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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하키 상무 강다니엘의 ‘인생유전’
입력 2015.01.13 (16:47) 수정 2015.01.13 (16:58) 연합뉴스
캐나다에서 아이스하키를 배우고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을 졸업한 뒤 이제는 국군체육부대 아이스하키팀에 몸담은 선수가 있다.

일반적인 국내 아이스하키 선수들과는 전혀 다른 궤도를 걸어온 주인공은 대명 상무의 공격수 강다니엘(27)이다.

캐나다로 아이스하키 유학을 떠난 뒤 경복고 2학년으로 한국에 다시 돌아온 그의 국내 체류는 길지 않았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원하던 대학교에 진학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홧김'에 택한 선택이었다.

계기야 어떻든 그는 일본에서 모든 걸 새로 시작해야 했다. 먼저 언어부터 익혀야 했다. 1년만 어학원을 다니면 유학생 전형을 통과하리라는 계산은 오산이었다.

그는 일본어를 배우는데만 2년을 쏟아야 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20세 이하 대표팀, 유니버시아드 출전의 기회는 그렇게 허무하게 날아갔다.

어렵게 일본 아이스하키 명문인 토요대에 진학했지만 여기서도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2년 동안 스틱을 놓았던 터라 그는 경기 감각을 되찾는데 애를 먹었다. 토요대 감독은 한국에서 온 그에게 많은 출전 기회를 주지 않았다.

더군다나 국내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스케이트화, 트레이닝복 등 아이스하키 장비는 선수가 자비로 충당해야 했다.

그는 아이스하키를 하기 위해 비시즌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는 생각이 들어 혼자 눈물지은 적도 많았다.

아이스하키 최강국 캐나다에서 아이스하키를 배워온 그에게서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우월의식은 눈이 녹듯 사라져갔다.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출전 기회가 주어지면 무조건 열심히 뛰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빙판을 저돌적으로 누볐다.

덕분에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고, 출전 시간도 늘어났다. 그가 뛰는 동안 토요대는 일본 대학리그에서 4강을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토요대는 연세대와 매년 교류전을 펼친다. 한국 아이스하키 관계자들에게 잊혀진 이름이었던 그가 자신의 존재를 알린 것도 이때였다.

강다니엘은 상무에서 뛰는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말한다.

"1석 3조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운동을 하면서 (아시아리그라는) 톱리그에서 뛰고, 병역도 다 할 수 있잖아요. 복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지난해 12월 상무 유니폼을 입은 그는 지난 12일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열린 오지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아시아리그 데뷔골을 넣었다.

비록 상무가 역전패하면서 결승골은 되지 못했지만, 그에게는 의미가 컸다. 지난 우여곡절에 대해 어느 정도 보상을 받는 느낌이었다.

쏜살같이 치고 나가는 폭발적인 스피드가 최대 장점인 강다니엘은 롤모델로 상무의 주장이자 국가대표팀의 에이스인 조민호를 꼽았다.

그에게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꿈을 물었다.

그는 "물론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지만 지금은 잘하는 선수와의 기량 차이를 좁혀나가는 게 급선무"라며 "빨리 리그에 적응해서 연패 중인 팀에 보탬에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제 선수 인생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병이니까 다른 누구보다도 열심히 뛰겠다"고 힘줘 말했다.
  • 아이스하키 상무 강다니엘의 ‘인생유전’
    • 입력 2015-01-13 16:47:24
    • 수정2015-01-13 16:58:17
    연합뉴스
캐나다에서 아이스하키를 배우고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을 졸업한 뒤 이제는 국군체육부대 아이스하키팀에 몸담은 선수가 있다.

일반적인 국내 아이스하키 선수들과는 전혀 다른 궤도를 걸어온 주인공은 대명 상무의 공격수 강다니엘(27)이다.

캐나다로 아이스하키 유학을 떠난 뒤 경복고 2학년으로 한국에 다시 돌아온 그의 국내 체류는 길지 않았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원하던 대학교에 진학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홧김'에 택한 선택이었다.

계기야 어떻든 그는 일본에서 모든 걸 새로 시작해야 했다. 먼저 언어부터 익혀야 했다. 1년만 어학원을 다니면 유학생 전형을 통과하리라는 계산은 오산이었다.

그는 일본어를 배우는데만 2년을 쏟아야 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20세 이하 대표팀, 유니버시아드 출전의 기회는 그렇게 허무하게 날아갔다.

어렵게 일본 아이스하키 명문인 토요대에 진학했지만 여기서도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2년 동안 스틱을 놓았던 터라 그는 경기 감각을 되찾는데 애를 먹었다. 토요대 감독은 한국에서 온 그에게 많은 출전 기회를 주지 않았다.

더군다나 국내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스케이트화, 트레이닝복 등 아이스하키 장비는 선수가 자비로 충당해야 했다.

그는 아이스하키를 하기 위해 비시즌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는 생각이 들어 혼자 눈물지은 적도 많았다.

아이스하키 최강국 캐나다에서 아이스하키를 배워온 그에게서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우월의식은 눈이 녹듯 사라져갔다.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출전 기회가 주어지면 무조건 열심히 뛰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빙판을 저돌적으로 누볐다.

덕분에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고, 출전 시간도 늘어났다. 그가 뛰는 동안 토요대는 일본 대학리그에서 4강을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토요대는 연세대와 매년 교류전을 펼친다. 한국 아이스하키 관계자들에게 잊혀진 이름이었던 그가 자신의 존재를 알린 것도 이때였다.

강다니엘은 상무에서 뛰는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말한다.

"1석 3조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운동을 하면서 (아시아리그라는) 톱리그에서 뛰고, 병역도 다 할 수 있잖아요. 복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지난해 12월 상무 유니폼을 입은 그는 지난 12일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열린 오지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아시아리그 데뷔골을 넣었다.

비록 상무가 역전패하면서 결승골은 되지 못했지만, 그에게는 의미가 컸다. 지난 우여곡절에 대해 어느 정도 보상을 받는 느낌이었다.

쏜살같이 치고 나가는 폭발적인 스피드가 최대 장점인 강다니엘은 롤모델로 상무의 주장이자 국가대표팀의 에이스인 조민호를 꼽았다.

그에게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꿈을 물었다.

그는 "물론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지만 지금은 잘하는 선수와의 기량 차이를 좁혀나가는 게 급선무"라며 "빨리 리그에 적응해서 연패 중인 팀에 보탬에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제 선수 인생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병이니까 다른 누구보다도 열심히 뛰겠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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