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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학교폭력에 용서가 최선인가?
입력 2015.01.29 (09:25) 수정 2015.01.29 (20:05) 취재후
■친구 사이? 갑을관계!

- 2013년 7월 중학교 2학년이던 이준원(가명)군은 학원에서 동급생이던 정상현(가명) 군을 알게 되었다. 함께 수업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어울린 둘은 겉으로는 평범한 친구사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준원은 상현과 어울리는 것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상현이 원치 않는 심부름을 자주 시켰기 때문이다. PC방에 가면 수시로 물을 떠오도록 하거나, 친구 집에 가면 라면을 끓여 오도록 시켰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힘도 세고 싸움도 잘하는 상현이의 명령을 ‘거역’하면 어김없이 폭행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상현의 요구는 점점 더 심해졌다. 새로 산 교복을 자신의 헌 교복과 바꿔달라고 요구하거나, 길거리에서 자전거를 훔쳐 오라고 시키기도 했다. 상현이 준원을 괴롭히는 데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상현은 준원이가 "말도 잘 하지 않고 약해보여서” 괴롭혔다고 말했다.



- 해가 바뀌고 3학년이 되었다. 12월 어느 날 날, 상현이 준원에게 친구 집에 가서 전자담배를 가져오라고 했다. “빌려 볼게” 라고 무심코 대답했지만, 영 내키지 않았다. 준원은 친구 집에 가는 대신 발길을 돌려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준원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 상현은 준원에게 전화해 당장 자신의 집 앞으로 달려오라고 고함쳤다. 하지만 전화를 받고도 준원은 그냥 집으로 갔다. 10통이 넘는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죽여 버리겠다’ 는 욕설 문자가 날라 들었다. 다음 날 준원은 가슴을 졸이며 학교를 갔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담임선생님이 교실을 떠나자마자, 상현이 준원을 찾아왔다. 상현은 반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준원의 얼굴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선배도 아닌 동급생인데....내가 그렇게 맞을 정도의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아픈 것보다 참기 힘든 것은, 여럿이 보는 앞에서 맞아야 하는 모멸감이었다.

■학교폭력, 그 후로 오랫동안

- 그날 저녁 아들의 폭행 동영상을 본 준원의 어머니는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어머니는 곧바로 117에 신고했고, 경찰은 이 사실을 학교에 통보했다. 다음 날 학교에 온 준원에게 담임선생님이 몸이 괜찮냐고 물었다. 준원은 “괜찮다”고 짧게 대답했다. 몸은 괜찮았지만, 마음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모든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을 당했다는 수치심 때문에 극도의 우울감에 빠져 들었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상현을 다시 마주칠까봐, 보복이라도 당할까봐 두려웠다. 도저히 학교를 갈 수가 없었다. 힘들어하는 아들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엄마가 조심스럽게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준원이 다음 주 일주일만 학교에 안 보내면 안 될까요?’ 학교 폭력 대응지침에는 피해 학생에 대한 보호조치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분도 안 돼 담임교사의 짧은 답문이 날아 들었다. ‘무단결석 처리 됩니다.’ 그럼 아픈 아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재차 물었다. 교사는 아픈 게 사실이라면 병원 진단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며칠 뒤, 교사에게서 다시 문자가 왔다. 급성 장염에다 정신과 치료까지 받으며 학교도 나가지 못하는 준원에 대한 걱정이려니 했다. 문자 내용은 예상과 달랐다. ‘학교폭력 자치위원회가 이번 주 금요일 개최예정입니다. 조사를 해야 하는데 준원이가 등교를 하지 않아서 (학폭위 개최가) 지체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분노했다. 친구에게 맞아 겁에 질린 아들에게, 자꾸만 학교에 나오라고 강요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폭행 사건이 발생하고 열흘 정도 지나 학교폭력 자치위원회가 열렸다. 교사 3명,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 6명, 경찰 1명으로 구성된 학폭위가 가해 학생인 상현에게 내린 징계는 ‘출석정지 5일, 특별교육 이수 16시간’이 전부였다. 1년 내내 괴롭힘에 숨죽여 울었던 준원은 겨우 출석정지 5일이라는 조치 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괜히 신고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 종일 집에만 있던 준원에게 담임선생님이 갑자기 찾아왔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며 선생님은 준원에게 “때린 상현을 용서하라”고 말했다. “살다보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만일 선생님이 학창 시절에 그렇게 폭행을 당했다면, 선생님은 그렇게 용서하실 수 있겠냐’고 마음속으로만 반문했다. 그날 이후 준원은 깊은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용서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의 것인가


- 왜 출석을 강요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담임교사는 “폭행 다음 날 준원이 아무 일 없이 수업을 잘 받았고 아픈 데도 없어 보여 괜찮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학생이 결석을 하는 것은 ‘무단결석’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준원에게 상현을 용서하라고 한 것 역시 화해를 유도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친구 사이에는 싸울 수도 있고 화해를 할 수도 있는 건데, 친구 사이를 원수지간으로 둘 수는 없었다.”며 교사의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었다.



‘용서’ 만큼이나 아름다운 단어가 있을까. 하지만 피해자가 아닌, 제3자가 이야기할 때 그것은 위선에 불과하다. 가해자의 죄로 인해 한 번도 고통 받아 본 적 없는 제3자는 무엇을 용서해야 하는지도, 왜 용서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여전히 고통으로 숨죽여 우는 피해자에게 섣불리 용서를 운운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제3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위로의 방식은 그저 안부를 묻는 일이다. 피해자가 받은 상처에 대해 귀담아 들어주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당하게 이루어졌는지를 감시하는 일이다.

학교 폭력으로 오랜 기간 고통 받았던 준원과 그의 어머니가 학교에 바랐던 유일한 배려 역시 아마 그것이었을 것이다. 

  • [취재후] 학교폭력에 용서가 최선인가?
    • 입력 2015-01-29 09:25:27
    • 수정2015-01-29 20:05:12
    취재후
■친구 사이? 갑을관계!

- 2013년 7월 중학교 2학년이던 이준원(가명)군은 학원에서 동급생이던 정상현(가명) 군을 알게 되었다. 함께 수업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어울린 둘은 겉으로는 평범한 친구사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준원은 상현과 어울리는 것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상현이 원치 않는 심부름을 자주 시켰기 때문이다. PC방에 가면 수시로 물을 떠오도록 하거나, 친구 집에 가면 라면을 끓여 오도록 시켰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힘도 세고 싸움도 잘하는 상현이의 명령을 ‘거역’하면 어김없이 폭행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상현의 요구는 점점 더 심해졌다. 새로 산 교복을 자신의 헌 교복과 바꿔달라고 요구하거나, 길거리에서 자전거를 훔쳐 오라고 시키기도 했다. 상현이 준원을 괴롭히는 데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상현은 준원이가 "말도 잘 하지 않고 약해보여서” 괴롭혔다고 말했다.



- 해가 바뀌고 3학년이 되었다. 12월 어느 날 날, 상현이 준원에게 친구 집에 가서 전자담배를 가져오라고 했다. “빌려 볼게” 라고 무심코 대답했지만, 영 내키지 않았다. 준원은 친구 집에 가는 대신 발길을 돌려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준원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 상현은 준원에게 전화해 당장 자신의 집 앞으로 달려오라고 고함쳤다. 하지만 전화를 받고도 준원은 그냥 집으로 갔다. 10통이 넘는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죽여 버리겠다’ 는 욕설 문자가 날라 들었다. 다음 날 준원은 가슴을 졸이며 학교를 갔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담임선생님이 교실을 떠나자마자, 상현이 준원을 찾아왔다. 상현은 반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준원의 얼굴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선배도 아닌 동급생인데....내가 그렇게 맞을 정도의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아픈 것보다 참기 힘든 것은, 여럿이 보는 앞에서 맞아야 하는 모멸감이었다.

■학교폭력, 그 후로 오랫동안

- 그날 저녁 아들의 폭행 동영상을 본 준원의 어머니는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어머니는 곧바로 117에 신고했고, 경찰은 이 사실을 학교에 통보했다. 다음 날 학교에 온 준원에게 담임선생님이 몸이 괜찮냐고 물었다. 준원은 “괜찮다”고 짧게 대답했다. 몸은 괜찮았지만, 마음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모든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을 당했다는 수치심 때문에 극도의 우울감에 빠져 들었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상현을 다시 마주칠까봐, 보복이라도 당할까봐 두려웠다. 도저히 학교를 갈 수가 없었다. 힘들어하는 아들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엄마가 조심스럽게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준원이 다음 주 일주일만 학교에 안 보내면 안 될까요?’ 학교 폭력 대응지침에는 피해 학생에 대한 보호조치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분도 안 돼 담임교사의 짧은 답문이 날아 들었다. ‘무단결석 처리 됩니다.’ 그럼 아픈 아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재차 물었다. 교사는 아픈 게 사실이라면 병원 진단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며칠 뒤, 교사에게서 다시 문자가 왔다. 급성 장염에다 정신과 치료까지 받으며 학교도 나가지 못하는 준원에 대한 걱정이려니 했다. 문자 내용은 예상과 달랐다. ‘학교폭력 자치위원회가 이번 주 금요일 개최예정입니다. 조사를 해야 하는데 준원이가 등교를 하지 않아서 (학폭위 개최가) 지체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분노했다. 친구에게 맞아 겁에 질린 아들에게, 자꾸만 학교에 나오라고 강요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폭행 사건이 발생하고 열흘 정도 지나 학교폭력 자치위원회가 열렸다. 교사 3명,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 6명, 경찰 1명으로 구성된 학폭위가 가해 학생인 상현에게 내린 징계는 ‘출석정지 5일, 특별교육 이수 16시간’이 전부였다. 1년 내내 괴롭힘에 숨죽여 울었던 준원은 겨우 출석정지 5일이라는 조치 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괜히 신고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 종일 집에만 있던 준원에게 담임선생님이 갑자기 찾아왔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며 선생님은 준원에게 “때린 상현을 용서하라”고 말했다. “살다보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만일 선생님이 학창 시절에 그렇게 폭행을 당했다면, 선생님은 그렇게 용서하실 수 있겠냐’고 마음속으로만 반문했다. 그날 이후 준원은 깊은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용서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의 것인가


- 왜 출석을 강요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담임교사는 “폭행 다음 날 준원이 아무 일 없이 수업을 잘 받았고 아픈 데도 없어 보여 괜찮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학생이 결석을 하는 것은 ‘무단결석’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준원에게 상현을 용서하라고 한 것 역시 화해를 유도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친구 사이에는 싸울 수도 있고 화해를 할 수도 있는 건데, 친구 사이를 원수지간으로 둘 수는 없었다.”며 교사의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었다.



‘용서’ 만큼이나 아름다운 단어가 있을까. 하지만 피해자가 아닌, 제3자가 이야기할 때 그것은 위선에 불과하다. 가해자의 죄로 인해 한 번도 고통 받아 본 적 없는 제3자는 무엇을 용서해야 하는지도, 왜 용서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여전히 고통으로 숨죽여 우는 피해자에게 섣불리 용서를 운운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제3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위로의 방식은 그저 안부를 묻는 일이다. 피해자가 받은 상처에 대해 귀담아 들어주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당하게 이루어졌는지를 감시하는 일이다.

학교 폭력으로 오랜 기간 고통 받았던 준원과 그의 어머니가 학교에 바랐던 유일한 배려 역시 아마 그것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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