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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시민혁명 4주년…군사정권 회귀·표현 자유 위축
입력 2015.01.25 (02:32) 연합뉴스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의 물결로 촉발된 이집트 시민혁명이 일어난지 25일(현지시간)로 만 4년이 된다.

'현대판 파라오'로 군림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2011년 1월25일 시작한 사상 초유의 민주화 시위가 기폭제가 돼 그 다음달 11일 권좌에서 끝내 축출됐다.

1981년 안와르 사다트 당시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부통령으로서 권력을 승계한 무바라크는 비상계엄법에 의지해 30년간 철권을 휘둘렀지만, 민주화 물결을 거스를 수 없었다.

강력한 독재 정권의 갑작스러운 붕괴는 부작용도 낳았다.

무바라크 정권 몰락 후 4년간 이집트는 정치적 혼란 속에 경제까지 악화했다.

게다가 군부가 2013년 7월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축출한 이후 각종 유혈사태와 테러 사건도 끊이지 않았다.

군부 실세인 압델 파타 엘시시 전 국방장관이 작년 대통령에 오른 뒤 치안을 강화해 이집트는 외관상 평온을 찾은 듯하지만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크게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 카이로와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 등 전역에서는 시민혁명 4주년 기념일을 맞는 25일 산발적 반정부 시위가 예고돼 긴장감마저 고조되고 있다.

◇ 정국 혼란 끝 다시 군사정권으로…표현·언론의 자유 위축

이집트의 민주화 과정은 2011년 '아랍의 봄'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독재 정권을 축출한 이후 3년 넘게 혼란 속에서 지내다가 다시 군사정권으로 돌아간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엘시시 정권은 정국 안정을 우선 목표로 삼고 시위와 집회를 철저히 차단하면서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집트 일각에서는 무바라크 정권 때보다 반정부 인사와 시위대 탄압이 더욱 심하다는 말들이 많이 나온다.

이집트는 2012년만 해도 첫 자유 민주 선거로 무르시를 대통령으로 선출, 아랍권에서 비교적 평화롭게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 출신 무르시가 집권 1년 만에 군부 쿠데타로 쫓겨나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군부가 2013년 7~8월 무르시 지지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는 1천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집트 당국은 이후 작년 말 테러단체로 지정한 무슬림형제단 연루자와 무르시 지지자 등 1만5천명 이상을 체포했다.

이 가운데 수십명은 속전속결로 진행된 재판을 거쳐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무르시 축출로 세속주의 세력의 광범위한 지지를 등에 업은 엘시시는 지난해 5월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했다.

또다시 군인 출신 대통령을 배출, 군부가 핵심 권력을 거머쥔 지난 60년간의 정치 구도로 복귀한 셈이다.

군부 권한을 확대하고 이슬람의 영향력을 축소한 개정 헌법도 통과돼 이집트에서는 군부에 제동을 걸만한 법적 장치도 없는 상태다.

무르시 지지 세력은 무르시 축축을 "군사 쿠데타"라고 반발하며 지금도 대학가를 중심으로 산발적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집트 대학가는 새로운 집회·시위 관련 법(이하 집시법) 발효 이후 타흐리르와 라바, 나흐다 등 주요 광장에서의 집회가 원천 차단됨에 따라 반정부 시위대의 집결지로 떠올랐다.

이집트 정부는 작년 말 '3일 전 신고 의무화', '10명 이상 모일 경우 경찰의 사전 허가 후 집회' 등의 내용이 포함된 새 집시법을 공포하고 나서 시위를 벌인 대학생 수백명을 체포했다.

이에 인권단체는 이집트 정부가 과도하게 시위대를 탄압하고 이집트가 과거 권위주의 체제로 회귀했다고 비판했다.

2011년 민주화 시위대를 유혈 진압한 혐의로 기소된 무바라크 전 대통령에게는 지난해 11월 무죄가 선고됐다.

무바라크의 두 아들 알라와 가말도 혁명 4주년을 앞두고 최근 교도소에서 풀려나 이집트과 과거 체제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 25일 혁명 4주년 맞아 전역서 반정부 시위 예고

이집트 시민혁명 4주년을 앞두고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민야, 포트사이드 등 전역에서는 군부 반대 시위가 잇따라 열리는 등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지난 24일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거리 행진을 하던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17세 여성 1명이 총탄에 맞아 숨지고 30명이 체포됐다.

알렉산드리아 이외 지역에서도 시위 참가자 15명 이상이 연행됐다.

지난 22일 카이로에서도 청년이 주축이 된 시위대 50여 명이 도심 광장에서 기습적으로 군부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2011년 때 시위대 사이에서 나온 "군부 통치 반대", "국민은 정권 붕괴를 원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집트 보안군은 곧바로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산탄을 쏘며 해산에 나섰고 시위 가담자 13명을 체포했다.

무슬림형제단이 주도하는 '정당성 지지를 위한 국민연합'은 무바라크 축출 4주년이 되는 25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 단체는 페이스북 등을 통해 군부 반대 시위에 대한 지지를 호소해 왔다.

이에 당국은 혁명 4주년을 기해 전국에 비상경계령을 발동, 주요 도심지와 간선도로, 공공장소, 정부청사 주변의 검문검색을 강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당국은 지난 23일 압둘라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타계했다는 이유로 일주일간을 추모 기간으로 정하면서 혁명 4주년 공식 행사는 열지 않겠다고 밝혔다.

최근 전국 곳곳에서 경찰과 가스 수송관, 사회 기반 시설을 겨냥한 공격도 잇따랐다.

지난 열흘 동안 동북부 시나이반도 라파 접경 인근 지역에서는 민간인 납치와 참수, 경찰관 살해 등 강력 사건이 최소 16차례 발생했다.

지난 17~18일에는 이집트 철로 주변에 폭발물 12개가 적발돼 해체됐으며 이스마일리아-수에즈 구간에서 1발이 터졌다고 내무부는 밝혔다.

지난주에는 카이로 남부 지역의 가스관과 남부 휴양지 후르가다의 전력망을 노린 폭탄 공격도 있었다.
  • 이집트 시민혁명 4주년…군사정권 회귀·표현 자유 위축
    • 입력 2015-01-25 02:32:36
    연합뉴스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의 물결로 촉발된 이집트 시민혁명이 일어난지 25일(현지시간)로 만 4년이 된다.

'현대판 파라오'로 군림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2011년 1월25일 시작한 사상 초유의 민주화 시위가 기폭제가 돼 그 다음달 11일 권좌에서 끝내 축출됐다.

1981년 안와르 사다트 당시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부통령으로서 권력을 승계한 무바라크는 비상계엄법에 의지해 30년간 철권을 휘둘렀지만, 민주화 물결을 거스를 수 없었다.

강력한 독재 정권의 갑작스러운 붕괴는 부작용도 낳았다.

무바라크 정권 몰락 후 4년간 이집트는 정치적 혼란 속에 경제까지 악화했다.

게다가 군부가 2013년 7월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축출한 이후 각종 유혈사태와 테러 사건도 끊이지 않았다.

군부 실세인 압델 파타 엘시시 전 국방장관이 작년 대통령에 오른 뒤 치안을 강화해 이집트는 외관상 평온을 찾은 듯하지만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크게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 카이로와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 등 전역에서는 시민혁명 4주년 기념일을 맞는 25일 산발적 반정부 시위가 예고돼 긴장감마저 고조되고 있다.

◇ 정국 혼란 끝 다시 군사정권으로…표현·언론의 자유 위축

이집트의 민주화 과정은 2011년 '아랍의 봄'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독재 정권을 축출한 이후 3년 넘게 혼란 속에서 지내다가 다시 군사정권으로 돌아간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엘시시 정권은 정국 안정을 우선 목표로 삼고 시위와 집회를 철저히 차단하면서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집트 일각에서는 무바라크 정권 때보다 반정부 인사와 시위대 탄압이 더욱 심하다는 말들이 많이 나온다.

이집트는 2012년만 해도 첫 자유 민주 선거로 무르시를 대통령으로 선출, 아랍권에서 비교적 평화롭게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 출신 무르시가 집권 1년 만에 군부 쿠데타로 쫓겨나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군부가 2013년 7~8월 무르시 지지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는 1천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집트 당국은 이후 작년 말 테러단체로 지정한 무슬림형제단 연루자와 무르시 지지자 등 1만5천명 이상을 체포했다.

이 가운데 수십명은 속전속결로 진행된 재판을 거쳐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무르시 축출로 세속주의 세력의 광범위한 지지를 등에 업은 엘시시는 지난해 5월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했다.

또다시 군인 출신 대통령을 배출, 군부가 핵심 권력을 거머쥔 지난 60년간의 정치 구도로 복귀한 셈이다.

군부 권한을 확대하고 이슬람의 영향력을 축소한 개정 헌법도 통과돼 이집트에서는 군부에 제동을 걸만한 법적 장치도 없는 상태다.

무르시 지지 세력은 무르시 축축을 "군사 쿠데타"라고 반발하며 지금도 대학가를 중심으로 산발적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집트 대학가는 새로운 집회·시위 관련 법(이하 집시법) 발효 이후 타흐리르와 라바, 나흐다 등 주요 광장에서의 집회가 원천 차단됨에 따라 반정부 시위대의 집결지로 떠올랐다.

이집트 정부는 작년 말 '3일 전 신고 의무화', '10명 이상 모일 경우 경찰의 사전 허가 후 집회' 등의 내용이 포함된 새 집시법을 공포하고 나서 시위를 벌인 대학생 수백명을 체포했다.

이에 인권단체는 이집트 정부가 과도하게 시위대를 탄압하고 이집트가 과거 권위주의 체제로 회귀했다고 비판했다.

2011년 민주화 시위대를 유혈 진압한 혐의로 기소된 무바라크 전 대통령에게는 지난해 11월 무죄가 선고됐다.

무바라크의 두 아들 알라와 가말도 혁명 4주년을 앞두고 최근 교도소에서 풀려나 이집트과 과거 체제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 25일 혁명 4주년 맞아 전역서 반정부 시위 예고

이집트 시민혁명 4주년을 앞두고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민야, 포트사이드 등 전역에서는 군부 반대 시위가 잇따라 열리는 등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지난 24일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거리 행진을 하던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17세 여성 1명이 총탄에 맞아 숨지고 30명이 체포됐다.

알렉산드리아 이외 지역에서도 시위 참가자 15명 이상이 연행됐다.

지난 22일 카이로에서도 청년이 주축이 된 시위대 50여 명이 도심 광장에서 기습적으로 군부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2011년 때 시위대 사이에서 나온 "군부 통치 반대", "국민은 정권 붕괴를 원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집트 보안군은 곧바로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산탄을 쏘며 해산에 나섰고 시위 가담자 13명을 체포했다.

무슬림형제단이 주도하는 '정당성 지지를 위한 국민연합'은 무바라크 축출 4주년이 되는 25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 단체는 페이스북 등을 통해 군부 반대 시위에 대한 지지를 호소해 왔다.

이에 당국은 혁명 4주년을 기해 전국에 비상경계령을 발동, 주요 도심지와 간선도로, 공공장소, 정부청사 주변의 검문검색을 강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당국은 지난 23일 압둘라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타계했다는 이유로 일주일간을 추모 기간으로 정하면서 혁명 4주년 공식 행사는 열지 않겠다고 밝혔다.

최근 전국 곳곳에서 경찰과 가스 수송관, 사회 기반 시설을 겨냥한 공격도 잇따랐다.

지난 열흘 동안 동북부 시나이반도 라파 접경 인근 지역에서는 민간인 납치와 참수, 경찰관 살해 등 강력 사건이 최소 16차례 발생했다.

지난 17~18일에는 이집트 철로 주변에 폭발물 12개가 적발돼 해체됐으며 이스마일리아-수에즈 구간에서 1발이 터졌다고 내무부는 밝혔다.

지난주에는 카이로 남부 지역의 가스관과 남부 휴양지 후르가다의 전력망을 노린 폭탄 공격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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