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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중국·일본 교육 현장의 ‘역사 왜곡’
입력 2015.01.22 (07:01) 수정 2015.01.22 (15:35) 취재후
1945년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역사적인 해입니다. 일본과 중국에선 1945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일본의 한 고등학생에게 1945년의 의미를 묻자, "천황이 쌓아올린 업적이 한순간에 무너진 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중국에선 항일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역사적인 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중·일 세 나라가 1945년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처럼 엇갈리는 이유는 뭘까.

KBS 취재진은 각 나라의 교실에서 어떤 역사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한국사와 중국사, 일본사를 전공한 교수와 박사 등 6명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8월부터 5개월에 걸쳐 세 나라에서 사용하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 26권과 교사용 지도서를 분석해 봤습니다.



■ “식민지배가 아닌 통합”…일본, 교사용 지도서 왜곡 심각

지금까지 수많은 왜곡 논란을 빚었던 '우익 교과서(지유샤, 이쿠호샤 판)'는 마치 그간의 논란을 인식한 듯 한국과 관련한 내용이 대폭 줄어든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실에선 여전히 역사 왜곡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교사용 지도서를 통해서입니다. 지도서는 교사가 학생을 가르칠 때 참고하는 교사들의 참고서입니다. 교과서를 출판하는 출판사가 이를 가르치는 교사들을 위해 만드는 책인데, 판서 내용부터 학생들에게 던질 질문 내용, 수업 진행 방식까지 담겨 있습니다.

가장 민감한 주제인 일본의 강제 합병과 식민통치 부분을 살펴봤습니다.

먼저, 이쿠호샤(育鵬社) 교과서에는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조선의 식민지배를 주도했던 이토 히로부미가 제복이 아닌 한복을 입은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교사용 지도서에는 이 사진에 대해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인에 대해 강한 친근감과 경의를 가졌던 인물'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어, 이토의 일화를 통해서, "조선인은 훌륭하지만 정치적 상황이 좋지 않아 지금의 상황이 되었다. 잘만 다스린다면 양과 질에 있어 부족하지 않다"며 식민 통치를 정당화합니다.

또, '일본과 한국이 병합했다'고만 적힌 교과서와는 달리, 교사용 지도서에는 당시 출간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까지 인용해 식민지배 자체를 부정합니다. 'colonization(식민지화)은 열등한 나라에서 수탈한다는 의미인 반면, annexation(통합)은 통합하여 동등한 국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일본과 한국의 관계는 '통합'의 관계였다'는 겁니다. 심지어 '통합' 이후 조선의 인구 수와 쌀과 보리 생산량 증가 등 각종 통계를 인용해 조선이 선진화됐음을 설명하도록 합니다.

'일본의 영토'라는 단원에서 러시아와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쿠릴 열도를 외세에 맞서 지켜내자는 내용의 노래를 학생들에게 부르도록 하는 교사용 지도서도 있습니다.

이같은 교사용 지도서는 교과서보다 왜곡하기가 더 쉽습니다. 일본의 교육부인 문부과학성이 4년에 한 번 씩 교과서를 검정하는데, 교사용지도서는 검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과서에는 없는 왜곡된 역사 교육이 진행되더라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다보니 극우들이 교사의 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마음대로 적을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역사 교육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역사 교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역사를 잘 모르는 교사들이 교사용 지도서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아 더욱 위험합니다.


▲ 중국 교과서 '진조강역도'

■ 만리장성이 압록강까지…중국 교과서 지도 왜곡

중국 교과서에서 한국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중국의 세계사 교과서에는 한국사 단원이 아예 없습니다. 대신 작은 칸을 만들어 고조선부터 조선의 건국 과정을 단 몇 줄로 모두 요약하고 있습니다. 동북공정 문제가 불거진 이후 우리 역사에 대한 기술이 크게 줄어든 겁니다.

중국 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지도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영토였습니다. 중국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실린 '진조강역도'라는 진나라의 영역을 표시한 지도에는 만리장성이 압록강까지 연결돼있습니다. 고대부터 중국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내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 지도가 정부의 공인을 받은 지도라는 점입니다. 중국에서는 중국 최고행정기관인 '국무원' 산하 '측회국'에서 공인 받은 지도만을 교과서에 실을 수 있는데, 정부의 공인을 받은 지도 자체에 오류가 있는 겁니다. 중국은 이 지도를 외국에도 널리 보급하고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합니다.

근대사에서도 비슷한 속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반(半)식민지화와 우리나라의 식민지화,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의 시발점이 됐던 '청일전쟁'…. 중국이 청일전쟁에서 패하고 일본과 맺은 '시모노세키 조약'의 제 1항은 '조선은 독립국'이라는 것이지만, 교과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당시 마지막 조공국이었던 조선을 잃은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이밖에 현대사에서도, 한국 전쟁의 원인이 북한의 선제공격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달리,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한 듯 단순히 '한반도의 내전으로 촉발된 전쟁으로 북한이 서울을 점령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 교과서와 네트 21사무국장

■ 끊임없는 역사 왜곡 왜?

이같은 역사 왜곡은 지금의 정치적 상황이 과거의 역사 해석에 까지 영향을 미친 결과입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왜곡 교육이 '자위대' 신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침략국가'라는 반성 대신 그릇된 애국심을 북돋는 교육을 통해 미래 세대에게 '군사대국' 일본의 이미지를 심겠다는 겁니다. 그래야 '자위대'를 정당화할 수 있고, 젊은이들이 군대를 갈 테니까요.

실제로 일본은 지난 2006년에 교육기본법에 '애국심'을 고취하는 조항을 넣어 교과서가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집필되도록 했고, 최근에는 교과서 검정 기준의 하나인 '근린제국 조항'도 삭제하려 하고 있습니다. '근린제국 조항'은 1982년 당시 미야자와 관방장관이 발표한 담화에 의해 이웃 국가의 우호 관계를 고려해서 교과서를 집필하도록 한 조항입니다.

우익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일본의 한 중학교 역사 교사는 취재진에게 이런 왜곡 교육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이 글로벌 시대에 국제적으로 고립될 우려가 크다고 털어놨습니다. 일본 중학교에서 사용되는 우익 교과서는 전체의 3.8% 수준이지만 10년 전보다 10배 가까이 늘어난데다 아베 내각의 집권이 장기화된 만큼, 우익 교과서를 사용하는 학교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 우리나라 중학생 10명 중 3명 ‘광복절’ 모른다!

일본의 한 역사 교사에게 "일본 학생들을 길에서 만나 인터뷰를 했더니 역사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없더라"고 말했다가 반격을 당했습니다. 그 교사가 한국 고등학생에게 "안중근을 아느냐"고 물었는데, 그 학생이 "우리나라의 유명한 축구선수"라고 했다는 겁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를 축구선수 '안정환'과 헷갈린 겁니다. 얼굴이 다 화끈거리더군요. 우리 역사를 왜곡으로부터 지키려면 먼저 잘 알아야겠죠. 그래서 충북지역 중학교를 무작위로 골라, 역사 1, 2를 모두 배운 3학년 학생 750명을 대상으로 설문지·면접 조사를 실시해봤습니다.

우선, 일본의 강제 침탈에서 독립한 1945년 8월 15일을 물었더니, 응답자의 26.5%가 광복 년도와 날짜를 몰랐습니다. 6월 25일이나, 3월 1일이라고 쓴 답변도 많았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가슴 아픈 역사인 위안부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소녀상'에 대해서는 25.9%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답했고, 절반 가량이 일본의 전범기인 '욱일기'도 '일장기'로 답변하거나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일본이 학습지도요령까지 개정하며 일본 땅이라고 가르치는 '독도'에 대한 인식도 충격적이었습니다. 독도를 놓고 한·일 양국이 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대부분이 알고 있었지만, 정작 독도의 행정구역이 경상북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학생은 33%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독도 분쟁 해결의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일본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주장하고 있는 '국제 사법재판소의 판단에 맡기자'는 의견이 절반 가까이나 됐습니다.

그나마 일본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높은 편이었습니다. 중국의 동북 공정 문제는 절반 이상이 모르거나 관심 없다고 답했습니다.

수능에서 역사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다보니 아예 관심이 없는데다 변변한 현장학습도 없습니다. 그러니 학교 현장에선 이미 '역사'='지루한 과목'이 공식처럼 굳어져 있었습니다.


▲ 공동 교과서

■ 한·중·일 공동 교과서 대안될까?

그렇다면 역사 왜곡은 두 손 놓고 지켜봐야하는 걸까.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지난 150여 년 동안 앙숙 관계였던 프랑스와 독일은 지난 2006년 공동 역사 교과서를 출간했습니다. 양국의 현직 교사 10명이 정부의 주관으로 직접 집필에 참여했고, 3년 여의 진통 끝에 2차 대전의 배상 책임을 명확히 기술하는 등 객관적인 시각에서 양국의 역사를 담았습니다. 지난 2011년, 고대사를 포함한 마지막 3권이 출간됐고, 공동 역사 교과서는 두 나라의 학교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두 나라는 역사적 갈등을 극복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중·일 세 나라도 민간 차원에서 '공동 역사 교과서'를 출간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역사적 갈등이 컸던 만큼 공동 집필 시도도 많았습니다. 일본 히로시마현 교직원조합과 대구전국교직원조합에서도 현직 교사 모두 15명이 참여해 2005년과 2014년에 공동 역사 교과서를 출간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배와 위안부 문제 등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교재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교과서는 일본에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부교재는 교육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사용할 수 있는데 허가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민간 차원의 교류가 봉착하는 여러가지 한계도 지적했습니다. 공동 집필을 하려면 학자들간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독도 영유권'과 같은 의견 일치가 되지 않은 부분은 아예 적지 않은 점과 학자들이 합의하더라도 정부를 움직일 수 없다는 점 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재진은 일본 교사들에게서 희망을 확인했습니다. 우익 교과서로 수업하고 있는 한 역사 교사는 비교적 역사적 사실이 자세하게 쓰인 부교재를 오히려 주교재처럼 활용해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독립기념관까지 방문해 스스로 배우고, 학생들에게 다큐멘터리까지 보여주며 사실 그대로를 가르치려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학생들이 편협한 역사교육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매년 8월에 열리는 한·중·일 청소년 역사 체험 캠프에 학생들을 참여시키는 교사도 있었습니다.

우리 교육계에도 묻고 싶습니다. 미래의 주역이 될 학생들을 위한 역사 교육이 얼마나 '잘' 이뤄지고 있는지, 나아가 개인의 노력에 대한 정부의 응답은 무엇인지 말입니다. 

☞ 다시보기 <뉴스9> [광복 70년, 미래 30년] 교사용 지도서, 더 교묘한 ‘역사 왜곡’
  • [취재후] 중국·일본 교육 현장의 ‘역사 왜곡’
    • 입력 2015-01-22 07:01:34
    • 수정2015-01-22 15:35:16
    취재후
1945년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역사적인 해입니다. 일본과 중국에선 1945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일본의 한 고등학생에게 1945년의 의미를 묻자, "천황이 쌓아올린 업적이 한순간에 무너진 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중국에선 항일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역사적인 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중·일 세 나라가 1945년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처럼 엇갈리는 이유는 뭘까.

KBS 취재진은 각 나라의 교실에서 어떤 역사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한국사와 중국사, 일본사를 전공한 교수와 박사 등 6명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8월부터 5개월에 걸쳐 세 나라에서 사용하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 26권과 교사용 지도서를 분석해 봤습니다.



■ “식민지배가 아닌 통합”…일본, 교사용 지도서 왜곡 심각

지금까지 수많은 왜곡 논란을 빚었던 '우익 교과서(지유샤, 이쿠호샤 판)'는 마치 그간의 논란을 인식한 듯 한국과 관련한 내용이 대폭 줄어든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실에선 여전히 역사 왜곡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교사용 지도서를 통해서입니다. 지도서는 교사가 학생을 가르칠 때 참고하는 교사들의 참고서입니다. 교과서를 출판하는 출판사가 이를 가르치는 교사들을 위해 만드는 책인데, 판서 내용부터 학생들에게 던질 질문 내용, 수업 진행 방식까지 담겨 있습니다.

가장 민감한 주제인 일본의 강제 합병과 식민통치 부분을 살펴봤습니다.

먼저, 이쿠호샤(育鵬社) 교과서에는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조선의 식민지배를 주도했던 이토 히로부미가 제복이 아닌 한복을 입은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교사용 지도서에는 이 사진에 대해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인에 대해 강한 친근감과 경의를 가졌던 인물'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어, 이토의 일화를 통해서, "조선인은 훌륭하지만 정치적 상황이 좋지 않아 지금의 상황이 되었다. 잘만 다스린다면 양과 질에 있어 부족하지 않다"며 식민 통치를 정당화합니다.

또, '일본과 한국이 병합했다'고만 적힌 교과서와는 달리, 교사용 지도서에는 당시 출간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까지 인용해 식민지배 자체를 부정합니다. 'colonization(식민지화)은 열등한 나라에서 수탈한다는 의미인 반면, annexation(통합)은 통합하여 동등한 국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일본과 한국의 관계는 '통합'의 관계였다'는 겁니다. 심지어 '통합' 이후 조선의 인구 수와 쌀과 보리 생산량 증가 등 각종 통계를 인용해 조선이 선진화됐음을 설명하도록 합니다.

'일본의 영토'라는 단원에서 러시아와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쿠릴 열도를 외세에 맞서 지켜내자는 내용의 노래를 학생들에게 부르도록 하는 교사용 지도서도 있습니다.

이같은 교사용 지도서는 교과서보다 왜곡하기가 더 쉽습니다. 일본의 교육부인 문부과학성이 4년에 한 번 씩 교과서를 검정하는데, 교사용지도서는 검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과서에는 없는 왜곡된 역사 교육이 진행되더라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다보니 극우들이 교사의 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마음대로 적을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역사 교육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역사 교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역사를 잘 모르는 교사들이 교사용 지도서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아 더욱 위험합니다.


▲ 중국 교과서 '진조강역도'

■ 만리장성이 압록강까지…중국 교과서 지도 왜곡

중국 교과서에서 한국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중국의 세계사 교과서에는 한국사 단원이 아예 없습니다. 대신 작은 칸을 만들어 고조선부터 조선의 건국 과정을 단 몇 줄로 모두 요약하고 있습니다. 동북공정 문제가 불거진 이후 우리 역사에 대한 기술이 크게 줄어든 겁니다.

중국 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지도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영토였습니다. 중국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실린 '진조강역도'라는 진나라의 영역을 표시한 지도에는 만리장성이 압록강까지 연결돼있습니다. 고대부터 중국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내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 지도가 정부의 공인을 받은 지도라는 점입니다. 중국에서는 중국 최고행정기관인 '국무원' 산하 '측회국'에서 공인 받은 지도만을 교과서에 실을 수 있는데, 정부의 공인을 받은 지도 자체에 오류가 있는 겁니다. 중국은 이 지도를 외국에도 널리 보급하고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합니다.

근대사에서도 비슷한 속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반(半)식민지화와 우리나라의 식민지화,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의 시발점이 됐던 '청일전쟁'…. 중국이 청일전쟁에서 패하고 일본과 맺은 '시모노세키 조약'의 제 1항은 '조선은 독립국'이라는 것이지만, 교과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당시 마지막 조공국이었던 조선을 잃은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이밖에 현대사에서도, 한국 전쟁의 원인이 북한의 선제공격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달리,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한 듯 단순히 '한반도의 내전으로 촉발된 전쟁으로 북한이 서울을 점령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 교과서와 네트 21사무국장

■ 끊임없는 역사 왜곡 왜?

이같은 역사 왜곡은 지금의 정치적 상황이 과거의 역사 해석에 까지 영향을 미친 결과입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왜곡 교육이 '자위대' 신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침략국가'라는 반성 대신 그릇된 애국심을 북돋는 교육을 통해 미래 세대에게 '군사대국' 일본의 이미지를 심겠다는 겁니다. 그래야 '자위대'를 정당화할 수 있고, 젊은이들이 군대를 갈 테니까요.

실제로 일본은 지난 2006년에 교육기본법에 '애국심'을 고취하는 조항을 넣어 교과서가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집필되도록 했고, 최근에는 교과서 검정 기준의 하나인 '근린제국 조항'도 삭제하려 하고 있습니다. '근린제국 조항'은 1982년 당시 미야자와 관방장관이 발표한 담화에 의해 이웃 국가의 우호 관계를 고려해서 교과서를 집필하도록 한 조항입니다.

우익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일본의 한 중학교 역사 교사는 취재진에게 이런 왜곡 교육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이 글로벌 시대에 국제적으로 고립될 우려가 크다고 털어놨습니다. 일본 중학교에서 사용되는 우익 교과서는 전체의 3.8% 수준이지만 10년 전보다 10배 가까이 늘어난데다 아베 내각의 집권이 장기화된 만큼, 우익 교과서를 사용하는 학교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 우리나라 중학생 10명 중 3명 ‘광복절’ 모른다!

일본의 한 역사 교사에게 "일본 학생들을 길에서 만나 인터뷰를 했더니 역사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없더라"고 말했다가 반격을 당했습니다. 그 교사가 한국 고등학생에게 "안중근을 아느냐"고 물었는데, 그 학생이 "우리나라의 유명한 축구선수"라고 했다는 겁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를 축구선수 '안정환'과 헷갈린 겁니다. 얼굴이 다 화끈거리더군요. 우리 역사를 왜곡으로부터 지키려면 먼저 잘 알아야겠죠. 그래서 충북지역 중학교를 무작위로 골라, 역사 1, 2를 모두 배운 3학년 학생 750명을 대상으로 설문지·면접 조사를 실시해봤습니다.

우선, 일본의 강제 침탈에서 독립한 1945년 8월 15일을 물었더니, 응답자의 26.5%가 광복 년도와 날짜를 몰랐습니다. 6월 25일이나, 3월 1일이라고 쓴 답변도 많았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가슴 아픈 역사인 위안부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소녀상'에 대해서는 25.9%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답했고, 절반 가량이 일본의 전범기인 '욱일기'도 '일장기'로 답변하거나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일본이 학습지도요령까지 개정하며 일본 땅이라고 가르치는 '독도'에 대한 인식도 충격적이었습니다. 독도를 놓고 한·일 양국이 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대부분이 알고 있었지만, 정작 독도의 행정구역이 경상북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학생은 33%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독도 분쟁 해결의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일본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주장하고 있는 '국제 사법재판소의 판단에 맡기자'는 의견이 절반 가까이나 됐습니다.

그나마 일본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높은 편이었습니다. 중국의 동북 공정 문제는 절반 이상이 모르거나 관심 없다고 답했습니다.

수능에서 역사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다보니 아예 관심이 없는데다 변변한 현장학습도 없습니다. 그러니 학교 현장에선 이미 '역사'='지루한 과목'이 공식처럼 굳어져 있었습니다.


▲ 공동 교과서

■ 한·중·일 공동 교과서 대안될까?

그렇다면 역사 왜곡은 두 손 놓고 지켜봐야하는 걸까.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지난 150여 년 동안 앙숙 관계였던 프랑스와 독일은 지난 2006년 공동 역사 교과서를 출간했습니다. 양국의 현직 교사 10명이 정부의 주관으로 직접 집필에 참여했고, 3년 여의 진통 끝에 2차 대전의 배상 책임을 명확히 기술하는 등 객관적인 시각에서 양국의 역사를 담았습니다. 지난 2011년, 고대사를 포함한 마지막 3권이 출간됐고, 공동 역사 교과서는 두 나라의 학교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두 나라는 역사적 갈등을 극복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중·일 세 나라도 민간 차원에서 '공동 역사 교과서'를 출간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역사적 갈등이 컸던 만큼 공동 집필 시도도 많았습니다. 일본 히로시마현 교직원조합과 대구전국교직원조합에서도 현직 교사 모두 15명이 참여해 2005년과 2014년에 공동 역사 교과서를 출간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배와 위안부 문제 등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교재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교과서는 일본에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부교재는 교육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사용할 수 있는데 허가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민간 차원의 교류가 봉착하는 여러가지 한계도 지적했습니다. 공동 집필을 하려면 학자들간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독도 영유권'과 같은 의견 일치가 되지 않은 부분은 아예 적지 않은 점과 학자들이 합의하더라도 정부를 움직일 수 없다는 점 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재진은 일본 교사들에게서 희망을 확인했습니다. 우익 교과서로 수업하고 있는 한 역사 교사는 비교적 역사적 사실이 자세하게 쓰인 부교재를 오히려 주교재처럼 활용해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독립기념관까지 방문해 스스로 배우고, 학생들에게 다큐멘터리까지 보여주며 사실 그대로를 가르치려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학생들이 편협한 역사교육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매년 8월에 열리는 한·중·일 청소년 역사 체험 캠프에 학생들을 참여시키는 교사도 있었습니다.

우리 교육계에도 묻고 싶습니다. 미래의 주역이 될 학생들을 위한 역사 교육이 얼마나 '잘' 이뤄지고 있는지, 나아가 개인의 노력에 대한 정부의 응답은 무엇인지 말입니다. 

☞ 다시보기 <뉴스9> [광복 70년, 미래 30년] 교사용 지도서, 더 교묘한 ‘역사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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