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없는 부부강간’…외국인 아내 성폭행 남편 징역형

입력 2015.01.20 (06:18) 수정 2015.01.2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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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를 드는 것 같은 심각한 위협을 하지 않았더라도 힘으로 상대방을 누르고 강제로 성관계를 맺으면 부부간에 강간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성관계의 '강제성'을 판단할 때 우리말을 모르고 남편 말고 기댈 곳이 없는 외국인 아내의 처지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어서 비슷한 피해를 본 결혼이주여성들의 소송이 잇따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0일 여성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아시아 국가 출신 외국인 아내를 강간하고 나체 사진을 찍은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징역형이 최근 확정됐다.

A씨는 2012년 국제결혼 중개 업체를 통해 20살 이상 어린 아내 B씨를 만나 결혼했다. 이듬해 B씨가 한국에 오자 본격적인 신혼 생활이 시작됐다.

아내가 몸을 웅크리는 등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A씨는 2개월 동안 10여 차례 강제로 성관계했다. A씨는 또 B씨에게 집에서 옷을 입지 못하게 했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몸 사진을 찍었다.

B씨는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들었다거나 아파서 병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남편이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결혼 생활 두 달 만에 A씨는 아내와 계속 살 수 없다면서 결혼중개 업체에 B씨를 두고 왔다. 주변의 소개로 이주여성 쉼터에 가게 된 B씨는 이후 여성단체의 도움을 얻어 남편을 고소했다.

A씨는 작년 9월 제주지법 제2형사부(김양호 부장판사)가 진행한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1심 재판부는 부부간에 정상적 성관계를 맺은 것일 뿐 아내를 폭행하거나 협박한 사실이 없다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국제결혼을 해 혼자 한국에 와 남편 외에는 의지할 사람이 없었고 피고인은 피해자를 폭행하기도 했다"며 "거부 의사를 표시하는 것 말고는 사력을 다해 반항하는 등 적극적 항거를 시도하기 어려워 보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이 범행 당시 피해자를 폭행·협박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한 다음 강간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A씨는 B씨와 합의했다.

이에 따라 광주고법 제주형사부(재판장 김창보 제주지법원장)는 지난 7일 A씨에게 징역 3년형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A씨는 상고를 포기함에 따라 이 판결은 확정됐다.

앞서 대법원은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부부 강간죄'를 처음으로 인정, 흉기로 아내를 위협하고 성관계한 남편에게 징역 3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바 있다.

지금까지 법원이 유죄로 인정한 '부부 강간' 사건은 가해자인 남편이 흉기를 들고 아내를 위협하거나 다치게 하고 성관계를 맺은 경우였다.

B씨를 도운 이주여성 쉼터 관계자는 "한국인 부부 사이에서도 성폭력을 잘 인정해주지 않았고 국제결혼으로 들어오는 이주여성들은 억울함이 더했다"며 "B씨도 '이번 판결을 통해 이주여성이 제대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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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1-20 06:18:24
    • 수정2015-01-20 14:12:53
    연합뉴스
흉기를 드는 것 같은 심각한 위협을 하지 않았더라도 힘으로 상대방을 누르고 강제로 성관계를 맺으면 부부간에 강간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성관계의 '강제성'을 판단할 때 우리말을 모르고 남편 말고 기댈 곳이 없는 외국인 아내의 처지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어서 비슷한 피해를 본 결혼이주여성들의 소송이 잇따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0일 여성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아시아 국가 출신 외국인 아내를 강간하고 나체 사진을 찍은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징역형이 최근 확정됐다.

A씨는 2012년 국제결혼 중개 업체를 통해 20살 이상 어린 아내 B씨를 만나 결혼했다. 이듬해 B씨가 한국에 오자 본격적인 신혼 생활이 시작됐다.

아내가 몸을 웅크리는 등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A씨는 2개월 동안 10여 차례 강제로 성관계했다. A씨는 또 B씨에게 집에서 옷을 입지 못하게 했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몸 사진을 찍었다.

B씨는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들었다거나 아파서 병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남편이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결혼 생활 두 달 만에 A씨는 아내와 계속 살 수 없다면서 결혼중개 업체에 B씨를 두고 왔다. 주변의 소개로 이주여성 쉼터에 가게 된 B씨는 이후 여성단체의 도움을 얻어 남편을 고소했다.

A씨는 작년 9월 제주지법 제2형사부(김양호 부장판사)가 진행한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1심 재판부는 부부간에 정상적 성관계를 맺은 것일 뿐 아내를 폭행하거나 협박한 사실이 없다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국제결혼을 해 혼자 한국에 와 남편 외에는 의지할 사람이 없었고 피고인은 피해자를 폭행하기도 했다"며 "거부 의사를 표시하는 것 말고는 사력을 다해 반항하는 등 적극적 항거를 시도하기 어려워 보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이 범행 당시 피해자를 폭행·협박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한 다음 강간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A씨는 B씨와 합의했다.

이에 따라 광주고법 제주형사부(재판장 김창보 제주지법원장)는 지난 7일 A씨에게 징역 3년형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A씨는 상고를 포기함에 따라 이 판결은 확정됐다.

앞서 대법원은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부부 강간죄'를 처음으로 인정, 흉기로 아내를 위협하고 성관계한 남편에게 징역 3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바 있다.

지금까지 법원이 유죄로 인정한 '부부 강간' 사건은 가해자인 남편이 흉기를 들고 아내를 위협하거나 다치게 하고 성관계를 맺은 경우였다.

B씨를 도운 이주여성 쉼터 관계자는 "한국인 부부 사이에서도 성폭력을 잘 인정해주지 않았고 국제결혼으로 들어오는 이주여성들은 억울함이 더했다"며 "B씨도 '이번 판결을 통해 이주여성이 제대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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