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사랑하지만…” 병시중 70대의 극단적 선택

입력 2015.01.29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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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팔순 음악가 부부는 단둘이서 안락한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 안느가 오른쪽 신체 마비를 겪으면서 평온한 일상에 짙은 어둠이 드리운다. 병원에 입원하기를 거부하는 아내를 극진히 보살폈던 남편 조르주는 의사소통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아내를 보고 '끝'을 내기로 했다. 조르주는 아내의 품위를 지켜주면서 그도 편해질 수 있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지난 2012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아무르'(Amour: 사랑)의 줄거리다.

오스트리아의 거장 미하엘 하네케가 감독한 이 영화는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앞둔 반쪽을 지켜보는 남은 반쪽의 고통을 그리며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영화의 내용이 올해 정초 서울 한복판에서 거의 그대로 재현됐다.

29일 경찰과 이웃 주민 등에 따르면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단둘이 금술 좋게 살던 A(70)씨 부부는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어려울 것이 없었다.

A씨 본인도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태였으며, 명문대를 나온 뒤 대기업에 다니던 아들 등 자식들과 왕래도 잦았다는 것이 이웃의 설명이다.

그러던 지난 2013년 아내 B(68)씨가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A씨 부부의 평온함에 암운이 드리웠다.

B씨는 쓰러진 이후 요양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A씨는 극진히 아내를 보살폈다.

그러나 아내는 식물인간 상태였던 터라 어떠한 대화도 나눌 수 없었다.

그러던 지난 19일, A씨는 돌연 자식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요양병원에서 아내를 퇴원시켜 집으로 옮겼다.

아내가 퇴원한 지 사흘째인 22일 낮 A씨는 아내를 목 졸라 살해했다.

그 자신도 제초제와 살충제를 섞어 마셔 자살을 기도했다.

A씨의 행동은 결코 충동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철저히 계획된 것이었다.

그는 2주 전 이미 '끝'을 내기로 마음을 굳히고 제초제와 살충제를 구해 놓았던 것이다.

그는 독약을 마시며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다 끝났다"는 말을 남겼다.

황급히 집으로 찾아간 아들은 이미 숨을 거둔 어머니와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A씨는 치료 끝에 목숨을 건져 홀로 남게 됐다.

A씨는 26일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 관계자는 "할아버지의 사정은 딱하지만 제초제를 미리 준비했던 점에서 계획된 범행으로 보여 실형이 불가피해 구속했다"고 설명했다.

또 "오히려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하면 또다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어 격리 상태에서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홀로 남은 A씨는 경찰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게 되겠나'라고 생각해 결심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연명 치료를 끊는 게 아닌 비윤리적인 살인을 했다는 점에서 존엄사라고 부를 수 없다"고 못박으면서도 "다만 A씨의 상황이나 심정은 마음 아픈 울림을 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균 수명이 늘면서 존엄사는 누구나 부딪칠 가능성이 큰 문제"라면서 "이제는 '웰다잉'(well-dying) 혹은 품위있는 죽음인 존엄사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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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를 사랑하지만…” 병시중 70대의 극단적 선택
    • 입력 2015-01-29 05:40:02
    연합뉴스
"은퇴한 팔순 음악가 부부는 단둘이서 안락한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 안느가 오른쪽 신체 마비를 겪으면서 평온한 일상에 짙은 어둠이 드리운다. 병원에 입원하기를 거부하는 아내를 극진히 보살폈던 남편 조르주는 의사소통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아내를 보고 '끝'을 내기로 했다. 조르주는 아내의 품위를 지켜주면서 그도 편해질 수 있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지난 2012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아무르'(Amour: 사랑)의 줄거리다. 오스트리아의 거장 미하엘 하네케가 감독한 이 영화는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앞둔 반쪽을 지켜보는 남은 반쪽의 고통을 그리며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영화의 내용이 올해 정초 서울 한복판에서 거의 그대로 재현됐다. 29일 경찰과 이웃 주민 등에 따르면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단둘이 금술 좋게 살던 A(70)씨 부부는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어려울 것이 없었다. A씨 본인도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태였으며, 명문대를 나온 뒤 대기업에 다니던 아들 등 자식들과 왕래도 잦았다는 것이 이웃의 설명이다. 그러던 지난 2013년 아내 B(68)씨가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A씨 부부의 평온함에 암운이 드리웠다. B씨는 쓰러진 이후 요양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A씨는 극진히 아내를 보살폈다. 그러나 아내는 식물인간 상태였던 터라 어떠한 대화도 나눌 수 없었다. 그러던 지난 19일, A씨는 돌연 자식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요양병원에서 아내를 퇴원시켜 집으로 옮겼다. 아내가 퇴원한 지 사흘째인 22일 낮 A씨는 아내를 목 졸라 살해했다. 그 자신도 제초제와 살충제를 섞어 마셔 자살을 기도했다. A씨의 행동은 결코 충동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철저히 계획된 것이었다. 그는 2주 전 이미 '끝'을 내기로 마음을 굳히고 제초제와 살충제를 구해 놓았던 것이다. 그는 독약을 마시며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다 끝났다"는 말을 남겼다. 황급히 집으로 찾아간 아들은 이미 숨을 거둔 어머니와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A씨는 치료 끝에 목숨을 건져 홀로 남게 됐다. A씨는 26일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 관계자는 "할아버지의 사정은 딱하지만 제초제를 미리 준비했던 점에서 계획된 범행으로 보여 실형이 불가피해 구속했다"고 설명했다. 또 "오히려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하면 또다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어 격리 상태에서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홀로 남은 A씨는 경찰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게 되겠나'라고 생각해 결심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연명 치료를 끊는 게 아닌 비윤리적인 살인을 했다는 점에서 존엄사라고 부를 수 없다"고 못박으면서도 "다만 A씨의 상황이나 심정은 마음 아픈 울림을 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균 수명이 늘면서 존엄사는 누구나 부딪칠 가능성이 큰 문제"라면서 "이제는 '웰다잉'(well-dying) 혹은 품위있는 죽음인 존엄사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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