의 한 사립대 공대를 졸업했습니다. 한 학기 등록금은 5백만 원 정도. 8학기를 다니고 나니 고스란히 4천만 원의 학자금 대출이 남았다고 했습니다. 한국장학재단, 농협, 그리고 시중 은행 세 군데에 대출이 나뉘어 있는데, 이 가운데 농협 대출금의 상환 날짜가 가장 먼저 들이닥쳤습니다. 부모님이 농업인이라 무이자로 돈을 빌린 대신, 졸업한 뒤 3년 안에 반드시 상환을 시작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던 탓입니다. 몇 달 전부터 한 달에 40만 원씩 상환을 시작했습니다. 혼자 서울에 살려면 잘 곳도 있어야 하고, 기본적인 끼니를 해결해야 하고, 통신비 정도는 내야 하겠죠. 줄이고 줄이고 줄였는데, 정말 더는 줄일 데가 없이 줄였는데 한 달에 75만 원이 들어가더라 했습니다. 빚을 빼면 실제로는 35만 원이겠죠. 그 얘기를 하면서 이런 표현을 쓰더군요. "그냥 숨만 쉬고 서울에서 살면 한 달에 75만 원"이라고요. 처음 저의 마음을 두드린 것은 그 표현이었습니다. 제 귀에는 그 말이, 숨 쉬는 것 빼고는 모든 욕구를 끊어냈는데 그래도 이 삶을 버티기 어렵다는 호소로 들렸습니다. 정작 말하는 이는 담담했는데 말이죠.

■ 시험 기간이 오면 '포기' 합니다.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이 실제로 학교 성적이 낮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한국 장학재단이 기획재정부의 용역을 받아 지난해 조사한 거죠. 학자금 대출 381만 건을 분석했는데, 대출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알바를 제가 세 탕, 네 탕 이렇게 뛰었던 때가 있거든요. 학교 다니면서. 시험 기간 오면 둘 중 하나예요. 이걸 포기하든 저걸 포기하든. 그런데 당장 내가 살아야 하니까 알바를 포기하긴 진짜 힘들거든요. 그래서 성적 이런 게 잘 안 나올 수 있는 그런 게 있죠."


미래를 위해서라면 시험을 잘 봐야 합니다. 하지만 당장 먹고 자기 위해서는 알바를 해야 합니다. 선택처럼 보이지만 선택이 아니라, 포기일 뿐이죠. 미래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겁니다. 담담한 부연 설명도 곁들였습니다. 집에 손 벌릴 수 없는 환경이었고, 자신이 고집해서 서울로 올라왔기 때문에 감당이 온전히 자신의 몫이었다고요. 꿈 많던 스무 살,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시작된 저임금 아르바이트로 청년의 손은 이미 많이 거칠어져 있었습니다. 아무 걱정 없이 그냥 대학생이라 행복하고 자유롭던 시간이 얼마나 될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 불안이 잠식한 젊음

'학자금 대출'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보다, 이 청년을 더 많이 짓누르고 있는 건 불안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빚을 못 갚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이 대로 사회에 편입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서울에서 평생 반지하 방에만 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 그리고 일주일 쉬고 있는 지금은 편안함에 익숙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더군요. 문득 저의 대학 생활이 생각났습니다. 저도 취직 전까지 1년 여 정도 제 힘으로 생활을 꾸려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마 불안이라는 감정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뿐 입니다. 저는 졸업한 뒤 얼마 안 돼 취업했고, 그 뒤로 늘 안정적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때를 생각해도 춥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현재가 불안이었을지언정 미래까지 불안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27살 이 청년은 온몸으로 얘기합니다. 현재 뿐 아니라 미래도 불안하다고요.



■ 빚을 없애 주자는 얘기? '천만에요'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들의 빚을 없애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빚을 갚을 수 있는 가능성을 뺏어서는 안 됩니다. 저임금 아르바이트를 서너 개씩 해서라도 돈을 갚고 있는 이 청년, 번듯한 일자리를 구하게 되면 더 성실하게 상환하겠죠. 방송 인터뷰를 조리 있게 대답할 정도의 논리와 말솜씨를 갖췄으니 반지하 방을 벗어나 더 건강한 환경으로 가면 우리 사회를 움직일 창의력을 발휘할 겁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대로라면 그렇게 취업해서 빈곤을 벗어날 가능성이 너무 적습니다.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성적은 부족하고, 인턴 같은 경력도 없으니까요. 제대로 된 옷을 사 입고 취업 과외를 할 돈이 모자란 건 물론이죠. 이런 청년 들을 위해 우리가 어떤 사다리를 놓아야 할까, 어디에 등을 대줘야 탄탄한 징검다리 건너듯 우리를 디디고 안정된 삶으로 갈 수 있을까 그걸 고민해야 합니다.

왜 저는 인터뷰하는 도중에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을까요. 저는 이 청년의 얘기를 들으며 현실이 답답하고 마음이 급했던 것 같습니다. 직접 만난 제게는 이렇게 절실하게 다가오는데, 보는 사람들에게는 남 얘기처럼 느껴질까 봐요. 제가 기사를 제대로 못 써서 어렵게 마음을 열어 인터뷰에 응한 이 청년이 또 한 번 좌절할까 봐 조급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숨만 쉬는 생활, 밥 먹고 돈만 갚는 생활을 하는 이 청년이 지쳐서 나가떨어지기 전에 방법을 궁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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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서울에서 숨만 쉬는데도 75만 원 들어요
    • 입력 2015-01-13 14:36:03
    • 수정2015-01-13 16:22:40
    취재후·사건후

"오늘 계좌에 돈이 없어서 돈이 안 나갔으면 문자나 이런 걸 해주면 되는데 꼭 3개월 이렇게 연체가 되고 나서 '당장 갚지 않으면 신용불량자가 될 거야, 너는.'

이렇게 문자가 와요. 그럴 때는 진짜 머리가 하얘져요. 신용불량자라는 단어가 엄청 무서운 거예요. 이 사회에서, 뭐라고 해야 되지. 이렇게 제도권 내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엄청 게으르고 빚에 대해서 자기가 갚으려는 의지도 없고 이런 사람들을 신용불량자라고 하는 것 같은데 저는 그렇지 않은데 자꾸 그런 단어가 오니까 무섭기도 하고 화도 나고...."



지난해 12월, 저는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아직 학생 티를 채 못 벗은 27살 이 모양이었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이 양과 인터뷰까지 하게 된 계기는, 이 양이 '빚더미에 깔린 청년'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자로서 인터뷰는 늘 하게 되는 일이지만, 이 양과의 대화는 저를 여러 번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인상 깊었습니다. 급기야 인터뷰 도중 제가 울어버리는 '사고'가 생기까지 할 정도로요. 그래서, 들을 가치가 충분했지만 시간 관계상 방송에 나가지 못한 이 양의 사연을 조금 더 전하려고 합니다.

■ "숨만 쉬는 데 75만 원"

이 양은, 서울의 한 사립대 공대를 졸업했습니다. 한 학기 등록금은 5백만 원 정도. 8학기를 다니고 나니 고스란히 4천만 원의 학자금 대출이 남았다고 했습니다. 한국장학재단, 농협, 그리고 시중 은행 세 군데에 대출이 나뉘어 있는데, 이 가운데 농협 대출금의 상환 날짜가 가장 먼저 들이닥쳤습니다. 부모님이 농업인이라 무이자로 돈을 빌린 대신, 졸업한 뒤 3년 안에 반드시 상환을 시작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던 탓입니다. 몇 달 전부터 한 달에 40만 원씩 상환을 시작했습니다. 혼자 서울에 살려면 잘 곳도 있어야 하고, 기본적인 끼니를 해결해야 하고, 통신비 정도는 내야 하겠죠. 줄이고 줄이고 줄였는데, 정말 더는 줄일 데가 없이 줄였는데 한 달에 75만 원이 들어가더라 했습니다. 빚을 빼면 실제로는 35만 원이겠죠. 그 얘기를 하면서 이런 표현을 쓰더군요. "그냥 숨만 쉬고 서울에서 살면 한 달에 75만 원"이라고요. 처음 저의 마음을 두드린 것은 그 표현이었습니다. 제 귀에는 그 말이, 숨 쉬는 것 빼고는 모든 욕구를 끊어냈는데 그래도 이 삶을 버티기 어렵다는 호소로 들렸습니다. 정작 말하는 이는 담담했는데 말이죠.

■ 시험 기간이 오면 '포기' 합니다.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이 실제로 학교 성적이 낮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한국 장학재단이 기획재정부의 용역을 받아 지난해 조사한 거죠. 학자금 대출 381만 건을 분석했는데, 대출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알바를 제가 세 탕, 네 탕 이렇게 뛰었던 때가 있거든요. 학교 다니면서. 시험 기간 오면 둘 중 하나예요. 이걸 포기하든 저걸 포기하든. 그런데 당장 내가 살아야 하니까 알바를 포기하긴 진짜 힘들거든요. 그래서 성적 이런 게 잘 안 나올 수 있는 그런 게 있죠."


미래를 위해서라면 시험을 잘 봐야 합니다. 하지만 당장 먹고 자기 위해서는 알바를 해야 합니다. 선택처럼 보이지만 선택이 아니라, 포기일 뿐이죠. 미래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겁니다. 담담한 부연 설명도 곁들였습니다. 집에 손 벌릴 수 없는 환경이었고, 자신이 고집해서 서울로 올라왔기 때문에 감당이 온전히 자신의 몫이었다고요. 꿈 많던 스무 살,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시작된 저임금 아르바이트로 청년의 손은 이미 많이 거칠어져 있었습니다. 아무 걱정 없이 그냥 대학생이라 행복하고 자유롭던 시간이 얼마나 될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 불안이 잠식한 젊음

'학자금 대출'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보다, 이 청년을 더 많이 짓누르고 있는 건 불안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빚을 못 갚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이 대로 사회에 편입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서울에서 평생 반지하 방에만 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 그리고 일주일 쉬고 있는 지금은 편안함에 익숙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더군요. 문득 저의 대학 생활이 생각났습니다. 저도 취직 전까지 1년 여 정도 제 힘으로 생활을 꾸려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마 불안이라는 감정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뿐 입니다. 저는 졸업한 뒤 얼마 안 돼 취업했고, 그 뒤로 늘 안정적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때를 생각해도 춥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현재가 불안이었을지언정 미래까지 불안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27살 이 청년은 온몸으로 얘기합니다. 현재 뿐 아니라 미래도 불안하다고요.



■ 빚을 없애 주자는 얘기? '천만에요'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들의 빚을 없애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빚을 갚을 수 있는 가능성을 뺏어서는 안 됩니다. 저임금 아르바이트를 서너 개씩 해서라도 돈을 갚고 있는 이 청년, 번듯한 일자리를 구하게 되면 더 성실하게 상환하겠죠. 방송 인터뷰를 조리 있게 대답할 정도의 논리와 말솜씨를 갖췄으니 반지하 방을 벗어나 더 건강한 환경으로 가면 우리 사회를 움직일 창의력을 발휘할 겁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대로라면 그렇게 취업해서 빈곤을 벗어날 가능성이 너무 적습니다.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성적은 부족하고, 인턴 같은 경력도 없으니까요. 제대로 된 옷을 사 입고 취업 과외를 할 돈이 모자란 건 물론이죠. 이런 청년 들을 위해 우리가 어떤 사다리를 놓아야 할까, 어디에 등을 대줘야 탄탄한 징검다리 건너듯 우리를 디디고 안정된 삶으로 갈 수 있을까 그걸 고민해야 합니다.

왜 저는 인터뷰하는 도중에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을까요. 저는 이 청년의 얘기를 들으며 현실이 답답하고 마음이 급했던 것 같습니다. 직접 만난 제게는 이렇게 절실하게 다가오는데, 보는 사람들에게는 남 얘기처럼 느껴질까 봐요. 제가 기사를 제대로 못 써서 어렵게 마음을 열어 인터뷰에 응한 이 청년이 또 한 번 좌절할까 봐 조급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숨만 쉬는 생활, 밥 먹고 돈만 갚는 생활을 하는 이 청년이 지쳐서 나가떨어지기 전에 방법을 궁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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