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고시원의 ⅔가 다른 용도로 허가 받아

입력 2015.01.29 (09:21) 수정 2015.01.2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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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시원에서 불법 취사 만연

지난해 5월 전남 장성 요양병원 화재, 뒤이은 11월 담양 펜션 화재... 반복되는 화재 참사의 와중에 한 제보자가 찾아왔다. 고시원에서 불법 취사 시설을 설치해 원룸처럼 운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의정부에서 도시형 생활주택 화재가 났다. 화재는 또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다. 고시원에서 위험한 취사 행위가 만연하다는 제보에 마음이 쏠렸다. 2008년 용인 고시원 화재로 큰 인명 피해가 난 뒤 이미 개선된 줄 알았는데 아직도 그대로란 말이다. 믿기지 않았지만 고시원 입주민인 대학생의 동의를 얻어 현장을 확인했다.

세입자는 투룸 인줄 알고 계약하고 살았다. 밥도 해먹고 안에는 에어컨, 화장실, 샤워실, 싱크대, 전기렌지까지 이른바 풀옵션이었다. 그런데, 옆집의 소리가 매우 잘 들려서 잠을 못 이루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이 원룸의 건축물대장을 확인해보니 고시원이었다. 월세 계약서엔 분명 원룸인데 말이다. 제보자는 이런 식으로 고시원을 지은 뒤 원룸처럼 운영하는 곳이 많다고 했다. 구청에 민원도 내봤다. 하지만, 집주인이 잠자고 있는 세입자의 방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와 타박했다고 대학생은 증언했다. 집주인은 갑이고 세입자는 역시 을이었다.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갔다.

■ 포털에 무릎 꿇은 행정시스템

일단 광주광역시에 고시원이 어디에 몇 개가 있는지 현황부터 파악해야 했다. 광주 지역 5개 구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이 왔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고시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광산구청 건축행정시스템(세움터)을 검색한 결과 정보가 없다'는 정보부존재 통지서가 왔다. 인구 40만 광산구에 고시원이 하나도 없다니, 믿기지 않아 담당자에게 전화했다. 건축과 직원은 분명히 고시원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포털에서 검색하면 두 개가 있는 걸로 나온다며 말끝을 흐렸다. 포털과 부동산 정보지 등을 검색해 광산구에 고시원이 있는지 현장을 확인했다.

취재진은 '00고시텔' 등 고시원 두 곳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분명 고시원으로 영업 중이었다. 방안에는 공부하는 책상은 없고, 침대와 TV만 덩그러니 있었다. 인근 산업단지 근로자들이 주로 산다고 했다. 고시원이 아니라 사실상 원룸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곳의 건축물 대장을 확인해보니, 한 곳은 안마시술소, 다른 한 곳은 독서실과 다가구주택으로 용도를 허가받은 곳이었다. 허가 받은 용도와 전혀 다른 고시원으로 운영해도 되는 걸까? 광산구청에 찾아갔다. 구청 담당자는 건축법을 보여줬다. 고시원을 운영하려면 고시원으로 용도변경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단언컨대 불법 용도변경은 없다고 말했다. 담당 공무원이 현장을 한 번만 둘러봐도 고시원이 있는 줄 알텐데, 사무실에서 쓰는 행정시스템에만 의존하는 듯한 모습은 아쉬운 부분이다.


▲ 행정시스템에는 고시원이 없다는 광산구청의 답변


▲ 안마시술소를 고시원으로 영업 중인 건물 내부 모습

■ 자치단체는 고시원에 관심이 없다

광주광역시 북구는 고시원이 10개가 있다고 문서를 보내왔다. 고시원이 밀집한 대학가의 한 부동산을 찾았다. 이 공인중개사는 인근에 아는 고시원만 수십 개가 넘는다며 구청이 뭔가 잘못 알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 북구청에 찾아갔다. 북구청 관계자는 당당하게 말했다. 제2종 근린생활시설에 있는 학원, 사무실, 노래방 등은 용도변경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고시원으로 영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두 시간 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자신들이 잘못 알았다며 '고시원(다중이용시설)'으로 용도변경해야 고시원으로 영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시원이 몇 개인지도 모르는 구청이 고시원의 불법 행위를 감시하고 단속했을리 없다. 광주광역시 5개 구청에서 지난 2년 동안 고시원의 불법 취사를 단속한 경우는 딱 한 건이다.

■ 국세청은 세금만 걷으면 그만

구청에서는 고시원으로 영업하려면 세무서에 사업자등록을 하니, 국세청에 물어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고 기자에게 알려줬다. 그래서 광주지방국세청에 고시원업으로 사업자등록을 한 고시원이 몇 개나 있는지 현황을 공개해달라고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국세청은 “귀하가 청구하신 정보는 새로운 생성·가공·취합을 해야 하는 정보로서 우리 청에 존재하고 있지 않은 정보이기에 공개할 수 없다”고 답해왔다. 국세청에 전화했다. 담당자는 숙식 제공 위주의 고시원 운영을 하려면 독서실운영업으로 사업자등록을 하는데, 독서실 운영업으로 신고한 사업자가 몇 명인지 검색해서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고시원 업자에게 세금만 잘 걷으면 될 뿐 몇 곳이 있는지 알려주는 것은 의무가 아니란 얘기다.

■ 고시원 세 곳 중 두 곳 전혀 다른 용도, 22%는 증축

그렇다면 고시원의 소방 시설은 제대로 갖춰져 있을까? 광주시소방안전본부에 고시원 현황과 소방점검 결과를 청구했다. 소방안전본부는 광주 지역 고시원 188곳에 대해 지난해 모두 조사했지만 '양호'했다고 답변을 보내왔다.

제작진은 고시원을 전수조사해 검증해보기로 했다. 고시원 188곳의 건축물 대장을 모두 발급 받아, 용도가 어떻게 돼있는지 확인했다. 3분의 1인 61곳 정도가 용도가 '고시원'으로 표기돼 있었다. 나머지 3분의 2는 독서실, 학원, 의원, 사무실, 안마시술소 등 전혀 다른 용도로 허가를 받았다. 한 고시원 업주는 용도를 변경하려면 고시원에 맞는 시설 기준을 모두 갖추느라 수천만 원의 비용이 든다고 했다.

고시원 법규가 자리잡기 시작한 건 2009년과 2011년부터다. 이전에 고시원 영업을 하던 업주들이 용도변경을 하지 않고 그대로 영업 중인 곳이 대부분인 것으로 추정된다. 증축도 많았다. 고시원 188곳 가운데 22%인 43곳이 이런저런 이유로 불법 또는 합법으로 건물을 증축했다.

세월호는 돈을 더 벌기 위해 무리한 증축을 했다. 고시원도 돈을 더 벌려는 욕심은 비슷했다. 월세 장사가 쏠쏠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광주 지역의 고시원은 10년 사이 세 배로 늘었다. 원룸도 4년 사이 25%가 늘었다. 건축물 대장에 기록되지 않은 무단 증축이 또 얼마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고시원이 엉뚱한 용도로 허가받은 건물인데다 갖가지 증축이 이뤄진 곳이라니, 아들 딸을 고시원에 맡긴 부모님의 마음은 불안하다.


▲ 광주 지역 고시원 188곳의 건축물 대장


▲ 고시원 건축물 대장의 증축 기록

■ 신뢰와 안심의 공간 고시원으로

광주광역시 동구의 조선대 인근 고시원이 밀집한 마을을 찾았다. KBS라고 밝히고 소방시설을 보고 싶다고 하니 공개할 수 없다는 고시원 업주들이 대부분이었다. 소방시설에 자신 있다는 고시원은 내부를 공개했다. 업주는 스프링클러와 소화기, 화재감지기 등 소방 시설을 잘 갖추려면 한 층에 천만 원 정도 든다고 했다.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보니 고시원마다 화재 안전 시설도 제각각이었다. 법을 개정하더라고 소급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방마다 소화기가 있는 곳과 없는 곳, 스프링클러가 있는 곳과 없는 곳 모두 제각각이었다. 특히, 층마다 연결된 대피 통로를 막아 놓은 곳도 두 곳 발견됐다.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대피로는 아주 잠깐만 막혀도 병목 현상이 일어나 인명 피해를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데도 소방점검은 모두 '양호'였다.

고시원에 사는 사람은 월세를 아끼려는 대학생이나 취업 준비생, 보증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근로자들이다. 돈이 많다면 누군들 더 넓고 안전한 집에서 살고 싶지 않겠는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고시원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괜찮다며 원칙을 무시하고 불법을 묵인하면 또 사고가 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가 또 고시원에서 일어난다면 그 희생자들은 또 어려운 이웃들일 것이다. 소중한 생명을 한꺼번에 앗아가는 안타까운 뉴스는 이제는 정말 전하고 싶지 않다.


▲ 쇠사슬에 가로 막힌 고시원 대피로

☞ 다시보기 ‘불신과 불안의 집’ 고시원(1월 27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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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고시원의 ⅔가 다른 용도로 허가 받아
    • 입력 2015-01-29 09:21:13
    • 수정2015-01-29 20:05:12
    취재후·사건후
■ 고시원에서 불법 취사 만연

지난해 5월 전남 장성 요양병원 화재, 뒤이은 11월 담양 펜션 화재... 반복되는 화재 참사의 와중에 한 제보자가 찾아왔다. 고시원에서 불법 취사 시설을 설치해 원룸처럼 운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의정부에서 도시형 생활주택 화재가 났다. 화재는 또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다. 고시원에서 위험한 취사 행위가 만연하다는 제보에 마음이 쏠렸다. 2008년 용인 고시원 화재로 큰 인명 피해가 난 뒤 이미 개선된 줄 알았는데 아직도 그대로란 말이다. 믿기지 않았지만 고시원 입주민인 대학생의 동의를 얻어 현장을 확인했다.

세입자는 투룸 인줄 알고 계약하고 살았다. 밥도 해먹고 안에는 에어컨, 화장실, 샤워실, 싱크대, 전기렌지까지 이른바 풀옵션이었다. 그런데, 옆집의 소리가 매우 잘 들려서 잠을 못 이루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이 원룸의 건축물대장을 확인해보니 고시원이었다. 월세 계약서엔 분명 원룸인데 말이다. 제보자는 이런 식으로 고시원을 지은 뒤 원룸처럼 운영하는 곳이 많다고 했다. 구청에 민원도 내봤다. 하지만, 집주인이 잠자고 있는 세입자의 방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와 타박했다고 대학생은 증언했다. 집주인은 갑이고 세입자는 역시 을이었다.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갔다.

■ 포털에 무릎 꿇은 행정시스템

일단 광주광역시에 고시원이 어디에 몇 개가 있는지 현황부터 파악해야 했다. 광주 지역 5개 구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이 왔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고시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광산구청 건축행정시스템(세움터)을 검색한 결과 정보가 없다'는 정보부존재 통지서가 왔다. 인구 40만 광산구에 고시원이 하나도 없다니, 믿기지 않아 담당자에게 전화했다. 건축과 직원은 분명히 고시원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포털에서 검색하면 두 개가 있는 걸로 나온다며 말끝을 흐렸다. 포털과 부동산 정보지 등을 검색해 광산구에 고시원이 있는지 현장을 확인했다.

취재진은 '00고시텔' 등 고시원 두 곳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분명 고시원으로 영업 중이었다. 방안에는 공부하는 책상은 없고, 침대와 TV만 덩그러니 있었다. 인근 산업단지 근로자들이 주로 산다고 했다. 고시원이 아니라 사실상 원룸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곳의 건축물 대장을 확인해보니, 한 곳은 안마시술소, 다른 한 곳은 독서실과 다가구주택으로 용도를 허가받은 곳이었다. 허가 받은 용도와 전혀 다른 고시원으로 운영해도 되는 걸까? 광산구청에 찾아갔다. 구청 담당자는 건축법을 보여줬다. 고시원을 운영하려면 고시원으로 용도변경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단언컨대 불법 용도변경은 없다고 말했다. 담당 공무원이 현장을 한 번만 둘러봐도 고시원이 있는 줄 알텐데, 사무실에서 쓰는 행정시스템에만 의존하는 듯한 모습은 아쉬운 부분이다.


▲ 행정시스템에는 고시원이 없다는 광산구청의 답변


▲ 안마시술소를 고시원으로 영업 중인 건물 내부 모습

■ 자치단체는 고시원에 관심이 없다

광주광역시 북구는 고시원이 10개가 있다고 문서를 보내왔다. 고시원이 밀집한 대학가의 한 부동산을 찾았다. 이 공인중개사는 인근에 아는 고시원만 수십 개가 넘는다며 구청이 뭔가 잘못 알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 북구청에 찾아갔다. 북구청 관계자는 당당하게 말했다. 제2종 근린생활시설에 있는 학원, 사무실, 노래방 등은 용도변경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고시원으로 영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두 시간 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자신들이 잘못 알았다며 '고시원(다중이용시설)'으로 용도변경해야 고시원으로 영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시원이 몇 개인지도 모르는 구청이 고시원의 불법 행위를 감시하고 단속했을리 없다. 광주광역시 5개 구청에서 지난 2년 동안 고시원의 불법 취사를 단속한 경우는 딱 한 건이다.

■ 국세청은 세금만 걷으면 그만

구청에서는 고시원으로 영업하려면 세무서에 사업자등록을 하니, 국세청에 물어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고 기자에게 알려줬다. 그래서 광주지방국세청에 고시원업으로 사업자등록을 한 고시원이 몇 개나 있는지 현황을 공개해달라고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국세청은 “귀하가 청구하신 정보는 새로운 생성·가공·취합을 해야 하는 정보로서 우리 청에 존재하고 있지 않은 정보이기에 공개할 수 없다”고 답해왔다. 국세청에 전화했다. 담당자는 숙식 제공 위주의 고시원 운영을 하려면 독서실운영업으로 사업자등록을 하는데, 독서실 운영업으로 신고한 사업자가 몇 명인지 검색해서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고시원 업자에게 세금만 잘 걷으면 될 뿐 몇 곳이 있는지 알려주는 것은 의무가 아니란 얘기다.

■ 고시원 세 곳 중 두 곳 전혀 다른 용도, 22%는 증축

그렇다면 고시원의 소방 시설은 제대로 갖춰져 있을까? 광주시소방안전본부에 고시원 현황과 소방점검 결과를 청구했다. 소방안전본부는 광주 지역 고시원 188곳에 대해 지난해 모두 조사했지만 '양호'했다고 답변을 보내왔다.

제작진은 고시원을 전수조사해 검증해보기로 했다. 고시원 188곳의 건축물 대장을 모두 발급 받아, 용도가 어떻게 돼있는지 확인했다. 3분의 1인 61곳 정도가 용도가 '고시원'으로 표기돼 있었다. 나머지 3분의 2는 독서실, 학원, 의원, 사무실, 안마시술소 등 전혀 다른 용도로 허가를 받았다. 한 고시원 업주는 용도를 변경하려면 고시원에 맞는 시설 기준을 모두 갖추느라 수천만 원의 비용이 든다고 했다.

고시원 법규가 자리잡기 시작한 건 2009년과 2011년부터다. 이전에 고시원 영업을 하던 업주들이 용도변경을 하지 않고 그대로 영업 중인 곳이 대부분인 것으로 추정된다. 증축도 많았다. 고시원 188곳 가운데 22%인 43곳이 이런저런 이유로 불법 또는 합법으로 건물을 증축했다.

세월호는 돈을 더 벌기 위해 무리한 증축을 했다. 고시원도 돈을 더 벌려는 욕심은 비슷했다. 월세 장사가 쏠쏠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광주 지역의 고시원은 10년 사이 세 배로 늘었다. 원룸도 4년 사이 25%가 늘었다. 건축물 대장에 기록되지 않은 무단 증축이 또 얼마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고시원이 엉뚱한 용도로 허가받은 건물인데다 갖가지 증축이 이뤄진 곳이라니, 아들 딸을 고시원에 맡긴 부모님의 마음은 불안하다.


▲ 광주 지역 고시원 188곳의 건축물 대장


▲ 고시원 건축물 대장의 증축 기록

■ 신뢰와 안심의 공간 고시원으로

광주광역시 동구의 조선대 인근 고시원이 밀집한 마을을 찾았다. KBS라고 밝히고 소방시설을 보고 싶다고 하니 공개할 수 없다는 고시원 업주들이 대부분이었다. 소방시설에 자신 있다는 고시원은 내부를 공개했다. 업주는 스프링클러와 소화기, 화재감지기 등 소방 시설을 잘 갖추려면 한 층에 천만 원 정도 든다고 했다.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보니 고시원마다 화재 안전 시설도 제각각이었다. 법을 개정하더라고 소급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방마다 소화기가 있는 곳과 없는 곳, 스프링클러가 있는 곳과 없는 곳 모두 제각각이었다. 특히, 층마다 연결된 대피 통로를 막아 놓은 곳도 두 곳 발견됐다.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대피로는 아주 잠깐만 막혀도 병목 현상이 일어나 인명 피해를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데도 소방점검은 모두 '양호'였다.

고시원에 사는 사람은 월세를 아끼려는 대학생이나 취업 준비생, 보증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근로자들이다. 돈이 많다면 누군들 더 넓고 안전한 집에서 살고 싶지 않겠는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고시원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괜찮다며 원칙을 무시하고 불법을 묵인하면 또 사고가 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가 또 고시원에서 일어난다면 그 희생자들은 또 어려운 이웃들일 것이다. 소중한 생명을 한꺼번에 앗아가는 안타까운 뉴스는 이제는 정말 전하고 싶지 않다.


▲ 쇠사슬에 가로 막힌 고시원 대피로

☞ 다시보기 ‘불신과 불안의 집’ 고시원(1월 27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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