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허시험 간소화의 진실…‘쉬워져서 좋습니까?’

입력 2015.01.29 (13:45) 수정 2015.07.05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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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워진 운전면허... 사고 나면 그 피해는?

지난 2011년 6월 10일 운전면허 시험이 쉬워졌다. 운전면허 간소화란 이름 아래 장내 기능시험이 11개에서 2개로 대폭 축소되는 등 운전면허 취득이 편해졌다. 정부는 간소화 1년 뒤인 2012년 6월 운전면허시험을 쉽게 바꿨어도 응시생들이 주행시험에 집중하면서 ‘초보운전자'의 교통사고는 오히려 줄었다고 설명했다. 면허시험 간소화가 바른 선택이었다는 얘기다. 정부의 말은 사실일까?

■ 면허시험 간소화... 교통사고 정말 줄었나?

면허시험이 쉬워지고 나서 1년 뒤인 2012년 6월, 지금의 행정자치부인 행정안전부는 경찰청과 함께 운전면허 간소화로 면허를 취득하는 사람은 늘고 교통사고는 줄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행정안전부는 면허시험 간소화 뒤 2011년 6월 이후 2012년 5월말까지 면허 신규 취득자는 59%나 늘었지만 신규 취득자의 교통사고 발생률은 과거 3년 평균보다 36.6%나 줄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특히 1종 보통과 2종 보통의 운전면허 신규 취득자의 경우 면허시험이 쉬워지기 전인 2010년 6월 10일에서 2011년 6월 9일까지의 1년 동안 만 명 당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79.6명에서 다음 1년은 61.45명으로 줄었고, 다음 1년인 2012년 6월 10일에서 2013년 6월 9일까지는 61.43명으로 감소했다고 밝히고 있다. 같은 기간 만 명당 사망자 수도 1.58명에서 1.38명, 다시 1.11명으로 줄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 수치만 놓고 보면 면허시험 간소화 뒤 초보의 교통사고는 미약하나마 감소했다고 말할 수 있다.

■ 데이터로 확인... '2013년 전체는 줄었지만 초보는 증가'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변수가 하나 있다.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여전히 OECD 최고 수준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감소해 왔다는 사실이다. 전체 교통사고 건수와 사망자 수는 해마다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전체 평균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초보의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줄어드는 것도 사실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문제는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고, 또 하나는 정부 말대로 정말로 줄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KBS 데이터 저널리즘 팀은 정밀 분석을 했다. 운전면허 신규 취득자 수와 1년 미만 운전자의 교통사고 건수 데이터를 확보해 두 수치를 비교, 분석했다.

먼저 면허시험 간소화 대상인 1종보통과 2종보통 운전면허 신규 취득자의 전년 대비 증감분을 보면 2011년 30.1%, 2012년 10.9%, 2013년 마이너스 33%로 기록됐다. 2011년 6월 면허시험이 간소화 하면서 2011년과 2012년 응시생이 늘어났다가 2013년에는 신규 취득자 수가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면허시험이 쉬워진 해와 그 이듬해 응시생이 크게 늘어났고, 다음해에는 응시생 수가 크게 낮아졌던 사실이 수치로 확인됐다. 이처럼 해마다 면허 취득자 수의 편차가 컸기 때문에 단순히 사고 건수가 늘었는지, 줄었는지를 보는 것보다는 운전자 만 명당 교통사고 발생 건수와 사망자 수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기간 전체 운전자 만 명당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011년 89.04건에서 2011년 86.45건, 2013년 81.52건으로 낮아졌다. 전체 운전자 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2011년 2.1명에서 2012년 2.08명, 2013년에는 1.93건으로 낮아졌다. 전체 운전자의 교통사고 발생 건수도, 만 명당 사망자 수도 계속 감소 추세를 보인 것이다.

같은 기간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 1년 미만인 초보운전자의 만 명당 발생 건수는 2011년 71.53건에서 2012년 58.53건으로 줄었으나 2013년에는 68.89건으로 오히려 한해 전보다 늘어났다. 면허 취득 1년 미만 초보운전자의 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2011년 1.38명에서 2012년 1.30명으로 줄었으나 2013년에는 1.44명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전체 교통사고가 조금이나마 줄고 있는데, 면허시험 간소화가 된 이후에 면허취득 1년 미만 운전자, 즉 초보운전자의 사고 건수와 사망자 수는 오히려 늘어난 셈이다.

물론 초보운전자의 사고가 늘었다고 해도 이를 '면허시험 간소화'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면허시험 간소화 외에도 도로 사정과 차량의 안전 시스템, 교통안전 체계 등 교통사고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계 분석에서 살펴봤듯이 정부 주장처럼 운전면허시험이 간소화됐기에 초보운전자의 사고가 줄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나 전체 운전자의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줄고 있지만 초보운전자의 사고 발생은 그만큼 줄지 않거나, 오히려 늘기도 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모두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50미터만 가면 OK! '실수만 안 하면 기능시험 합격'

면허시험 간소화는 면허 시험장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장내기능 시험이 말 그대로 간소화됐기 때문이다. 과거 있었던 굴절코스와 곡선코스, 방향전환코스, 평행주차코스, 경사로 진입 등의 평가 항목이 크게 바뀌었다. 어떻게 바뀌었는가 하면 이들 항목은 아예 없어졌다.



그래서 지금 장내기능시험은 무척 단순하다. 일단 운전석에 오른 뒤 전조등을 켜면 5점을 얻고, 와이퍼를 돌리면 5점, 방향지시등을 켜면 5점을 얻는다. 기어 변속을 하면 다시 5점을 얻는다. 이어 차로를 지키며 천천히 운행을 하다가 중간에 돌발 상황을 가정한 급제동을 한번 하고 다시 차를 몰면 된다. 장내기능시험은 시작했나 싶다가 곧 끝나고 만다. 과거 700미터였지만, 지금은 50미터만 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험이기에 응시생들은 다들 긴장을 하고 운전석에 오른다. 30여 분간 옆에서 지켜본 결과 떨어지는 사람을 보기는 힘들었다. 응시생 한명이 '합격했습니다'라는 장내 안내문구가 나오기도 전에 성급히 안전띠를 풀어서 실격처리 됐을 뿐이다.

취재 중 만난 한 관계자는 '10여 년 전 운전면허를 취득한 사람이 요즘 기능시험을 치르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이런 하나마나한 시험은 왜 보는 걸까'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을 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약 5킬로미터를 운전해야 하는 도로주행 시험은 사실상 예전과 바뀐 게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도로주행 시험이 그대로 있기에 면허시험이 크게 쉬워졌다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 ‘외국인도 쉽게 취득’... 중국인 운전면허 급증



면허시험 간소화는 외국인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면허시험이 쉬워진 가운데 외국인의 면허 취득 건수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외국인 운전면허 취득자는 24,036명이었으나 2011년 36,561명, 2012년 46,139명, 2013년 48,374명으로 증가하는 등 급속히 늘고 있다.



특히 중국 국적의 면허취득자 수는 2010년 11,712명에서 2011년 21,223명 2012년 28,632명, 2013년 31,707명으로 늘어나는 등 전체 외국인 운전면허 취득자 가운데 절반 이상을 중국 국적의 응시생들이 차지했다. 제주의 경우 중국 국적 응시생들의 면허 취득은 면허시험 간소화 이전인 2010년만 해도 82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지난 2013년에는 608명으로 3년 만에 10배 가까이 늘었다.

■ 취득 비용은 낮아졌다?... '도로 연수에 돈 더 들어요'


정부가 운전면허 간소화와 관련해 강조하는 사실 하나는 면허 취득 비용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면허시험 간소화 이전에는 보통 면허 취득에 70만 원 이상이 들었지만 간소화 이후에는 40만원 안팎으로 낮아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2012년 행정안전부는 전문학원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할 경우 최소 소요 기간이 9일이 걸렸으나 이제는 2일이면 딸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운전면허를 이틀 만에 딸 수도 있음을 정부 스스로 강조한 셈이다. 그러나 최소 9일 걸렸던 면허시험이 최소 2일로 줄었어도 수강료는 같은 비율로 줄지 않은 셈이다.

살펴봐야 할 수치는 또 있다. 정부는 운전면허시험 취득 비용이 줄어서 사회적 비용도 줄고 그래서 국민에게 이익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교통사고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들어있지 않다. 도로교통공단이 2012년 발생한 교통사고를 기준으로 교통사고의 사회적 비용을 산출한 결과 연 23조원으로 나왔다. 5천여 명의 사망자와 수십만 명의 부상자, 차량 파손 등으로 인한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무엇보다 사람의 목숨은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다. 운전면허를 쉽게 따서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해도 사고가 늘어난다면 모두 무용지물인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정말로 비용이 줄었는지도 확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면허를 취득해도 운전을 난감해 하는 등 바로 운전대를 잡기 힘들어 하고 있다. 이들은 도로 연수를 필수 코스처럼 인식하면서 면허를 따고도 또 많은 돈을 쓰고 있다. 도로연수 비용은 10시간 기준으로 30만원 안팎이다.



도로연수 비용이 운전면허 취득 비용과 맞먹거나, 더 많이 들 수도 있는 현실에서 운전면허 학원이 아닌 무허가 업체나 개인으로부터 도로연수를 받는 합격생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무허가 업체로부터 도로연수를 받게 되면 면허 취득자는 당장 비용을 절감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사고 위험이 높아지고, 사고가 날 경우 보험 처리도 어렵게 될 수 있다. 서울의 경우 불법 운전교육 단속 건수는 2010년 45건에서 2011년 41건으로 줄었으나, 면허시험 간소화가 본격 적용된 2012년 48건으로 늘었고 2013년에는 63건으로 더 늘어났다. 전국의 불법 운전교육 단속 건수는 지난 2011년 129건에서 2012년 156건, 2013년 132건으로 집계됐다. 불법으로 도로연수를 하다가 적발된 건수만 매년 백 건이 넘기 때문에 실제로는 전국 곳곳에서 불법 도로연수가 쉼 없이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규제 완화가 만능 아닌데... 시험 제도 업그레이드 고민해야'

경찰 관계자는 지금의 운전면허 시스템이 문제가 많다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면허시험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방향은 없는지 경찰도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면허시험과 관련된 연구용역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고, 앞으로 운전면허시험 제도 개선과 관련한 공청회도 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면허시험 간소화와 관련해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선진국의 경우 운전면허시험이 단순히 운전을 할 수 있는 실력을 측정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안전운전을 할 수 있는 운전자를 배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반해서 우리의 면허시험 제도는 이명박 정부 때 '규제는 완화해야 좋다'는 분위기를 타고 무책임하게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김필수 교수는 생명과 관련된 안전 관련 규제는 오히려 강화해도 모자라지 않은데 면허시험 제도 또한 규제의 측면으로 보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운전면허증을 받고 나서야 도로에 나서게 된다. 운전면허시험은 교통안전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운전면허시험이 업그레이드되면 교통안전도 그만큼 업그레이드된다. 더 늦기 전에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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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면허시험 간소화의 진실…‘쉬워져서 좋습니까?’
    • 입력 2015-01-29 13:45:20
    • 수정2015-07-05 05: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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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워진 운전면허... 사고 나면 그 피해는? 지난 2011년 6월 10일 운전면허 시험이 쉬워졌다. 운전면허 간소화란 이름 아래 장내 기능시험이 11개에서 2개로 대폭 축소되는 등 운전면허 취득이 편해졌다. 정부는 간소화 1년 뒤인 2012년 6월 운전면허시험을 쉽게 바꿨어도 응시생들이 주행시험에 집중하면서 ‘초보운전자'의 교통사고는 오히려 줄었다고 설명했다. 면허시험 간소화가 바른 선택이었다는 얘기다. 정부의 말은 사실일까? ■ 면허시험 간소화... 교통사고 정말 줄었나? 면허시험이 쉬워지고 나서 1년 뒤인 2012년 6월, 지금의 행정자치부인 행정안전부는 경찰청과 함께 운전면허 간소화로 면허를 취득하는 사람은 늘고 교통사고는 줄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행정안전부는 면허시험 간소화 뒤 2011년 6월 이후 2012년 5월말까지 면허 신규 취득자는 59%나 늘었지만 신규 취득자의 교통사고 발생률은 과거 3년 평균보다 36.6%나 줄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특히 1종 보통과 2종 보통의 운전면허 신규 취득자의 경우 면허시험이 쉬워지기 전인 2010년 6월 10일에서 2011년 6월 9일까지의 1년 동안 만 명 당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79.6명에서 다음 1년은 61.45명으로 줄었고, 다음 1년인 2012년 6월 10일에서 2013년 6월 9일까지는 61.43명으로 감소했다고 밝히고 있다. 같은 기간 만 명당 사망자 수도 1.58명에서 1.38명, 다시 1.11명으로 줄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 수치만 놓고 보면 면허시험 간소화 뒤 초보의 교통사고는 미약하나마 감소했다고 말할 수 있다. ■ 데이터로 확인... '2013년 전체는 줄었지만 초보는 증가'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변수가 하나 있다.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여전히 OECD 최고 수준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감소해 왔다는 사실이다. 전체 교통사고 건수와 사망자 수는 해마다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전체 평균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초보의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줄어드는 것도 사실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문제는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고, 또 하나는 정부 말대로 정말로 줄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KBS 데이터 저널리즘 팀은 정밀 분석을 했다. 운전면허 신규 취득자 수와 1년 미만 운전자의 교통사고 건수 데이터를 확보해 두 수치를 비교, 분석했다. 먼저 면허시험 간소화 대상인 1종보통과 2종보통 운전면허 신규 취득자의 전년 대비 증감분을 보면 2011년 30.1%, 2012년 10.9%, 2013년 마이너스 33%로 기록됐다. 2011년 6월 면허시험이 간소화 하면서 2011년과 2012년 응시생이 늘어났다가 2013년에는 신규 취득자 수가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면허시험이 쉬워진 해와 그 이듬해 응시생이 크게 늘어났고, 다음해에는 응시생 수가 크게 낮아졌던 사실이 수치로 확인됐다. 이처럼 해마다 면허 취득자 수의 편차가 컸기 때문에 단순히 사고 건수가 늘었는지, 줄었는지를 보는 것보다는 운전자 만 명당 교통사고 발생 건수와 사망자 수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기간 전체 운전자 만 명당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011년 89.04건에서 2011년 86.45건, 2013년 81.52건으로 낮아졌다. 전체 운전자 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2011년 2.1명에서 2012년 2.08명, 2013년에는 1.93건으로 낮아졌다. 전체 운전자의 교통사고 발생 건수도, 만 명당 사망자 수도 계속 감소 추세를 보인 것이다. 같은 기간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 1년 미만인 초보운전자의 만 명당 발생 건수는 2011년 71.53건에서 2012년 58.53건으로 줄었으나 2013년에는 68.89건으로 오히려 한해 전보다 늘어났다. 면허 취득 1년 미만 초보운전자의 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2011년 1.38명에서 2012년 1.30명으로 줄었으나 2013년에는 1.44명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전체 교통사고가 조금이나마 줄고 있는데, 면허시험 간소화가 된 이후에 면허취득 1년 미만 운전자, 즉 초보운전자의 사고 건수와 사망자 수는 오히려 늘어난 셈이다. 물론 초보운전자의 사고가 늘었다고 해도 이를 '면허시험 간소화'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면허시험 간소화 외에도 도로 사정과 차량의 안전 시스템, 교통안전 체계 등 교통사고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계 분석에서 살펴봤듯이 정부 주장처럼 운전면허시험이 간소화됐기에 초보운전자의 사고가 줄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나 전체 운전자의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줄고 있지만 초보운전자의 사고 발생은 그만큼 줄지 않거나, 오히려 늘기도 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모두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50미터만 가면 OK! '실수만 안 하면 기능시험 합격' 면허시험 간소화는 면허 시험장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장내기능 시험이 말 그대로 간소화됐기 때문이다. 과거 있었던 굴절코스와 곡선코스, 방향전환코스, 평행주차코스, 경사로 진입 등의 평가 항목이 크게 바뀌었다. 어떻게 바뀌었는가 하면 이들 항목은 아예 없어졌다. 그래서 지금 장내기능시험은 무척 단순하다. 일단 운전석에 오른 뒤 전조등을 켜면 5점을 얻고, 와이퍼를 돌리면 5점, 방향지시등을 켜면 5점을 얻는다. 기어 변속을 하면 다시 5점을 얻는다. 이어 차로를 지키며 천천히 운행을 하다가 중간에 돌발 상황을 가정한 급제동을 한번 하고 다시 차를 몰면 된다. 장내기능시험은 시작했나 싶다가 곧 끝나고 만다. 과거 700미터였지만, 지금은 50미터만 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험이기에 응시생들은 다들 긴장을 하고 운전석에 오른다. 30여 분간 옆에서 지켜본 결과 떨어지는 사람을 보기는 힘들었다. 응시생 한명이 '합격했습니다'라는 장내 안내문구가 나오기도 전에 성급히 안전띠를 풀어서 실격처리 됐을 뿐이다. 취재 중 만난 한 관계자는 '10여 년 전 운전면허를 취득한 사람이 요즘 기능시험을 치르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이런 하나마나한 시험은 왜 보는 걸까'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을 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약 5킬로미터를 운전해야 하는 도로주행 시험은 사실상 예전과 바뀐 게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도로주행 시험이 그대로 있기에 면허시험이 크게 쉬워졌다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 ‘외국인도 쉽게 취득’... 중국인 운전면허 급증 면허시험 간소화는 외국인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면허시험이 쉬워진 가운데 외국인의 면허 취득 건수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외국인 운전면허 취득자는 24,036명이었으나 2011년 36,561명, 2012년 46,139명, 2013년 48,374명으로 증가하는 등 급속히 늘고 있다. 특히 중국 국적의 면허취득자 수는 2010년 11,712명에서 2011년 21,223명 2012년 28,632명, 2013년 31,707명으로 늘어나는 등 전체 외국인 운전면허 취득자 가운데 절반 이상을 중국 국적의 응시생들이 차지했다. 제주의 경우 중국 국적 응시생들의 면허 취득은 면허시험 간소화 이전인 2010년만 해도 82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지난 2013년에는 608명으로 3년 만에 10배 가까이 늘었다. ■ 취득 비용은 낮아졌다?... '도로 연수에 돈 더 들어요' 정부가 운전면허 간소화와 관련해 강조하는 사실 하나는 면허 취득 비용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면허시험 간소화 이전에는 보통 면허 취득에 70만 원 이상이 들었지만 간소화 이후에는 40만원 안팎으로 낮아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2012년 행정안전부는 전문학원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할 경우 최소 소요 기간이 9일이 걸렸으나 이제는 2일이면 딸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운전면허를 이틀 만에 딸 수도 있음을 정부 스스로 강조한 셈이다. 그러나 최소 9일 걸렸던 면허시험이 최소 2일로 줄었어도 수강료는 같은 비율로 줄지 않은 셈이다. 살펴봐야 할 수치는 또 있다. 정부는 운전면허시험 취득 비용이 줄어서 사회적 비용도 줄고 그래서 국민에게 이익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교통사고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들어있지 않다. 도로교통공단이 2012년 발생한 교통사고를 기준으로 교통사고의 사회적 비용을 산출한 결과 연 23조원으로 나왔다. 5천여 명의 사망자와 수십만 명의 부상자, 차량 파손 등으로 인한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무엇보다 사람의 목숨은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다. 운전면허를 쉽게 따서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해도 사고가 늘어난다면 모두 무용지물인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정말로 비용이 줄었는지도 확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면허를 취득해도 운전을 난감해 하는 등 바로 운전대를 잡기 힘들어 하고 있다. 이들은 도로 연수를 필수 코스처럼 인식하면서 면허를 따고도 또 많은 돈을 쓰고 있다. 도로연수 비용은 10시간 기준으로 30만원 안팎이다. 도로연수 비용이 운전면허 취득 비용과 맞먹거나, 더 많이 들 수도 있는 현실에서 운전면허 학원이 아닌 무허가 업체나 개인으로부터 도로연수를 받는 합격생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무허가 업체로부터 도로연수를 받게 되면 면허 취득자는 당장 비용을 절감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사고 위험이 높아지고, 사고가 날 경우 보험 처리도 어렵게 될 수 있다. 서울의 경우 불법 운전교육 단속 건수는 2010년 45건에서 2011년 41건으로 줄었으나, 면허시험 간소화가 본격 적용된 2012년 48건으로 늘었고 2013년에는 63건으로 더 늘어났다. 전국의 불법 운전교육 단속 건수는 지난 2011년 129건에서 2012년 156건, 2013년 132건으로 집계됐다. 불법으로 도로연수를 하다가 적발된 건수만 매년 백 건이 넘기 때문에 실제로는 전국 곳곳에서 불법 도로연수가 쉼 없이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규제 완화가 만능 아닌데... 시험 제도 업그레이드 고민해야' 경찰 관계자는 지금의 운전면허 시스템이 문제가 많다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면허시험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방향은 없는지 경찰도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면허시험과 관련된 연구용역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고, 앞으로 운전면허시험 제도 개선과 관련한 공청회도 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면허시험 간소화와 관련해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선진국의 경우 운전면허시험이 단순히 운전을 할 수 있는 실력을 측정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안전운전을 할 수 있는 운전자를 배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반해서 우리의 면허시험 제도는 이명박 정부 때 '규제는 완화해야 좋다'는 분위기를 타고 무책임하게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김필수 교수는 생명과 관련된 안전 관련 규제는 오히려 강화해도 모자라지 않은데 면허시험 제도 또한 규제의 측면으로 보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운전면허증을 받고 나서야 도로에 나서게 된다. 운전면허시험은 교통안전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운전면허시험이 업그레이드되면 교통안전도 그만큼 업그레이드된다. 더 늦기 전에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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