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따기보다 힘든 차량 골든넘버…구청 장악한 대행사들

입력 2015.01.26 (06:37) 수정 2015.01.26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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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번? 그 번호는 절대 못 받아. 내가 3030번이나 3003번까진 해줄 수 있는데…."

지인의 차량에 일명 '골든넘버' 번호판을 선물하려 업무 개시 전부터 서울 노원구청을 찾은 A(33)씨는 엉뚱하게도 공무원이 아닌 번호판 발급 대행사 직원의 설명만 한참 들어야 했다.

대행사 도움 없이 스스로 골든넘버를 얻고 싶었던 A씨는 다음날에도 구청을 찾았지만 원하는 번호를 뽑는 데 실패했다.

돌아가려던 순간 A씨는 다른 외제차가 담당 부서엔 들르지도 않은 채 번호판 발급 장소로 직행해 3000번을 달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A씨는 26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눈앞에서 부조리를 목격했다"며 "내가 겪은 사례와 증거를 더 수집해서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A씨의 사례만이 아니라도 이런 경험은 인터넷상에서 비일비재하게 찾아볼 수 있다.

공식적으로 차량 번호판은 구청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무작위로 1천 개 단위로 번호를 배정받아 발급하고 있다. 구청이 해당 번호를 다 소진하면 국토부로부터 다시 번호를 배정받는다.

구청은 받은 번호를 이용해 민원인에게 컴퓨터로 무작위 10개의 선택지를 부여한다.

노원구 관계자는 "10개씩 무작위로 추첨한 것 중 하나를 차주가 고르기 때문에 비리는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1천 단위로 딱 떨어지거나 한 가지 숫자가 연속되는 골든넘버를 '따는' 데 있어선 대행사들이 더 분주해진다. 원칙적으로는 불가하지만 골든넘버가 나올 때까지 10개 단위의 추첨을 여러 번씩 반복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 차에 대해 한 번만 추첨을 허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민원인이 사정을 하면 일부 구청에서 여러 번씩 반복해주기도 하는데, 이때 대행사와 구청 간 유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7777번이나 7788번 같은 '프리미엄 번호'를 얻으려면 대행사에 100만원씩 내야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 자치구의 관계자도 "증거가 없을 뿐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유착이 있을 수 있다"며 "대행사 사람들이 구청에 상주하는데 밥이나 술을 사주고 친해지면 충분히 번호를 빼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골든넘버 좀 뽑아봤다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가 노원구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강남구는 민원인은 물론 대행사에도 좋은 번호를 주지 않기로 유명하다. 심지어 이미 발급됐어야 할 번호도 유보로 잡고 있다가 나중에 내주는 경우도 확인되곤 한다.

A씨는 중고차 사이트에서 이미 발급됐어야 할 차량번호를 입력했는데 미등록 번호로 나와 그 번호를 달라고 강남구에 문의했더니 "이미 나간 번호"라는 답만 돌아왔다고 했다.

번호판 발급을 시도한 또 다른 B씨는 "A씨가 문의하고 나서 강남구청 자동차민원실은 발칵 뒤집혔다"며 "그로부터 며칠 후 해당 중고차 사이트는 돌연 자동차번호 검색 시스템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러한 비리의 가능성을 '0%'로 규정한 채 모니터링을 해보거나 제재에 나설 생각을 않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구청이 전산시스템으로 처리하는 일이라 비리는 있을 수가 없고 그런 사례도 없다"고 일축하며 따로 처벌 규정이 없고 감시·감독도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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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따기보다 힘든 차량 골든넘버…구청 장악한 대행사들
    • 입력 2015-01-26 06:37:30
    • 수정2015-01-26 20:38:16
    연합뉴스
"3000번? 그 번호는 절대 못 받아. 내가 3030번이나 3003번까진 해줄 수 있는데…."

지인의 차량에 일명 '골든넘버' 번호판을 선물하려 업무 개시 전부터 서울 노원구청을 찾은 A(33)씨는 엉뚱하게도 공무원이 아닌 번호판 발급 대행사 직원의 설명만 한참 들어야 했다.

대행사 도움 없이 스스로 골든넘버를 얻고 싶었던 A씨는 다음날에도 구청을 찾았지만 원하는 번호를 뽑는 데 실패했다.

돌아가려던 순간 A씨는 다른 외제차가 담당 부서엔 들르지도 않은 채 번호판 발급 장소로 직행해 3000번을 달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A씨는 26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눈앞에서 부조리를 목격했다"며 "내가 겪은 사례와 증거를 더 수집해서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A씨의 사례만이 아니라도 이런 경험은 인터넷상에서 비일비재하게 찾아볼 수 있다.

공식적으로 차량 번호판은 구청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무작위로 1천 개 단위로 번호를 배정받아 발급하고 있다. 구청이 해당 번호를 다 소진하면 국토부로부터 다시 번호를 배정받는다.

구청은 받은 번호를 이용해 민원인에게 컴퓨터로 무작위 10개의 선택지를 부여한다.

노원구 관계자는 "10개씩 무작위로 추첨한 것 중 하나를 차주가 고르기 때문에 비리는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1천 단위로 딱 떨어지거나 한 가지 숫자가 연속되는 골든넘버를 '따는' 데 있어선 대행사들이 더 분주해진다. 원칙적으로는 불가하지만 골든넘버가 나올 때까지 10개 단위의 추첨을 여러 번씩 반복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 차에 대해 한 번만 추첨을 허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민원인이 사정을 하면 일부 구청에서 여러 번씩 반복해주기도 하는데, 이때 대행사와 구청 간 유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7777번이나 7788번 같은 '프리미엄 번호'를 얻으려면 대행사에 100만원씩 내야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 자치구의 관계자도 "증거가 없을 뿐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유착이 있을 수 있다"며 "대행사 사람들이 구청에 상주하는데 밥이나 술을 사주고 친해지면 충분히 번호를 빼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골든넘버 좀 뽑아봤다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가 노원구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강남구는 민원인은 물론 대행사에도 좋은 번호를 주지 않기로 유명하다. 심지어 이미 발급됐어야 할 번호도 유보로 잡고 있다가 나중에 내주는 경우도 확인되곤 한다.

A씨는 중고차 사이트에서 이미 발급됐어야 할 차량번호를 입력했는데 미등록 번호로 나와 그 번호를 달라고 강남구에 문의했더니 "이미 나간 번호"라는 답만 돌아왔다고 했다.

번호판 발급을 시도한 또 다른 B씨는 "A씨가 문의하고 나서 강남구청 자동차민원실은 발칵 뒤집혔다"며 "그로부터 며칠 후 해당 중고차 사이트는 돌연 자동차번호 검색 시스템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러한 비리의 가능성을 '0%'로 규정한 채 모니터링을 해보거나 제재에 나설 생각을 않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구청이 전산시스템으로 처리하는 일이라 비리는 있을 수가 없고 그런 사례도 없다"고 일축하며 따로 처벌 규정이 없고 감시·감독도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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