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軍에서 고장난 게 ‘암호’ 뿐일까?

입력 2015.02.10 (06:03) 수정 2015.02.10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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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 군 관계자가 했다는 답변인 `군이라서 그렇습니다`...정말 민간 보안관계자의 말대로 걸작인 답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한 답변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방송 이후 올라온 댓글)

지난 8일 취재파일 K를 통해 방송된 '고장난 軍 암호'는 이 댓글처럼 군에 대한 애정과 깊은 관심에서 시작된 취재의 성과입니다. 저는 지난 2012년 중순부터 일 년 동안 국방부 취재를 담당했습니다. 벌써 2년 반 전이군요. 7월 2일 맑게 갠 아침, 다시 군에 입대하는 떨리는 심정으로 국방부 기자실로 들어갔던 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이날부터 저는 국방부에서 신원 조회 때문에 늦게 발급되는 출입증 문제로 속을 태워야 했습니다.또 보안상의 이유로 취재가 자유롭지 못한 점도 감내해야 했습니다. 또 타사 선배 기자와 국방전문기자들이 사안의 '맥'을 짚는 보도를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름의 적응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군대로 본다면 충남 논산에서 보낸 훈련병 시절과 같다고 할까요.

국방부 건물 안의 '화장실- 대변인실- 기자실'을 오가는 이른바 '3실 기자'를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반년쯤 지나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이때부터 애정 어린 시각으로 "탈북자 NLL 통해 월북…해상관리 ‘구멍’", 방사청 “미 공군에 F-35 결함 개선책 요구” 등을 취재해서 보도했습니다.



국방부 출입 경험을 이같이 길게 설명한 이유는 이번에 취재파일K를 통해 방송한 '고장난 軍 암호'도 군과 군 정보기관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에서 모든 취재가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만난 제보자도 비슷한 마음가짐이었을 것입니다. 팀 내의 후배 기자들 조차 '국방 관련 취재원을 어떻게 어디서 만났는지.' 묻고 있지만, 저는 혹시라도 취재원의 신원이 공개될까 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습니다.



군의 문제나 방산 비리를 제보하시는 분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쫓기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군 정보기관에서 자신들을 도-감청하거나 미행한다는 불안에 떨고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 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강남의 A 카페에서 처음 만났고, 커피나 음료도 시키지 않은 채 약속 시간을 넘겨 가면서 열변을 토했습니다. 이분과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도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이 과정에 다행히 해커 출신 보안 전문가를 만났고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전문가를 통해 상당 부분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군과 민간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네트워크 암호장비의 첫 번째 문제는 간헐적으로 암호문이 아니라 평문이 오간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됐고, 이에 대한 공식-비공식적인 논의도 여러 차례 열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어 지난해 열린 국감에서는 같은 모델장비의 또 다른 결함이 이미 지적됐습니다. 꺼진 상태의 암호 장비를 다시 켤 때 생기는 공백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서 각 군 부대에 한동안 운용상 주의사항을 전파했던 것으로 취재결과 드러났습니다.



취재 과정에 가장 궁금한 것은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의 입장이었습니다. 해당 업체뿐만 아니라 이 업체를 최근에 인수한 모기업 격인 회사에도 연락을 해봤지만 정확한 답변을 들을 순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방산 업계에서는 '암호장비와 관련된 핵심 기술과 설계는 국가보안기술연구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해당 업체가 따로 해명하지 않은 것'이란 분석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국방부는 지난해 10월에는 M 모델의 암호 장비에 결함이 없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일부 언론보도가 나간 직후에 언론보도에 대한 해명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KBS 취재파일K팀의 보도가 시작되자 국방부는 처음으로 결함을 시인했습니다. 서면 답변으로 하겠다는 국방부를 계속 설득했고, 결국 취재가 마무리될 때쯤에 결함을 시인하는 인터뷰를 확보할수 있었습니다. 이를 2월 8일 <뉴스 9>에 미리 반영해서 내보냈습니다.

정말 4달 동안 모든 결함을 개선되고 완벽히 보완됐을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매우 회의적이라도 답변합니다.



취재과정에 만난 업계 전문가 P 씨는 해당 암호장비의 결함이 단순한 업그레드로 해결될 사항이 아니라고 단언했습니다. 이 장비와 관련해 심층적인 서면 조사를 한 국회의원실에서도 즉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국방부 측이 장비의 결함을 시인한 것은 의미있는 답변이지만, 완벽하게 보완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국회 관계자도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추가 취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방산업계 전문가들은 사이버 공격 뿐만 아니라 모든 정보전은 암호시스템과 장비체계에서 판가름난다고 말합니다. 결함과 운영상 문제점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해군의 최첨단 이지스함의 레이더와 통신 체계뿐만 아니라 공군이 도입 예정인 최신 스텔스기인 F-35의 운영체계는 대부분 암호화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지상과의 교신도 모두 철저한 보안 속에 암호 시스템을 통해 이뤄집니다.

이처럼 우리 군의 모든 무기체계를 구성하는 통신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암호장비,

이 장비에 결함이 있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요.발생하지도 않은 문제를 걱정하는 '기우'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요.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의 따끔한 조언으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2차 세계 대전중에 연합국은 에니그마 장비를 입수하고 상대국인 독일의 암호 통신을 100% 해석해서 상대방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도 복잡한 암호체계를 가지고 대비를 잘했다고 하지만 미국은 그것을 이미 그것을 파악하고 봤기 때문에 진주만 폭격으로 인한 큰 피해 이후에도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습니다.

결국은 이런 암호체계라고 하는 것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고 한 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는 그런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란 것입니다."
(양욱 연구위원의 방송용 인터뷰)

☞ 바로가기 <뉴스9> 군 통신용 암호 장비 ‘결함’…땜질식 처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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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軍에서 고장난 게 ‘암호’ 뿐일까?
    • 입력 2015-02-10 06:03:52
    • 수정2015-02-10 06:29:24
    취재후·사건후
"기무사 군 관계자가 했다는 답변인 `군이라서 그렇습니다`...정말 민간 보안관계자의 말대로 걸작인 답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한 답변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방송 이후 올라온 댓글)

지난 8일 취재파일 K를 통해 방송된 '고장난 軍 암호'는 이 댓글처럼 군에 대한 애정과 깊은 관심에서 시작된 취재의 성과입니다. 저는 지난 2012년 중순부터 일 년 동안 국방부 취재를 담당했습니다. 벌써 2년 반 전이군요. 7월 2일 맑게 갠 아침, 다시 군에 입대하는 떨리는 심정으로 국방부 기자실로 들어갔던 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이날부터 저는 국방부에서 신원 조회 때문에 늦게 발급되는 출입증 문제로 속을 태워야 했습니다.또 보안상의 이유로 취재가 자유롭지 못한 점도 감내해야 했습니다. 또 타사 선배 기자와 국방전문기자들이 사안의 '맥'을 짚는 보도를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름의 적응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군대로 본다면 충남 논산에서 보낸 훈련병 시절과 같다고 할까요.

국방부 건물 안의 '화장실- 대변인실- 기자실'을 오가는 이른바 '3실 기자'를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반년쯤 지나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이때부터 애정 어린 시각으로 "탈북자 NLL 통해 월북…해상관리 ‘구멍’", 방사청 “미 공군에 F-35 결함 개선책 요구” 등을 취재해서 보도했습니다.



국방부 출입 경험을 이같이 길게 설명한 이유는 이번에 취재파일K를 통해 방송한 '고장난 軍 암호'도 군과 군 정보기관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에서 모든 취재가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만난 제보자도 비슷한 마음가짐이었을 것입니다. 팀 내의 후배 기자들 조차 '국방 관련 취재원을 어떻게 어디서 만났는지.' 묻고 있지만, 저는 혹시라도 취재원의 신원이 공개될까 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습니다.



군의 문제나 방산 비리를 제보하시는 분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쫓기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군 정보기관에서 자신들을 도-감청하거나 미행한다는 불안에 떨고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 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강남의 A 카페에서 처음 만났고, 커피나 음료도 시키지 않은 채 약속 시간을 넘겨 가면서 열변을 토했습니다. 이분과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도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이 과정에 다행히 해커 출신 보안 전문가를 만났고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전문가를 통해 상당 부분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군과 민간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네트워크 암호장비의 첫 번째 문제는 간헐적으로 암호문이 아니라 평문이 오간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됐고, 이에 대한 공식-비공식적인 논의도 여러 차례 열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어 지난해 열린 국감에서는 같은 모델장비의 또 다른 결함이 이미 지적됐습니다. 꺼진 상태의 암호 장비를 다시 켤 때 생기는 공백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서 각 군 부대에 한동안 운용상 주의사항을 전파했던 것으로 취재결과 드러났습니다.



취재 과정에 가장 궁금한 것은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의 입장이었습니다. 해당 업체뿐만 아니라 이 업체를 최근에 인수한 모기업 격인 회사에도 연락을 해봤지만 정확한 답변을 들을 순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방산 업계에서는 '암호장비와 관련된 핵심 기술과 설계는 국가보안기술연구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해당 업체가 따로 해명하지 않은 것'이란 분석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국방부는 지난해 10월에는 M 모델의 암호 장비에 결함이 없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일부 언론보도가 나간 직후에 언론보도에 대한 해명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KBS 취재파일K팀의 보도가 시작되자 국방부는 처음으로 결함을 시인했습니다. 서면 답변으로 하겠다는 국방부를 계속 설득했고, 결국 취재가 마무리될 때쯤에 결함을 시인하는 인터뷰를 확보할수 있었습니다. 이를 2월 8일 <뉴스 9>에 미리 반영해서 내보냈습니다.

정말 4달 동안 모든 결함을 개선되고 완벽히 보완됐을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매우 회의적이라도 답변합니다.



취재과정에 만난 업계 전문가 P 씨는 해당 암호장비의 결함이 단순한 업그레드로 해결될 사항이 아니라고 단언했습니다. 이 장비와 관련해 심층적인 서면 조사를 한 국회의원실에서도 즉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국방부 측이 장비의 결함을 시인한 것은 의미있는 답변이지만, 완벽하게 보완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국회 관계자도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추가 취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방산업계 전문가들은 사이버 공격 뿐만 아니라 모든 정보전은 암호시스템과 장비체계에서 판가름난다고 말합니다. 결함과 운영상 문제점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해군의 최첨단 이지스함의 레이더와 통신 체계뿐만 아니라 공군이 도입 예정인 최신 스텔스기인 F-35의 운영체계는 대부분 암호화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지상과의 교신도 모두 철저한 보안 속에 암호 시스템을 통해 이뤄집니다.

이처럼 우리 군의 모든 무기체계를 구성하는 통신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암호장비,

이 장비에 결함이 있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요.발생하지도 않은 문제를 걱정하는 '기우'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요.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의 따끔한 조언으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2차 세계 대전중에 연합국은 에니그마 장비를 입수하고 상대국인 독일의 암호 통신을 100% 해석해서 상대방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도 복잡한 암호체계를 가지고 대비를 잘했다고 하지만 미국은 그것을 이미 그것을 파악하고 봤기 때문에 진주만 폭격으로 인한 큰 피해 이후에도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습니다.

결국은 이런 암호체계라고 하는 것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고 한 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는 그런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란 것입니다."
(양욱 연구위원의 방송용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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