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풍랑 헤친 슈틸리케호 ‘값진 준우승’

입력 2015.01.31 (20:49) 수정 2015.01.3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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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풍랑 속에서 출범한 슈틸리케호가 위기의 바다에서 희망을 건져 올렸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31일 호주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2015 호주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호주에 1-2로 패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55년 만에 아시아 대륙 정상에 오르는 역사를 쓰는 데에는 실패했으나 좌절보다는 희망을 발견한 대회였다.

한국 축구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커다란 실패를 맛보며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았다.

사상 첫 원정 8강 진출을 목표로 삼았으나 불과 1년 만에 급조된 대표팀은 1무 2패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신화를 쓰며 미래를 이끌어갈 지도자로 주목받았던 홍명보 전 대표팀 감독은 추락에 추락을 거듭했다.

정당한 비판도 있었으나 과도한 비난이 더해지면서 축구계에는 한바탕 광풍이 휘몰아쳤다.

대한축구협회는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이용수 세종대 교수를 기술위원장 자리에 앉히며 '키'를 맡겼다.

새 수장을 고르는 일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한국 축구의 체질까지 개선할 지도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축구협회는 후보 선상에 오른 굵직한 이름들 가운데 네덜란드 출신의 판마르베이크 감독과 협상에 들어갔으나 연봉과 활동 지역에 대한 의견 차이로 결렬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분명 한국 축구의 '차선책'이었다. 그러나 '적임자'이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차기 감독을 선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열정'과 '헌신'을 꼽았다.

화려했던 선수 경력과 비교하면 딱히 내세울 것 없는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던 슈틸리케 감독에게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 자리는 '독이 든 성배'가 아닌 인생을 건 '반등의 기회'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그동안 홀대받았던 중동 리거들을 대표팀에 대거 불러들이고 이동국(전북 현대) 등 베테랑을 복귀시켰다.

보다 공격적인 점유율 축구를 전개하며 팬들의 기대를 부풀렸다.

그러나 첫 시험대인 2015 호주 아시안컵이 코앞이었다. 지휘봉을 잡은 뒤 불과 4개월 만에 대륙선수권대회에서 팬들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가혹한 상황이었다.

아시안컵은 4강이라는 성적을 내도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대회다. 게다가 한국은 1960년 대회 이후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적이 없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름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승패와 상관없이 경기력이 기대에 못미치면 웃는 법이 없었다. 현재의 결과에 목을 매지 않고 냉철하게 분석하며 대표팀을 조금씩 발전시켜 나갔다.

또 발품을 팔아 K리그 경기를 보러 다니며 '흙 속의 진주'를 찾아 나섰다. 그렇게 뽑은 이정협(상주 상무)은 이번 대회 고비마다 골을 넣으며 결승 진출의 견인차 구실을 했다.

대회가 시작되고서도 계속된 난관이 슈틸리케호의 발목을 잡았다.

이동국과 김신욱(울산 현대), 박주영(알 샤밥) 등 스트라이커 자원을 부상과 기량 저하로 선발하지 못한 상황에서 구자철(마인츠), 이청용(볼턴)이 부상으로 대회 도중 짐을 싸야 했다. '차 포'를 뗀 격이었다.

조별리그에서는 주전 선수 5명이 감기 몸살 증상을 보여 전열 구성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위기 속에서 맞은 호주와의 조별리그 3차전.

태극전사들은 수세에 몰리면서도 놀라운 집중력으로 호주의 맹공을 막아내고 이정협의 결승골을 앞세워 1-0 승리를 쟁취, 노감독의 열정에 화답했다. 대표팀을 둘러싼 분위기는 어느새 급반전됐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는 잠자고 있던 '에이스' 손흥민(레버쿠젠)의 발끝이 불을 뿜으며 연장 접전 끝에 2-0 승리를 따냈고 그 기세는 이라크와의 4강전(2-0 승)에서도 이어졌다.

팬들은 계속되는 아슬아슬한 무실점 승리에 '늪 축구' '실학 축구' 등의 별명을 붙이며 열광했으나 슈틸리케 감독은 "우승해도 한국 축구는 더 노력해야 한다"며 냉철한 자세를 유지했다.

일방적인 홈 팬들의 응원과도 맞서야 했던 대망의 결승전에서 한국은 다시 대면한 호주에게 결국 무릎을 꿇었다.

이번에도 결국 성적으로는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으나 대표팀을 향한 팬들의 시선에 어린 감정은 '실망'에서 '기대'로 바뀌었다.

짧은 준비 기간에도 27년 만에 아시안컵 결승 진출을 이루며 팬들의 마음을 돌려세운 슈틸리케 감독의 눈은 이제 2018 러시아 월드컵을 향하고 있다. '난세의 영웅'이 된 그가 한국 축구를 어디까지 올려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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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1-31 20:49:09
    • 수정2015-01-31 20:50:16
    연합뉴스
거친 풍랑 속에서 출범한 슈틸리케호가 위기의 바다에서 희망을 건져 올렸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31일 호주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2015 호주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호주에 1-2로 패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55년 만에 아시아 대륙 정상에 오르는 역사를 쓰는 데에는 실패했으나 좌절보다는 희망을 발견한 대회였다. 한국 축구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커다란 실패를 맛보며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았다. 사상 첫 원정 8강 진출을 목표로 삼았으나 불과 1년 만에 급조된 대표팀은 1무 2패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신화를 쓰며 미래를 이끌어갈 지도자로 주목받았던 홍명보 전 대표팀 감독은 추락에 추락을 거듭했다. 정당한 비판도 있었으나 과도한 비난이 더해지면서 축구계에는 한바탕 광풍이 휘몰아쳤다. 대한축구협회는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이용수 세종대 교수를 기술위원장 자리에 앉히며 '키'를 맡겼다. 새 수장을 고르는 일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한국 축구의 체질까지 개선할 지도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축구협회는 후보 선상에 오른 굵직한 이름들 가운데 네덜란드 출신의 판마르베이크 감독과 협상에 들어갔으나 연봉과 활동 지역에 대한 의견 차이로 결렬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분명 한국 축구의 '차선책'이었다. 그러나 '적임자'이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차기 감독을 선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열정'과 '헌신'을 꼽았다. 화려했던 선수 경력과 비교하면 딱히 내세울 것 없는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던 슈틸리케 감독에게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 자리는 '독이 든 성배'가 아닌 인생을 건 '반등의 기회'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그동안 홀대받았던 중동 리거들을 대표팀에 대거 불러들이고 이동국(전북 현대) 등 베테랑을 복귀시켰다. 보다 공격적인 점유율 축구를 전개하며 팬들의 기대를 부풀렸다. 그러나 첫 시험대인 2015 호주 아시안컵이 코앞이었다. 지휘봉을 잡은 뒤 불과 4개월 만에 대륙선수권대회에서 팬들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가혹한 상황이었다. 아시안컵은 4강이라는 성적을 내도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대회다. 게다가 한국은 1960년 대회 이후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적이 없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름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승패와 상관없이 경기력이 기대에 못미치면 웃는 법이 없었다. 현재의 결과에 목을 매지 않고 냉철하게 분석하며 대표팀을 조금씩 발전시켜 나갔다. 또 발품을 팔아 K리그 경기를 보러 다니며 '흙 속의 진주'를 찾아 나섰다. 그렇게 뽑은 이정협(상주 상무)은 이번 대회 고비마다 골을 넣으며 결승 진출의 견인차 구실을 했다. 대회가 시작되고서도 계속된 난관이 슈틸리케호의 발목을 잡았다. 이동국과 김신욱(울산 현대), 박주영(알 샤밥) 등 스트라이커 자원을 부상과 기량 저하로 선발하지 못한 상황에서 구자철(마인츠), 이청용(볼턴)이 부상으로 대회 도중 짐을 싸야 했다. '차 포'를 뗀 격이었다. 조별리그에서는 주전 선수 5명이 감기 몸살 증상을 보여 전열 구성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위기 속에서 맞은 호주와의 조별리그 3차전. 태극전사들은 수세에 몰리면서도 놀라운 집중력으로 호주의 맹공을 막아내고 이정협의 결승골을 앞세워 1-0 승리를 쟁취, 노감독의 열정에 화답했다. 대표팀을 둘러싼 분위기는 어느새 급반전됐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는 잠자고 있던 '에이스' 손흥민(레버쿠젠)의 발끝이 불을 뿜으며 연장 접전 끝에 2-0 승리를 따냈고 그 기세는 이라크와의 4강전(2-0 승)에서도 이어졌다. 팬들은 계속되는 아슬아슬한 무실점 승리에 '늪 축구' '실학 축구' 등의 별명을 붙이며 열광했으나 슈틸리케 감독은 "우승해도 한국 축구는 더 노력해야 한다"며 냉철한 자세를 유지했다. 일방적인 홈 팬들의 응원과도 맞서야 했던 대망의 결승전에서 한국은 다시 대면한 호주에게 결국 무릎을 꿇었다. 이번에도 결국 성적으로는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으나 대표팀을 향한 팬들의 시선에 어린 감정은 '실망'에서 '기대'로 바뀌었다. 짧은 준비 기간에도 27년 만에 아시안컵 결승 진출을 이루며 팬들의 마음을 돌려세운 슈틸리케 감독의 눈은 이제 2018 러시아 월드컵을 향하고 있다. '난세의 영웅'이 된 그가 한국 축구를 어디까지 올려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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